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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guest (빛의아들) <211.191.98.82> 
날 짜 (Date): 2000년 8월  2일 수요일 오후 03시 53분 32초
제 목(Title): [펌]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


이거거덩(8월1일)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펌) 

스스로 의(醫) 와도 약(藥) 과도 무관하다는 '우국지사' 한 분을 최근 지리산 
노고단에서 만났다. 수인사를 끝낸 뒤 그는 이런 화제로 말문을 텄다. 

"언론에서는 의약 분업 소란을 의사와 약사의 밥그릇 싸움으로 보지요?" 

*** 국산약품 처방 급감 

의사든 약사든 밖으로야 국민 건강을 위해서라고 목청을 높이지만, 다수 국민의 
눈에는 그렇게 비치는 것이 사실이어서 나는 쓴웃음 섞어 고개를 끄덕였다. 얼핏 
실망스럽다는 기색이 스치기에 그러면 그게 아니냐고 되물었더니, 대답을 대신한 
그의 반문이 삼천포로 빠지는 것 아닌가. 

"약사의 대체 조제 금지를 어떻게 생각하시오?" 

약 포장을 뜯어라 붙여라, 낱알 판매를 해라 말아라 따위의 요구는 솔직히 
의사들의 지나친 '간섭' 같은 느낌이 든다. 

반면에 약효가 같다는 이유로 처방 대신 다른 약을 쓴다면 이는 약사들의 월권 
아니냐고 했더니, 이 양반 인상이 완전히 구겨졌다. 죽도를 처음 잡은 애송이가 
9단 검객을 대하는 심정으로 그러면 대체 무엇이 문제냐고 대들었는데, 그는 
제자를 가르치는 사부의 어조로 다시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이었다. 

"그 금지로 누가 가장 손해를 본다고 믿으시오?" 

그야 물론 조제 권한이 줄어드는 약사일 터이다. 다시 일그러지는 그의 표정으로 
보아 내 대답이 또 빗나간 모양이다. 

병원의 조제 제한으로 약에서 챙기던 '부수입' 관행이 사라지면 - 처방전 '담합' 
의 가능성은 여전하지만 - 의료계도 타격이 적잖을 것이란다. 

약사 역시 처방만 따르면 되므로 환자의 지갑을 살펴가며 싼 약.비싼 약을 고르는 
수고가 없어진다. 요컨대 의사는 조제 금지로, 약사는 대체 조제 금지로 당장은 둘 
다 손해라는 해석이었다. 

"그러면 가장 득을 보는 이는 누구일 것 같소?" 

터무니없는 약값 마진에서 '거품' 만 빠져도 환자의 이익이 그만큼 늘어날 테니 
그야 당연히 소비자인 국민이라고 모범 답안을 제출했다. 

그러자 그 '당근' 이 바로 함정이라면서 그는 얘기를 계속했다. 일례로 
유나신이라는 항생제는 미국계 다국적 기업 파이저가 생산하는 이른바 
대조(對照.original) 약품이다. 

이것과 약효 동등성이 인정된 국내 제약사의 복제(copy) 약품이 여덟가지나 된다. 
그런데 유나신을 월 6천만원 어치나 사용하던 어느 대학병원이 국내 H제약의 
U상표로 바꾸었더니, 의사들의 처방 기피로 이 복제약 소비가 1천2백만원대로 
곤두박질하더라는 것이었다. 

10% 정도의 가격 차이를 감안해도 양자의 비율은 10:2가 된다. 앞으로는 의사의 
처방전이 공개되므로 약효가 동등해도 '인지도' 높은 대조약 위주의 처방 추세가 
날로 강화되리라는 말씀이었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의사들의 77.8%가 약품의 성분명 대신 상표명으로 처방하고, 
또 60.4%가 대조약을 선호했다. 

그러면 의약 분업을 말자는 뜻이냐고 회심의 일합을 날렸더니, 그는 생각이 고작 
그 정도냐는 표정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4조5천억원 규모로 세계 9위의 국내 의약품 시장에 다국적 제약 회사들이 벌써 
19%를 점유하고 있다. 

매출액 1위인 동아제약의 지난해 판매 실적이 3천4백억원 정도인데, 20위 안팎의 
한국화이자가 벌써 8백70억원을 기록했다. 

그 뒤에는 물론 1백50억달러의 매출을 자랑하는 - 동아제약 매출액의 50배가 넘는 
- 세계 3위의 파이저 본사가 버티고 있다. 

*** 국민건강 다국적社 손에 

국내 생산조차 약재 대부분을 수입하는 실정이므로 국민의 건강이 온통 다국적 
기업에 볼모로 잡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정이 그렇다고 한들 침과 뜸의 시절로 되돌아갈 수는 없기에 무턱대고 '애국' 의 
잣대만 들이대기는 어렵다. 

이제 사부의 말씀이 분명해졌다. 의사와 약사가 힘을 합쳐 다국적 기업의 '생명 
흥정' 에 맞서도 힘겨운 판인데, 정녕 이 싸움이야말로 우리가 두려워할 것들인데, 
너나없이 - 언론마저 - 의약의 밥 자루 찢는 '재미' 나 좇고 있으니 대체 어쩌려는 
것이냐는 한탄이었다. 

다국적 제약 '공룡' 들이 우리 의약 분업에 어떤 형태로 그들의 이해를 표시하는지 
나로서는 아는 바가 없다. 

다만 그 분쟁을 바라보면서 안면 가득히 득의의 미소를 날릴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렷다. 모처럼 받은 지리산 정기가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병의원집단폐업사태 토론방 13091번 게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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