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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Ecomy (기억상실증�)
날 짜 (Date): 1996년06월27일(목) 15시01분43초 KDT
제 목(Title): 김인승




김인승
도쿄미술학교 우등생이 친일에도 우등

·金仁承, 1910∼
·1940년 '선전' 추천작가
  1941년 조선미술가협회 서양화부 평의원






당대 화단에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왜색풍의 솜씨

김인승은 동생인 조각가 김경승과 함께 친일파로 활약한 화가이다. 그의 
반민족적 활동상은 심형구*와의 두터운 친교 속에서 서양화 분야의 쌍벽을 
이룬다.
인삼밭을 경영하던 개성의 지주 집안 출신인 김인승은 어려서부터 그림 
재능이 특출하였다. 보통학교나 개성공립상업학교 재학 시절 학생미술전에 
늘상 입상하였고 그 재능을 살려 도쿄미술학교 유화과에 입학하였다(1932). 
첫해에는 떨어져 가와바다화학교(川端畵學校) 과정을 거친 후 합격하게 된
다.
도쿄미술학교에서 한 해 전에 입학한 심형구와  만나 단짝이 되어 '선전'
(朝鮮美術展覽會) 출품과 친일활동부터 해방 후 이대 교수 역임까지 반평생
을 같이하게 된다. 김인승은 심형구와 함께 이미 재학 시절부터 도쿄의 문
부성미술전, 광풍회전 등에 출품하여 그 탁월한 기량을 한껏 펼쳐 보였다.
김인승은 도쿄미술학교 유화과를 졸업(1937)할 때 평균 학점이 98점이라
는 학교 최고의 점수를 받을 정도로 우등생이었다고 한다. 우등생답게 졸업
하던 해 제16회 '선전'(1937)에서 [나부](裸婦)로 최고상인 창덕궁상의 영
광을 안았다. 이후 네 번 연속 특선하여 1940년 추천작가에 오르게 된다. 
이 때 서양화 분야에서 추천작가로 오른 조선인 화가는 심형구와 이인성뿐
이었다.
연구과정까지 수료(1939)한 후 귀국한 김인승은 심형구가 정치적 활동에 
열심이었던 데 비하여 주로 개인전과 단체전을 통한 작품활동에 매진하였
다. 김인승의 유화들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견실한 대상묘사 실력을 기
반으로 하여 마치 17∼19세기 서양의 고전적 아카데미풍을 연상케 하는 것
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화면 운용이나 대상 포착, 색채감각 등이 최우수 점
수를 받을 만큼 일본화된 초기 자연주의풍의 유화기법에 충실한 데서 나온 
결과였다. 당대 화단에서는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왜색풍의 솜씨였다.
김인승의 그처럼 엄격한 소묘로 그린, 군국주의 색채가 농후한 작품으로
는 조선식산은행 사보 {회심}(會心)지의 속표지화 [간호병](1944. 1)이 있
다. 진한 연필소묘에 수채화로 그린 측면 반신상은 적십자 완장을 찬 군복
차림의 여인 모습이다. 건강한 미모에 쌍꺼풀진 갈색 눈, 오똑한 코, 야무
지게 다문 두툼한 입술에 '성전'에 봉사하는 간호병의 결연한 표정이 역력
한데, 이 세부묘사법과 홍조 띤 얼굴색감이 김인승 인물화에 나타나는 전형
을 보여 준다. 이 여인상은 서구화를 지향하는 당대의 일본 미인형이기도 
하다.
특히 이 그림의 왼편에는 '황기(皇紀) 2603'이라는 제작 시기를 써 넣었
는데, 김인승은 이미 일본 문부성이 주최한 '황기 2000년(1940) 봉축기념
전'에 출품하여 입선한 경력이 있었다. 그처럼 제작 연대를 '황기'로 쓴 것
만 보아도 김인승의 친일의식이 얼마나 극명했는지 짐작케 한다. 또 김인승
은 일본 '문부성미술전'에 입선한 [나부](1936)나 '선전' 출품작에 작가 사
인을 'Jinsho, Kin'이라고 하여 자신의 이름을 일본어 발음으로 읽어 영어
로 써 넣었다. 도쿄미술학교 98점짜리 우등생다운 발상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일제 말기의 가장 선도적인 친일미술인 소모임인 '단광회'(丹光會)
에 심형구, 박영선, 김만형, 손응성, 이봉상, 임응구 등 조선인 화가를 선
도하며 참여하였다. 단광회는 '성전하(聖戰下) 미술보국(美術報國)에 매진
한다'는 취지로 1943년 2월에 당시 경성에 와 있던 일본인 화가를 포함하여 
19명으로 꾸려졌다. '선전' 추천작가 중심의 최고 엘리트 화가 집단이었다. 
그 '미술보국'을 위한 대표적인 실천 사례는 1943년 8월 조선인 징병제가 
시행되자 합작으로 기념 기록화를 제작하여 경성과 평양에서 순회전을 가진 
일이다.
19명이 4개월 동안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조선징병제시행기념 기록화]는 
'근대 반도사의 일면을 반영하는 대단히 큰 감명을 일으킨 역작'이라고 평
가받았다. 내용은 징병 소집된 조선 청년을 중심으로 소집자를 전송하는 비
행기를 든 소년, 그리고 조선군 보도부장, 지원병 훈련소장, 총력연맹 사무
국장, 친일파 윤치호*, 경기도지사 등 구체적인 인물들을 배치해 놓은 것이
다. 이들 주요 근경 인물들의 주변에는 서울 풍경과 남산의 신사(神社), 병
사들의 행진, 시민들의 환송 장면을 그려 넣었다. 일제 말 가장 손꼽히는 
전쟁선양의 친일작품이다.
이와 함께 김인승은 친일미술 단체활동에서도 심형구 못지않게 적극적이
었다. '조선미술가협회'의 서양화부 평의원, '반도총후미술전'의 추천작가
로 참여한 점 등이 그러하다.

해방 후 화려한 정치력으로 서양화 구상 계열 주도

김인승은 그러한 친일 매국행각 탓에 김은호*, 이상범, 김기창*, 심형구, 
김경승, 윤효중 등과 함께 해방 직후 결성된 '조선미술건설본부'의 조직에
서 제외당했다. 그러나 심형구의 주선으로 개성여중 미술교사에서 이화여대 
미술과 교수로 부임(1947)하면서 왕성한 작품활동과 화단활동을 벌이게 된
다. 제1회 국전(1949)에 추천작가로 참여하는 것을 시작으로 종군화가미술
전(1952) 참가, 국전 심사위원, 미협(당시 대한미술협회) 부이사장(1955), 
예술원 정회원(1957), 목우회 창립 주도(1958), 이대 미대 학장(1960), 한
국미술협회 이사장과 국제조형미술협회 한국위원장(1967) 등 화려한 정치력
으로 서양화 구상 계열을 주도해 왔다. 이와 함께 개인전, 단체전, 국제전
에도 관심을 갖고 작품활동을 왕성히 하였다.
이러한 김인승의 열정적 작업과 미술교육 그리고 화단정치 활동에 대하여 
미술평론가 이경성은 '일상생활에서 체통과 품위가 조화를 이룬 신사'로서 
'뛰어난 유머감각과 교양에서 우러나오는 원만한 인간미'를 갖추었기에 가
능했던 것이라 피력하고 있다.
그처럼 친일행각은 철저히 은폐시킨 채 '단정한 품성으로 질서와 조화'를 
지속적으로 담아 내려는 의도에서인지 김인승의 작품세계는 일제 때에 이어 
변함 없이 같은 주제, 같은 형식미를 추구하였다. 그야말로 사회현실의 변
화는 철저히 도외시하고 왜색화된 서구 고전주의풍으로 무이념적 이념의 생
명력 없는 자연주의를 추종한 작업만을 계속한 것이다.
그런데 김인승의 이런 경향은 자신으로 그친 것이 아니었다. 국전과 목우
회 심사위원을 지내는 바람에 무표정한 [실내의 여인 좌상] 등 서양화 구상
계열에서 공모전 아카데미즘의 형식주의를 조장하고 왜색풍을 오염시키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런데 김인승 자신도 변질되어 1970년대 이후에는 상
업주의 풍조에 편승하여 견실한 인물화가라기보다 '장미 화가', '모란 화
가' 등의 별명으로 더 알려지게 되었다.
김인승은 1970년대부터 점차 신진작가들의 정치력에 밀려 자리를 내주게 
되자 1974년 정년퇴임을 앞두고 미국으로 이주하였고, 현재 그 곳에서 노후
를 보내고 있다. 몸은 미국에 가 있으면서도 국전 출품 및 각종 화랑 초대
전, 근래의 {동아일보} 주최 회고전(1987) 등에 이르기까지 국내 작품활동
을 꾸준히 해왔다.
김인승은 여타의 친일파들과 마찬가지로 문화포상(1963), 예술원상과 서
울시 문화상(1965), 민족기록화 800호 제작(1967), 3·1 문화상(1968), 문
화훈장 동백장(1969) 등 각종 관변의 이익을 챙겼다. 미국으로 이주한 뒤 
화단에 미치는 김인승의 직접적인 영향력은 퇴색하였지만, 아직도 그가 한
때 확산시킨 현실 외면 경향의 자연주의적 회화관과 형식상의 오염은 제거
되지 않은 채 미술계 곳곳에 남아 있는 실정이다. 이는 일제 식민잔재가 청
산되지 못하여 우리 사회를 아프게 하거나 병들게 하는 제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 이태호(전남대 교수·미술사, 반민족문제연구소 연구원)

주요 참고문헌
{한국근대회화선집} 서양화 2권, '도상봉/김인승', 금성출판사, 1990.

참고 작품사진
김인승 외 '단광회'원 작품, [조선징병제시행기념 기록화], 1943년 작 유
화.
김인승, [간호병], 조선식산은행 사보 {회심}지, 1944년 1월호 속표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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