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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veNfriendship ] in KIDS
글 쓴 이(By): KiDs (K i D s)
날 짜 (Date): 2002년 9월 25일 수요일 오후 09시 12분 03초
제 목(Title): 사랑은 불량식품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쁨을 내색하지 않고 혼자 기쁨 속에 머무르기보다는
자신의 불행한 이야기를 늘어놓고 타인의 관심을 끌기를 훨씬 더 좋아
한다.] 

아홉 살 때인가 창고에서 먼지 쌓인 가죽가방을 발견했다.
가죽가방은 창고에 쳐박혀 있었고 금기의 물건처럼 접근해서는 
안 될 끈적한 분위기를 내품고 있었다. 왠지 모를 두근거림으로 
호흡조차 가빠지며 가방의 먼지를 손바닥에 묻히며 뻑뻑해서 잘 
열리지도 않는 지퍼를 여러번 반복해서 힘을 주어 열었다. 
가죽가방에는 편지들이 고무줄에 꽁꽁 묶여있었다. 
가방 한 가득 정갈한 글씨.

그녀와 나의 다른 점은 글씨체일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 사랑스럽게 
글씨를 쓸 수 있을까.

그녀는 참 일찍 죽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그녀가 죽고 두 해 뒤에 내가 태어났다. 
이 두 문장은 인과성이 없다. 시간적 선후관계일 뿐.
작은 고모는 자살을 했다. 

난 작은 고모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그녀는 늘 이런 모습이다. 
말이 없고 하얀 피부에 예쁘장하며 부지런하고 편지쓰는걸 좋아한다. 
이것만으로 그녀를 그릴 수는 없다. 그러나 그녀와 대화할 기회가 
생긴다해도 사양하겠다. 대화는 지루할 것이다. 슬픈 표정도 싫다.

어릴 때 작은 고모와 닮았다는 얘기를 문득 문득 들으며 컸다. 
알지도 못 하는 누군가와 닮았다는 말은 호기심을 발동시키기도
하지만 또 한편 유쾌하지 못하다. 또 그 누군가가 이미 죽은 
사람일때는 좀 더 미묘한 감정을 갖게 만든다.

나이가 들면서 아무도 내게 작은 고모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내가 점점 그녀를 닮아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열댓살이 된 난 사랑은 언어로 만들어진 찌그러진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건 골치아프며 어리석은 자들의 전유물이었고 사랑을 만난다면 거대
한 거머리일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난 한번도 사랑을 보지 못 했다. 마치 사람들에게 양동이
를 주며 '두려움'을 가득 담아오라면 모두 텅 빈 양동이를 가지고 
맥없이 돌아올거라는 얘기처럼. 

그 거대한 거머리가 나를 피해다녔는지 아니면 내가 피해다녔는지 
그건 모르겠다. 나로서는 굳이 공포와 위험을 감수하며 자칫 피를 
빨려 목숨을 앗아갈 지 모를 거머리와 맞부딪힐 이유가 없었고 
거머리로서는 나의 태도에 마음 상했을 지도 모를 일이며 또 
어디에든 자신을 환대하며 기쁘게 피를 빨린 이들은 널려 있었을테니. 

우리는 마치 오랜 연인으로 지내며 늘상 붙어다니고 서로를 만나기 
위해 해맑은 웃음을 하고 약속장소로 뛰어가던 그 헤어진 옛사랑을 
마주치지 않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옆길로 빠진다거나 일부러 
길을 빙 돌아가 듯 서로를 피해다녔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누군가를 사랑했다 잃는 편이 훨씬 낫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스스로의 목숨을 끊지 않는다는 전제에서다. 모든걸 
잃었는데 훨씬 나을게 뭐가 있겠는가. 담배갑조차 폐암에 대해 경고를
명시하면서 왜 사랑은 그렇게 당연하고 유치하게 여겨지고 무심하게 또 
무책임하게 어떤 경고도 명시되지 않는가. 유통기한도 찍히지 않은 
불량식품처럼.

난 살금살금 작은 고모의 나이에 가까워지고 있다.

난 따뜻하지도 않고 따뜻함을 찾아 그 주위를 서성이는 일도 없으며
그렇다고 스스로 불을 지피는 일도 없다. 

누군가 꺼지는 불씨에 불을 붙이며 내 곁에 서있다. 
불씨는 꺼지고 켜지기를 반복한다. 난 의아한 눈빛으로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본다. 그는 웃고있다. 붉고 따뜻한 불씨를 든 채.
난 비에 젖어 발이 시리다.
그는 천장에 매달린 모빌을 바라보는 갓난아기처럼 나를 보고 있다. 

난 손을 내밀어 그의 볼을 부드럽게 쓰다듬어야할까. 아니면 
나 역시 천장에 매달린 모빌을 보듯 바라봐야할까.

그런데 그의 볼을 쓰다듬기에 내 팔은 뻣뻣하고
천장에 매달린 모빌을 보듯 그를 바라보기에 난 염세적이다.

사랑을 하는 것은 사랑을 받는 것보다 언제나 덜 복잡하다.
큐피드의 화살을 맞기보다는 쏘는 것이, 받는 것보다는 주는 것이 쉽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쉽게 사랑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인가.
분명 보답받지 못 하는 사랑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안전하게 고통스럽다.

화살을 받은 이들은 더 이상 사랑받지 못 하는 것처럼 품위를 손상시키고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외친다. 그럼에도 그를 쓰다듬고
사랑에 빠질 것인가. 그리고 사랑을 잃은 이들이 그러듯 잡지사의 그녀처럼 
이런 편지를 쓸 것인가.


[당신은 이제 새처럼 자유로워져라. 이제 나 없이도 밥을 먹고 길을 걷고 
잠을 잘 사람. 이제 모든 기억과 흔적과 추억과의 인연을 끊어라. 

당신은 나로부터 얻으려던 것을 이제 다 얻었노라. 나는 더 이상 줄 것 
없는 누추한 몰골이 되었도다. 

그렇지만, 개새끼, 돌아서서 다른 사람을 향해, 예의 그 그윽한 눈빛으로 
또 '사랑해'라는 말을 할 거면서. 그 사람을 안고 핥고 탐미하다가 허기질 
거면서. 나 없이 잘 사나 두고 보자. 당신은 결코 잘 살 수 없을 것이다. 
나를 떠난 당신에게는 언제나 액운이. 당신을 버린 나에게는 언제나 행운이
깃들기를.

그렇지만, 당신은 잘 살아야 해요. 나도 잘 살께요. 
당신이 나를 아름답게 추억함으로써 내 사랑을 완성해주기를. 
나 또한 그렇기를. 
당신에게 내가 마지막이기를. 나에게 당신이 처음이었듯이.]


하지만 그녀는 사랑 때문에 자살을 한건 아니다. 세상에 대한 알러지
때문이다. 공기의 배합이 마음에 들지 않았든지 매일 아침 동쪽에서
떠오르는 해가 숨통을 조여오듯 답답했든지 식당에서 늘 주던 땅콩사탕의 
깔끄러움이 어느날 갑자기 지겨워졌다거나 콩나물국의 비린맛에 한 순간 
염세주의가 될 수 있 듯, 예측불허 인생에 해마다 먹어야될 생일 미역국
의 미끌거림이 역겨워졌다거나 놀라운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지극히 사소해서 도저히 그런 것이 그녀를 죽게 만들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뭔가가.

그래서 그녀에게 그는 처음뿐 아니라 마지막도 되었다.
놀랍지 않은가. 당신과는 한순간도 떨어질 수 없고 당신을 위해 
해도 달도 별도 따다주겠다던 그들이,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져다 줄 듯 
발광하던 그들이 어느날 드라이아이스에 달라붙은 손가락에서 붉은 살점이 
떨어져나가듯 또 다른 사랑을 찾는다는 사실이.

연인들은 시계의 추처럼 갈망과 짜증의 두 극단을 왔다갔다 한다.
그리고 그들이 명하는 '이쯤에서' 그들은 두 개의 시계추로 분리되어
서로의 늙음과 죽음을 알지 못 한 채 멈춘다.  

때론 정갈한 글씨의 그녀처럼 그녀는 젊은 여자로, 그는 늙은 남자로. 
그렇게 따로따로 죽기도 한다. 
그 때론이란 어쩌면 비극적이고 어쩌면 어리석으며 어쩌면 불행하다.

이 다소 불행한 이야기를, -거짓같은 진실이든 진실같은 거짓이든- [연민과 
위안과 달콤한 한 마디를 얻어내기 어렵게 되어 엄살을 떨고 우울을 가장
하는 애인이 마치 흐트러진 마음을 청소하고 싶다는 말을 비극적인 어투
로 그러나 의기소침한 마음으로 하듯], 하게 되니 처음의 말은 일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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