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Monami (쿠키몬수타() 날 짜 (Date): 1996년05월26일(일) 10시38분35초 KDT 제 목(Title): 문학작품에서... (3) 2. 각 社會 階層의 삶의 樣態에 대해 서... 당시 삶을 조명하기 쉽게 하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방법을 취하 기로 한다. 먼저 농촌을 중심으로 해서 농촌의 無産者의 모습을 살 핀다. 그리고 이들이 분화하면서 이동하는 경로를 보면서, 또 당시 의 사회 상황과 이에 대한 無産者들의 반항들을 살피면서 여기에 묻어 나는 다른 많은 삶의 모습을 살펴보아야겠다. 물론 이를 통해 서 농민과 노동자의 聯隊 관계를 살피는 과정도 취할 것이다. 하지 만 당시의 사회적 상황이란 것이 도시와 농촌이 매우 유리되어 있 었기에-- 다시 말하면, 교통 편이거나 기타 문화적이거나 너무나 심 한 격차는 농민을 도시나 기타 사상 등으로부터 유리시켜 놓았을 뿐 아니라 당시의 농민은 비록 자신이 노동자일지라도 만약 여건 만 성립된다면, 언제든지 다시 농촌으로 복귀하려 하는 '農民 意識' 이 있어서 엄연히 노동자와 차별을 두고 봐야 한다--이 두 계층의 연대를 생각하는 데에는 많은 문제가 있음을 먼저 짚고 넘어가야겠 다. 당시 농촌에는 농민을 기반에 두고 그 위에 사음과 지주가 있 는 그런 농촌 사회 구조의 모습을 보였다. 여기서 농민은 다시 자 작농이나 소작을 하는 소작농으로 또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시 간이 지날수록 자작농은 몰락하고 소작농이 되며, 소작농도 땅을 잃거나 해서 또한 유랑을 하거나 화전민이 되기도 하는 등 점점 몰 락의 일로를 걷게 된다. 여기에는 사음과 지주의 농간도 있지만, 일 제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산미 증산 계획 등 식민지 지주제를 구 축하는 각종의 여러 농업정책도 한 몫하게 된다. 채 만식의 '富村'(1932)에서 보듯이 농민들은 추수하자마자 사음으 로부터 소작료를 요구받고, 또한 面所로부터는 세전, 금융 조합에서 는 농채 등의 청구, 비료 회사로부터의 거름값(금비). 학교로부터는 월사금 독촉 등이 나와서 결국 농민은 추수해야 얻는 것이 없었다. 이 석훈의 '이주민 열차'(1932)에서도 주인공 김서방도 곡식과 고치 값은 떨어지고 각종 부채와 세금으로 자작농에서 소작농이 되고 여 기서 다시 땅이 떼여서 결국 화전민이 되는 장면이 나온다. 김 유 정의 '만무방'(1938)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나온다. 여기서의 주인공 동생은 추수해 보아야 아무런 소득이 없음을 알고는 추수를 거부한 다. 그리고 살기 위해 몰래 자기가 소작한 땅의 곡식을 잘라다먹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의 '봄봄'(1935)이라는 작품에서도 이와같은 말이 나오고 있다. 그것은 마름에게 애볼논 때 품을 안주면 가을 에 땅이 떨어진다는 식의 착취이다. 또한 덧붙이면, 漁村도 비슷한 상황인 듯하다. '동백꽃'에서도 마름에게 잘못보일까봐서 꿈뻑 마름 집 딸에게 죽어지낸다는 내용도 있다. 한 인택의 '漁火'(1937)에서 漁民들은 은어 대목을 생각하고 외상으로 얻은 부채로 인해서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 이 기영의 '고향'에서도 이에 대한 상당 부분의 언급이 있다. '마을 사람들'이란 장에선 제방 공사 부역 갔던 것과 초상 등을 치르느라고 얻어 쓴 금융 조합에서 빚을 갚지 못해서 자작농이 몰락해서 소작인이 되는 내용이 나오며 , '풍년'에서는 이 자가 붙는 비료대를 소작에게 모두 부담시키는 사음의 착취도 보 인다. 그리고 서울서 타작관이 와서 추수를 감독하는 타작관이 올 때 사음은 더욱 극성을 부린다. 그런데, 문제는 그나마 얻은 소출도 가을이 되면 떨어지는 곡가로 인해서 소작인의 손해는 더욱 커지고 이를 기회로 지주 등은 사재기를 통해 다시금 부를 축적하는 상황 이 연출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당시 농민은 그 어떤 식의 農民分化過程을 겪으면서 어느 정도로 가난하게 살았으며, 어떤 방법으로 대처해 나갔고 또 한 어떻게 반항해 나갔을까? 극단적인 모습으로 최 서해의 '큰물진 뒤'(1925)에서처럼 순진한 주인공은 가난에 대한 구제책과 분풀이 로서 지주 집을 강도 짓을 하거나, 김 유정의 '만무방'에서의 한 범 죄 사건처럼 길가는 사람에게서 강도 짓을 하는 이야기도 있다. 이 는 태평 천하에서 보이는 어떤 화적이 아닌 좀도둑이나 강도 등 범 죄를 일으키는 방식을 취한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의 범죄는 의적 활동이 아닌 단지 생활의 빈곤에서 오는 것으로 민족 의식 각성의 측면은 보이지 않고 당시의 사회적 병리로써 받아 들여야지 이것을 어떤 계급적인 저항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이는 박 영희의 '地 獄 巡禮'에서도 보이듯이 단지 떡을 먹기 위해 사람을 죽이는 일종 의 충동적인 사건들이 많다는 것이다. 단지 말하고 싶은 바는 순진 했던 사람일지라도 당시의 빈곤과 고난으로 인해서 이렇게 스스로 인간성을 파괴할 정도였음은 상기해야겠다. 실제로 대부분의 농민 은, 자작농이 점점 몰락하면서 소작농 수가 늘어가게되자, 여기서 소작을 얻기 위한 경쟁 등을 통해서 많은 소작농들이 다시 몰락하 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런 과정 중에 나타나는 현상이 바로 소작 농의 雇工化나 아직 산업 자본이 본격적으로 들어오지 않았던 1920 년대에 주로 있던 농민이 농촌을 떠나는 移住, 그리고 30년대 와서 일본 식민지 산업 자본과 회사령 철패 후에 성장한 일본 산업 자본 과 조선인 土着 資本에 의해 진척되던 공업화 시기의 농민의 공장 노동자에로의 흡수였다. 하지만 농민이 노동자로 전환했다고 할지라 도 그들의 비참한 생활은 계속되었다. 그들은 과거의 식량과 원료 공급자 및 일본 공산품 소비자의 위치에서 이제는 값싼 노동력을 제 공하며, 그 공산품을 소비하는 식의 억압 착취 관계는 이름만 바뀌 었을 뿐이었다. 또한 그나마도 당시의 공장이란 것은 기술자를 요하 는 것이 아니라 값싼 미숙련 노동자인 여성이나 어린아이들을 요구 했기에 그나마 대부분의 소작농 층은 흡수되지 못하고 안정적 지주 제의 기반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즉 거대한 일본의 자본과 조선 지주의 이익 추구의 노력이 맞물려서 커다란 자본주의 체제를 이루 어 발전하면서 그에 값싼 노동력의 공급을 유지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과정에서 농민과 노동자들은 점점 각자의 계급 을 인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소작 쟁의와 노동 쟁의를 일으키게 된다. 우선 농민과 노동자의 삶을 살펴보자. 채 만식의 '차중에서'라는 작품에서 공장에 다니는 소녀는 죽을병을 앓고 있으면서도 공장의 무성의한 의료 시술로 인해서 결국 자신의 병명도 모른 채 죽어 가 는 모습이 보이며, 최 서해의 '朴 乭의 죽음'(1925)에서는 생선 쓰레 기를 먹고 죽은 박 돌과 그나마도 돈이 없어서 결국 손도 못 대는 가난한 한 농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렇듯 가난한 삶은 농민들로 하여금 간도로의 이주나 광산촌 그리고 공장 노동자 등으로 해서 자 기 고향을 떠나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앞에서도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의 삶은 여전히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최 서해의 '고 국'(1925)에서는 만주로 이민 갔다가 결국에는 다시 오는 사람의 이야기가 있으며, 또 그의 '拾參圓'(1926)이란 작품에서는 주인공 유 인이 고향 산골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노동으로 생활비를 벌 어 고향에 보내는 것이 나온다. 그리고 '무서운 印象'이란 작품에는 기차역 하역부들의 모습은 보여 준다. 이런 내용은 또한 박 영희 의 작품들에서도 나오는 데, '포도원에서'라는 곳에는 한 남자 고공 과 공장을 그만두고 포도원에 품팔러 온 여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현 진건의 작품들도 살펴보자. 그의 작품에서 '고향'(1926)에서의 농 촌의 모습을 보면, 토지 조사 사업으로 역둔토를 동양 척식회사가 인수하자 그 땅을 경작하던 많은 사람들은 생활의 터전을 잃게되 어서 모두 동리를 떠나고 특히 주인공처럼 간도나 아니면, 일본 등 지에서 막일이나 탄광 일을 하는 모습이 나타난다. 그리고 또 그 주인공이 부른 노래에서는 그 당시의 상황을 추측하게 하는 내용이 나오는 데, 그것은 사상범의 탄압, 농촌 부녀자들의 인신매매 같은 일들이다. 이 기영의 '고향'에서도 '마름집'이라는 장에서는 서간도 가 살기 좋다고 해서 자기 고장을 떠나는 사람이 많다는 언급이 있 다.또 '水災'에서도 방개가 제사 공장으로 취직하는 것과 막동이가 대판에 노동 벌이 가는 내용이 나타나 있다. 현 진건의 '고향'에서도 이리저리 방랑하는 주인공이 서울의 노동숙박소 등에 가려는 모습 이 보인다. 이 석훈의 '이주민 열차'에서는 화전민의 이야기가 나오 는 데, 전에 양반이나 지주, 도회에서 구두수선하던자, 목수질하던 자, 수공업 하던 자가 몰락해서 화전민이 되어 산천으로 떠돌다가 산사태를 만나서 水害를 당하자 신문사 등지에서 기금을 모아 어느 미개지로 이송시키는 모습도 보여 준다. 이렇듯이 가난과 이주가 빈번했던 농촌에서 또 한가지 특이한 현상이 보이는 데, 그것은 농촌 여성이 인신매매나 매춘에 관계되는 일이다. 단 이것이 진정 당시의 어떤 풍토였는 지, 아니면 그저 소설 가가 흥미 위주로 소재를 선택했기에 그러하였는 지는 확실히 단정 지을수 없음을 밝혀 둔다. 이런 내용은 일제 시대 때 소설의 소재 중에 상당 부분 차지하는 데, 현 진건의 '貞操와 藥價'(1929)에서도 의원에게 약값 대신으로 자기의 몸을 파는 내용이 있으며, 이 기영 의 '고향'에서도 소작할 땅을 얻기 위해서 아내가 마름에게 농락 당 하는 것을 눈감아주는 남편의 모습도 보인다. 이것은 시골서 서울로 무작정 상경한 농촌 부녀자에도 마찬가지이다. 나 도향의 '전차 차장 의 일기 몇절'(1924)에서 시골에서 올라온 여성이 한 직업 안내소를 통해 매춘부가 되어서 처음의 꾀재재한 모습을 사라지고 아주 호사 스러운 생활을 하는 내용이 나오고 있다. 그러면 다음으로 자기 고향을 떠나 여기저기 흘러들어 간 사람들 의 생활 모습은 어떠했는 지를 살펴보자. 우선 간도 등지로 이주한 사람들의 생활상을 보면, 최 서해의 '탈출기'(1925)에서 보듯, 막상 이주했지만, 땅은 중국인의 것이거나 이미 먼저 와서 경작한 사람들 의 것이므로 결국 주인공 가족은 각종 품팔이와 장사 등을 한다. 하지만 이들은 밑천이 없었기에 결국 돈을 벌지 못하며, 또 너무나 배가 고파서 주인공의 부인은 누가 버린 귤껍질을 먹는 일등이 생 긴다. 둘째로 도시로 간 사람들은 도시의 빈민들에 유입되는 데, 여기서 도시 빈민들의 삶과 더불어 살펴보자. 이 때 농촌에서 도시로 온 사 람들이 살 집을 구하는 방식으로 남의집 행랑살이를 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도 많은 당시 작품에 언급이 되어 있다. 그 중에 한가지를 보면, 나 도향의 '행랑집 자식'(1923)에서 주인의 눈치를 보고 사는 행랑 식구들이 있으며, 보통 이 식구는 주인집에 일을 해주거나 식 모일 등을 해준다. 셋째로 공장에 노동자로 들어간 경우인데, 이들은 많은 작업량과 저임금으로 자본가에게 노동을 제공하는 양상을 띠었다. 한 인택의 '鐵工의 아내'(1932)에서 야근을 하면서도 일을 하지만은 헐벗고 굶 주리기는 마찬가지라는 이야기가 나오며, 동일 작가의 '적은 여 공'(1932)에서도 공장에 대한 기대로 많은 사람이 몰려오나, 실제로 그들의 삶이란 가족이 두세 사람만 되어도 밥먹는 날보다도 굶는 날 이 더 많다는 것과 한달에 이원 오십 전에서 삼 원의 월급으로 하루 일당이 십전도 안되는 그들의 저임금에 관한 이야기, 또 열악한 작 업 환경과 어린아이일 경우 부모의 승낙서가 없이는 공장에서 나가 지도 못하는 나쁜 처우 등을 볼 수 있다. 넷째로는 도시의 하층민으로서 이렇다할 직업이 없거나 각종 막 일이나 서비스직에 종사한 것이다. 이 경우도 물론 생활이 궁핍했다. 박 영희의 '地獄巡禮'에서 산의 움집에서 사는 가난한 사람들의 모 습과 그나마 움집도 도시 미관을 위해서 헐리는 일을 당하게 된다. 현 진건의 '운수 좋은 날'(1921)에서 인력거꾼인 김씨는 병든 아내 에게 약사 먹일 돈은 커녕 식생활 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는 형편에 처해 있다. 또 한 인택의 '女店員'(1932)에서 백화점에 일하는 주인공의 한달 봉급은 하루 14시간 노동에 보수가 이십 사전으로 그 나마 처음 몇달 동안에는 무보수로 일한다. 그런데, 어느날 사고로 없어진 만년필의 값은 7원 5전으로 이 대금은 월급에서 손해를 보 상하게 되는 데, 이 만년필의 값은 이 여점원의 월급의 50 %라는 점에 당시의 노동 착취의 정도도 엿볼 수 있다. 이런 가난과 농민층의 분화 과정 속에서 이제 점점 자신의 계급 을 생각하는 계급 의식과 대항 의식이 싹트기 시작하는 데, 초기에 는 단순히 의식의 형성을 보이다가 이것이 점점 발전하면서 나중에 는 행동력을 띤 적극성을 띠게 된다. 그러나 당시의 문학 작품에서 는 검열이나 압력 탓인지 이에 대한 언급은 계급 의식의 초기 양상 을 시사해 주는 데 끝치고 있다. 염 상섭의 '밥'(1926)에 나오는 농 민은 마름의 이중 착취 문제에 대한 인식이 있었음을 보여 주고 있 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마름이 나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지 지주제 자체를 문제삼은 것은 아니었다. 이 무영의 '두 훈시'에서도 임금 감하 반대 스트라이크 사건으로 해고된 한 노동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만포 노인'(1935)에서 농민들은 일제와 지주와의 관계 그리 고 일제의 정책 목표는 인식하지 못하고 '농지령'이란 것이 지주의 소작권 침탈 등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하고 있다.이 기영의 '고향'에서는 좀더 발전한 양상을 보여 주는 데, 인순 이는 공장의 작업등으로 고생하면서도 '왜 농민은 헐벗고 굶주리지 않으면 안되는가?' 하는 의문을 지니며, 또한 인순이의 어머니는 자신과 딸인 인순이 사이에 --직접적인 표현은 안 했지만-- 어떤 간격을 인식한다.이 외에도 공장 여공들이 부당하게 해고된 한 여공 의 복직과 대우 개선 그리고 그 밖에 여러 요구 조건을 가지고 노동 쟁위를 하는 데, 여기에 남자 노동자들도 참여하는 내용도 있다. 또 흉작이 들자 소작농들은 서로가 한 운명 공동체임을 인식하고 추 수를 안하는 방식으로 소작 쟁의를 시작하는 이야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서도 아직은 초기 단계라서 이와같은 투쟁 대오에서 이탈하려는 모습과 희준이가 구해 온 돈을 배분할 때, 서로 싸우는 모습에서 아 직 이들의 의식이란 것이 크게 발달하지는 못했음을 보여 준다. 그 러나 이런 의식의 성립과 발맞추어 생길 수 있는 농민과 노동자의 어떤 연대가 나타나는 모습은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 그렇게 두드러 지게 나타나지는 않는다. 이제는 부르조아의 생활을 살펴보기로 하자. 사회 구조의 구분에서도 말했듯이 부르조아에는 중소 부르조아와 대부 르조아로 나눠볼 수 있겠다.중소 부르조아는 보통 지식인 계층이나 중소 지주 기타 중소 자유 업종을 운영하는 사람 들이 많다. 하지만 이들의 많은 수가 몰락의 길을 걸어서 후에는 보통 대지주와 무산자로 계층이 兩分되는 양상을 보이게 된다. 보통 중소 부르조아들은 보통 사무직이나 공장 감독의 일을 본다. 문학작품에서는 은행원이나 신문 기자 중 소 지주, 사음, 교사, 전당포 주인, 의사나 의원, 술집이나 요 리점 주인으로 나타난다. 이들은 간혹 개혁을 앞세우는 모 습이 나오는 데, 대부분의 경우 소극적인 저항이나 자포자 기, 타락 그리고 단순한 실력 배양 운동을 선도하는 사람으 로 묘사되어진다. 대지주의 경우는 일본의 정책과 영합해서 더욱더 많은 자본을 모으는 데, 문학 작품에서 이들의 생활 은 요리집을 다니면서 기생과 놀아나는 모습과 축첩 등 향 락 생활에 빠져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또한 신문사에 돈을 대주거나 자신의 자녀들의 사업 자금을 대어 주는 투자의 이야기도 보인다. 이 부르조아는 정도의 차이를 보일 지라 도 중소 부르조아가 몰락하지 않은 한 비슷한 생활을 한다. 그러나 몰락 후에는 소작농이 되거나 노동자가 되는 등 하층민의 생활 양식을 띠게 된다. MM MMM OOO NN NN AAA MM MMM IIII Center of MMM MMMM OO OO NNNN NN AA AA MMM MMMM II Secret MM MMM MM OO OO NN NNNN AAAAAA MM MMM MM II Information MM MM OO OO NN NN AA AA MM MM II MM MM OOOO NN NN AA AA MM MM IIII Since 19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