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snuiwa (큰바우얼굴() 날 짜 (Date): 1996년05월12일(일) 12시36분35초 KDT 제 목(Title): 우리 역사와의 대화를 읽고..(1) {{ 韓國史學槪論 }} {{ 우리 역사와의 대화를 읽고... 歷史란 무엇인가? 또한 올바른 歷史觀은 무엇이고, 우리의 過去와 는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여기에 具體的으로 어떤 예가 있고, 있으 며, 그리고 現代史에 있어서 아직도 정립되지 아니한 일은 무엇이 있는가? 이 모든 疑問들은 중.고등학교 이후에 계속 가지고 있던 우리의 과거사에 대한 의문점들이었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와서 歷 史資料에 대한 좀더 많은 接近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歷史를 어떻게 볼것인가에 대한 認識이 이루어지기 전에 혼란이 먼저 왔고, 또 그 것은 加重이 되었다. 이 책을 볼 때는 그 말이 맞는 것 같고, 다른 사람의 의견 들을 때는 그 의견이 맞는 것같아서 어떨 때는 진실이 무엇인가에 대한 무한한 의문과 역사라기보다는 지식으로서의 무가 치하다는 회의에 빠지기도 했다. 마르크스-레닌思想이란 것도 배우 고, 그와 함께 唯物史觀도 배웠다. 그리고 다른 많은 史實들과 歪曲 된 面에 대한 지식도 습득했다. 분명 過去보다는 더많은 지식들을 접할 수 있었지만, 혼동은 계속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점차로 내 자신이 간단한 데에서 錯誤를 일키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韓 永愚선생님의 冊을 읽으면서 이러한 難關들을 解決하는데 한 가지 실마리를 잡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그동안 착오를 일으켰던 점 은 歷史(敍述)에 있어서 過去事는 단순한 사실의 서술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史學者자에 대한 解釋이 뒤따르는 것이며, 이 解釋은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간단한 사항에 대해서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했다는 것은 나로서 매우 부끄러운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歷史를 史實과 그 解釋으로 나누어 보면서 또다른 문제가 提起되었다. 사실과 해석 중에 어디를 더 强調해야 되는지하는 문제 --수업 중에 이와 관련해 선생님은 과거와 현재 중에 어디에 더 중 점을 두어야할 것인가라는 문제제기와 그 평을 하셨다--이다. 解釋- -수업 중의 설명에서는 現在--을 우선으로 하는 이데올로기 歷史學 은 자신만의 고유한 체계로서 一般的인 原則을 발견하려 한다. 이는 煽動的인 면이 많으면서도 좋게는 目的을 위한 團結을 이루는데 효 과적이면서 그 자신이 대변하는 계층의 번영에 이바지 하기도 하고, 또 나쁘게는 자신의 立地만을 강조해서 政治的으로 이용되거나 國 粹主義的인 면으로 나가서 史實로서의 歷史自體를 무시하고 또 歪 曲하기도 한다. 물론 사실만을 강조한다는 것이 꼭 좋다는 뜻 아니 다. 19세게 초의 역사학자 랑케(1795∼1886)는 과거 사실을 "있는 그대로(wie es eigentlich gewesen)" 볼 것과 또 '역사를 위한 역사' 를 주장하면서 철학으로부터 역사를 독립시켰지만, 그의 歸納的.經 驗論的인 '實證 史學'은 歷史의 自己傍觀을 合理化했고 時代의 要請 에 불응하면서 다시 歷史로 하여금 哲學的인 解釋을 다시 필요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歷史學 發展의 循環 속에서 결국 각 나라마다 자기 사회 가 안고 있는 특수한 여건과 민족적 전통에 부흥할 것을 촉구하며 독자적인 발전으로 나갈 것을 자신의 방향으로 새로이 잡게된다. 그 리고 지금은 歷史란 무엇인가에 대한 正答이란 있을 수 없고, 어디 까지나 그 時代의 형편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라는 결론이 내려지게 된다. 물론 내자신의 생각도 이러한 생각과 다르지 않다. 단지, 이와 유사한 暫定的인 결론을 내려본다면, '歷史는 現在와 連結이 되는 過去에 대한 天秤과 같은 仲裁者의 評價'라고 말하고 싶다. 이 말은 역사란 시대에 따라 부각되는 측면들에 대해 계속 副應하면서 동시 에 그 균형을 잃지 않도록하여 항상 그 반대 방면에 대한 연구와 관심에도 동시에 가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過去 中世史學으로서의 儒敎 史學과 우리의 역사 흐름을 살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周知하는 바와 갈이 儒敎的인 歷 史 敍述은 現實的.合理的인 面을 基盤으로 하고 있다. 유교 서술 에서의 共通點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첫째, 史 學을 經學의 應用으로 道德主義的 政治 理念과 倫理觀을 바탕으로 했다는 점, 둘째, 文獻的인 證據가 없으면 믿지 않는 '無徵不信'의 태도와 文獻 資料라도 무조건 믿지 않고 合理的인 事件만을 기술하 고 古代的인 神秘主義는 削除하는 '筆削主義', 셋째, 史實에 대한 敍 述과 그 史實에 대한 評價를 區分하여 그 평가는 따로 論贊이라는 형식으로 따로 적음으로써 歷史의 客觀性과 歷史 敍述者의 主觀性 을 形式上 구분하며 이를 통해 역사에 대한 校訓을 얻었다는 점이 다. 여기서 우리는 이러한 중세 사학은 現時代에 뒤떨어졌다고 생각 할 수 있다. 하지만 史實의 考證만을, 혹은 民族主義나 그 밖의 이 데올로기만을 추구하거나하여, 歪曲된 사실에 대한 수정은 손대지 못한 채 사실과 그 평가에 대한 혼란에 빠져있는 현 상황에서 본다 면, 이러한 과거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과거 전통과의 연결 속에 다 시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提供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W-A-N-T-E-D **** May God be always with me............. _ |\ |\ /| _ 이제 전설이 실현될 시간이다......... | | /| | | | 큰인물, 큰사랑을 위하여......... (^.^) (@_*) (^_~) 큰바우얼굴.co. & snuiwa.co. >@< >~< -o- Since 197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