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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opin (** 쇼팽 **)
날 짜 (Date): 2007년 3월 27일 화요일 오전 01시 38분 48초
제 목(Title): 만주제국 청의 식민지들 - 명, 몽골, 티벳, 위그루, 타이완 

중화사상으로 왜곡시킨 청나라의 이미지는 “명청교체”라는 단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명청교체”란 용어는 마치 청나라가 명나라를 이어 
대체된 것 같은 의미를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명나라는 청나라로 대체된 것이 
아닙니다. 명나라는 청나라가 정복했던 많은 나라들 - 몽골, 타이완, 티벳, 
위그루들에 포함된 식민지들 중 하나일 뿐입니다. 몽골-청 교체라는 단어도 
없고, 티벳-청 교체라는 단어도 없습니다. 그런데 유독 명-청교체라는 
중화사상이 짙게 드러나는 단어만 쓰여지고 있습니다. 이 단어부터 폐기해야 
합니다.

청나라는 명나라를 정복한 나라일 뿐 명나라를 교체한 나라가 아닙니다. 영토로 
봐서도 명나라영토는 청나라영토의 반도 안 되는 크기였습니다. 청나라는 
동아시아의 여러 왕조를 정복하여 대제국을 세운 몽골제국에 버금가는 
세계제국이였습니다. “몽골제국이 중국이다”라고 하면 중화사상에 의한 
왜곡이라는 것이 잘 이해되고 있는 반면, 이상하게도 “만주제국 청나라가 
중국이다”라고 말이 중화사상에 의한 왜곡이라는 인식이 제대로 서질 못하고 
있으니 큰 문제입니다. 

중국이 만주 청나라의 식민지였다는 것을 여러 각도에서 한번 살펴봅시다.

식민지국의 백성은 다른 식민지국의 지배층이 되질 못합니다. 일제시대 
우리나라 사람이 다른 일제식민지였던 타이완이나 만주국의 지배층이 되지 못한 
것은 피지배층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식민지는 언제나 정복자가 지배층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청나라의 식민지였기 때문에, 청나라가 정복했던 거대한 
영토들, 몽골, 티벳, 위그루, 타이완에는 중국인들이 가서 지배한 적이 
없습니다. 이는 몽골제국시대 때도 마찬가지 입니다. 중국인은 역사상 한번도 
몽골이나 티벳을 지배한 적이 없었습니다. 원나라 때와 마찬가지로 청나라 
때도, 중국은 몽골, 티벳, 위그루와 똑 같은 식민지중 하나였을 뿐입니다. 

식민지 언어정책에서는 기본적으로 본국 지배국의 언어가 피지배국언어와 
공용어가 됩니다. 하지만 물론 지배계층은 항상 본국의 언어를 씁니다. 그 
피지배국을 언어로 얼마나 동화시킬 수 있느냐에 따라서 정책은 차이가 
납니다만 기본적으로 본국의 언어를 지키면서 확산시키는 정책을 씁니다. 
일제의 경우는 식민지로 만든 만주국에서도 일본어가 공용어였고, 언어가 
유사해서 동화정책이 가능했던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어만을 강요하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언어정책에서는 후에 성공적이지 못한 것으로 평가 받고 있지만, 만주제국 
청나라는 만주어가 만주제국 전체의 공용어였고, 각 식민지국민들은 원래의 
자신들의 말을 썼습니다. 명나라 땅의 중국인들은 중국어를 썼고, 티벳인들은 
티벳어를, 위그루인들은 위그루어를 썼습니다. 청나라 지배층은 만주어로 
내부문서를 작성하고, 피지배층인 중국인, 몽골인, 티벳인, 위그루인과는 별개로 
제국을 관리했습니다.

문화정책에서는 청나라는 일제보다도 더 강력한 동화정책을 썼습니다. 머리와 
복장을 만주족 복장으로 바꿔버린 것입니다. 명나라의 여러 성을 하나씩 
정복하면서 복종의 표시로 변발과 여진복장을 강요했습니다. 중국인들은 
야만인의 복장을 따를 수 없다 하여 산으로 숨어버리거나 해외로 도망가는 
사람이 속출했습니다. 세계로 흩어진 중국의 화교들의 역사는 청나라의 탄압을 
피해서 탈출한 사람들이 큰 부분을 차지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결혼제도에서는 더 강한 식민지 정책이 드러납니다. 만주족과 한족이 혼인하는 
것을 법으로 금지시켰고, 황제 스스로 한족을 후궁으로 들이지 않았습니다. 

군대에서의 식민지 정책은 상황에 따라 다릅니다만, 기본적으로 식민지백성은 
고위간부에 올라가는 걸 금지시킵니다. 일제시대 많은 식민지백성들은 전쟁터로 
내몰렸지만 그들이 군대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는 힘들었습니다. 일제시대와 
비교하면 청나라보다 오히려 일제시대 때 군대에 진출하기가 더 쉬웠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많은 사람들이 일제 때 군인간부를 지낸 것을 보면, 
청나라는 군대만큼은 더 강한 식민지 정책을 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청나라에서는 만주족을 제외하곤 식민지백성은 고위간부에서 제외시켰고, 
시간이 가고 국가가 안정되어 가자 팔기군 전체에서 한족을 제외시켰습니다. 

본토와 식민지분리 정책도 일반적인 식민지 정책을 따랐습니다. 만주제국의 
본토인 만주땅은 봉금정책을 시행하여 만주인을 제외하고는 허락없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식민지국들과 별개로 분리된 본국을 지켜야 할 
필요성을 그대로 가져간 것입니다.
 
그럼 이제 사람들의 인식의 혼란의 원인 중 하나인 수도를 봅시다. 청나라 
수도인 북경은 원래 중국의 수도가 아닙니다. 북경은 같은 만주인의 나라인 
요나라의 수도였고, 요나라를 전복시킨 또 다른 만주인인 여진의 금나라가 
수도로 삼았습니다. 그 후는 몽골제국의 수도였고, 잠시 중국 명나라가 수도로 
겁없이 천도했다가 청나라에 쉽게 점령당해 망해버린, 전통적인 북방왕조의 
수도입니다. 

청나라 입장에서는 북경은 원래 금나라 수도였던 자신의 수도를 되찾았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만주제국 입장에서는 북경을 포함한 북중국일대는 원래 
자신들의 영역인데 중국이 잠시 빼앗았던 것을 되찾은 것뿐이었습니다.

역사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청나라는 중국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어와 영어만큼 다른 만주어와 중국어를 비교해봐도 청나라는 중국일 수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의 상황은 마치, 징기스칸의 
몽골제국이 모두다 중국이었다는 것이 사실인양, 청나라가 중국이라는 왜곡된 
인식이 확산되어 있습니다. 

중국이 아무리 우겨도 설마 고구려가 중국사가 되기까지야 하겠냐는 생각이 
드는 분이 있습니까? 그럼 청나라가 중국사가 되어버린 지금의 상황을 
살펴보십시오. 청나라를 중국으로 만들어버린 중국의 힘을 보면 고구려 정도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청나라는 고구려 후예의 나라이니 중국이 
얼마나 고구려를 자기역사로 만들고 싶어하는지 그 욕망은 이해가 가고도 
남습니다. 

청나라와 고구려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같은 땅의 같은 사람들의 역사이기 
때문에 그 운명도 미래도 함께하게 될 겁니다. 금청사는 중국사가 아니라 
한국사에 넣어야 한다는 말이 그냥 나온 말이 아닙니다. 서길수 교수가 
“금청사가 중국사라고 인정하면 고구려도 중국사라는 것을 인정하라”고 했던 
그 말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해보십시오. 그 둘은 애초부터 나눠가질 수 있는 
역사가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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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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