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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FreeBird ()
날 짜 (Date): 1996년08월15일(목) 06시45분40초 KDT
제 목(Title): [퍼온글] 소련 점령하 북서 "반탁" 제대로 


  제목 :  ˝소련 점령하 북서 ˝반탁˝ 제대로 평가를˝

  해방직후 소련군 점령하의 북한에서 신탁통치 반대운동을 벌이다
 19명의 열혈청년들이 시베리아로 끌려갔다.10년 가까운 유형(
 流刑)생활을 겪고 풀려난뒤 중앙아시아 등지에서 온갖 고초를 이
 기고 살아남은 4명 가운데 세사람이 최근 국내연 고를 찾아 개
 별 귀국했다.
  이들의 증언을 통해 북한에서의 반탁운동이란 잊혀진 역사가 반
 세기만에 새롭게 조명되고 있다.
  『소련군이 점령하고 있던 북한에서 반탁운동을 벌이다 낯선 이
 국땅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을 하는등 박해를 당한 사람들에게는 역
 사적 의미가 조금은 달리 부여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공산체
 제하에서의 정치적 탄압에 대해 배상을 해주겠다는 러시아정부의
 제의마저 뿌리치고 91년 귀국,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한 김효진(
 金孝振·74·경기도구리시 거주)씨의 말.金씨에 이어 92년 국
 적을 취득한 황익걸(黃翼傑·78·서울 거주 )씨와 92년 귀국
 때 카자흐스탄 국적증명서를 분실해 한국국적 취득에 실패한 현태
 묵(玄泰默·92·서울 거주)씨등 「반탁 유형수」들은 국내에서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자신들의 투쟁을 역사에 바르게 기록하고 평
 가해줄 것을 촉구한다.
  『1945년 12월말 신탁통치 결정소식이 전해지자 북한 공산
 주의자들까지 반탁운동에 앞장섰어요.그러나 이들은 2,3일후부터
 소련의 지시로 찬탁으로 돌아섰죠.』 이들이 소련군에 체포된 것
 은 46년 1,2월께.주모자급 19명이 시베리아로 끌려갔다.5
 년동안 시베리아 수용소 등지에서 강제노역과 수감생활을 했다.5
 1년 수용소 생활은 일단 끝났으나 이들은 석방되지 않고 지정된
 구역내에서만 살아야 하는 종신 유형선고를 받았다.
  이들이 4년간의 종신유형에서 벗어나 비로소 자유의 몸이 된
 것은 55년.3년후 이들은 카자흐스탄으로 생활터전을 옮겨 농사
 일로 생계를 꾸려갔다.이들의 꿈은 고국인 한국으로 돌아가 여생
 을 마치는 것이었다.
  71년8월 옛소련정부가 이들을 복권시키자 이들은 고국으로 돌
 아갈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 부풀었다.그러나 반공·반소(反蘇)
 사상을 지녔다는 이유로 출국이 금지됐다.80년대 후반들어 상황
 은 더욱 악화됐다.
  그러나 한·소수교는 이들에게 귀국의 꿈을 실현시킬 결정적 계
 기가 됐다.이들의 생존사실을 확인한 친인척들이 이들을 초청한
 것이다. 김효진씨의 경우.
  『경남양산에 사는 친동생이 나를 초청해 91년12월 3개월
 체재기한으로 고국에 돌아왔어요.이때 아예 고국에서 눌러살기로
 결심했습니다.한국국적을 취득하려고 노력하던 92년1월 러시아
 국가안전본부가 나에게 배상을 해주겠다는 소식을 알 려왔어요.대
 중교통 이용료로 매월 1백80루블 지급,전화설치 최우선권,공업
 품·의약품 50% 할인특권,주거상의 혜택등을 주겠다는 것이었죠
 .』 그러나 그러한 변화가 그의 마음을 바꾸지는 못했다.93년
 7월 金씨는 마침내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이와 함께 아내와
 두딸·손녀를 고국으로 불러들였다.
  金씨와 함께 시베리아 유형도중 사망한 신경득(申景得)씨의 아
 들 신용철(申龍哲·51·서울용산 거주)씨는 金씨를 통해 아버지
 의 사망소식을 들었다.그는 『최저생계마저 위협받는 이들 귀국자
 의 생활대책과 국가유공자 포상을 최근 국회등 관계 기관에 촉구
 했으나 관련법조항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며,『국가차원에서
 관심과 대책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金씨는 자신의 반세기에 걸친 기구한 인생역정을 책으로
 출판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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