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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ryuch (개굴개굴)
날 짜 (Date): 2008년 08월 25일 (월) 오전 01시 00분 54초
제 목(Title): Re: 안중근과 독립선언서


제가 안중근 의사가 기만적인 대동아공영에 속았다고 주장하는 것이 
논리적이지 않다고 여기시는 것 같군요. 말씀하시는 대로 대동아공영 자체가 
나쁘다고 볼 수 없으니까요. 그것을 내세운 제국주의의 본심이 문제지요.

안중근의 아버지 안태훈은 동학난 당시 일본군에 협력하여 
김구의 민족자주적인 동학당을 토벌했습니다. 

일본에 호의적인 태도를 안중근이 가지고 있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외국사정에 눈뜬 많은 개화파 인물들이 그런 태도를 가지는 것이 당연하지요.

당시 조선은 일본의 힘을 빌어 청나라로부터 독립을 이루었고,
러시아의 위협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하여 러일전쟁에 적극협력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변화를 경험했지요. 아시아가 유럽을
이겼으니까요. 중국처럼 당하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대동아공영은 그럴듯한 이론이었고, 일본의 일부 지식인들은 
동아시아인을 위한 전략에 동참하라는 진실된 메시지를 조선사람들에게 
전달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은 러일전쟁에 승리한 후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고 공생공영을 도모하기를 바라는 조선인들의 기대를 저버렸습니다.

을사조약은 동상이몽하는 일본과 조선을 명확히 드러내준 사건입니다. 
안중근의 마지막 말들은 그가 아직도 대동아공영의 본질적 한계를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을 옅보게 해준다는 것입니다. 광복 때까지 이러한 인식을 
했던 조상들을 우리는 친일파로 부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리사욕을 
위해서 반민족적인 악행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실제로 대동아공영을 믿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확신범이 많았을 것입니다. 

안중근은 대동아공영을 실현하는 방법에 관하여 이등박문과는 다른 
견해를 가졌습니다. 타협할 수 없는 노선의 갈등이 그를 쏘게 만든 것입니다. 
조선의 독립을 보장하지 않는 이등박문을 그냥 둘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일본의 전체적 의사가 아니고 일부 의리없는 사람들만의
태도라고 잘못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바로 이점에서 그가 제국주의의 속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이후 역학관계가 되돌이킬 수 없는 상태에서 윤치호와 최남선이 가졌던 
대동아공영 사상과 똑같은 사상을 갖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궤적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안중근의 외세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대동아사상과 황국신민으로 대동아를 이루려했던 친일파들이 
동일한 사상적 선상에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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