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Param (Param) 날 짜 (Date): 2007년 5월 27일 일요일 오전 12시 55분 41초 제 목(Title): Re: 펌/게스트 조선시대 노비 잘 들어보지 못한 내용이라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공노비와 사노비가 있었는데, 공노비 폐지는 (시행령에 의한 폐지는 없었던 걸로..) 대략 19세기 초반에 흐지부지.. 공노비들의 탈출이 이어졌고, 정부에서도 크게 개념치 않았다네요. 조선중기에 35만 정도였는데, 후기로 가면서 점차 줄어들어서.. 숙종 무렵에는 3만 정도.. 사노비는 폐지가 일제에 의한 갑오경장(1894년) 때입니다. 새삼스럽지만, 미국의 흑인노예제도 폐지보다 늦습니다. 문제는 사노비가 문제였는데, 게스트 김장군님? 이 쓰신대로 일천즉천법, 노비종모법( 어미가 노비면 자식도 노비) 때문에 전체인구에서 노비의 비율이 급격하게 늘었다고 합니다. 조선중기에는 인구의 반정도.. 조선시대 노비들은 군역이나 세금을 내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끔 조선왕조에서는 종부법(아비의 신분을 따르는 것) 을 시행해서 노비숫자를 줄이려고 했다고 하네요. 경제가 마비되니까.. 노비들에게는 결혼제도가 없었고 노비들간의 동거는 허용.. 노비는 사유재산이고(매매된 기록이 보임) 세습이 되니 가족간의 생이별이 있었다고 하네요. 여성 노비들에 대한 성노예라는 표현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사적재산이고 그 재산을 불릴 수 있는 수단은..?? 세계에 유례없는 성노예가 19세기 말까지 조선에 존재했었군요. 이런 것 국사시간에 절대 가르치지 않겠죠. 씁쓸. That old law about "an eye for an eye" leaves everybody blind. The time is always right to do the right th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