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Param (Param) 날 짜 (Date): 2007년 5월 3일 목요일 오전 01시 26분 49초 제 목(Title): 펌/인간의 이동과 정착을 바탕으로 본 역사 · 제 목 ▩‘인간의 이동과 정착’을 바탕으로 본 역사를 꿈꾸며 · 작성자 ▩조약돌 · 글정보 Hit : 41 , Vote : 0 , Date : 2007/04/29 20:33:26 , (2960.5) 자 · 가장 많이본글 : 전방후編?돌아보기 쿠르드족의 역사는 쿠르디스탄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4천년 전 우크라이나 남부에 살고 있던 아리안족이 쿠르디스탄에 쳐들어와 정착했고, 이들이 오늘날의 쿠르드족이 되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쿠르드족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이라면 그 초점을 쿠르디스탄이 아닌, 우크라이나 남부에서부터 맞추고 연구해야 한다. 북北 아프리카의 원주민인 이마지겐(베르베르족이 스스로를 일컫는 말. ‘베르베르’는 ‘야만인’이라는 뜻이다)족의 역사는 북아프리카의 구석기/신석기인이 발전해서 이루어진 역사가 아니다. 원래 이마지겐 족은 중서부 유럽에 살던 유럽인이었고, 카나리아 제도(아프리카 북서쪽에 있는 섬들)로 건너가 ‘관체’족(族)이라는 이름으로 정착해 살다가 다시 배를 타고 북아프리카로 건너와 북아프리카 사람이 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오늘날 그들이 살고 있는 북아프리카 내륙 대신 중서부 유럽의 신석기시대 지층부터 연구해야 한다. 남(南)아프리카 공화국의 흑인인 ‘반투’인(코사족/줄루족/마타벨레 족 등)의 역사도 남아프리카 땅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연구에 따르면 그들은 서기 1세기까지는 서(西)아프리카에서 살고 있었으나, 인구가 지나치게 늘어나고 일굴 땅이 모자라게 되자 ‘고향’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들은 콩고의 울창한 밀림을 뚫고 끝없이 펼쳐진 중동부 아프리카의 사바나 지대를 지나 서기 4~5세기에는 이미 동아프리카 해안과 중남부 아프리카 고원 지대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중에서도 특히 남아프리카로 이주해 간 이들을 남부 반투 인이라고 하는데, 그들은 중남부 아프리카에 도착하자 더 이상 남하하지 않고 수세기 동안 그곳에 정착했다. 이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남아프리카에 살고 있던 ‘코이코이(유럽인들은 그들을 “호텐토르”족이라고 불렀음)’족과 ‘산(유럽인들은 그들을 “덤불 숲에 사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부시맨”이라고 불렀음)’족을 袁?지대와 사막으로 몰아내고 남아프리카의 주인이 되었다. 따라서 남아프리카 흑인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남아프리카 안에서만 머무르면 안 되고, 그들의 ‘기원지’인 서부 아프리카로 가서 언어와 문화를 비교 연구해야 한다. 태국의 다수(多數)민족인 ‘타이’족의 역사도 태국 땅의 구석기/신석기 문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타이족은 서기 13세기에 몽골(원나라)의 침략을 받아 거의 모든 민족이 오늘날의 태국 땅으로 옮겨가기 전까지는 운남성에 독립왕국을 세워 다스리고 있었고(‘남조南詔’국과 ‘대리大理’국이 이들이 세운 나라임), 이후 남쪽으로 흩어지면서 라오스, 태국을 세웠다(버마와 바라트[인도], 월남에도 많은 타이족이 살고 있는데, 이 때 몽골군을 피해 많이 달아났기 때문이다). 타이족은 크메르 제국(캄보디아의 왕조)의 땅을 빼앗고 크메르인을 동남쪽으로 밀어내면서 나라의 기틀을 다졌다. 이후 오늘날과 같은 국경선이 굳어지게 되었다. 따라서 타이족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오늘날의 태국 땅에서 나오는 신석기 문화를 연구하는 대신, 중국 운남성(雲南省)에 들어가 남조국 이전의 철기문화나 신석기 문화를 연구해야 한다. 터키의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도 그 근본을 오늘날의 터키 땅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함은 마찬가지다. 튀르크(투르크)족은 서기 11세기 이전에는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었고, 그 이전에는 몽골초원에서 돌궐제국을 세워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타이족이 크메르족(캄보디아인)의 땅으로 쳐들어 와서 나라를 세웠듯이 동로마와 아랍(사라센)의 땅으로 쳐들어와 나라를 세웠다. 따라서 튀르크족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아나톨리아의 구/신석기 유적/청동기 시대의 유적을 파고드는 대신 몽골초원이나 알타이 산맥, 중앙아시아의 초원지대로 가서 그곳의 유적을 조사해야 한다. 스리랑카의 다수민족인 '싱할리'인(人)의 역사도 오늘날의 실론 섬과는 관련이 없다. 원래 그들은 바라트(인디아)의 서북부인 '구자라트' 주에서 살고 있다가 배를 타고 실론 섬으로 건너가 원주민인 베다족을 섬의 동쪽으로 몰아내고 살기 좋은 땅을 독차지했다. 따라서 싱할리인의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은 실론 섬의 석기시대 유적지를 파헤칠 게 아니라, 싱할리인의 고향인 구자라트의 유물/유적을 연구해야 할 것이다. 팔레스타인 아랍인의 역사는? 그것도 마찬가지다.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은 유태인의 기록인『구약성서』에 나오는 가나안족이나 필리스틴인(블레셋족)과는 유전적/언어학적/문화적으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들은 서기 1세기에 유태인들이 그들의 성전을 잃고 세계 각지로 흩어졌을 때 그 빈 자리를 채운 로마인들과, 서기 7세기에 아라비아 사막에서 건너온 아랍 베두윈(유목민)들이 섞여서 만들어진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들의 역사를 제대로 비추려면, 팔레스타인 땅의 청동기시대/철기시대 유적을 뒤지지 말고 서기 1세기부터 지어진 로마시대의 유적이나 서기 7세기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아랍인의 유적을 뒤지는 것이 좋다. 내가 다른 민족들의 사례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 까닭은, 우리의 역사도 이와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의 뿌리인 신시(神市)와 고조선(古朝鮮)은 백두산이나 평양특별시가 아닌 다른 곳 - 특히 요서나 남(南)몽골 지방 -에서 세워져 세월이 흐른 뒤에야 반도로 넘어왔으며(「▩평양시 강동군 구빈마을의 전설이 입증하는 고조선의 한/조선반도 정복」참고), 따라서 우리 역사의 뿌리를 알려면 한/조선반도의 석기시대 지층을 뒤지지 말고 요령성이나 남몽골 지방의 신석기/청동기 시대 지층을 뒤져봐야 한다는 것이다. 올해 안에 나올 내 책은 ‘인간의 역사’를 ‘땅의 역사’가 아닌 ‘인간의 이동/정착, 그리고 융합’이라는 관점으로 다루는 책이 될 것이며, 그 때문에 독자 여러분에게 이 사실을 일깨우는 설명을 한 것이니 부디 - 설명이 조금 어렵더라도 - 양해해 주시길 바란다. - ‘땅’과 ‘생물학적인 핏줄’에만 매달리는 역사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동과 다민족/다인종의 융합’이라는 새로운 관점으로 역사를 보는 세대가 나타나기를 빌며....조약돌 씀 (추신 : 단, 예외가 있기는 하다. 미스르[영어 이름 이집트]의 경우에는 ‘인간집단의 이동’보다는 ‘여러 민족과 인종이 한 무대에서 융합했다’는 설명이 훨씬 어울리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역사를 ‘인간집단의 이동’으로 분석하는 대신 ‘땅이라는 무대 위에서 여러 배우들[인간집단들]이 벌이는 연극’으로 파악하는 편이 낫다) *참고자료 - [GEO(지오)] - [동아시아 구비서사시의 양상과 변천](조동일, 문학과지성사, 서기 1997년) - [세계 민담 전집 - 남아프리카 편](장용규 엮음, 황금가지, 서기 2003년) 125.143.129.47 trackback ::: http://histopia.new21.org/zero/view.php?id=neo&no=958 That old law about "an eye for an eye" leaves everybody blind. The time is always right to do the right th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