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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oveNfriendship ] in KIDS
글 쓴 이(By): LONE (언덕에서~)
날 짜 (Date): 1995년04월15일(토) 15시12분59초 KST
제 목(Title): '91년 5월 27일, 뉴욕발 KE 025편...


  스피커에서는 지금 Janet Jackson의 'Where are you now'가 흘러나온다. 
반주 부분이 옛날 앨범 'Rhythm Nation 1814'의 몇몇 곡과 비슷한 것은 어
쩔 수가 없다. 그리고, 옛날 그 앨범을 듣고 있던 1991년 5월 27일의 대한
항공 뉴욕발 서울행 KE 025편 비행기 안이 생각나는 것도.
 
  General Exam이 끝난 것은 24일 금요일이었고, 마음이 급했던 나는 26일 
일요일에 출발하는 비행기표를 끊었었다. 이미 그녀에게서는 한달째 편지도
없었고, 공항에 나오겠느냐는 내 물음에 그녀는 내 부모님이 나오지 않을 
거냐며 얼버무리고 말았지만, 그래서, 이번 여름은 지난 겨울과 다를 것임
을, 어쩌면, 아니 거의 확실히, 우리가 헤어질 것임을 이미 짐작하고 있었
지만, 나는 그래도 시험이 끝나자마자 한국에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떠나는 전날 밤, 한국으로 떠나는 나를 환송한다고 과 선배들이 모였다.
그 즈음 언제나 그랬듯이 볼링장에 갔다가 차이나타운의 만두집에서 애프터
비슷한 걸 가졌다. 내 얼굴이 그리 밝지 못한 것을 알아챘는지, 선배들도 
지난 겨울처럼 가서 뭐할 거냐고 묻지 않았다. 정말 한국에 돌아가 무엇을 
할 것인지, 나 자신 전혀 짐작이 가지 않고... 그저 빨리 한국에 들어가고
만 싶었다.

  보스턴에서 9시에 출발하는 비행기를 타려면 아무래도 밤을 새는 것이 나
을 것 같았다. 오늘 기록이 나빴다고, 볼링장에서 밤을 새겠다고 하면서 남
은 선배의 기숙사 방에 들어가 SimCity를 했다. 나도 밤을 새도록... 아무 
생각이 나지 않도록, 혹시나 어떤 생각이 난다면, 나는 미쳐 버릴 것 같았
으니까.

  정말 볼링장에서 밤을 새운 그 선배는 오자마자 자리에 뻗고, 나는 택시
를 타고 공항에 갈 수밖에 없었다. 5월 말의 보스턴 날씨는 꽤 좋은 편이었
지만, 내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택시 운전사는 꽤 친절한 편이었다.

  뉴욕 JFK 공항에 도착했다. '호메이니의 압제에 시달리는 이란 사람들을 
돕자'는 서명을 받는 사람이 있었지만, 나는 그냥 지나쳤다. 대한항공 체크
인 창구에서 또다른 과 선배를 만났다. 그분 장모님이 미국에 잠깐 오셨다가
돌아가는 길이라 했다. 알고보니 내 자리는 그분 옆자리였다. 어차피 옆자
리에 젊은 여자가 앉지 않는다는 게 확실해졌으니까...나는 자리에 앉자마
자 워크맨을 꺼내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내가 가져온 테이프는 지난 겨울과 거의 같은 것들이었다. Mariah Carey
의 데뷔 앨범, Janet Jackson의 Rhythm Nation 1814... 정말 생각을 않으려
했지만, 지난 겨울, 정말 가슴부푼 기대를 가지고 한국으로 가던, 똑같은 
비행기 안이 생각났다. 음속으로 달리는 비행기 안에서 왜 이렇게 느리게 
가는지 짜증까지 나던... 비교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 한국에
가면 무슨 일이 있을 것인지, 그래도 혹시 그녀가 공항에, 지난번처럼, 나
오지나 않을런지. 하지만 정말 아무 생각을 않으려 했다. 헤드폰에서는 
Janet Jackson의 노래들이 흘러나오고, 창밖에는 저녁 무렵의 일본 열도가 
흐릿하게 내려다보였다. 한국 도착 시간은 점점 가까와 왔지만, 나는 차라
리 비행기를 돌려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고도 싶었다.

  창밖으로 김포공항의 불빛이 보였다. 지난 겨울처럼 서둘 필요는 없었다.
그래도 혹시... 혹시...

  그녀는 역시 나와 있지 않았다. 저 멀리 아버지와 동생의 모습이 보일 뿐.

  5개월만에 보는 서울은 너무나 낯설었다. 마치 지난 겨울에는 서울이 아닌
다른 곳,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곳에 있었던 느낌이었다. 그새 모델이 
바뀐 소나타의 달라진 전조등만이 나를 맞았다.

  대전으로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기숙사에 있지 않았고, 그렇다고 내가 
랩 전화번호를 아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그 주 토요일, 우리는 다시 만났고, 나는 그녀에게 장미꽃 한 다발
을 주었고, 그리고 헤어지기로 했고, 그리고 나는 친구들과 술을 마셨다.
차라리 그 때 정말 헤어졌더라면 이렇게까지, 아직도 마음 한 구석이 비어
있는 듯한 느낌은 없었을 것을.




 Running over the same old ground,   |   봄을 기다리는 언덕에서....
  What have we found?                |    With my best wishes,
   The same old fears.               |     From Spring Hill.
    Wish you were here.              |      soh@husc.harvard.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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