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aw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鄭 相 熙) <163.152.90.95> 날 짜 (Date): 2000년 11월 24일 금요일 오전 09시 40분 22초 제 목(Title): 강간(안경환 에세이) 제목 :『强姦』 안경환(서울대 법대교수/헌법학) - 서울대 법대졸업, 동대학원 수학 - 미국 펜실베니아 대학, 산타 클라라 대학 졸업 - 미국 워싱턴(D.C) 및 켈리포니아 주 변호사 - 런던 정경대학(L.S.E)방문교수 역임 - 미국 남 일리노이 주립대 방문교수 역임 - 현재 참여연대 운영위원장 법이 금지하여 벌하는 범죄 중에서 가장 가증스러운 범죄가 강간이다. 그것은 가난 때문에 저지르는 범죄도 아니요, 사상 때문에 범하는 죄도 아니다. 오로지 성욕이라는 원시적 지배본능의 이기적인 충족을 위해서 여성의 육체와 인격을 유린하는 행위다. 강간이 횡행하는 사회는 폭력이 일상을 지배하는 원시사회이다. 제아무리 국민소득 얼마를 자랑해보았자 그것은 가식의 문화지표일 따름이다. 강간이라는 단어가 주는 충격을 덜 받겠다는 뜻에서의 "성폭력"또는 "가정파괴범"등속의 법에도 없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강간을 정면으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비도덕적이거나 뭔가 당당하지 않다는 생각에서이리라. 그러나 바람직하지 않은 현상도 애써 외면하려고 해서는 결코 이를 개선하지 못한다. 강간을 강간이라고 부르고 이를 정면으로 이야기해야만 강간을 막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미국의 여류시인 에이드리언 리치(Adrienne Cecile Rich, 1931 - )의 시 『강간』(Rape, 1972)은 그야말로 용감한 시다. 경관이 있다. 그는 강간예비범이고 가장이다. 그는 당신의 이웃이고 당신 오빠의 죽마고우다. 제 딴에는 어떤 이상을 가지고 있다. 모든 남성이 강간범이 될 수 있다. 경관으로 상징되는 세속적 권위와 물리력을 가진 사내는 힘의 철학에 산다. 남성이 자신의 존재와 힘을 과시하는 수단은 타인을 지배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남성에게는 강간도 힘의 지배를 위한 하나의 수단인 것이다. 그가 장화를 신고 은빛 뱃지를 달고 말을 타고 권총에 손을 뻗칠 때 그는 이미 당신에게는 타인이다. 개인적으로는 따뜻한 친구, 정겨운 이웃집 아저씨인 남성도 일단 가부장제의 일원이 되고 나면 즉시 지배자로 탈바꿈한다. 그리고는 피지배자인 여성 위에 군림하고자 한다. 당신을 그를 잘 모르지만 그를 알아야만 한다. 그는 당신을 죽일 수 잇는 기계를 가지고 있기에. 남성은 모든 사회적 조직을 장악하고 있다. 여성의 권익은 여성 자신의 독자적인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로지 남성의 양보와 관용에 의해서만 보장받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시간이 되면 당신은 그에게 달려가야만 한다. 치한의 체액이 아직도 당신의 허벅지에 미끈거리고 당신의 분노가 미친 듯 소용돌이칠 때 당신은 그에게 자백해야만 한다. 강간당한 죄가 있다고 사회는 강간당한 피해자를 감싸주고 약탈당한 권리를 보상해주기는커녕 오히려 그녀를 벌한다. 강간당한 사실이 "가정파괴"로 이어진다고 추정하는 사실 자체가 이를 입증한다. 강간범의 처벌에 관한 법리와 그 적용의 관행도 여성에게 지극히 불리하게 되어 있다. 『강간』(Real Rape, 1987)이라는 제목의 책에서 하버드 법대의 여교수 수전 에스트리치(Susan Estrich, 1952- )는 실제로 강간당한 자신의 경험을 고백하면서 지배자 남성의 윤리와 법인 강간의 법리를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이보다 앞선 수전 브라운밀러(Susan Brownmiller, 1942-)의 저술 『의리의 의사에 반(反)하여』(Against Our Will, 1975)의 머리말에 담긴 핏빛 절규가 더욱 가슴에 강하게 와 닿는다. 모든 남성은 끊임없이 우리를 강간한다. 그들의 몸으로, 눈으로, 그리고 뻔뻔스런 그들의 몸으로, 그리고 뻔뻔스런 그들의 도덕률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