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bonjovi (미친선비) 날 짜 (Date): 1994년11월27일(일) 16시33분03초 KST 제 목(Title): [Re] 삼국지에서 이해되지 않는 부분 제갈량이 유비를 택한 이유에 대한 설명에는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그중에서 그래도 일리가 잊다고 느껴지는 것 몇개를 소개해 드릴께요. 우선 제갈량이 세상에 대한 뜻을 세웠을때 조조는 벌써 중원이라는 상업과 산업의 중심지를 장악하고 제법 안정된 다스림을 펴는 중이었습니다. 그래서, 조조 및에는 무수한 장수와 모사가 있었죠. 특히 제갈량이 속하게 될 모사진영에는 순욱, 순유, 정욱, 곽가(비록 제갈량의 입신전에 죽었지만)를 비롯한 쟁쟁한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사마의가 비록 재주는 많았으나 조조의 미움을 받아 조조생전에는 크게 쓰임을 받지 못했음만 봐도 알 수가 있죠. 인물이 아쉬웠다면 조조생전에도 사마위는 크게 쓰여야만 했겠죠. 제갈량이 만약 조조 및에 들어갔었다면 조조의 오랜 신임을 받으며 이름을 떨쳤던 많은 모사들과 재주 다툼이 불가피했을 터이고, 자기 재주를 마음껏 펼 수가 없었을 겁니다. 또한 제갈량의 신념이었던 한나라의 재건은 조조의 이상과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었죠. 그래서, 제갈량은 조조와는 인연을 같이 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강동의 손권및에도 많은 모사가 있었고 조조와 같이 다른 왕조설립에 목적을 두고 있었던 집단이었으며, 마지막으로 제갈량의 형 제갈근이 몸을 담고 있었기에 제갈량은 유비를 선택하게 되는거죠. 세력은 보잘것 없어도 '황숙'이라 불리며 중국민의 사랑과 신임을 받고 있던 유비의 집단은 한의 재건에 대한 뜻이 같을뿐만 아니라 이름난 모사하나 갖추지 못한 상태였기 때문에 제갈량에게는 더없는 좋은 조건이었죠. 다만 '수고로움은 많고 얻을 것은 적다'라는 유비의 운명때문에 가을 바람이 부는 오장원에 별로 지죠. ^^^^^^^^^^^^^^^^^^^^^^^^^^^^^^^^^^(이상 인용. 시를 이 정도만 지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제갈량은 법가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정치인으로 볼 수 있는데, 재물같은 데는 관심없는 청백리요, 나라일에는 편견을 가지지 않은 공정한 관리요, 상줌과 벌줌이 뚜렸했던 치세안민의 재능을 타고난 인물로 평 됩니다. 저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삼국지의 주인공은 유비가 아니라 제갈공명이라고 느껴지는 군요. 아참, 제갈량이 삼고초려전에 유비를 먼저 찾아갔던것 아닌가요? 그럼 안녕히 --- Tough times don't last. Tough men do.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