| [ milita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호연지기) 날 짜 (Date): 1999년 7월 31일 토요일 오후 05시 23분 35초 제 목(Title): 신동아/북한의 미사일 게임 [심층연구] 프로그에서 대포동까지 북한의 미사일 게임 1998년 8월 31일 대포동 시험발사에 이어 북한이 또 한 차례 미사일을 시험발사할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극심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북한이 미사일 개발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수십년간 계속되온 남북한의 미사일 경쟁사, 그리고 '미사일의 국제정치학' 총점검. 이정훈 동아일보 뉴스플러스 기자 ------------------------------------------------------------------------------- - '늑 대와 소년’-. ‘불바다’ 협박은 처음 들을 때가 무섭지 두세 번 듣다 보면 “그러려니” 하게 된다. 1993년 5월29일, 북한이 동해상으로 노동 1호를 시험 발사했을 때 한국은 바짝 긴장했었다. 미사일에 대해서 잘 모르는 기자들이 막연히 ‘대단한 무기일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 공포가 국민들에 전달되면서 한국 사회 전체가 겁을 먹었다. 98년 8월31일 북한은 사정거리가 훨씬 긴 대포동 1호를 발사했다. 북한은 이번에는 ‘불바다’ 공갈 대신, 인공위성 ‘광명성 1호’를 쏘아 올렸다고 변명했다. 그래서였을까? 한국 사회는 93년만큼 긴장하지 않았다. 이 사건 직후 국방부가 “한국과 미국은 10여일 전부터 대포동 발사 사실을 추적해왔다”며, 곧 바로 탄착지점을 발표한 것도 한국 사회가 덜 긴장했던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하지만 대포동 1호 발사는 일본 열도를 뒤흔들었다. 일본의 보수층은 이를 일본을 보통국가로 제한하는 기회로 삼으려 했다. 일본은 ‘전범(戰犯) 국가’기 때문에 군대를 보유할 수도, 무기를 수출할 수도, 군대를 파병할 수도 없다. 오자와 이치로를 비롯한 일본 우익은 그동안 “2차 대전이 끝난 지 반세기가 지났으니 일본도 전범국의 멍에를 벗고 다른 보통 나라와 똑같이 대접받아야 한다”며 ‘보통국가론’을 주창해왔다. 한국은 당연히 보통국가다. 따라서 군대를 보유하고 파병하고 무기를 수출할 수도 있다. 군대는 물론 우리 마음대로 보유한다. 하지만 독자적으로 군대를 파병하고 무기를 수출할 ‘실력’이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보통국가’ 일본의 경우엔 상황이 다르다. 자위대를 군대로 바꾸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고, 당장에 군대를 파병할 수도 있다. 하이테크를 기반으로 한 첨단무기 수출로 생길 수입도 꽤 쏠쏠할 것이다. 그래서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 국가들은 보통국가론을 ‘일본 재무장론’으로 이해한다. 같은 현상을 놓고 일본과 동북아 국가들의 해석이 극과 극으로 갈리는 것이다. 이러한 극단화를 불러오는 촉매 중의 하나가 바로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다. 일본이 동북아 국가의 견제를 돌파하고 보통국가가 되는 것보다, 한반도 통일이 훨씬 어려운 숙제다. 일본은 “늑대야”라고 외치는 소년을 핑계로 보통국가로 치달으려고 한다. 그런데도 한국은 ‘늑대와 소년’의 의미를 훈고학(訓誥學)적으로만 따지고 있다. 상당수 한국인들은 북한의 미사일 위협부터 막아야 할지, 일본의 보통국가화부터 막아야 할지 헷갈리고 있는 셈이다. 한국인은 과연 언제 어떤 방법으로 통일할 것인지 고민이나 하고 있는 것일까?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내포한 동북아의 국제정치학적 의미와 통일, 그리고 남북한간 미사일 개발 경쟁사는 이런 질문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될 수 있다. 제1부 : 북한 미사일의 국제정치학 황 해도와 강원도는 마식령산맥을 경계로 나누어진다. 마식령산맥 쪽의 황해도를 북한에서는 황해북도라고 하는데, 이 곳에 신계군이 있다. 신계군에는 향로봉·고주애산·율목산·봉화산 등 700m급의 봉우리가 즐비하며, 고려 말 우왕 때 천도(遷都)지로 논의됐을 만큼 천연의 군사요새다. 이 신계에 북한은 이동식 스커드 B 미사일 발사대를 숨겨 놓고 있다. <그림 1>은 북한군이 신계에서 발사한 스커드 B가 남한 각 도시에 도달하는 시간을 표시한 것이다. 신계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약 100㎞인데 도달 시간은 불과 3분40초(220초). 대전까지 300㎞를 날아오는 데에는 5분14초(314초), 부산까지 500㎞를 비행하는 데는 6분55초(415초)밖에 걸리지 않는다. 신계에서 서울까지 전투기가 최고 속도로 비행하면 6분 내지 10분이 걸린다. 스커드 B는 최고 속도의 전투기보다 두 배 이상 빠른 셈이다. 왜 이렇게 빠를까? 정답은 “탄도 미사일(Ballistic Missile)이기 때문”이다. 북한 미사일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잠시 원론적인 미사일 이야기를 펼쳐보자. ------------------------------------------------------------------------------- - 탄도 미사일과 순항 미사일 ------------------------------------------------------------------------------- - 탄도(彈道)란 하늘을 향해 총을 쏘았을 때 그 총알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궤적을 말한다. 하늘로 발사한 미사일은 2차 함수 그래프처럼 정점에 이르렀다가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기 때문에 탄도 미사일이라고 부른다. 탄도 미사일의 대척점에 있는 게 ‘순항(巡航) 미사일(Cruse Missile)’이다. 순항 미사일은 비행기처럼 정해진 목표물을 향해 자기가 가고 싶은 대로 날아간다. 대표적인 순항 미사일인 토마호크는 무인 비행기처럼 산이나 대형 건물 등을 피해가면서 수백㎞를 혼자 날아가 목표물을 파괴한다. 전투기들이 공중전을 벌일 때 쏘는 열추적 공대공 미사일도 순항 미사일이다. 이 미사일들은 상대 전투기의 꽁무니에서 나오는 열을 쫓아가므로 포물선을 그리지 않는다. 군함끼리의 전투에서 쏘는 엑소세나 하푼 등 함대함 미사일도 순항 미사일. 이 미사일은 수면에 바짝 붙어 수평 비행하다가 목표물 근처에서 치솟았다가 적 함정 기관실을 항해 떨어진다. 기관실을 때려야 함정의 보일러가 터져 파괴 효과가 극대화되기 때문이다(포물선을 그리지 않는 미사일을 전부 순항 미사일로 분류할 수 있느냐에 대해서는 이론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탄도 미사일이 주제이므로, 그 외에는 모두 순항 미사일로 분류한다). 순항 미사일은 낮은 고도에서 비행하므로 주로 제트 엔진을 사용한다. 또 자유 자재로 비행해야 하므로 몸체에 숱한 전자장비를 넣고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제어부가 커지고 고폭약을 탑재하는 탄두(彈頭)부는 작아진다(탄두부에 들어가는 화약은 순식간에 폭발해 아주 강한 힘을 내므로 고폭약이라고 하며, 추진기관에 들어가는 화약 성분의 화공약품은 장시간 연소하므로 추진제라고 한다). 이와는 반대인 것이 탄도 미사일이다. 탄도 미사일의 추진제는 목표물을 맞히기 훨씬 전, 그러니까 포물선 꼭대기에 올라가기 직전에 다 타버린다. 이후부터는 관성(慣性)으로 포물선을 그리며 반대편 지상으로 돌진한다. 따라서 순항 미사일에 비해 훨씬 멀리 있는 목표물을 가격할 수가 있다. 탄도 미사일은 아주 힘이 강한 로켓으로 발사되기 때문에 순항 미사일보다 훨씬 크다. 탄두부에 탑재하는 고폭약의 양도 많아서 한국의 현무 미사일은 500㎏, 북한의 스커드 B는 1t(985㎏)에 육박하는 고폭약을 탑재한다. 순항 미사일은 작은 목표물을 정확하게 때리는 핀 포인트(pin point) 공격을 하지만, 탄도 미사일은 적군의 전쟁 지휘부나 비행장·공업단지·방산 공장 등 중요한 고정 목표물을 가격한다. 그래서 탄도 미사일은 ‘에어리어 타격용 미사일’이라고도 한다. 탄도 미사일이 원거리를 날아가려면 높이 쏘아 올려야 한다. <그림 1>에서처럼 신계에서 발사된 스커드 B가 서울까지 날아오려면 고도 35㎞까지 올라가야 하고, 부산을 때리려면 고도 137.7㎞까지 올라가야 한다. 따라서 탄도 미사일 개발에서는 로켓을 어느 고도까지 쏘아 올릴 수 있느냐가 매우 중요한 문제다. 탄도 미사일 중 가장 먼 거리를 날아가는 것이 대륙간 탄도 미사일(ICBM)이다. 이 미사일은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가 되들어온다. 이보다 사거리가 짧은 중거리 탄도 미사일(IRBM)과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 (MRBM)도 대기권을 벗어났다가 재돌입한다. ------------------------------------------------------------------------------- - 북한에 한참 뒤진 한국의 미사일 기술 ------------------------------------------------------------------------------- - 그러나 단거리 탄도 미사일(SRBM)이나 전장(戰場) 단거리 탄도 미사일(BSRBM)은 대기권 내에서 정점에 이르렀다가 낙하한다. 대기권 안에서만 포물선을 그리는 미사일을 ‘전술 탄도 미사일’이라고 하고, 대기권을 벗어났다가 재돌입하는 미사일은 ‘전략 탄도 미사일’이라고 한다. 대기권 밖으로 나가는 전략 탄도 미사일과 인공위성을 띄우는 로켓은 ‘일란성 쌍둥이’다. 로켓 탑재부(Payload)에 인공위성을 실으면 인공위성 발사 로켓이 되고, 고폭약이나 핵무기를 실으면(이때는 탑재부가 아니라 탄두부라고 한다) 전략 탄도 미사일이 되는 것이다. 지난해 북한은 대포동 1호를 발사한 직후 인공위성인 ‘광명성 1호’를 쏘아 올렸다고 강변했다. 대포동 1호는 2150㎞를 날아 북태평양에 추락했으니 준중거리 탄도 미사일에 해당한다. 광명성 1호가 지구궤도를 도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로써 북한은 자력으로 전략 탄도 미사일을 개발했음을 증명했다. 한국은 초보적인 인공위성 우리별 1호와 2호를 독자 개발했지만 대기권 밖으로 나가는 로켓은 아직 개발하지 못했다. 우리별 1·2호와 외국에서 제작한 무궁화 1·2호, 아리랑호 등 한국의 인공위성은 모두 외국 로켓을 이용해 지구 궤도에 올려졌다. 로켓 개발에 관한 한 한국은 북한에 한참 뒤져 있는 것이다. 미국은 동서로는 대서양과 태평양, 남북으로는 멕시코·캐나다와 국경을 맞대고 있어 분쟁을 염려할 필요가 없다. 지근 거리에서 미국의 심기를 거스를 나라는 쿠바뿐인데, 쿠바 역시 카리브해 건너 수백㎞ 떨어져 있다. 휴전선을 경계로 북한을 마주하고 있는 우리와는 지정학적 조건이 전혀 다른 것이다. 따라서 미국을 공격하려면 전략 탄도 미사일이나 항공모함, 전략 폭격기, 핵미사일 탑재 핵추진 잠수함(SSBN)이 아니면 불가능하다. ‘세계의 경찰’을 자임하는 미국은 전세계를 상대로 이 4대 무기 보유를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전통적인 미국의 우방국인 영국과 프랑스 등도 4대 무기 중 일부만 보유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을 제외하고 이 4대 무기를 보유한 나라는 러시아뿐이다. 그래서 냉전시기 미국은 소련을 철저히 봉쇄해왔다. 최근에는 중국이 4대 무기 보유 쪽으로 나아가자 중국에 대한 경계를 강화하고 있다. 이렇게 영국이나 프랑스처럼 자국의 젊은이를 희생시켜 가며 미국과 함께 싸운 나라가 아닌 제3의 나라가 이 4대 무기 중 하나라도 보유하려고 하면, 미국은 어떻게든 이를 봉쇄하려고 한다. ------------------------------------------------------------------------------- - 미사일 개발하는 북한의 속뜻 ------------------------------------------------------------------------------- - 미국은 탄도 미사일을 요격하는 TMD(戰區 미사일 방어) 체제 구축을 눈 앞에 두고 있다. 그런데 왜 북한의 탄도 미사일 개발에 예민하게 대처하는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둘러싼 동북아 정치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탄도 미사일의 직경은 1m 내외. 목표물을 향해 떨어질 때의 속도는 마하 13 이상이다. 이렇게 작고 빠른 물체를 요격 미사일로 잡아낸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다행히도 미국은 패트리어트 PAC3를 작전배치하고, THAAD(戰區 고고도 공역 방공)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아직 이 체제(TMD)를 미국 전역에 깔지 못했다. 이 체제를 미국 본토와 미군이 전진 배치돼 있는 한국·일본·유럽 등에 깔려면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국은 미국의 동의없이 전략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는 나라가 있으면 “선제 공격을 하겠다”며 강력 대응하는 것이다. 북한도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왜 전략 탄도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는 것일까? 첫째 이유는 미사일 개발이 북한 정권의 생존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북한이 국제적으로 생존을 보장받을 카드로는 미사일·핵무기 개발만큼 확실한 게 없다. 북한은 현재 대미·대일 관계정상화에 큰 기대를 걸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면 김정일 정권이 존속하는 한 반미·반일 노선을 유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기도 하다. 주지하듯이 김일성은 ‘반미(反美)’와 ‘항일(抗日)’을 기치로 내걸고 권력을 잡았다. 선도적으로 항일 투쟁을 벌이고 이어 반미전쟁(6·25)을 펼쳤기 때문에, 권력 세습까지도 북한 주민들로부터 인정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보면 미사일 개발이 북한에는 양수겸장의 카드가 될 수 있다. 북한이 전략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는 또 한 가지 이유는, 한국이라는 확실한 볼모가 있기 때문이다. 심각한 경제난과 식량난·유류난 등으로 북한은 전쟁 지속능력이 현저하게 약화됐다. 이대로라면 미국은 물론이고 한국과 전면전을 벌여도 종국에는 패하고 만다. 그러나 질 때 지더라도 핵과 화학무기·전략 탄도 미사일을 갖고 있으면 한국은 물론이고 일본 미국에까지도 ‘불벼락’을 쏘아붙일 수 있다. 이처럼 한국을 확실한 볼모로 잡고 있기 때문에 북한은 전략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면서 과감한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는 것이다. 한반도를 무대로 미국과 북한이 거대한 국익 게임을 펼치려면 포석이 필요하다. 북한이 나름대로 핵과 미사일을 통해서 포석을 깔아왔다면, 미국도 그들 식으로 포석을 깔아오고 있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전쟁을 가장 많이 한 나라다. 따라서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6·25전쟁이 일어났을 때 미국은 유엔군을 이끌고 참전했다. 월남전 때는 한국 호주 등 태평양국가들과 참전했고, 걸프전 때는 다국적군을, 유고공습 때는 NATO 국가와 함께 전투를 벌였다. 이처럼 미국은 전쟁에 참여하기 전에 주요 국가들로부터 협조을 얻어내고, 이 공조를 바탕으로 전쟁에 참여한다. ------------------------------------------------------------------------------- - 미국의 대응 전략 ------------------------------------------------------------------------------- - 그런 맥락에서 지금 미국의 움직임을 유심히 살펴보면 북한을 고립시키기 위한 국제적 명분 쌓기에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의 결과가 과연 한국 안보에 궁극적으로 도움을 줄지는 의문이다. 일부 전략가들은 미국이 동북아에 유럽의 NATO군와 흡사한 북태평양 연합군을 만들려고 한다고 분석한다. 북태평양 연합군을 만들 경우, 이 지역 유일의 연합군인 한미연합사의 장래가 불투명해진다. 전략가들은 미국이 한미연합사를 해체해 북태평양 연합사로 확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방어를 도맡고 있는 한미연합사가 해체돼 북태평양 연합사로 확대될 경우, 한국은 이를 반겨야 할 것인가 불안하게 보아야 할 것인가? 미국의 두 번째 포석은 동북아 지역에 대한 TMD 구축 움직임이다. TMD 체제 중 개발이 완료돼 현재 작전 배치에 들어간 것은 패트리어트 PAC3뿐이다. 패트리어트 PAC3는 한 개 대대를 도입하는 데에만 10억 달러(약 1조3000억원)가 소요되는데, 한국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최소 3개 대대가 필요하다(그나마 이 3개 대대가 한국 전역을 방어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태백산맥이나 소백산맥 등 산악지대와 전략적으로 가치가 적은 농촌 및 해안지역은 방어를 포기하고, 서울과 전방의 주요 군부대만 방어하는 데에만 3개 대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재 주한미군은 자신의 방어를 위해 패트리어트 PAC2 1개 대대를 배치했다. 따라서 이것을 제외해도 2개 대대는 새로 도입해야 한다. 미국은 한국이 최소 1개 대대의 패트리어트 PAC3를 도입하리라고 기대하고 있다. 미국이 이렇게 기대하는 것은 패트리어트 PAC3가 한국 공군의 SAM-X 사업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 미국은 북한을 미사일기술통제체제(MTCR)에 가입시키거나 이 체제를 준수케 하려는 포석을 깔고 있다. 북한은 이란과 시리아 등 중동 국가에 미사일을 수출해왔다. 소식통에 따르면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은 지난 몇 년간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폭로하기 위해서 북한 미사일을 싣고 중동으로 향하는 배를 추적했으나 아직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7월 북한 미사일 부품을 싣고 파키스탄으로 향하는 북한 배를 인도가 나포함으로써 북한의 탄도 미사일 수출은 드디어 꼬리가 잡혔다. 미국은 이런 사실을 근거로 국제 여론을 동원해 북한을 고립시키려 할 것이다. 미사일 게임은 미·북 간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일본도 북한의 전략 미사일 개발에 국익을 걸고 대응하고 있다. 93년 북한이 노동1호를 시험발사하자 일본은 곧 패트리어트 PAC2 도입을 결정하고 미국 레이시온사로부터 기술을 들여와 면허생산해 자위대에 배치했다. 마하 13으로 떨어지는 직경 1m짜리 미사일을 요격하는 패트리어트는 명목은 방어용이지만 기술적으로는 어떤 미사일보다도 정교하다. 일본은 이 미사일을 면허생산함으로써 정교한 미사일을 제작할 수 있는 기술을 습득한 것이다. ------------------------------------------------------------------------------- - 일본의 어부지리 ------------------------------------------------------------------------------- - 북한이 다시 대포동 미사일을 시험 발사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6월 말 일본 방위청은 내년도 예산에 B767 공중급유기 도입 비용을 올릴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방위청이 공중급유기를 보유해야겠다고 내건 이유는 매우 흥미로웠다. “북한의 미사일 재발사를 탐지하려면 일본이 보유한 E767 공중조기경보기를 장시간 체공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공중급유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공중급유기는 F-15 등 첨단 전투기의 공격 반경을 현격히 늘려주므로, 공중 급유기를 보유한 공군은 전략공군으로 분류된다. ‘전범국가’ 일본은 전략 공군을 보유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일본은 북한을 핑계로 공중급유기를 보유하려는 것이다. 공중조기경보기 역시 전략공군만 가질 수 있는데, 일본은 80년대 대미무역 흑자가 너무 커지자 무역수지를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E767 공중조기경보기 4대를 구입했었다. 항일을 기치로 내건 북한의 미사일 개발이 오히려 일본의 국가목표 달성을 돕고 있는 아이러니는 이것 뿐만이 아니다. 98년 일본은 군사비 부담을 줄이려는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 따라 ‘신방위대강(新防衛大綱)’을 제정했다. 이에 따라 일본 자위대는 과거 미군이 동북아에서 하던 일의 상당 부분을 대신 하게 됐다. 이 신방위 대강을 구체화하기 위해 일본 의회는 주변사태 법안을 만들고, 자위대법을 개정했다. 이에 따라 일본 행정부는 북한이 위협하면 일본 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곧바로 미군에 강력한 군수 지원을 할 수 있게 됐다. 이러한 일본의 움직임은 장차 평화헌법 개정으로 이어져 일본 내부적으로도 보통국가화를 완성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북한 미사일 개발을 화두로 한 동북아의 미사일 게임에는 한국도 참여한다. 한국의 국가전략은 문민정부 때까지는 미국과 일본보다는 북한에 대해 강성이었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들어서는 매우 유화적이었다가 최근에는 다시 강경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러한 냉온탕 현상은 자칫 전략부재를 드러내는 것일 수도 있음을 염려하는 사람이 많다. 한국을 노리는 북한 미사일은 전술 탄도 미사일인 스커드 B다. 전략가들의 시뮬레이션에 따르면 화학탄두를 단 이 미사일이 서울에 떨어지면 2만5000여명이 희생될 것이라고 한다. 이렇게 위협적인 스커드 B에 대한 김대중 정부의 방어책은 대외적으로는 포용정책(햇볕정책)이고 내면적으로는 ‘선제공격’이다. 선제공격에 의한 방어책은 “스커드 B에 추진제를 주입하는 데에 수시간이 걸리므로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처할 수 있다”는 임동원 통일부장관의 국회 답변에서도 간접 확인된다. 미사일 전문가들은 스커드 B에 추진제를 주입하는 데 최소 6시간이 걸린다고 본다. 추진제를 주입하려면 차량이 여러 대 이동하고 스커드 발사대가 지상으로 나와야 하므로 미국의 위성이 이를 포착할 수 있다. 따라서 스커드 B에 추진제를 주입하는 것 자체를 전쟁행위로 보고 한미연합 공군력으로 선제타격한다는 것이 임장관 답변에 숨어 있는 논리인 것이다. ------------------------------------------------------------------------------- - 선제타격론의 허실 ------------------------------------------------------------------------------- - 그러나 이러한 임장관의 논리에 대해 적잖은 전략가들은 회의를 표시한다. 지난 6월 연세대 국제학연구소(소장 모종린 정외과 교수)는 공군력 국제학술 세미나를 열었는데, 이때 틸럴리 한미연합사령관이 참석한 가운데 한·미 학자들이 비공개로 TMD 문제를 심도 있게 토론했다고 한다. 이 세미나에 참석했던 한 전략가는 “걸프전 당시 미 공군기에 부여된 임무 중 하나가 이라크군이 보유한 스커드 B의 이동식 발사대를 찾아 파괴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천 차례 출격에도 불구하고 미 공군이 찾아내 폭파한 발사대는 단 하나였다. 이라크가 스커드 B 발사대를 계속 이동시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 전략가는 “전쟁은 고도의 두뇌 싸움이다. 따라서 적국의 위성이 볼 수 있는 지상에는 가짜 발사대를 거치하고, 진짜는 지하에 숨겨둘 수도 있다. 지하에서 추진제를 주입하고 밖에 나와 발사한 후 잽싸게 다시 집어넣는 것이다. 이럴 경우라면 발사 6시간 전에 전쟁 징후를 포착한다는 것은, 전쟁이 뭔지도 모르는 ‘헛소리’인 셈”이라고 비판했다. 이 회의에 참석한 미국 학자들은 한결같이 “북한은 지하에서 추진제를 주입할 것이다. 또 개전 초기 50여대로 추정되는 발사대에서 동시에 발사할 것이기 때문에, 한미 연합공군이 선제 타격을 가해도 상당수의 스커드 B가 한국에 떨어진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고 한다. 일본과 달리 패트리어트를 도입하지 못한 한국으로서는 선제타격만이 북한의 미사일 공격에 대한 유일한 방어책인데, 이마저도 허점이 많다는 것이다. 한 전략가는 “선제타격론은 구두선(口頭禪)이다. 선제 타격은 자칫 우리가 먼저 전쟁을 일으켰다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서해 연평해전에서도 선제 사격을 하지 않으려고 남북 해군이 신경전을 펼쳤는데, 북한이 스커드 B에 추진제를 주입한다고 해서 과연 우리 지도자가 선제타격을 결심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전략가들은 패트리어트 PAC3를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북한 미사일 공격에 대비하고, 정치적으로는 한국과 미국 일본을 한데 묶어 북한의 도발을 막는 방법이라고 지적한다. PAC3 도입을 공군에서는 SAM-X 사업이라고 한다(SAM-X 사업은 패트리어트 PAC3와 러시아제 S-300을 놓고 기종을 결정한다. 그러나 한국이 미국과 동맹군을 구성하고 있어 S-300 도입은 어려울 것으로 예상된다. 여기서는 S-300은 거론하지 않기로 한다). 공군은 SAM 미사일로 나이키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나이키는 수명연한이 이미 10년 정도 지나 오래 전에 폐기처분했어야 할 미사일이다. 그런데도 공군과 국방부는 예산부족 때문에 차기 SAM 미사일을 도입하지 못했다. 지난해 12월4일 인천의 공군 방공포대에서 일어난 나이키 미사일 오발사고는 한국의 SAM 미사일이 얼마나 노후했는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 사고를 계기로 그동안 방치돼 왔던 SAM-X사업이 되살아났다. 그러나 공군의 차기 전투기를 도입하는 FX 사업의 시급성이 강조되면서, 이 사업은 다시 뒷전으로 밀린 느낌이다. 이런 와중에 지난 7월 초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사거리 500㎞ 미사일 개발을 거론해 주목을 끌었다. 이러한 언급은 일차적으로 ‘선제공격’에 한층 무게중심을 두겠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500㎞ 미사일 개발은 전략가들의 오랜 꿈이었지만, 대북 유화정책을 주장해온 김대통령이 이를 거론했다는 데서 의외로 생각하는 전략가들이 많다. 한 전략가는 “우리가 500㎞ 미사일을 개발하면 미국은 물론이고 일본 중국도 우리를 견제하려 할 것이다. 자칫하면 미국이 북한보다 우리를 먼저 주저앉히려고 할지도 모른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핵과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시도하다가 미국의 견제를 받아 결국 노태우 대통령 때 비핵화선언을 하게 된 것을 상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개적으로 장거리 미사일 개발을 선언하기보다는 일본처럼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과학용 로켓 개발에 몰두하고, 하루빨리 SAM-X 사업을 시행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또 “500㎞ 미사일 개발은 미사일기술통제체제에 가입하기 위해 미국에 압력을 가하는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해야지, 총선을 앞두고 국민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해서는 곤란하다”고 경고했다. 대다수 전략가들은 미사일 게임에서 가장 나이브한 자세를 보인 것이 남북한이라고 지적한다. 반면 일본은 상당히 세련된 전략을 구사해왔다는 것. 이 복잡한 미사일 게임에서 슈퍼파워 미국은 게임의 참여자이면서 동시에 심판관이다. 결국 이 심판관을 어떻게 구워 삶느냐가 승리의 지름길이 되는 셈이다. 전략가들은 그런 점에서 “우리도 일본을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제2부 : 북한의 미사일 기술 수준 북 한의 지대지 미사일은 크게 프로그(Frog)와 스커드(Scud) 계열, 두 가지로 나뉜다. 프로그 미사일은 로켓이 떨어져 나간 후 탄두부의 자세를 보정하는 유도기능이 전혀 없어, 미사일이 아니라 자유 로켓으로 분류된다. 북한은 1969∼1970년 사이에 소련으로부터 프로그 3과 5, 7을 들여왔다. 프로그 5는 최대 사거리가 약 50㎞, 프로그 7은 약 70㎞다. 70년대에 북한은 프로그 7을 분해했다가 다시 조립하는 역조립(reverse engin-eering) 방법으로 초보적인 미사일 제조기술을 습득했다. 1976년경에는 기술진을 중국에 보내 최대 사거리 600㎞, 탄두중량 500㎏인 DF-61 탄도 미사일 개발계획에 공동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1978년 이 사업을 추진하던 중국 인사가 문화혁명 때의 과실로 실각하는 바람에 이 사업이 취소됐다. 중국이 DF-61 개발 사업에 북한을 끌어들인 것은 당시 북한이 소련 쪽으로 기울고 있었기 때문이다. 즉 중국은 미사일 공동 개발을 미끼로 북한의 소련 접근을 차단하려 한 것이다. 1978년 중국은 이러한 목적이 달성됐다고 판단하고 문화혁명을 구실로 이 미사일사업을 취소시켰지만, 북한은 이 사업을 통해 자유 로켓이 아닌 탄도 미사일 제조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 - 북한·중동 커넥션의 내력 ------------------------------------------------------------------------------- - 일찍이 제3세계의 문을 두들겼던 북한은 1963년 아프리카의 강국 이집트와 국교를 맺었다. 1973년 10월 제4차 중동전이 일어나자 북한은 미그 21기 조종사 1개 중대를 파견해 이집트를 도왔다. 이후 이집트와 북한은 ‘혈맹관계’로 발전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 공군기에 혼쭐이 난 이집트는 소련으로부터 “제3국에 제공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사거리 280∼300㎞, 탄두중량 985㎏의 스커드 B 미사일을 도입했다. 그러나 곧 소련과 관계가 악화돼 스커드 B의 수리용 부속을 공급받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 난관에 봉착한 이집트는 독자적으로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던 북한에 지원을 요청했다. 이렇게 해서 북한과 이집트는 1979∼1980년 전술 탄도 미사일에 관한 정보와 기술진을 교환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했다. 1980년 1월 이집트의 무바라크 부통령이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과 면담했다. 그 직후 이집트는 소련과 한 약속을 어기고, 스커드 B 탄도 미사일 2기를 북한에 제공했는데 이것이 북한이 독자적으로 탄도 미사일을 개발하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 1981년 이란·이라크 전쟁이 일어나자, 전아랍 국가가 이라크를 지원했다. 고립된 이란은 탄도 미사일의 필요성을 느끼고 북한에 접근했다. 1983년 이란은 북한과 탄도 미사일 개발 상호지원에 관한 협정을 체결하고, 북한에 탄도 미사일 개발에 필요한 자금과 장비를 공급하게 됐다. 이러한 지원 덕분에 북한은 1984년 4월에서 9월 사이 스커드 B 모방 미사일을 개발해 최초 시험발사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는 시제품 시험발사였기 때문에 보강할 점이 너무 많았다. 미사일 수정작업을 위해 북한은 과감히 서방세계를 두들겼다. 1984년 10월 미국 뉴욕에서 이란인 사업가가 미사일 유도장치와 야시(夜視)장비에 사용되는 전자부품을 북한에 보내려다 발각됐다. 1987년 12월 일본 오사카에서는 조총련계 기업인 동명상사(東明商社) 소속 북한인과 일본인들이 COCOM(對공산권 전략물자·기술 통제위원회) 규제품목인 집적회로(IC)와 마이크로 주판수 카운터 등 263점을 북한으로 불법 수출하려다 적발됐다. 미국과 일본의 정보 당국은 이러한 수출이 모두 북한의 탄도 미사일 개발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했다. 시험발사 후 몇 차례 수정작업을 거듭한 북한은, 1987년 4월 평양에 반도체 공장을 건설함으로써 드디어 북한산 스커드 B 모방 미사일 생산에 돌입했다. 제주도를 제외한 남한 전역을 사정권에 두게 된 북한은 이 미사일로 짭짤한 외화벌이를 했다. 첫번째 고객은 이란이었다. 이란은 이 미사일 90∼100기를 수입해갔다. 1988년 2월29일부터 52일간 이란과 이라크는 인구가 밀집한 상대국 도시에 미사일을 발사해 양민을 학살하는 소위 ‘도시전쟁’에 돌입했는데, 이때 이란은 북한에서 도입한 스커드 B를 모방한 미사일 77기를 이라크 주요 도시로 날려보냈다. 당시 이라크도 북한처럼 소련의 스커드 B 미사일을 모방, 최대 사거리 600㎞인 ‘알 후세인’과 900㎞인 ‘알 압바스’를 독자 생산하고 있었다. ‘알 후세인’이나 ‘알 압바스’가 이란 도시에 떨어지면, 이란은 잽싸게 그 잔해를 모아 북한으로 보냈다. 이란의 ‘눈물겨운’ 협조 덕분에 북한은 1990년 6월 스커드 B의 탄두중량(985㎏)을 770㎏으로 줄이고 추진기관은 확장해, 최대 사거리를 500㎞로 늘린 스커드 C를 시험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이로써 북한은 제주도를 포함한 남한 전역을 사정권에 넣게 됐으나, 국내에서는 이에 관한 보도가 이뤄지지 않았다. 북한이 스커드 C 양산에 들어가자 이란은 이 미사일을 도입해 1991년 5월 북부 시험장에서 시험발사했다. 시리아도 1994년 이 미사일을 들여와 시험발사했는데, 이 사실이 서방 정보기관에 포착됐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정보기관인 모사드가 중동국가에 대한 북한의 미사일 수출을 막고 나서기 시작했다. ------------------------------------------------------------------------------- - 기발한 착상으로 난국 돌파 ------------------------------------------------------------------------------- - 현재 북한은 한국 전역을 겨냥한 스커드 B와 C 500여기를 작전배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동 지역에 수출한 스커드B와 C는 400여기로 추정된다. 스커드 B와 C는 투발 오차가 커 정밀도가 떨어지지만, 차량 발사대를 사용하기 때문에 유사시 한미연합군의 탐지망을 쉽게 따돌릴 수 있다. 독자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하다 보니 북한 미사일의 기술수준은 스커드 B 단계를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기발한 착상으로 상황을 돌파하고 있다. 1990년 5월과 1992년 6월, 북한은 스커드 B 추진기관 4개를 하나로 묶어 사거리를 1000㎞로 늘리고, 탄두중량은 500㎏으로 줄인 스커드 D를 개발해 시험발사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다가 1993년 5월29일 동해를 향해 시험발사하여 성공했다. 이 성공은 1993년 3월에 있었던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선언 두 달 후에 이뤄진 것으로, 당시 치열하게 전개되던 북한의 핵개발 의혹과 함께 한국민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1994년 3월 북한의 박영수는 판문점 회담에서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고 위협함으로써 이 효과를 극대화했다. 스커드 D는 최대 사거리가 아닌 500㎞로 축소해 시험발사됐다. 하지만 최대 사거리로 발사할 경우 일본까지 가격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일본을 크게 긴장시켰다. 이에 따라 일본은 미쓰비시 중공업에서 패트리어트 PAC2를 면허생산해 일본 전역에 배치했다. 이 미사일은 함경북도 김책시 부근의 노동리(蘆洞里)에서 시험발사됐다. 때문에 한국을 비롯한 서방 정보기관은 이 미사일을 ‘노동 1호’라 부르고, 이 미사일을 개량한 새 미사일을 ‘노동 2호’라 불렀다. 그러나 한국 국방부는 93년 5월29일 발사된 미사일을 스커드 D로 명명하고, 이후 새로 만들어진 것은 노동 1호로 정리했다. 스커드 D 시험발사 후 북한은 곧바로 철로 된 이 미사일의 추진기관을 알루미늄 합금으로 바꾸어, 무게를 1t 가량 줄였다. 이에 따라 탄두 중량은 700㎏으로 늘었고, 최대 사거리도 1300㎞로 연장시킬 수 있었다. 북한은 93년 5월 시험발사에 성공한 스커드 D가 아니라 이 미사일을 양산했기 때문에, 국방부는 이것을 노동 1호로 명명한 것이다. 노동 1호 생산으로 북한은 준(準)중거리 탄도미사일(MRBM) 생산국가 대열에 올라서게 됐다. 북한이 1300㎞를 날 수 있는 탄도 미사일(노동 1호)을 가졌다는 것은 곧 일본 도쿄를 가격할 수 있게 됐음을 의미한다. 노동 1호는 스커드 D에 비해 탄두중량이 크기 때문에 화학탄두는 물론 핵탄두도 장착할 수 있다. 전략가들은 핵이나 화학탄두를 단 노동 1호로 도쿄를 가격한다면, 일본은 몇 시간 동안 마비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이란은 북한과 노동 1호 구입계약을 체결, 현재 노동 1호를 이란에서 생산하는 것에도 합의한 상태고 시리아도 이 미사일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 1호는 현재 북한이 작전 배치한 미사일 중 사거리가 가장 길다.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북한은 1998년 8월31일 함경북도 명천군 대포동(지금은 화대군 무수단리 대포동)에서 제작한 미사일을 북태평양으로 발사했다. 제작지 지명을 따라 서방세계가 ‘대포동 1호’로 명명한 이 미사일은 동해와 일본열도를 넘어, 북태평양에 빠짐으로써 일본은 물론이고 미국까지도 경악시켰다. 최대 사거리가 2150㎞로 조사된 이 미사일 문제로 한·미·일이 시끄러울 때인 9월4일, 북한은 “이 로켓 탑재부에는 ‘광명성 1호’라는 위성체가 탑재돼 있다”고 주장했다. 대포동 1호는 스커드 B를 최대 응용한 미사일이었다. 현무를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장거리 미사일은 2단 추진체제인데, 이 미사일은 특이하게도 3단 추진체제를 갖추고 있다. 대포동 1호가 왜 3단 추진인지에 대해 일본 방위청은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추론을 내놓았다. ------------------------------------------------------------------------------- - 북한 미사일의 '용도' ------------------------------------------------------------------------------- - “북한 조선중앙방송이 방영한 대포동 1호 발사장면을 정밀 분석한 결과, 주변 물체와 비교했을 때 대포동 1호의 길이는 약 25m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길이는 약 16m 길이의 노동 1호에서 탄두부를 제거하고, 약 11m 길이의 스커드 B를 더한 것과 비슷하다. 대포동 1호에는 밑에서부터 3분의 2 지점에 ‘트러스(truss)’ 형태의 철 구조물이 있다. 탄두부를 제거한 노동 1호 위에 스커드 B를 올리고 트러스 구조로 결합해 대포동 1호를 완성한 것으로 보인다.” 이 추론이 사실이라면 대포동 1호는 매우 조악한 미사일이다. 그러나 ‘주체(主體)의 나라’답게 북한은 자기식대로 반미·항일을 구현하고 있다. 한 전략가는 스커드 B로부터 시작된 북한 개발 미사일은 각자 가격 목표가 있다며 이렇게 정리했다. “스커드 B와 C는 한반도 전역에 있는 공항과 대도시·공단·군사시설·원자력 발전소·한국군 전쟁 지휘소 등을 파괴한다. 이 미사일은 한국군에 비해 월등히 화력이 강한 미 육군 2사단(동두천)과 미 제7공군(군산·오산 등)을 무력화하는 데도 사용될 것이다. 스커드 D와 노동 1호는 일본 주둔 미 7함대와 5공군, 그리고 신방위대강에 따라 주일미군을 지원하는 일본의 주요 시설을 마비시키는 데 쓰일 것이다. 대포동 1호는 한반도 유사시 가장 먼저 한반도로 달려올 오키나와 주둔 미 해병대 3사단을 가격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대해서 현재 적극적으로 막고 나서는 것은 미국뿐이다. 미국은 일단 대화로 문제를 풀어나가고 있다. 미·북 미사일 회담은 1996년 4월 베를린에서 처음 열렸고, 1997년 6월 뉴욕에서 2차 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에서 미국은 북한에 MTCR를 준수하라고 요구했다. 한 소식통은 “북한은 제네바 핵합의를 통해서 그들의 국익을 극대화한 경험이 있으므로 미사일 회담에서도 그 이상의 성과를 거둘 것을 기대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제네바 핵합의에서 결국 북한에 속았다는 생각 때문에 미사일회담에서 만큼은 밀리지 않으려 할 것이다. 따라서 미·북간의 미사일 문제는 대화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와중에 우리가 그 위험성을 까맣게 잊고 있는 북한 미사일이 있다. 한 전략가는 “진짜로 골치아픈 것은 프로그 계열”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스커드 B 계열은 패트리어트 PAC3를 도입하면 어느 정도 차단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프로그 계열은 사거리가 너무 짧아 요격방법이 마땅치 않다. 유사시 북한이 화학탄두를 장착한 방사포탄과 함께 프로그를 집중 발사하면 서울과 수도권, 김포공항, 그리고 전방지역 한국군은 대책없이 맞을 수밖에 없다. 스커드 B뿐만 아니라 프로그와 방사포에 대한 대책도 시급히 찾아야 한다." 제3부 : 한국의 미사일 개발 북 한은 독자적으로 미사일을 개발해왔지만 한국은 철저하게 미국의 지원과 통제 속에서 미사일을 개발해왔다. 현재 서울 용산에 있는 미 육군 제8군 사령부는 1957년 7월1일 일본 자마(座間)에서 옮겨온 것이다. 당시 한국 방어는 미군이 전적으로 맡고 있었는데, 1959년 미 8군은 중동부 지역을 방어하는 한국 육군 제1군을 지원하기 위해서 한국에 장거리 포로 무장한 제4미사일 사령부를 편성했다. 이어 당시로는 신형 방공 미사일인 나이키와 호크 미사일로 무장한 제38 포병여단을 한국에 보내 이 사령부에 배속시켰다. 나이키는 지대공·지대지 겸용으로 쓸 수가 있다. 탄두중량이 500㎏에 이르기 때문에 지대지 모드로 전환하면 핵탄두를 탑재할 수도 있다. 1969∼70년에 북한이 프로그 미사일 개발에 열을 올리자 71년 미군은 사거리 120㎞인 랜스 미사일을 한국에 가져와 갖가지 훈련을 하다 철수하는 방법으로 북한에 대해 ‘무언의 시위’를 벌였다. 1972년 미국은 한국군도 미사일을 가져야 한다고 판단, 어네스트 존 미사일 1 개 대대를 한국군에 제공했다. 한국군이 보유한 최초의 미사일인 어네스트 존은 580㎏이나 되는 큰 탄두를 달고 있으나 사정거리는 프로그보다 짧은 37㎞에 불과했다. 유도가 되지 않아 미사일이라기보다는 자유 로켓에 가까웠다. 북한의 프로그 미사일 개발에 위협을 느낀 박정희(朴正熙) 정부는 야심적인 계획을 세웠다. 어네스트 존이 한국군에 양도되기 직전인 1971년 12월27일 국방과학연구소 구상회(具尙會) 로켓연구실장과 공군 작전참모부장 김중보(金重寶) 소장이 오원철(吳源哲) 대통령 경제2수석의 호출을 받고 청와대로 들어갔다. 이 자리에서 오수석은 “국과연은 75년까지 사거리 200㎞ 내외의 지대지 미사일 개발계획을 작성하고, 공군은 국과연이 개발한 유도탄 운용계획서를 작성해 박대통령께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박대통령의 지시보다는 늦어져 74년에야 미사일 공장이 착공됐다. 이러던 참에 미군이 나이키 미사일을 한국군에 양도했다. 나이키는 지대지 모드로 전환하면 최대 사거리가 120㎞나 된다. 국과연은 이 나이키를 분해했다 역조립하는 방법으로 설계기술을 익혀, 78년 4월경 최초로 시제품 제작에 성공했다. 스커드 B가 북한 미사일의 원조가 된 데 비해 한국 미사일의 조상은 나이키다. 그러나 스커드 B는 300㎞/1000㎏으로 120㎞/500㎏인 나이키에 비해 사거리가 훨씬 멀었다. 시작에서부터 한국은 북한에 뒤졌던 것이다. 게다가 이 장거리 지대지 미사일은 유도방식에 결함이 있어 두 차례 시험발사에서 미사일이 실종되는 실패가 거듭됐다. 그후 수정작업을 거듭해 5개월 후인 78년 9월26일, 박대통령이 참관한 가운데 ‘백곰(NHK-1)’으로 명명된 최초의 국산 미사일이 시범 발사에 성공했다. 백곰은 휴전선 부근에서 평양까지 날 수 있도록 최대 사거리가 180㎞로 설계됐다. ------------------------------------------------------------------------------- - '백곰'과 '현무' ------------------------------------------------------------------------------- - 이 무렵 북한은 중국과 공동으로 최대 사거리가 훨씬 긴 600㎞/500㎏의 DF-61 개발에 착수했으나 중국측의 사업 취소로 중단된 상황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백곰 역시 실전에 배치되지 못했다. 미국이 주한미군에 장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테니 한국군은 백곰 배치를 자제해달라고 강력히 요청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압력의 일환으로 미국은 79년 10·26사태가 일어나기 직전 한국정부와 ‘미사일 기술 이전에 관한 대미(對美) 보장서한(일명 한미 미사일 양해각서)’을 체결했다. 이 각서는 “미국이 미사일 개발에 관한 기술과 부품을 지원하되, 한국은 사정거리 180㎞ 이상의 미사일은 개발도 보유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었다. 이 서한은 노재현(盧載鉉) 당시 국방장관이 서명해 위컴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 앞으로 전달됐다. 이런 와중에 10·26사건이 일어나고 신군부가 집권했다.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의 미사일 개발의지를 꺾으려고 집요한 압력을 가해, 무려 920여명의 국과연 과학자들이 해고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미국에 질질 끌려가던 전두환(全斗煥) 정부는 그러나 83년 10월9일 버마 아웅산 사태를 계기로 미사일 개발 재개 쪽으로 전환했다. 이러한 전환에는 84년 북한이 스커드 B 모방 미사일 시험발사에 성공한 것도 한 자극제가 되었다. 84년 재개된 제2차 국산 미사일 개발사업은 전대통령 집권 말기인 87년 시험발사에 성공하고, 북방을 지키는 수호신이라는 뜻으로 ‘현무(玄武·NHK-2)’로 명명됐다. 미사일 제작을 위해서는 관성항법장치와 자이로 등 핵심부품은 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 국내 과학기술을 총집결시킬 경우 이러한 부품을 국내에서 독자 개발할 수도 있다. 그러나 독자 개발할 경우 제작비가 너무 올라가 비경제적이다. 그래서 일본, 영국 등 선진국들도 독자 개발보다는 미국 것을 수입하는 경우가 많다. ‘유약한 지도자’ 노태우씨가 대통령을 맡았을 때 한국이 현무 양산에 들어간 것은 분명 불행이었다. 노태우씨가 대통령을 맡고 있을 때 한국은 사상 유례없는 무역 흑자를 누리고 있었다. 자연 노정권은 미국으로부터 많은 압력을 받게 됐는데, 노정권은 이에 ‘관대히’ 대응했다. 관대히 대응했다는 것은 군사적으로 말하면 ‘덜 애국적으로’ 대처했다는 뜻이다. 현무 시험발사에 성공한 직후인 87년 미국은 곧바로 ‘전략 물자 및 기술자료 보호에 관한 양해각서’의 교환을 요구해왔다. 이 각서는 한국이 COCOM 규제품목인 미사일 관련 부품과 기술을 공산국가에 공급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과 대치하는 한국이 미사일 관련 자료를 공산국가에 제공할 리 없다. 그런데도 미국은 이에 관한 양해각서를 체결하자고 할 만큼 미사일 개발에 관해서는 철저했다. ------------------------------------------------------------------------------- - 미국이 채운 족쇄 ------------------------------------------------------------------------------- - 흥미로운 것은 이 시기 미국도 북한의 미사일 개발에 큰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는 점이다. 87년 미국은 신형 랜스 미사일을 다시 한국에 배치했다. 신형 랜스 미사일은 사정거리가 120㎞이지만 정확도가 높고 수많은 자탄(子彈)이 든 클러스터 탄두를 달고 있어 매우 위력적이다. 주한미군의 이런 움직임은 북한을 견제함과 동시에 미사일을 개발하려는 한국의 요구를 잠재우는 효과가 있었다. 1990년 8월 미국은 ‘유약한 지도자’에게 압력을 넣어 현무를 비롯한 기타 무기의 제작기술과 부품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는 조건으로 “한국은 최대 사거리 180㎞, 탄두 중량 500㎏을 넘는 어떠한 로켓체제(any rocket system)도 갖지 않는다”고 약속할 것을 요구했다. 1990년 10월, 이에 따라 외무부 안보정책과장이 이런 내용을 담은 ‘대미 보장서한’을 주한미국 대사관에 전달했다. 79년 노재현 국방장관이 이미 전달한 서한이 있는데도 미국은 또 한번 주권 간섭에 가까운 요구를 관철시킨 것이다. (노대통령이 유약했다는 것은 여러 측면에서 확인된다. 91년 그는 미국의 압력을 받아 먼저 ‘비핵화 선언’을 함으로써 북한이 핵개발을 핑계로 미국과 대화하는 벼랑끝 전술을 시도할 수 있는 여지를 주었다. 그는 국내적으로는 민주화의 물꼬를 트고 북방정책을 성사시켰지만, 북한과 미국 일본 등을 상대로 한 대외정책은 유약하기 그지없었다.) 이 보장서한이 지금까지도 한국의 미사일 개발을 붙잡아 놓는 족쇄가 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개발이 계속되는 상황에 이 서한을 준수해야 하는가가 논란이 되고 있다. 한국은 북한처럼 미사일을 수출할 의사가 없는 만큼 MTCR에 가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미국은 300㎞ 이상의 미사일은 보유하지 않는다고 약속해야 MTCR에 가입할 수 있다며 버티고 있다. 노정부가 전달한 대미 보장서한은 미사일뿐만 아니라 과학로켓 개발까지도 제한하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95년 7월 공로명 당시 외무장관은 레이니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한·미 비확산 실무협의체(Nonproliferation Task Force)’를 발족시켰다. 이 협의체는 미·북 간의 미사일 회담처럼 한·미 간의 미사일 문제를 풀어가는 쌍무회담이다. 이 협의체는 1995년 11월 미국 워싱턴에서 첫 회담을 가진 후 계속해서 의견 차이를 좁혀가고 있다. 이 회담에서 양측 의견이 일치한 것은 ▲한국이 개발하는 미사일의 최대 사거리와 탄두중량은 300㎞/500㎏으로 제한한다 ▲미국은 한국의 MTCR 가입을 지지한다(한국은 독자 개발한 미사일을 제3국에 수출하지 않는다는 뜻)는 등이다. 그러나 미국은 ▲한국은 독자 개발한 미사일과 로켓의 개발·생산·배치에 관한 모든 자료를 공식문서로 미국에 제공해 투명성을 보장하라 ▲과학로켓을 군사용으로 전환하지 않을 것을 공식문서로 약속하라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은 ▲미사일과 과학로켓은 생산과 배치에 관한 자료는 미국에 제공해도 개발에 관한 자료는 제공할 수 없다 ▲과학로켓을 군사용으로 전환하지 않는다는 것을 공식문서로 약속하라는 것은 주권 침해라고 맞서고 있어 아직까지 명쾌한 결론이 나오지 않고 있다. ------------------------------------------------------------------------------- - 미사일 게임은 현재진행형 ------------------------------------------------------------------------------- - 이런 와중에 지난 7월 미국을 방문한 김대중 대통령은 500㎞ 미사일 독자 개발을 선언해 주목을 끌었다. 김대통령의 선언은 일단 한국의 MTCR 가입을 위한 압박작전으로 풀이되고 있지만, 이러한 노력과 함께 새 미사일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현재 현무의 공식 사정거리는 180㎞지만 전략가들은 250㎞를 날아가는 것으로 보고 있다. 현무의 탄두는 수많은 자탄이 든 클러스터 방식이라 북한 비행장의 활주로 같은 지상 시설물을 때리는 데는 효과적이다. 그러나 북한은 이에 대비해 대부분의 중요 시설을 지하에 설치했다. 지하기지 출입문도 북쪽을 향하게 함으로써 현무 자탄이 떨어지는 위험을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대응은 현무에 선제공격을 의존하는 한국군에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는 현재 주한미군이 보유한 ATCMS(육군 전술 미사일 시스템) 스테이지 2 미사일 개발이 거론된다. 이 미사일은 탄두부가 아주 단단해, 땅 속을 뚫고 들어가 지하에서 탄두부의 고폭약이 터진다. 따라서 전략물자를 지하에 숨겨 놓고 있는 북한을 위협하려면 우리도 시급히 ATCMS식 미사일을 독자 개발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남북한 간의 미사일 게임은 아직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지난 6월15일 서해에서 일어난 연평해전은 우리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북한은 그렇게 만만한 나라가 아니다. 미국까지도 어쩌지 못할 만큼 여전히 군사적으로는 ‘강성대국’이다. 경제력이 약한 북한은 몇 가지 무기체계만을 집중적으로 키우고 있다. 핵과 미사일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들만 있으면 경제력이 약하고 다른 무기가 부족해도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에도 밀리지 않을 수 있다. 불행히도 한국은 미사일 경쟁에서 단 한 번도 북한을 앞서보지 못했다. 미사일 문제의 남북 비대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부 과학자들이 주장하듯 500㎞, 1000㎞ 미사일 독자개발 쪽으로 내닫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이러한 도전은 자칫 새로운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최선의 방법은 일본처럼 조용조용히 실력을 갖춰가는 것이다. ------------------------------------------------------------------------------- - Copyright(c) 1999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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