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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psuljw (파파스머프)
날 짜 (Date): 2006년 9월 10일 일요일 오전 05시 43분 45초
제 목(Title): 한단고기 번역본 2



                             북부여기

                        북부여기 상

  시조 단군 해모수 재위 45년
  임술 워년 단제께서는 자태가 용맹하게 빛나시니, 신과 같은 눈빛은 사람을 
꿰뚫어 그를 바라보면 과연 천왕랑이라 할 만하였다. 나이 23세에 하늘에서 
내려 오시니, 이는 47세 단군 고열가 57년으로 임술 4월 8일이라. 웅심산에 
의지하여 궁실을 난변에 쌓았다. 까마귀 깃털로 만든 모자를 쓰시고 용광의 
칼을 차시며 오룡의 수레를 타셨다. 따르는 종자 500인과 함께 아침에는 정사를 
듣고 저녁엔 하늘로 오르시더니 이에 이르러 즉위하셨다.
  계해 2년 이 해 3월 16일 하늘에 제사하고 연호의 법을 제정하더니 오가의 
병력을 나누어 배치하여 밭 갈아 자급자족함으러써 뜻밖의 일에 대비하도록 
하였다.

  기사 8년 단제께서 무리를 이끌고 가서 옛 도읍의 오가들을 회유하시니 
마침내 공화의 정치를 철폐하게 되었다. 이에 만백성들이 추대하여 단군이 
되었다. 겨울 10월 공양태모의 법을 세워 사람을 가르침에는 반드시 태교부터 
실시하도록 하였다.
  임신 11년 북막의 추장 산지객륭이 영주를 습격하여 순사 목원등을 죽이고 
크게 약탈질하고 돌아갔다.
  경진 19년 기비가 죽으니 아들 기준을 아비의 뒤를 이어 번조선의 왕으로 
봉하였다. 관리를 보내 병사를 감독하고 연나라를 대비하는 일에 더욱 힘쓰게 
하였다. 연나라는 장수 진개를 파견하여 우리의 서쪽 변두리 땅을 침략하더니 
만번한에 이르러 국경으로 삼게 되었다.
  신사 20년 명을 내리사 백악산 아사달에서 하늘에 제사지내도록 하시고 7월 
새로운 궁궐 336간을 지어 이름하여 천안궁이라 하다.

  계미 22년 창해역사 여홍성이 한나라 사람 장량과 함께 진나라 왕정을 박랑사 
가운데서 저격하였으나 빗나가 부차를 박살내다.
  임신 31년 진승이 군대를 일으키니 진나라 사람들이 크게 어지러웠다. 이에 
연나라, 제나라, 조나라의 백성들이 도망해서 번조선에 귀순하는 자가 수만 
명이나 되었다. 이들을 상하의 운장에 갈라 살게 하고 장군을 파견시켜 감도케 
하였다.
  기해 38년 연나라의 노관이 다시금 요동의 옛성터를 수리하고 동쪽은 
패수로써 경계선을 삼으니 패수는 곧 오늘의 난하다.
  병오 45년 연나라의 노관이 한나라를 배반하고 흉노로 망명하니, 그의 무리인 
위만은 우리에게 망명을 요구했으나 단제께서는 이를 허락치 않으셨다. 
단제께서는 병으로 인해 스스로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는데, 번조선 왕 
기준이 크게 실수하여 마침내 위만을 박사로 모시고 상,하 운장을 떼어서 
위만에게 봉해주었다. 이 해 겨울 단제께선 붕어하시고 웅심산 동쪽 기숡에 
장사지내니 태자인 모수리가 즉위하였다.

  2세 단군 모수리 재위 35년
  정미 원년 번조선 왕은 오랫동안 수유에 있으면서 항상 많은 복을 심어 
백성들이 매우 풍부하였다. 뒤에 떠돌이 도적떼들에게 패하여 망한 뒤 바다로 
들어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오가의 무리들은 대장군 탁을 받들어 모두 함께 
산을 넘어 월지에 이르러 나라를 세웠다. 월지는 탁의 태어난 고향이니 이를 
가리켜 중마한이라 한다. 이에 이르러 변,진한의 두 한도 역시 각각 자기들의 
받았던 땅 백리를 가지고 수도도 정하고 나름대로 나라 이름을 정했는데 모두 
마한의 다스림을 따르며 세세토록 배반하는 일이 없었다.
  무신 2년 단제께서 상장 연타발을 파견하여 평양에 성책을 설치하고 도적떼와 
위만의 무리에 대비케 했다. 이에 위만도 역시 싫증을 느꼈던지 다시는 침범치 
않았다.
  기유 3년 해성을 평양도에 속하게 하고는 황제의 동생 고진을 시켜 이를 
수비케 하니, 중부여 일대가 모두 복종하매 그들에게 양곡을 풀어 주어 
구제하였다. 겨울 10월 경향분수의 법을 세웠으니 서울도성은 곧 천왕이 직접 
수비를 총괄하며 지방은 네 갈래로 나누어 군대를 주둔하도록 하니 마치 
윷놀이에서 용도의 싸움을 보고 그 변화를 아는 것과 같았다.
  신미 25년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고해사가 즉위하다.

  3세 단군 고해사 재위 49년
  임신 원년 정월 낙랑왕 최숭이 곡식 300섬을 해성에 바쳤다. 이보다 앞서 
최숭은 낙랑으로부터 진귀한 보물을 산처럼 가득 싣고 바다를 건너 마한의 서울 
왕검섬에 이르니, 이때가 단군 해모수 병오년의 겨울이었다.
  계축 42년 단제께서 몸소 보병과 기병 만명을 이끌고 위만의 도둑떼를 
남여성에서 쳐부수고 관리를 두었다.
  경신 49년 일군국이 사신을 보내 방물을 헌상하였다. 이해 9월 단제 
붕어하시고 태자 고우루가 즉위했다.

  4세 단군 고우루 (혹은 해우루) 재위 34년
  신유 원년 장수를 보내 우거를 토벌하였으나 이로움은 없었다. 고진을 
발탁하여 서압록을 수비하도록 하니 병력을 늘리고 많은 성책을 설치하여 능히 
우거를 대비하는 데 공이 있었으므로 승진시켜 고구려후로 삼았다.
  계해 3년 우거의 도적들이 대거 침략하니 우리의 군대가 크게 패하여 해성 
이북 50리의 땅이 모조리 우거의 땅이 되었다.
  갑자 4년 단제께서 장군을 보내 성을 공격하였으나 석달 걸려도 이기지 
못하였다.
  병인 6년 단제가 몸소 정예군 5,000을 이끌고 습격하여 해성을 격파하고 
추격하여 살수에 이르르니 구려하의 동쪽은 모두가 항복해 왔다.
  정묘 7년 목책을 좌원에 설치하고 군대를 남여에 두어 이로써 뜻하지 않은 
사태에 대비케 하였다.

  계유 13년 한의 유철이 평나를 노략직하여 우거를 멸망시키더니 4군을 두고자 
하여 사방으로 병력을 침략시켰다. 이에 고두막한이 의병을 일으켜 가는 곳마다 
한나라 침략군을 연파하였다. 이에 그 지방의 백성들 모두가 사방에서 일어나 
호응함으로써 싸우는 군사를 도와서 크게 떨쳐 보답하였다.
  갑오 34년 10월 동명왕은 고두막한에게 사람을 시켜서 고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인데 장차 이곳에 도읍을 정하고자 하니, 왕은 이 땅에서 옮겨가시오]라고 
하니 단제는 매우 곤란해졌다. 마침내 단제는 걱정으로 병을 얻어 붕어하였다. 
동생인 해부루가 이에 즉위하였는데 동명왕은 여전히 군대를 앞세워 이를 
위협하기를 끊이지 않으매 군신이 매우 이를 어렵게 여겼다. 이때 국상인 
아란불이,
  [통하의 물가 가섭의 벌판에 땅이 있는데 땅은 기름지고 오곡은 썩 잘됩니다. 
서울을 둘만한 곳입니다]
라고 하며 마침내 왕에게 권하여 도성을 옮겼다. 이를 가섭원부여라 하며 또는 
동부여라고도 한다.

                        북부여기 하
  5세 단군 고두막 (혹은 두막루) 재위 22년, 제재위 27년
  계유 원년, 이 해는 단군 고우루 13년이다. 제는 사람됨이 호탕하고 용맹하여 
군사를 잘 다루었다. 일찌기 북부여가 쇠약해지고 한나라 도둑들이 왕성해짐을 
보고 분연히 세상을 구할 뜻을 세워 졸본에서 즉위하고 스스로 동명이라 
하였는데 어떤 이들은 고열가의 후손이라고도 한다. 을해 3년 제가 스스로 
장수가 되어 격문을 전하니 이르는 곳마다 무적이었다. 열흘이 못되어 
5,000명이 모여 한나라 도둑들과 싸울 때마다 먼 곳에서 그 모습만 보고도 
무너져 흩어져 버리므로 마침내 군대를 이끌고 구려하를 건너 요동의 서안평에 
이르니 바로 옛 고리국의 땅이었다.

  갑오 22년 단군 고우루 34년에 제가 장수를 보내어 배천의 한나라 도둑을을 
쳐부수고 유민과 힘을 합하여 향하는 곳마다 한나라 도둑떼를 연파하더니 그 
수비장수까지 사로잡았으며 방비를 잘 갖추어 적에 대비했다.
  을미 23년 북부여가 성읍을 들어 항복하였는데, 여러 차례 보전하고자 
애원하므로 단제가 이를 듣고 해부루를 낮추어 제후로 삼아 분능으로 옮기게 
하고는 북을 치며 나팔을 부는 이들을 앞세우고 수만군중을 이끌고 도성에 
들어와 북부여라 칭하였다. 가을 8월에 서압록하의 상류에서 한구와 여러 차례 
싸워서 크게 이겼다.
  임인 30년 5월 5일에 고주몽이 분능해서 태어났다.
  신유 49년 제가 붕어하고 유명에 따라 졸본천에 장사지냈다. 태자 고무서 
등극하다.

  6세 단군 고무서 재위 2년
  임술 원년 제가 졸본천에서 즉위하고는 백악산에서 장로들과 함께 모여 
사례에 따라 널리 하늘에 제사할 것을 약속하니 모두가 크게 기뻐하였다.
  제는 태어나면서부터 신과 같은 덕이 있어 능히 주술로써 바람과 비를 불러 
잘 구제하므로 민심을 크게 얻어 소해모수라고 불렸다. 이 때에 한나라의 
오랑캐들이 요하의 왼쪽에서 널리 소란을 피웠으니 여러 차례 싸워서 크게 
이겼다.
  계해 2년 제가 영고탑을 순시하다가 흰 노루를 얻었다. 겨울 10월 제가 
붕어하고 고주몽이 유언에 따라 대통을 이었다.
  이보다 앞서 단제는 아들이 없었는데, 고주몽을 보고 사람이 범상치 않음을 
느끼고는 딸로서 아내를 삼게 하였었는데 이에 이르러 즉위하니 이해에 나이가 
23세였다. 이때에 부여인이 그를 죽이려 하였는데 오이, 마라, 협보 등 세 
사람과는 덕으로써 사귄 친구였던지라 어머니의 말씀을 따라서 함께 길을 떠나 
분릉수에 이르렀다. 그러나 건너려고 하여도 다리가 없으므로 뒤쫓아오는 
군사들에게 몰릴까 두려워하여 물에 고하기를 [나는 천제의 아들이요, 하백의 
외손인데 오늘 도주함에 있어 추격병은 다가오고 있는데 어찌하란 
말인가?]하니, 이때에 물고기 자라 따위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므로 주몽이 
건너가자 물고기와 자라는 다시 흩어졌다.

                        가섭원 부여기

  시조 해부루 재위 39년
  을미 원년 왕은 북부여때문에 제약을 받아 가섭원 혹은 분능이라고도 하는 
곳으로 옮겨서 살았다. 오곡이 다 잘 되었는데 특히 보리가 많았고 또 
범,표범,곰,이리 따위가 많아서 사냥하기 편했다.
  정유 3년 국상 아란불에게 명하여 널리 베풀어 주변의 유민들을 불러 
모으도록 하였다. 이렇게 하여 잘 먹여주고 따뜻하게 살 곳을 주며 또 밭을 
주어 경작하게 하니 몇해 안되어 나라는 풍부해지고 백성들은 풍족해졌다. 때에 
필요할 때마다 비가 내려 분능을 기름지게 하는지라, 백성들이 왕에게 정춘의 
노래를 지어 불렀다.
  임인 8년 앞서 하백녀 유화부인이 나들이를 나갔는데 부여의 황손 고모수가 
유혹하더니, 강제로 압록강변의 어떤 집에서 자기 멋대로 하여 버리고는 
고모수는 승천하여 돌아오지 않았다. 유화의 부모는 유화가 무모하게 고모수를 
따라갔음을 책망하여 마침내 구석 방에 딸을 가두어 버렸다. 고모수는 본명이 
불리지이며 혹은 고진의 손자라고도 한다. 왕께서는 유화를 이상히 여겨 수레를 
같이 타고 궁으로 돌아와 깊숙한 곳에 가두어 버렸다. 그해 5월 5일 유화부인은 
큰 알 하나를 낳으니 한 사내 아이가 그 껍질을 깨고 나왔다. 이름을 
고주몽이라 불렀는데 생김새가 뛰어났으며 나이 7세에 저 혼자 활과 화살을 
만들어 쏘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에선 활 잘 쏘는 것을 일컬어 주몽이라 
하였으므로 이로써 이름으로 불렀다.

  갑진 10년 왕은 늙도록 아들이 없어 어느날 산천에 제사지내고 아들 있기를 
빌었더니 타고 있던 말이 곤연에 이르르자 큰 돌을 마주 보고 서서 눈물을 
흘렸다. 왕은 이를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그 큰 돌을 굴리게 하였더니 
어린애가 있었는데 금색의 개구리 모양이더라. 왕은 몹시 기뻐하며 [이 
아이야말로 하늘이 나에게 내리신 아기로다]라고 하시며 곧 거두어 기르니, 
이름을 금와라 하고 그가 장성하매 태자로 책봉하였다.
  임술 28년 나라 백성들이 고주몽을 가리켜 나라에 이로움이 없는 인물이라 
하여 그를 죽이려고 했다. 고주몽은 어머니 유화부인의 명을 받들어 동남쪽으로 
엄리대수를 건너 졸본천에 이르러, 이듬해 새나라를 세우니 이것이 고구려의 
시조가 된다.

  2세 금와 재위 41년
  갑술 원년 왕이 사신을 보내 고구려에 특산물을 바쳤다.
  정유 24년 유화 부인이 돌아가셨다. 고구려는 호위병 수만으로 졸본으로 
모셔와 장사지냈는데 황태후의 예로써 억지로 산 같은 능을 만들고는 곁에 
묘사를 짓게 하였다.
  갑인 41년 왕이 돌아가시니 태자 대소가 즉위하였다.

  3세 대소 재위 28년
  을묘 워년 봄 정월에 왕은 사신을 고구려에 보내 국교를 청하고 왕자를 
인질로 삼자고 하였다. 고구려의 열제가 태자 도절로써 인질을 삼으려 하였으나 
도절이 가지않으매 왕이 그를 꾸짖었다. 겨울 10월 병력 5만을 이끌고 가서 
졸본성을 침략하였으나 큰 눈이 와서 많은 동사자만 내고는 퇴각하였다.
  계유 19년 왕께서는 고구려를 침략하였는데 학반령 밑에 이르르자 복병을 
만나 크게 패하였다.
  임오 28년 2월 고구려가 나라의 힘을 다 모아서 침범해오니 왕은 몸소 무리를 
이끌고 출전하였는데, 진흙탕을 만나 왕의 말이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에 
고구려에 대장군 괴유가 바로 앞에 있다가 살해하였다. 그래도 부여군은 굴하지 
않고 여러 겹으로 포위하였는데 큰 안개가 7일 동안이나 계속되니 고구려 
열제는 몰래 병사를 이끌고 밤에 탈출하여 사잇길을 따라 도망쳐 달아나 
버렸다. 여름 4월 왕의 동생은 따르는 무리 수백인을 데리고 길을 떠났는데 
압록곡에 이르러, 해두왕이 사냥 나온 것을 보고는 그를 죽이고 그 백성들을 
취하였고, 그 길로 갈사수의 변두리를 차지하고는 나라를 세워 왕이라 칭하니 
이를 갈사라 한다. 갈사는 태조 무열제의 융무 16년 8월에 이르렀을 때, 
도두왕이 고구려가 날로 강해짐을 보고 마침내  나라를 들어 항복하니, 대저 
3세 47년 만에 나라가 망했다. 고구려는 도두를 우대라고 부르도록 하고 저택을 
하사하더니, 혼춘을 식읍으로 삼게 하여 동부여후에 봉하였다.

  가을 7월 왕의 친척 동생이 여러 사람들에게, [선왕께서는 시해 당하시고 
나라는 망하여 백성들은 의지할 곳 없다. 갈사는 두루 안락하기는 하지만 
스스로 나라를 이루기 어렵고, 나 또한 재능과 지혜가 부족하여 나라를 새롭게 
일으킬 수가 없으니 차라리 항복함으로써 살기를 도모하리라]하고 옛 도읍의 
백성 만여 명을 데리고 고구려에 투항하니, 고구려는 그를 봉하여 왕으로 삼고 
연나부에 안치하였다. 그의 등에 띠와 같은 무늬가 있었던 까닭에 낙씨의 성을 
하사하였는데 뒤에 차츰 자립하여 개원 서북으로부터 옮겨가 백랑곡에 이르니 
바로 연나라의 땅에 가까운 곳이었다. 문자열제의 명치 갑술에 이르러 나라를 
들어 고구려의 연나부에 편입하니, 낙씨는 마침내 제사조차 끊겼다.


                             태백일사

                        삼신오제본기 제 1
  <표훈천사>에서 말한다.
  [대시에 위, 아래, 사방은 일지기 아직 암흑으로 덮여 보이지 않더니 옛것은 
가고 지금은 오니 오직 한 빛이 있어 밝더라. 상계로부터 또 삼신이 계셨으니 
곧 한 분의 상제시라. 주체는 곧 일신이니 각각 신이 따로 있음이 아니나, 
쓰임은 곧 삼신이시라. 삼신은 만물을 끌어 내시고 전 세계를 통치하실 가늠할 
수 없는 크나큰 지능을 가지셨더라. 그 형체를 나타내지 않으시고 최상의 
꼭대기의 하늘에 앉아 계시니 계신 곳은 천만억토요 항상 크게 광명을 발하시고 
크게 신묘함을 나타내시며 크게 길한 상서를 내리시더라. 숨을 불어 만물을 
만드시고 열을 뿜어내어 만물의 종자를 키우시며 신묘하게 행하시어 세상일을 
다스리시니라. 아직 기있기 전에 먼저 물을 낳게 하여 태수로 하여금 북방에 
있으면서 사명으로서 검은색을 관장케 하시고, 아직 기있기 전에 먼저 불을 
낳게 하여 태화로 하여금 남방에 있으면서 사명으로서 붉은색을 관장케 하시고, 
아직 질도 있기 전에 먼저 나무를 낳으시더니 태목으로 하여금 동방에 있으면서 
사명으로서 푸른 색을 관장케 하시고, 아직 형있기에 앞서 먼저 금을 낳아 
태름으로 하여금 서방에 있으면서 흰색을 관장케 하시고, 아직 체도 생기기 
전에 먼저 흙을 낳더니 태토로 하여금 중앙에 있으면서 노란색을 관장케 
하니라. 이에 하늘 아래 두루 있으면서 오제의 사명을 주관하는 바 이를 
천하대장군이라 한다. 지하에 두루 있으면서 오령의 이룸을 주관하는 바 이를 
지하여 장군이라 한다.

  생각컨대 저 삼신을 천일이라 하고 지일이라 하고 태일이라 한다. 천일은 
조화를 주관하고 지일은 교화를 주관하며 태일은 치화를 주관하느니라.
  생각컨대 오제는 흑제, 적제, 청제, 백제, 황제를 말하나니, 흑제는 생명이 
다함을 주관하고, 적제는 빛과 열을 주관하고, 청제는 낳아 기름을 주관하고, 
백제는 성숙을 주관하며, 황제는 조화를 주관한다. 또 생각컨대 오령은 태수, 
태화, 태목, 태금, 태토라 하나니, 태수는 크고 윤택하게 하며, 태화는 녹이고 
익히며, 태목은 지어 이루고, 태금은 재량하여 자르며, 태토는 씨뿌림을 
주관한다.
  이에 삼신은 곧 오제를 감독하고 명령하사 각각 넓히고 나타내게 하고, 
오령으로 하여금 기르고 이루게 하도다. 해가 뜨면 낮이라 하고 달이 뜨면 
밤이라 하며, 별의 움직임을 측량하여 춥고 더운 것과 연대를 기록케 하니라. 
(고기잡이에는 배 띄워 바다를 지키고, 농사에는 수레를 내어 땅을 지키니라.)
  크도다. 삼신일체의 만물의 원리됨이여! 만물원리의 덕이여, 지혜여, 힘이 
됨이여! 높고도 넓어서 세상에 가득하며, 깊고 묘하여 불가사의하게 
운행함이여!
  그런데 사물은 모두 사물의 이치를 가졌으나 이치가 아직 사물에 다하지 
못하였고, 사물은 모두 사물의 도리를 가졌으나 도리가 아직 사물에 다하지 
못하였고, 사물은 모두 사물의 기능을 가졌으나 기능이 아직 사물에 다하지 
못하였고, 사물은 모두 무궁함이 있으나 무궁함이 아직 사물에 다하지 
못하였나니, 세상에 있으면 산다 하고 하늘로 돌아가면 죽었다 하는데, 죽음은 
영원한 생명의 근원이라. 그렇기 때문에 죽음이 있으면 반드시 삶이 있고, 삶이 
있으면 반드시 이름이 있고, 이름이 있으면 반드시 말이 있고, 말이 있으면 
반드시 행이 있느니라. 이를 산 나무에 비유하면 뿌리가 있으면 반드시 싹이 
있고, 싹이 있으면 반드시 꽃이 있고, 꽃이 있으면 반드시 열매가 있으며, 열매 
있으면 반드시 쓰임이 있나니라. 이를 또 태양의 움직임에 비유컨대, 어둠이 
있으면 반드시 밝음이 있고, 밝음이 있으면 반드시 살핌이 있고, 살핌이 있으면 
반드시 행함이 있고, 행함이 있으면 반드시 이룸이 있나니 곧 대저 천하 일체의 
물건은 개벽을 좇음으로써 존재하고, 진화를 담는 일 있음으로써 존재하며, 
순환에 닮음 있음으로써 존재하니라.
  유원의 기와 지묘의 신은 저절로 하나를 잡아 셋을 포함하여 가득히 빛났으니 
있을 곳에 있고 감응하여 대응하니라. 오되 시작된 곳이 없고 가되 끝나는 곳이 
없으니 하나에 통하여 만 가지를 이루지 못함이 없음이라.

  <대변경>에서 말한다.
  [생각컨대 천일의 신께서는 아득하게 위에 계히나니 곧 삼대와 삼원과 삼일을 
가지고 이를 영부로 하여 크게 내리시사 만만세의 만만백성에 내리시니 일체는 
애오라지 삼신께서 만드신 바니라. 심, 기, 신 반드시 필수적으로 서로 
의지해야 할 일이로대 아직은 반드시 영원토록 서로 지키지 못하고 영, 지, 의 
삼식은 곧 영, 각, 생의 삼혼이 되고, 또 그 소질에 따라 능히 형, 년, 혼을 
넘치게 하느니라. 일찌기 경계에 따라서 느끼고, 숨쉬고, 접촉함이 있으니, 
참됨과 망령됨은 서로 삼도를 끌어들여 갈라지고 말았도다. 때문에 이르기를 
참있음으로써 살고 망있음으로써 멸하니라고 했느니라. 성, 명, 정을 삼관이라 
하나니 관을 수신의 요회라 하느니라. 성은 명을 떠나지 않고 명은 성을 떠나지 
않나니 정은 그 가운데 있느니라.

  심, 기, 신을 삼방이라 하고 방을 성화의 근원이라 한다. 기는 심을 떠나지 
않으며 심은 기를 떠나지 않나니, 신은 그 가운데 있느니라.
  감, 식, 촉을 삼문이라 한다. 문을 행도의 상법이라 한다. 감은 식을 떠나지 
않으며, 식은 감을 떠나지 않으며, 촉은 그 가운데 있느니라.
  성을 진리의 원관이라 하고, 심은 진신의 현방으로 하고, 감을 진응의 
묘문으로 한다. 이를 탐구하고 성에 의해 진기를 크게 발하나니, 신을 분명히 
하고 심을 구한다면 진신은 크게 나타나 화응하여 서로 감응하고 진업을 크게 
이룰 것이니라.
  조짐에는 때가 있고 만남에는 장소가 있으나 사람은 빔과 참이 사이에 
있느니라. 만물은 이에 있는 바, 동체인 것은 오직 일기뿐으로, 다만 
삼신뿐이니라. 추궁치 말아야 할 기능이 있나니, 혹은 선 불선이 있어 이를 
영겁에 보답하고 혹은 선, 불선이 있어 이를 자연에 보답하고, 혹은 선, 불선이 
있어 이를 자손에 보답하느니라.

  경에서 말한다.
  [사람과 물건은 같은 삼진을 받았으나, 다만 무리는 땅에 혼미하여 삼망이 
뿌리를 내리고, 진과 망이 어울려 삼도를 이룬다. 어버이의 도는 하늘을 모범 
삼나니 참됨으로써 하나같이 거짓 없고, 스승의 도는 땅을 모범으로 하나니 
부지런함으로써 하나같이 게으르지 않으며, 다스림의 도는 사람을 모범으로 
삼나니 협력함으로써 하나같이 어김이 없도다.]
  <고려팔관기>에 삼신설이 있나니, 가로대 [상계의 주신은 그 호를 천일이라 
하나니, 조화를 주관하시며 절대지고의 권능을 갖고 계신다. 무형으로써 형으로 
삼으며,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성을 통하게 하시느니라. 이를 청진대의 체라고 
한다. 하계의 주신은 그 호를 지일이라 한다. 교화를 주관하며 지선유일의 
법력이 있어 하는 바 없이 만들고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명을 알게 하니, 이를 
선성대의 체라고 하니라. 중계의 주신은 그 호를 태일이라 한다. 치화를 
주관하며 최고무상의 덕량을 가지고 말 없으면서 교화하고 만물로 하여금 각각 
그 정을 보전하게 하니, 이를 미능대의 체라 하느니라. 한인씨는 한 번 
변화하여 칠이 되며, 두 번 변하여 육이 되는 운을 받아 애오라지 어버이의 
도를 사용하여 천하에 쏟으매, 천하가 이에 교화된다. 신시씨는 천일의 생수와 
지이의 생화의 자리를 계승하여 애오라지 스승의 도를 사용하여 천하를 
인솔하매, 천하가 이에서 배운다. 왕검씨는 지름이 둘레를 한 바퀴 도는 길이인 
3.14의 기를 받아 애오라지 왕의 도를 써서 천하를 다스리니, 천하가 이에 
따른다고 한다.

  <오제설>에서 말한다.
  [북방의 사명을 태수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흑이니 그 호를 현묘진원이라 
한다. 그를 보좌함을 한인이라 하고 소류의 하늘에 계시며, 이를 대길상이라 
한다. 동방의 사명을 태목이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청이니 그 호를 
동인호생이라 한다. 그를 보좌함을 대웅이라 하며 태평의 하늘에 있으니 이를 
대광명이라 한다. 남방의 사명을 태화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적이니 그의 호를 
성광보명이라 한다. 그를 보좌함을 포희라 하고 원정의 하늘에 있으며 이를 
대안정이라 한다. 서방의 사명을 태금이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백이니 그의 
호를 청정견허라 한다. 그를 보좌함은 치우라 하고 구화의 하늘에 있으며 이를 
대희리라 한다. 중방의 사명은 태토라 한다. 그의 다스림은 황이니 그의 호를 
중상유구라 한다. 그를 보좌함은 왕검이라 하며 안덕의 하늘에 있으니, 이를 
대예락이라 하느니라.]
  <오제>의 주에 말한다.
  [오방에 각기 사명이 있으니 하늘에서는 제라 하고 땅에서는 대장군이라 
한다. 오방을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천하대장군이라 하고 지하를 감독하고 
살피는 자를 지하여장군이라 한다. 용왕현구는 선악을 주관하며, 주작적표는 
목숨을 주관하며, 청룡령산은 곡식을 주관하며, 백호병신은 형벌을 주관하며, 
황웅여신은 병을 주관한다.]

  삼신산을 천하의 뿌리산이라 한다. 삼신으로 이름 삼음은 대저 상세 이래로 
삼신이 이곳에 내려와 노닐으시고 삼계를 널리 감화하심을 믿기 때문이라. 
360만의 큰 둘레의 하늘은 그 체가 불생불멸이시며 그 용이 무궁무근이나, 그의 
법식과 이치는 때가 있으며 장소가 있으니 신의 지극히 자상하고 지극히 
현명하여 여의자재 하심은 끝내 이를 알 수가 없다. 그를 맞이함에는 흡사 
눈앞에 보이는 듯이 하고, 그 바치는 일은 문득 들리는 바 있는 것 같이 하고, 
그 찬탄함에는 기꺼이 하사받음이 있는 듯이 하고, 그 서약함에는 숙연하여 
얻는 것이 있는 듯이 하며, 물건을 바칠 때에도 마음을 다하여 정성을 
바침이니, 이렇게 만세인민이 인식추앙하여 모두가 다 기쁘게 믿는 것이다.

  인류의 조상을 나반이라 한다. 처음 아만과 서로 만난 곳을 아이사타라 한다. 
또 사타려아라고도 한다. 어느날 꿈에 신의 계시를 받아 스스로 혼례를 
이루었으니, 정안수를 떠놓고 하늘에 알린후 돌아가며 술을 마셨는데, 산남의 
주작이 날아와서 즐기고, 수북의 신구가 상서를 나타내고, 곡서엔 백호가 
산모퉁이를 지키고, 계동엔 창룡이 하늘로 승천하고, 가운데 황웅이 있었다. 
천해, 금악, 삼위, 태백은 본디 구한에 속한 것이며 9황의 64민은 모두 그 
후예이다. 그러나 일산일수가 각각 한나라가 되매, 사람들도 역시 서로 따라가 
경계를  나누니 경계에 따라서 나라를 달리하게 되었다. 나라를 달리한 지 
오래되니 창세의 조서의 뒤는 찾아 볼 수 없게 되었다. 장구한 세월 뒤 제 
한인이란 분이 나타나셔서 여러 사람들의 사랑으로 추대되어 안파견이라고도 
하고 거발한이라고도 하였다. 대저 안파견이라 함은 바로 하늘을 계승하여 
아버지가 되었다는 뜻의 이름이고 거발한이라함은 천, 지, 인을 하나로 
정한다는 뜻의 이름이니라. 이로부터 한인의 형제 아홉 사람은 나라를 나누어 
다스리셨으니, 이를 9황 64민이라 한다.
  그윽히 생각해 보건대 삼신은 하늘에 태어나시사 물건을 만드시고, 한인은 
사람을 가르치어 의를 세우시니 이로부터 자손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현묘한 
가운데 도를 얻으시고 광명한 가운데 세상을 다스리시니라. 이미 천, 지, 인의 
삼극은 있었고, 대원일은 이것이 만물의 원리가 되었으니 곧 천하 구한의 
예약이 어찌 삼신고제의 풍속에 없었을 손가? 전에서 말한다.
  [삼신의 후를 일러 한국이라 하니 한국은 천제께서 계시는 곳의 나라니라.]
또 가로대
  [삼신은 한국의 선대에 있었고 나반이 죽어 삼신이 되셨으니 그 삼신이라 
함은 영구 생명의 근본이라.]
고 하였으니, 그래서 또 말한다.
  [사람과 물건은 같이 함께 삼신에게서 나왔으니, 삼신으로써 한 근원의 
조상으로 삼느니라.]
  한인도 역시 삼신을 대신하사 한국의 천제가 되었다. 뒤에 나반을 대선의 
천이라 하고, 한인을 대중의 천이라 하고, 한인, 한웅, 치우를 삼황이라 하며, 
한웅ㅇ르 대웅의 천이라 하고 치우를 지위의 천이라 한다. 곧 <황제중경>의 
비롯된 유래이다. 삼광오기가 모두 시청 감각에 달려 있었지만 세월이 흘러 
불을 피우고 말을 하게 되고 글자를 만들었으니, 뛰어나고 열등하여 이기고 
지는 다툼이 여기서 비롯되었다. 웅족 가운데 단국이 있어 가장 강성했다. 왕검 
역시 하늘에서 내려와서 불함산에 사시니, 나라 안의 모든 사람들이 함께 
받들어, 단군으로 모시어 이를 단군왕검이라 한다. 태어나면서부터 지극히 
신묘하고 성스러워서 구한의 삼한관경을 모두 통합하였다. 신시의 옛 규칙을 
회복하니 천하는 크게 다스려져서 온 세상이 그를 천신과 같다고 보았다. 
이때부터 숭보의 예는 영세토록 바뀌지 않게 되었다.

  대저 구한의 족속은 나뉘어 5종이 되고 피부의 색깔과 모양을 가지고 구별을 
짓게 되었다. 그 풍속은 모두다 실제에 임하여 이치를 찾고 일을 계획하여 
그것이 옮음을 구함이 같았다. 부여는 풍속에 가뭄과 병란 및 질병은 국왕에게 
책임이 있다고 하고 충성됨과 사악함과 살고 죽음은 필부에게도 같이 돌아오는 
법이라 하니, 이것이야말로 그 한 증거가 된다.
  색족은 어떤 것일까? 황부인은 피부가 좀 누렇고 코는 튀어 나오지 않았으며 
광대뼈가 튀어 나오고 머리털은 검고 눈은 펑퍼짐하며 청혹색이요, 백부인의 
피부는 밝고 뺨은 높고 코도 크며 머리털은 회색이며, 적부인은 피부가 녹 쓴 
구리색이요, 코는 낮아 뭉툭하며 이마는 넓고 뒤로 기울고 머리털은 곱슬머리로 
황부인과 비슷하며, 남부인은 풍족이라고도 하며 또 야자나무 색깔의 
인종이라고 한다. 그 피부는 암갈색으로 모양은 오히려 황부인과 같다.
  삼한에 옛풍속이 있는 바 모두 10월 상순에 국중대회를 열어 둥근 단을 쌓고 
하늘에 제사지낸다. 땅에 제지냄을 방구라 하고 돌아가신 아버지를 제사지냄은 
각목이라 하나니, 산에 웅상의 상을 만듦은 모두 그 유법이다. 하늘을 제지냄에 
있어 반드시 한이 몸소 제지내니 그 예법이 매우 성했음을 알 수 있다. 그날 
멀리 가까이의 모든 사람들이 그 생산한 것을 바치고는 북치고 나팔불며 온갖 
놀이를 벌이고, 여러 작은 나라들이 찾아와 특산물들을 바치니 진귀한 것들이 
언덕과 산처럼 둥그렇게 쌓인다. 대저 백성들을 위하여 기도하였으니 곧 관경을 
번식케 하는 원인이 되었으며, 소도의 제천은 곧 구려를 교화하는 근원이 
되었다. 이로부터 화를 당하여 함께 힘쓰고 이웃을 위하며, 있는 자와 없는 
자가 서로 도우니, 문명은 나라를 이루고 개화 평등하여 온 세상에 제사의 예를 
숭상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아기가 태어난 것을 축하하여 삼신이라 하고 벼 익은 것을 축하하여 업이라 
하였다. 산을 군생통력의 장소라 하고 업을 생산 작업의 신이라 한다. 때문에 
또한 업주가리라고도 한다. 집터에 발원하면 토주대감이라 하고 집에 발원하면 
성조대군이라 하니 또한 해마다 좋은 복을 이루는 신이다. 묘자리 쓸 때, 
고기잡이 나갈 때, 진을 칠 때, 길을 떠날 때, 모두 각각 제가 있으니 제는 
반드시 날짜를 골라 재를 올려야 복을 이루는 것이라.
  소도가 서면 언제나 계가 있나니 바로 충, 효, 신, 용, 인의 오사의 
길이니라. 소도의 곁에 반드시 경당을 세우고 결혼하지 않은 사내들로 하여금 
여러가지 사물을 익히고 연마하게 하였다. 대체로 글을 읽고, 활을 쏘며, 말을 
타고, 예절을 익히고, 노래를 배우며, 격투기, 검술 등의 여섯 가지 기예를 
말한다.

  모든 부락에서는 스스로 삼로를 모셨으니, 삼로는 또 삼사라고도 한다. 어진 
덕을 갖춘 자가 있고 재물을 베푸는 자, 지혜를 갖춘 자가 있으니, 누구나 
그들에게 사사함이 이와 같다. 또 육정이 있는 바 곧 현좌, 충신, 양장, 용졸, 
명사, 덕우가 그들이니라. 또 살생에 법이 있으니, 위론 국왕으로부터 밑으론 
서민에 이르기까지 반드시 스스로 때와 물건을 가려서 했다. 그리하여 살생을 
함에 있어 첮째로 함부로 죽여서는 안되나니, 옛부터 부여에 말이 있어도 타지 
않고 죽이는 것을 금하고 방생한다 함은 역시 이런 뜻이다. 그러므로 깃든 
짐승을 죽이지 않으며 알을 품은 짐승을 죽이지 않는다 함은 그 번식할 때를 
가려서 죽이지 않기 때문이라. 어린 것을 죽이지 않고, 이로운 짐승을 죽이지 
않고 살림은 그 짐승의 종류를 가림이라. 물건을 중하게 여김이 이처럼 
지극했다 할 것이니라.
  원화는 여랑을 말하고 남자를 화랑이라 하며 또 천왕랑이라고도 하니, 임금의 
명령에 의하여 까마귀 깃털이 달린 모자를 하사받는다. 모자를 쓰는 데에도 
의식이 있다. 주해에 이르기를 [때에 큰 나무를 모시어 한웅의 신상이라 하고 
이에 경배한다. 신령스런 나무는 이를 웅상이라 한다]고 하였으니, 상은 늘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 
  하백은 천하의 사람으로 나반의 후손이다. 7월 7일은 바로 나반이 강을 
건너는 날이다. 이 날 용왕에 명하여 하백ㅇ르 부르나니, 용궁에 들어가 이로 
하여금 사해의 뭇신을 주관케 하시느니라. 천하는 다른 이름으로 천해라고도 
한다. 지금 북해가 바로 그것이다.
  천하의 주에 가로대 [천도는 북극에서 일어나다. 고로 천일의 물을 낸다. 
이를 북수라 한다]라고 했다. 대저 북극은 수정자가 기거하는 곳이다.

                        
                        한국본기 제 2

  <조대기>에서 말한다.
  [옛적에 한인이 계셨나니 하늘에서 내려오시사 천산에 사시면서 천신에 
제사지내시고, 백성에겐 목숨을 정하시고, 모든 이를 두루 다 다스리시니 들에 
사시매 곤충과 짐승의 해독이 없어지고, 무리와 함께 행하시니 원한을 품거나 
반역하는 일 또한 없어졌느니라.
  친학 ㅗ멀다 하여 차별을 두지 않았고 윗사람과 아랫사람이라 하여 차별을 
두지도 않았으며, 남자와 여자의 권리를 따로 하지도 않았고, 늙은이와 
젊은이의 일을 구별했으니, 이 세상에 법규가 없었다 하지만 계통은 저절로 
성립되고 순리대로 잘 조화 되었도다. 질병을 없게 하고 원한을 풀며 어려운 
자를 도와 일으키며 약자를 구제하니, 원망하고 일부러 어긋나는 자 하나도 
없었다.
  당시의 사람들은 스스로 호를 한이라 하고 감군을 인이라 불렀다. 인이란 
임이란 말이니 널리 사람을 구제하고 세상을 이치대로 밝히는 것은 이를 반드시 
어질게 되도록 하기 위함이라. 때문에 오가의 무리가 서로 바꿔가면서 
대중에게서 뽑힘은 반드시 업을 구하기 때문이다. 사랑하고 미워하는 구별이 
있음은 각각 마음먹는 바에 따르는 법이니, 그 마음을 잘 판단하여 스스로 
구하는 바 정곡을 선택하기 때문이라. 생각컨대 구한에 사는 자들이 서로를 
위하여 모두 함께 하나로 뭉쳤던 것도 여깃 마땅히 스스로 득실을 선택하매 한 
사람도 딴 의견이 없었던 것이니, 그런 후라야 이에 따르게 됨이라. 여러 
대중도 역시 감히 갑자기 한쪽으로 편향치 않으며 오직 꾀로써 이에 
대처하느니라. 대저 무리에 대처하는 법은 무비면 유환이며 유비면 무환이니라. 
반드시 예비하고 자급할지니라. 선군은 만리를 능히 다스려 한 소리에 말없이 
행동으로 옮겨지니, 즉 여기에 이르러 만방의 백성들이 기약하지 않고서도 와서 
모이는 자 수만이더라. 무리는 저절로 환무하며 저절로 한인을 추대하여 한화가 
피어난 돌무지 위에 앉으시게 하더니, 그에게 줄지어 경배하고 환호 소리 넘쳐 
흐르니 귀의하는 자가 성시를 이루었다. 이를 인간 최초의 우두머리라고 한다.]

  <삼성밀기>에서 말한다. [파나류산 밑에 한인씨의 나라가 있나니 천해 동쪽의 
땅을 역시 파나류국이라 한다. 그 땅의 넓이 남북 5만리, 동서 2만리이니라. 
통틀어 말하면 한국이요, 갈라서 말하면 곧 비리국, 양운국, 구막한국, 
구다천국, 일군국, 우루국 (또는 필나국), 객현한국, 구모액국, 매구여국 (또는 
직국다국), 사납아국, 선비이국 (또는 시위국, 통고사국이라 함), 수밀이국 
이니 합쳐서 12국이라. 천해는 지금은 북해라 한다.]

  <밀기>의 주에서 말한다.
  [개마국은 일명 웅심국이라 하니 북개마 대령의 북쪽에 있으며 
구다국으로부터의 거리가 2백리이다. 구다국은 옛날에는 독로국이라 칭했고 
북개마 대령의 서쪽에 있는 나라니라. 월지국은 그 북쪽 500리에 있고, 
직구다구 혹은 매구여국은 옛 오난하에 있었으며, 뒤에 독로국에 패하여 마침내 
금산으로 옮겨 그곳에 살았다. 구다국은 본래 쑥과 마늘을 산출하던 곳이었다. 
쑥은 다려서 복용함으로써 냉을 치료하고 마늘은 불에 구워 먹음으로써 
재앙ㅇ르 다스린다.]

  <조대기>에서 말한다.
  [옛날에 한국이 있었는데 무리는 풍부하고 풍족하였다. 처음 한인께서 천산에 
사시면서 도를 얻으시사 몸을 다스려 병도 없고 하늘에 대신하여 교화를 일으켜 
사람으로 하여금 전쟁도 없게 하시고, 사람마다 모두 힘써 일함으로써 근면하여 
스스로 굶주림도 추위도 없게 하였다. 혁서 한인, 고시리 한인, 주우양 한인, 
석제임 한인, 구을리 한인에 전하여 지위리 한인에 이르니 혹은 단인이라 한다. 
7세를 전하여 3301년에 이르고 혹은 6만 3천 1백 82년이라고도 한다.

  [한국에 오훈이 있으며 신시엔 오사가 있나니 이른바 오훈이란 첫째, 
성실하고 믿음으로써 거짓이 없을 것, 둘째, 공경 근면함으로써 게으르지 않고, 
세째, 효도 순종하여 어김이 없고, 네째, 염치와 의리있어 음란치 않으며, 
다섯째, 겸손 화목하여 다툼이 없는 것 등이다. 이른바 오사란 우가는 농사를 
주관하고, 마가는 목숨을 주관하고, 구가는 형벌을 주관하며, 저가는 병을 
주관하며, 양가 (혹은 계가라 함)는 선악을 관장함을 말하는 것이라.]
  한국의 주에서 말한다.
  [한은 전일이며 광명이라, 천일을 삼신의 지혜와 능력이라 하고, 광명을 
삼신의 참된 덕이라 하니, 곧 우주 만물에 앞섬을 말함이다.]

  <조대기>에서 말한다.
  [옛풍속은 광명을 숭상하였으니 해로써 신을 삼고 하늘로써 조상을 삼았나니, 
만방의 백성은 이를 믿고 서로 의심치 않으며 아침 저녁에 경배하며 이를 
가지고 일과로 삼았다.]
  태양은 광명이 만나는 곳으로서 옛날부터 삼신이 계시는 곳이라. 사람은 빛을 
얻음으로써 농사짓고, 하는 바 없는 듯하면서도 스스로 교화되나니, 아침엔 
함께 동쪽 산에 올라 해가 처음 뜨는 것을 경배하고 저녁엔 곧 함께 서쪽 
강가로 나아가서 달이 처음 뜨는 것에 경배한다. 이에 앞서 한인께서 
태어나시사, 절로 다섯 가지 사물을 만들고 기름을 아시고 다섯 가지 가르침을 
가르치시고 다섯 가지 이들을 다스리시었다. 오가의 무리는 모두 어려움을 참고 
부지런하여 잘 배워 지닌 끝에 마음의 빛을 얻어 상서롱누 일을 만들고 세상의 
즐거움을 얻었더라. 한인께선 높고 높은 하늘에 오르사 홀로 생각하시며 차분히 
온갖 일을 다스리시니 모두 절로 화평하였다. 때에 천제로서 몸을 나타내시니 
감히 따르지 않는 자 없어 구한의 백성이 모두 하나로 돌아오게 되었다.


                        신시본기 제 3

  <진역유기>의 신시기에서 말한다.
  [한웅천왕께서 사람의 거처가 이미 완성되고 만물이 각각 그 자리를 가짐을 
보시더니 곧 고시례로 하여금 먹여 살리는 임무를 담당하도록 하시고 이를 
주곡이라 하였다. 그런데 이때는 아직 농사의 방법도 잘 갖춰지지 않았고 
불씨도 없음이 걱정이었는데 어느날 우연히 산에 들어가니, 다만 교목들만 
거칠게 떨어져 있는 것이 보였다. 앙상하게 말라버린 나뭇가지들이 제멋대로 
흩어져 어지러이 교차하고 있는 것을 오래도록 침묵하며 말없이 보고 서있는데 
홀연히 큰 바람이 숲에 불어 닥치자 오래된 나뭇가지에서 여러가지 소리가 
일어나면서 서로 부딪쳐 비벼대면 불꽃을 일으키는데 번쩍번쩍 하고 불길이 
잠깐 동안 일어나더니 곧 꺼졌다.
  이에 홀연히 깨달은 바가 있었으니, <이것이로다. 이것이로다. 이것이 곧 
불을 얻는 법이로다>라고 말하며 돌아와 오래된 홰나무 가지를 모아다가 서로 
비벼 불을 만들었으나, 다만 완전한 것이 못되었다. 다음날 다시 교목들의 숲에 
가서 이리왔다 저리갔다 하며 깊이 생각에 잠겼는데, 갑자기 한 마리의 줄무늬 
호랑이가 크게 울부짖으면 달려드는지라 고시씨는 크게 한마디 외치면서 돌을 
집어 던져서 이를 맹타했다. 그러나 겨냥이 틀려서 바위의 한 쪽에 돌이 맞아 
번쩍하고 불을 냈다. 마침내 크게 기뻐하며 돌아와 다시 돌을 쳐 불씨를 
만들었다. 이로부터 백성들은 음식을 익혀 먹을 수 있게 되었고, 쇠를 녹이는 
기술도 일어나더니 그 기술도 점차로 진보하게 되었다.

  한웅천황은 또다시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문자를 만들게 하셨다. 대저 
신시씨는 세세토록 명령을 전하는 직책을 맡고 출납헌체의 임무를 전담하고 
있었는데, 다만 목소리에 의존했을 뿐 일찌기 문자로 기록하여 남기는 방법은 
없었다. 어느날 무리와 더불어 사냥에 나갔는데 갑자기 튀는 한 마리의 
암사슴을 보고 활을 당겨 쏘려고 했으나 둘러보는 사이에 암사슴의 종적을 
놓치고 말았다. 이에 사방을 수색하면서 산과 들을 지나 평평한 모래땅에 
이르러 비로소 발자국을 발견했는데, 어지러이 흐트러져 연결되었으나 향한 
곳은 절로 활실하였다. 마침내 머리를 떨구고 침묵 끝에 다시 크게 깨닫고 
말하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법은 다만 이것뿐이리라, 기록해 남기는 방법은 
다만 이것뿐이리라>라고 하며 그날 사냥을 끝내고 돌아와 되풀이하여 다시 깊이 
생각하고 널리 만물의 모양을 관찰하여, 오래지 않아서 처음으로 문자를 만드는 
법을 깨닫게 되었다. 이를 태고문자의 시작이라 한다. 그런데 후세에는 연대가 
까마득히 흘러서 태고 문자는 다 사라져서 존재치 않는다. 아마도 역시 그 
만들어 놓은 것이 아직 편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일찌기 듣기로 
<남해도의 낭하리의 계곡 및 경박호의 선춘령과 저 오소리 사이의 바깥쪽 암석 
사이에서 언젠가 조각이 있음을 발견하였는데 범자도 아니고 전자도 아니며 
사람들이 알 수가 없는 것>이라 했으니, 이게 신지씨가 만든 옛 문자가 아닌지 
모르겠다. 여기에서 우리나라가 아직 떨치지 못하고 우리 민족이 강하지 못함을 
새삼 한탄한다.

  한웅천황께서는 풍백 석제라를 시켜 새와 짐승과 벌레와 물고기의 해를 
제거하도록 하였지만 백성들은 아직 동굴이나 흙구덩이 속에 살았기 때문에 
밑에선 습기가 스며 올라오고 밖에서는 바람이 불어와서 사람들에게 질병을 
일으켰다. 또한 새, 짐승, 물고기 등을 급하게 쫓아버려 점차로 도망가서 
숨어버리니 잡아서 먹는 데에도 불편하였다.
  이에 우사 왕금영으로 하여금 사람의 살 곳을 만들게 하고 소, 말, 개, 돼지, 
독수리, 호랑이 등의 짐승을 모아 목축 이용을 관장케 하고, 운사 육약비로 
하여금 남녀의 혼례의 법을 정하게 하고 치우는 곧 세세토록 병마도적을 
관장하도록 하였다.
  이때부터 치우, 고시, 신지의 후손들은 지극히 왕성하게 번영하였다. 
치우천왕의 등극에 이르러 구야를 만들어 동과 철을 채취하고 철을 
단련함으로써 도극, 대궁을 만들고 사냥과 정벌, 전쟁의 무기로 삼았다. 
생각컨대 신으로부터 멀리 있는 바깥의 여러 족속들은 대궁에 대한 두려움이 
아주 컸던 듯 소문만 듣고도 간담이 서늘한 지 오래 되었다. 때문에 저들은 
우리 종족을 가리켜 <이>라고 했다. <설문>이 말하는 바에 의하면, <이는 큰 
것으로부터, 활로부터 나온 글자로 동쪽에 사는 사람>이라 함이 이것이다. 
공자의 <춘추>에 이르러 이의 이름을 마침내 융적과 나란히 오랑캐의 호칭이라 
했는데 애석한 일이다.]

  <삼성밀기>에서 말한다.
  [한국의 말기에 다스리기 어려운 강한 족속이 있어 이를 우환으로 여겼다. 
한웅께서는 나라를 위해 삼신으로써 가르침을 삼아 무리를 모아 서약을 
만드셔서 은밀하게 전제의 뜻을 가졌다. 그때는 종족의 이름이 서로 달랐으니, 
풍속도 차츰 달라져서 원래 살던 백성을 호랑이라 하고 새로 살기 시작한 
백성을 곰이라 했다. 그런데 호랑이는 성질이 탐욕스럽고 잔인하여 애오라지 
약탈만을 일삼았고 곰은 어리석어 사람을 따르지 않고 자부하는 마음이 세어 
조화되기를 거부하였으니, 같은 굴에 살았지만 점점 멀어지고 지금까지 한번도 
서로 돕지도 않고 혼자도 트지 않을 뿐 아니라 일마다 서로 따르지도 않고 아직 
한번도 뜻을 함께 한 적이 없었다. 이에 이르러 웅녀의 군은 한웅에게 신덕이 
있다 함을 듣고 곧 무리를 이끌고 가서 뵈옵고 말하기를 <바라옵건대 하나의 
굴을 내리시어 하나같이 신계의 백성이 되게  하시기를 비옵니다>라고 하니, 
한웅께선 마침내 이를 허락하사 이를 맞아 들이시고 아들을 낳게 하였다. 
호랑이는 종내 깨울칠 수 없는지라 이들을 사해로 쫓아 버렸다. 한족의 
일어남이 이에서 시작되었다.]

  <조대기>에서 말한다.
  [때에 사람은 많고 산업은 궁핍하여 그 살아갈 방법이 없어 걱정이었다. 
서자부에 한웅이라는 대인이 있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을 살피더니 하늘에서 
내려가 땅위에 하나의 광명세계를 열려고 생각하였다. 때에 안파견이 두루 
금악, 삼위, 태백을 살피더니 태백은 이로써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만한지라 
한웅에게 명하여 가로대, <이제 사람과 물건의 업은 이미 이루어진 듯하다. 
그대 수고를 아끼는 일 없을지니라. 무리를 이끌고 하늘에서 내려가 하계에 
가서 하늘의 뜻을 펴 가르침을 베풀고 천신에 제사지내는 것을 주관하라. 
어버이의 권위를 세워서 늙은이이와 어린이를 보살펴서 모두다 평화롭게 하라. 
가르침의 도를 세워서 재세이화하여 자손만세의 큰 귀감이 되도록 
할지어다>하시며 마침내 천부인 세 개를 주시고 그를 보내어 이들을 다스리게 
하였다. 한웅이 무리 3,000을 이끌고 처음으로 태백산의 신단의 나무 아래에 
내려오시니 이를 신시라 한다. 풍백, 우사, 운사를 데리고 농사를 주관하고, 
삶을 주관하며, 형벌을 주관하고, 병을 주관하시고 선악을 주관하면서 무릇 
인간의 360여사를 두루 주관하시사, 세상에 계시며 이치대로 교화하여 
인간세상을 널리 이롭게 하셨다. 이를 한웅천왕이라 한다.

  때에 한 곰과 한 호랑이가 있었는데 이웃하여 같이 살았다. 항상 신단수에 
기도하며 또 한웅에게 청하기를 <원컨대 변화하여 천계의 백성이 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한웅은 이에 신비한 주문을 외워 환골이신하도록 하면서 
신이 내리신 물건으로써 신령스러운 삶을 얻게 하였으니, 바로 쑥 한 다발과 
마늘 20개라. 이에 경계할 바를 말하니,
  <너희들 이를 먹고 백일 동안 햇빛을 보지 않으면 저절로 참된 평등을 이루어 
만물을 구제하고 쉽사리 사람까지 교화하는 도리를 아는 대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라고 하시다. 곰과 호랑이의 양가는 모두 이를 얻어 이를 먹고 조심하기 
3.7일에 스스로 수련에 힘쓰니 곰은 굶주림, 추위, 아픔, 고통에 견디어 
경계함에 순종하고 한웅의 약속을 지켜 건강한 모습의 여자로 되었지만 
호랑이는 태만하고 조심하여 경계를 지키지 못하였으니, 끝내 천업에 함께 할 
수 없었다. 이것이 둘의 성질이 서로 닮지 않은 모양이다. 웅씨의 여러 
여인들은 고집세고 어리석고 강정하여 저들과 더불어 혼인하는 자가 없었고, 
항상 신단수 밑에 여럿이 모여 아기를 가져 낳을 수 있게 되기를 빌었다. 이에 
한웅은 자식을 잉태케 하였다. 이로부터 여러 여자와 남자들은 차츰 윤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그 뒤 호를 단군왕검이라 하는 분이 도읍을 아사달에 
정하시니 지금의 송화강이라. 처음으로 나라를 칭하사 조선삼한이라 하니 고리, 
시라, 고례, 남북의 옥저, 동북의 부여, 예와 맥은 모두 그의 관경이었다.]

  신시의 세에 칠회제신의 책력이 있었다. 첫회의 날엔 천신에 제지내고, 2회의 
날엔 월신에 제지내고, 3회 날에는 수신에 제하고, 4회 날에는 화신에 
제지내고, 5회 날에는 목신에 제하고, 6회 날에는 금신에 제지내고, 7회 날에는 
토신에 제지내었다. 대저 책력을 만듦은 이에서 비롯됨이라. 그렇지만 옛날엔 
계해를 썼나니 단군구을이 처음으로 갑자를 써서 10월을 상달이라 하고 이를 한 
해의 시작이라 했다. 육계는 신시씨에 의하여 신지에 명하여 제정한 것으로 
계를 처음 시작으로 한다. 계는 계요, 해는 핵이니, 일출의 뿌리이다. 그러므로 
계를 소라라 하고, 갑을 청차이라 하고, 을을 적강이라 하고, 병을 중림이라 
하고, 정을 해익이라 하고, 무를 중황이라 하고, 기를 열호수라 하고, 경을 
임수라 하고, 신을 강진이라 하고, 임을 유부지라 했다. 해를 지우리, 자를 
효양, 축을 가다, 인을 만량, 묘를 신특백, 진을 밀다, 사를 비돈, 오를 융비, 
미를 순방, 신을 명조, 유를 운두, 술을 개복이라고 한다.

  신시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 산에는 길도 없고 못에는 배도 다리도 없고 
짐승들은 무리를 이루었으니 나무들과 풀들이 자란 곳에는 짐승들의 무리가 
있었다. 그리하여 만물과 짐승의 무리들은 서로 어울렸고 새의 둥지에서까지 
놀면서 서로 의지했다.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셨으니 그 피와 고기를 항상 
쓸 수 있었다. 옷감을 짜고 먹을 것을 경작함에 편리한 대로 다 되었으니, 이를 
지극한 덕의 세상이라고 말한다. 백성은 살아도 일 같은 것을 모르고 
걸어다닌다 해도 특별한 목적지도 필요 없었으니, 길을 가되 한없이 편안했고 
사물을 보되 담담하였다. 먹을 것을 모아 놓고 기꺼워 하며 배를 두드리며 
놀고,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쉰다. 대저 하늘의 혜택을 널리 입어 
궁핍을 알지 못함이라. 뒤이어 후세에 이르러 백성들과 사물들은 날로 
번성하더니 소박한 것은 멀리하게 되고, 절름발이도 있게 되고, 몹시도 마음 
쓰일 일이 생기고, 기운 없고 피로하여 허덕일 일 생기고, 빈둥빈둥하는 이도 
있게 되어 처음으로 생계를 염려하게 된다. 여기에서 밭 가는 자는 이랑을 
다투게 되고 물고기 잡는 자는 바다의 구역을 가지고 다툰다. 다투지 않고 이를 
얻게 되면 장래에 궁핍을 면키 어렵게 된다. 이렇게 된 이후, 활이 만들어지니 
새와 짐승들은 도망치고 그물을 치니 물고기 새우가 숨게 되었고 칼과 창과 
병사들도 생기게 되었다. 너와 내가 서로 공격하고, 이를 갈며 피를 흘리고, 
간과 뇌를 땅바닥에 뿌리게 된다. 이것 역시 하늘의 뜻이 참으로 이러했던가? 
아아, 전쟁을 면할 수 없음을 알겠다. 이제 저들의 그 근원을 탐구해 보면 
아마도 한 뿌리에서 비롯한 조상일 것인데, 땅은 이미 동서로 갈리어 각각 한 
구석씩을 차지하였으니, 땅은 멀리 떨어져 사람들의 인연은 통하지 않고, 
백성은 나 있음을 알면서 남 있음을 알지 못한다. 그러므로 사냥하고 나무를 
베는 이외엔 일찌기 험상궂게 이지러질 일 없더니 천년의 세월을 셀 수 있게 
되자 시국은 이미 변하여 중국은 서양인들이 노리는 보물창고가 되어 천 리 
기름진 평야에 바람만 널리 마구 분다. 우리 한족 가운데 그 지역에 나뉘어 
옮겨간 족속들은 침을 흘리며 이리저리 굴러 전진하고 토착의 백성들도 역시 
마구 휩쓸려 모여들었다. 여기에서 어찌 같은 집안 식구들끼리 원수를 달리하고 
창칼의 움직임을 노릴손가? 이야말로 실로 만고의 전쟁의 시초더라.

  한웅천황으로부터 다섯 번 전하여 태우의 한웅이 계셨으니 사람들에게 
가르치시기를 반드시 묵념하여 마음을 맑게 하고 조식보정케 하시니 
이것이야말로 장생구시의 술이다. 아들 열 둘을 두었으니 맏이를 다의발 
한웅이라 하고 막내를 태호라 하니 또는 복희씨라고 한다. 어느날 삼신이 몸에 
내리시는 꿈을 꾸어 만 가지 이치를 통철하고 곧 삼신산으로 가서 제천하고 
괘도를 천하에서 얻으시니, 그 획은 세번 끊기고 세번 이어져 있어서 자리를 
바꾸면 이치를 나타내는 묘가 있고 삼극을 포함하여 변화무궁하였다.
  <밀기>에서 말한다.
  [복희는 신시에서 태어나 우사의 자리를 세습하고 뒤에 청구와 낙랑을 거쳐 
마침내 진에 옮겨 수인, 유소와 나란히 그 이름을 서방에 빛내었다. 후예는 
갈리어 풍산에 살았으니 역시 풍을 성씨로 가졌다. 뒤엔 마침내 갈라져 패 관 
임 기 포 이 사 팽의 여덟가지 성이 되었다. 지금 산서성의 제수에 희족의 옛 
거처가 있다. 임 숙 수 구 수유의 나라는 모두 여기에 모여 있다.]

  <대변경>에서 말한다.
  [복희는 신시로부터 나와 우사가 되었다. 신용의 변화를 보고 괘도를 그리고 
신시의 계해를 바꾸어 갑자를 처음으로 하였다. 여와는 복희의 제도를 이어 
받다. 주양은 옛 문자에 의하여 처음으로 육서를 전했다. 복희의 능은 지금의 
산동성 어대현 부산의 남쪽에 있다. 신농은 열산에서 일어났는데 열산은 열수가 
흘러 나오는 곳이다. 신농은 소전의 아들이다. 소전은 소호와 함께 모두 
고시씨의 방계이다. 대저 당시의 백성들은 정착해서 생업을 이어갔으며, 차츰 
크게 되자 곡마약석의 기술도 또한 점점 갖춰져서 낮에는 저자를 이루어 
교역하고 되돌아갔다. 유망이 정치를 하면서 급하게 모든 읍의 두 백성들이 
제휴하도록 했으나 떠나는 백성들이 많아져서 세상의 도가 매우 어지러워졌다.]

  우리 치우천왕께서는 신시의 옛 힘을 받으시사 백성과 더불어 제도를 새롭게 
하시니, 능히 하늘에 제사지내 삶을 아시고, 땅을 여시사 삶을 도모하시고, 
사람을 발탁하시어 삶을 숭상할 수 있으셨다. 온갖 사물의 원리는 빠짐없이 
몸소 살펴보시니, 그 덕이 미치지 않는 곳 없었고, 지혜는 뛰어나지 않음이 
없었으며, 힘 또한 갖추지 않은 것이 없으셨다. 이에 백성과 더불어 범 
무리들을 따로 떼어서 하삭에 살도록 하고는 안으로는 용감한 병사를 기르고 
밖으로는 세상의 변화를 관찰하셨다. 유망의 정권이 쇠약하여지니 군대를 
보내어 정벌하였다. 집안과 가문에서 장수될 만한 인재 81명을 골라 여러 
부대의 대장이 되게 하고 갈로산의 쇠를 캐내어 도개 모극 대궁 호시를 많이 
만들어 한결같이 잘 다듬더니 탁록을 공격하여 함락시켜서 구혼에 올랐다. 
연전연승하는 그 위세는 질풍과 같아서 만군을 겁에 질려 굴복케 하고 위세는 
천하에 떨치더라. 한해 동안에 대개 아홉 개 제후의 땅을 점령하고 다시 
옹호산에 웅거하여 구야로써 수금과 석금을 개발하여 예과와 옹호의 창을 
만들어 내고, 다시 군사를 정동하여 몸소 이들을 이끌고 양수를 건너 
출진하더니 재빨리 공상에 이르렀다. 공상은 지금의 진류이며 유망이 도읍했던 
곳이다. 이해에 12제후의 나라를 점령하고 죽이니 쓰러진 시체가 들판을 그득 
메우게 되었다. 이에 서토의 백성들은 간담이 서늘해 도망쳐 숨지 않는 자가 
없었다. 때에 유망은 소호로 하여금 마주 싸우게 하였으나 대왕은 예과와 
옹호극을 휘두르며 소호와 크게 싸우고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적의 장병으로 
하여금 혼미케 하여 스스로 혼란에 빠지게 하였다. 소호는 대패하여 변방으로 
도망치더니 공상으로 들어가 유망과 함께 도망쳐 버렸다. 치우천왕은 즉시로 
하늘에 제사지내 천하의 태평을 맹세하였다. 다시 군대를 진격시켜 탁록을 
에워싸 일거에 이를 멸망시켰다. <관자>가 말하는 바의 [천하의 임금이 
전장에서 한번 화를 내자 쓰러진 시체가 들판에 그득했다]는 대목이 이를 
말함이다.

  때에 공손헌원이란 자가 있었으니 토착 백성들의 우두머리였다. 처음 
치우천왕이 공상에 입성해서 크게 새로운 정치를 편다는 말을 듣고 감히 저 
혼자 즉위하여 천자가 될 뜻을 갖고 크게 병마를 일으켜 공격해와 더불어 
싸우려 했으므로, 치우천왕은 먼저 항복한 장수 소호를 보내 탁록에 쳐들어가서 
에워싸 이를 전멸시켰다. 헌원은 그래도 스스로 굴복치 않고 감히 백번이나 
싸워오는지라 치우천왕은 구군에 명을 내려 네 갈래로 나누어 출동케 하고 
자신은 보병 기병 3,000을 이끌고 곧바로 헌원과 탁록의 유웅이라는 벌판에서 
계속해서 싸우면서 명령을 내려 사방에서 압축하여 참살하니, 그 숫자를 셀 수 
없었고 세지도 않았다. 또 큰 안개를 일으켜 지척을 분간치 못하게 하면서 
싸움을 독려하니 적군은 마침내 마음에 두려움을 일으켜 혼란을 일으키고 
도망가 숨으며 달아나니, 백 리 안에 병사와 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에 이르러 연의 회대의 땅을 모조리 점령하고자 하여 곧 탁록에 성을 쌓고 
회대지방을 점령하였다. 이에 헌원의 무리들은 모두 다 신하되기를 원하며 
조공을 바쳤다. 대저 당시의 서쪽에 살던 사람들은 함부로 활과 돌의 힘을 믿고 
갑옷의 쓸모조차 알지 못했는데, 치우천황의 법력이 높고 강력함에 부딪쳐 
마음에 놀랍고 간담이 서늘하여 싸울 때마다 매양 패했다. <운급헌원기>라는 
책에 <치우가 처음으로 갑옷과 투구를 만들었는데 당시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구리로 된 머리에 쇠로 된 이마라고 치우를 말한다>라고까지 썼으니, 역시 그 
낭패한 모습이 대단했음을 상상해 알 것이다.

  치우천왕은 더욱더 군대의 힘을 갖추고 사방면으로 진격했던 바 10년 동안 
헌원과 싸우기를 73회였으나 장수는 피로의 기색이 없고 군은 물러설 줄 
몰랐다. 뒤에 헌원은 여러 차례 싸웠으나 매양 졌으므로 원한은 더욱더 커졌다. 
군대를 일으켜 우리 신시를 본 따 크게 병기와 갑옷을 만들고 또 지남의 수레도 
만들어 감히 싸움터마다 출전하는지라. 치우천왕은 불같이 진노하사 노여움에 
부들부들 떠시더니 형제와 종당들로 하여금 싸움의 준비에 힘쓰도록 하면서 
위세를 떨쳐서 헌원의 군으로 하여금 감히 공격해 올 뜻을 품지도 못하도록 
하였다. 더불어서 한바탕 크게 싸움이 일어나자 한 무리를 마구 죽여 버린 
후에야 비로소 멈췄으니 이 싸움에서 우리쪽 장수 가운데 치우비라 하는 자가 
있어 불행하게도 공을 서둘다가 진중에서 죽게 되었다. <사기>에서 말하는 
<치우를 잡아 죽이다>라고 기록한 대목은 아마도 이를 말하는 것인 듯하다. 
치우천왕은 크게 화가 나시어 군을 움직여 새로이 돌을 날려 보내는 기계를 
만들어 진을 치고 나란히 진격하니 적진은 종내 저항할 방도조차 없었다. 이에 
정예를 나누어 파견하여 서쪽은 예탁의 땅을 지키고 동쪽은 회대의 땅을 취하여 
성읍을 삼게 하고, 헌원의 동쪽 침략의 길을 지키게 하였다. 치우천왕이 
돌아가신 지 수천년이 된 지금 오히려 만장의 광열이 있어 능히 후인으로 
하여금 흥분하여 떨쳐 일어나게 하는 듯하다. 지금 <한서>지리지에 의하면 
치우천왕의 능은 산동성의 동평군 수장현 관향성 가운데에 있다고 한다. 높이가 
7척으로 진나라와 한나라 때 주민들은 10월이면 늘 여기에 제를 지냈다고 한다. 
반드시 붉은 기운이 있어 마치 필강 같은 것이 뻗는데 이를 치우의 깃발이라 
한다고 한다. 그의 영걸스러운 혼백과 사내다운 기백은 스스로 보통 사람과는 
매우 다른 바가 천년의 세월을 지나서도 오히려 없어지지 아니 하는 듯하다. 
헌원이 이로써 망연히 사라지니 유망도 이에 따라 영원히 떨어져 버렸다.

  치우천황의 공덕은 세상에 전하여 능히 떨치고 그윽한 푸르름 속에 그 명성 
위엄은 떨어지지 않고 있음이라. 헌원 이래로 세상은 안정되지 못하였으니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편안하게 베개를 베고 눕지를 못했다. <사기>에 이르되 
<산을 뚫어 길을 내고 한번도 편안히 있은 적 없다. 탁록의 강에 도읍하고 옮겨 
다니며 항상 거처를 안정시키지 못하고 장수와 사병을 시켜 지키게 하는 
전장에서 살았나니>라고 한 것은 아마도 헌원이 살았을 때 전전긍긍하던 모습을 
역력히 보여주는 기록일 것이다. 또 <상서>여형에서는 [고훈에 다만 치우가 
난을 일으키다 라고만 적은 것은 그의 위엄이 무서워 기를 빼앗긴 탓]이라고 
하였다. 세상에 그의 훈을 전하는 까닭은 이로써 후인을 위하여 계명으로 
삼자는 뜻도 역시 깊다. 그 뒤 300년은 별일이 없었는데 다만 전욱과 한번 싸워 
이를 이겼을 뿐이다.
  대저 신시개천에서부터 18세를 전하여 1565년이 흘러서 비로소 단군왕검이 
나셨다. 웅씨의 비왕으로서 마침내 신시에 대신하여 구역을 통일하고 관경으로 
삼한을 나누었으니 이를 단군조선이라고 한다.

  <삼한비기>에서 말한다.
  [복희는 서쪽 변방에 봉토를 받더니 직에 있으면서 정성을 다하였다. 무기를 
쓰지 않고서도 한 지역을 감화시켜 마침내 수인에 대신하여 지역 밖에까지 
명령을 내렸다. 뒤에 갈고 한웅이 있었는데, 신농의 나라와 구역의 경계를 
획정하여 공상 동쪽이 우리에게 속했다.
  또 몇 대 지나 자오지천왕 한웅에 이르다. 자오지 한웅은 귀신 같은 용맹이 
몹시 뛰어났고 그 머리와 이마는 구리와 쇠로 되었다. 능히 큰 안개를 일으키고 
구야를 만들어 주석과 쇠를 캐내어 무기를 만들고 돌을 날려 목표물을 맞추는 
기계를 만들었다.
  천하는 이를 크게 두려워하고 함께 떠받들어 천제의 아들 치우라 하더라. 저 
치우란 말은 속어로 번개와 비가 크게 내려 산과 강을 바꾸는 것을 뜻한다.]
  치우천왕은 신농씨가 쇠약해짐을 보고 마침내 뜻을 크게 품고 여러 차례 
천병을 서쪽으로 일으켜 진격하여 회대의 사이에 웅거했다. 헌원황제가 
즉위함에 이르자 즉시 탁록의 벌판에 나아가 헌원을 사로잡았다. 그리하여 그를 
신하로 삼은 다음에 오나라에 장군으로 보내 서쪽으로 고신씨를 공격하여 공을 
세우게 하였다.

  <대변경>에서 말한다.
  [신시씨는 전으로써 계를 닦고 사람을 가르치고 하늘에 제지냈다. 이른바, 
전이란 사람이 스스로 완전이라 여기는 바를 쫓아 능히 그 성품에 통하고 
이로써 참을 이루는 것이다. 청구씨는 선으로써 법을 만들고 사람에게 관경을 
가르친다. 이른바 선이란 사람의 태어난 바에 따라 명을 알고 이로써 선을 
넓힘이다. 조선씨는 종으로써 왕을 세우며 사람들에게 가르쳐 화를 공동으로 
책임지게 하였다. 이른바 종이란 사람이 스스로 근본이라 여기는 바에 따라 
능히 정신을 잘 지키고 이로써 아름다움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은 
허하면서도 하늘에 근본을 두고, 선은 밝음에 있으면서도 땅에 근본을 두며, 
종은 건전하면서도 사람에 근본을 둔다.]

  주에서 말한다.
  [한인은 또한 천신이라고 한다. 천은 곧 큰 것이요, 하나이다. 한웅은 또한 
천왕이라고도 하니 왕은 곧 황이며 제이니라. 단군은 또한 천군이라 하니, 
제사를 주재하는 우두머리이다. 왕검은 또한 바로 감군이며 관경의 
우두머리이다. 때문에 하늘로부터의 밝음을 한이라 하고, 땅으로부터의 광명을 
단이라 한다. 이른바 한은 즉 구한을 말하는 것이다. 한은 곧 크다는 뜻이다. 
삼한은 풍백, 우사, 운사라 한다. 가는 곧 가이다. 오가를 말하자면, 우가는 
곡식을 주관하며, 마가는 목숨을 주관하며, 구가는 형벌을 주관하며, 저가는 
병을 주관하며, 양가는 선악을 주관한다고 한다. 백성은 64종족이 있었고 
무리는 3,000이 있었다. 세상을 다스리도록 내려 보낸 것을 개천이라 한다. 
개천은 고로 능히 서물을 창조하는데 이것은 바로 허와 같은 것이다. 
인간세상을 구한다함을 개인이라 한다. 개인은 때문에 능히 인간 세상의 일을 
순환시킨다. 이는 혼의 구연을 뜻한다. 산을 다스리고 길을 내는 것을 개지라 
한다. 개지는 때문에 능히 세상의 일들을 개화한다. 이는 지혜를 함께 
닦음이라.]

  <삼한비기>에서 말한다.
  [대저 백두의 큰 산은 대황의 가운데에 자리잡았으니 세로는 1,000리에 
걸치고 높이 200리를 넘는다. 웅장하고 험준하니 울퉁불퉁 거창하여 배달천국의 
진산이라 한다. 신인이 오르내림은 실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어찌 구구하게 
묘향산이 다만 낭림산맥의 서쪽을 달리는 산맥을 잇는 것으로써 능히 그와 같은 
성스러운 일에 관계된다고 할 수 있으리요. 세상의 속암에는 이미 묘향산을 
가지고 태백산이라고들 한다. 즉 이를 보니 동쪽에 치우쳐 압록강 이남의 한 
구석을 차지한 땅일 뿐이라. 산의 조종을 곤륜산이라 떠들어 대며 기분 
좋아하며, 소중화를 가지고 스스로를 달래며 만족한다. 조공 올리는 사신이 
북쪽을 들락거린 역사가 백년이다. 이를 치욕으로 알지 못하다니 이야말로 글을 
폐하고 장탄식하는 이유어늘. 그런데 동방의 뭇산을 태백의 이름으로써 불리는 
바가 사뭇 많다. 세속에서는 영변에 있는 묘향산으로 그것을 가리킨다고 하니 
이것은 일연의 <삼국유사>의 설에 비롯하였음이라 이를 것이다. 그렇다면 
저들의 눈구멍은 콩알이라 할 것이요, 큰 콩알과 같다 할지언저. 이제 백두산 
꼭대기에는 큰 연못이 있거늘 둘레가 80리이며 압록, 송화, 두만의 뭇물줄기는 
모두 여기에서 근원이 시작된다. 가로대 천지란 곧 한웅씨가 구름 타고 
하늘로부터 내리신 곳이니 묘향산은 일찌기 한웅큼의 물구덩이조차 없었던 즉 
한웅천황이 내려오신 땅을 태백산이 아니라고 함은 논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다.]

  <위서>의 물길전에 [나라 남쪽에 도태산이 있다]라고 했는데 위에서는 이를 
태황이라고 했다. 범, 표범, 곰, 이리가 있지만 사람을 해치지 않으며,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서 소변을 보지 않았고 길을 가는 이마다 모두 물건을 
가득 채워 가지고 가게 되니, 이는 아마도 한웅천황께서 처음 하늘에서 
내려오시사 이미 이 산에 계시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라. 또 이 산을 
신주흥왕의 영지라 하니, 바로 소도제천의 옛 풍속은 반드시 이 산에서 
시작되고, 옛부터 한족의 숭경도 역시 이 산에서 시작된 일이니, 단순히 심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또 짐승들도 빠짐없이 신의 교화로 목욕하듯하여 안락하게 
이 산에 서식하며 일찌기 사람을 상처낸적 없고, 사람도 역시 감히 산 위에 
오르지 않고 오줌 누어 신을 모독하지도 않으며, 항상 끝없이 공경하고 
보호하는 기준으로 삼았다. 대저 우리 한족은 모두 신시가 이끄는 삼천의 
무리들의 장막에서 나왔다. 후세 이후로 여러 씨성의 구별은 있다 하지만 실은 
한단 한 줄기의 후예 후손에서 벗어나는 자 없으며, 신시에 처음으로 내리신 
공덕은 당연히 반드시 전송하여 잊지 말아야할진저! 곧 선왕과 선민들이 그 
삼신고제의 성지를 가리켜 삼신산이라 함도 역시 반드시 그래야 할 것이다.
  대저 신시 이래 신의 다스림과 성인의 교화는 점점 세월을 따라 오히려 더해 
가며 점점 깊어 간다. 나라를 세우고 세상을 다스리는 커다란 근본은 주변의 
나라들과는 판이하게 달랐으니 그 신풍과 성속은 멀리 천하에 전파되었다. 천하 
만방의 사람들로서 신성이화를 흠모하는 자들은 반드시 삼신을 추모하고 
숭상하여 동북족에 신명사라 불리는 곳이 있게 되었다. 그 말류의 폐단에 
이르러선 차츰 허랑 방탕한 일에 빠져들더니 더 나아가서는 차츰차츰 더 
기괴하고 황당무계한 설이 쉴새없이 튀어나오게 되었다. 여기에서 이른바 
연나라 제나라의 바다 위에 괴상한 도사의 얘기도 나왔다. 대저 저들의 땅이 
구한의 신시와 서로 접해 있어 민물의 교류도 왕성했던 터라 저절로 풍문에 
접할 수 있어 괴기하다는데 놀랐던 게 아닐까? 게다가 상상으로 늘리고 
부연하는 자도 있어 가로대 [삼신산은 봉래, 방장, 영주산으로서 발해 바다 
가운데 있다 운운]함으로써 세상을 미혹하는 주요 원인이 되고 말았다. 
그렇지만 당시의 사람을 동쪽으로 바다에 가 보아도 아득하기만 할 뿐 보이는 
것이 없었다. 그렇다고 발해 가운데 다시 다른 바다가 있다는 말도 못들었고, 
[삼신산도 역시 발해 가운데 있다 운운]했으나, 실은 바로 삼신산이 아니고 
각각 세개의 섬에 있는 산이니 봉래는 쑥이 무성하게 자란 내경으로서 곧 
천왕이 내려오신 곳이요, 방장은 사방 일 장의 각으로서 곧 소도가 있는 
곳이요, 영주의 영은 주도를 에워싸고 있는 모습으로서 곧 천지가 샘 솟는 
곳이라. 통틀어 말하자면 삼신산이라 하는 산이니 삼신은 곧 상제인 것이다. 
그렇지만 더욱 그 황탄한 자는 삼신의 원 뜻을 알지 못하고 곧 금강을 
봉래산이라 하고, 지리산을 방장산이라 하고, 한라를 영주산이라 함이 모두 
그런 따위이다.
  <사기> 봉선서에서, [그것은 발해의 가운데 있다고 전한다. 아마도 일찌기 
그곳에 갔다 온 자가 있는 듯, 모든 선인 및 죽지않는 약은 그곳에 있다 하며, 
그곳의 사물들과 짐승들까지 빠짐없이 흰색이요, 황금과 백은으로써 궁궐을 
지었다...]고 하였으며 또 <선가서>엔 가로대 [삼신산은 혼을 되살리고, 늙지 
않게 하는 등의 약초가 있는데 일명 진단이라 한다]라고 했다. 지금의 백두산은 
옛부터 흰 사슴, 흰 꿩 등속의 짐승이 있었는데 <괄지지>가 말하는 바 [새, 
짐승, 풀, 나무가 있으나 모두 희다]고 한 대목은 이를 가리킨 말일 것이다. 또 
백두산 일대에서는 많은 산삼이 나오는 바 세상 사람들은 이를 불로초라고 
생각한다. 산사람들이 채취하려할 때엔 반드시 먼저 목욕재계하고 산신에 
제사를 지내고 난 후라야 감히 채취하러 입산한다. 아마도 혼을 되돌리고 늙지 
않게 한다는 말도 역시 생각컨대 여기에 근원한 것이라 여겨진다. <세기>에 
가로대, [단군 오사구의 원년 북쪽을 순수한 때, 영초를 얻다]라 함은 곧 
이것이라 여겨진다.

  10월의 제천은 마침내 천하만세의 풍습이 되었다. 이는 곧 신의 나라 특유의 
성대한 행사로서 외국에는 이와 견줄만한 것이 없다. 태백산은 홀로 곤륜산의 
명성을 누르고도 남는다. 옛날의 삼신산이라 함은 곧 태백산으로서, 역시 
지금의 백두산이다. 대저 그 옛날 신시의 인문교화는 근세에 이르러 건재하게 
행해지지는 않는다고 할지라도, 천경신고는 오히려 후세에 전해진 바가 있는 듯 
거국적으로 남녀가 역시 모두 말없는 가운데 받들고 있는 바로서, 곧 인간의 
생사는 반드시 삼신이 주관하는 것이라고들 한다. 그래서 어린 아이가 열살 
미만일 때에는 목숨의 안전과 위험, 우환, 잘나고 못남 따위는 애오라지 모두 
삼신께 의탁한다. 저 삼신은 곧 우주를 창조하고 만물을 만드신 천일신이시다. 
옛날 사마상여는 한나라의 왕 유철 무제에게 말하기를, [폐하께서 겸양하사 
방탕치 않으시면 삼신의 즐거움을 얻으실 것인즉]라고 했는데, 위소는 
삼신상제에 주를 달아 [삼신의 설은 어느덧 저들의 땅에도 전파되었음이 
명백하다]고 하였다.

  <진역유기>에서 말한다.
  [제의 풍속에 8신의 제가 있다. 8신이란 천주, 지주, 병주, 양주, 음주, 
월주, 일주, 사시주를 말한다. 천은 음을 좋아한다. 고로 천을 제사함에는 
반드시 높은 산의 밑인 작은 산 위에서 한다. 곧 하늘을 태백산 기슭에서 제사 
지내는 유법인 것이다. 땅은 양을 좋아한다. 그래서 땅에 제사지낼 땐 반드시 
못 가운데의 네모진 언덕에서 제지냄은 역시 곧 천을 참성단에서 제를 지내던 
습성이라 할 것이다.]
  [천주로서 삼신에 제사하고 병주로서 치우를 제사하니, 삼신은 천지 만물의 
조상이고, 치우는 만고의 무신으로서 용강의 조라 할지니, 큰 안개를 일으키고 
물과 불ㅇ르 마음대로 사용한다. 또 만세 도술의 조종으로서 바람과 비를 
부르고 모든 귀신들을 부른다. 이로써 태시의 세계에서부터 항상 천하 전쟁의 
주가 되었다. 해대의 땅은 이미 엄 람 양 개 우 래 서 회의 8족이 자리잡고 
사는 곳이 되었으니 곧 8신의 설은 8족으로부터 싹터서 당시에 번성하던 설이 
되었다.
  유방은 동이 계통의 인물이 아니라고 하지만 병사를 풍패에서 일으켰는데 곧 
풍패의 풍속은 치우에게 제를 지내므로 나라도 역시 그 풍속을 따라 치우에게 
제를 지냈다. 그리하여 흔고하고 깃발을 들고 마침내 10월에 패상에 이르러 
제후와 더불어 함양을 평정하고 즉위하여 한왕이 되었던 바 이로부터 10월을 한 
해의 시작으로 정하고 이것이 진나라의 정월 초하루를 빼앗는 일이긴 하나, 
역시 동황태일을 받들어 공경하고 치우를 공경하여 제사지낸 때문이라 할 
것이다. 뒤에 4년만에 진나라 땅이 이미 평정되니 축관에게 명하여 치우의 
사당을 장안에 세우게 하였다. 그가 치우를 존경하기 이와 같았다.

  진나라의 <천문지>는
  <치우기는 꼬리별 혜성과 비슷하여 뒤가 꼬부라져서 깃발을 닮았다. 깃발이 
보이는 곳 바로 밑에 병란이 있다>고 하였으니, 이는 치우천왕이 승천하여 별이 
되신 때문이다. 또 <통지> 씨족략엔 <치씨는 치우의 후예>라고 했고 혹은 
<창힐은 고신과 더불어 역시 모두 치우씨의 후예이다. 대극성에 태어나 
이리저리 옮겨 다니다가 산동의 회북으로 옮겨 살았다>고 하였으니, 대저 
치우천왕의 영풍위열함이 먼 나라의 깊숙한 곳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음을 
이로써 미루어 알 수 있다.

  연나라 제나라의 선비들이 신비하고 괴상스러운 소리에 탐닉한 지도 역시 
오래 되었다. 제나라의 위왕과 연나라의 소왕때부터 사신을 파견하여 삼신산을 
찾았으니, 진한 때의 송무기, 정백교, 극상, 이문자고는 최후의 무리로서 즉 
연나라 사람들이요, 문성오리공, 손경, 신공의 무리는 모두 제나라 사람들이다. 
옛날 여상도 역시 치우씨의 후손이다. 때문에 역시 성은 강이다. 대저 치우는 
강수에 살았다. 아들들을 모두 강씨라고 한 것이 아닐런지?
  강태공은 제나라를 통치하기에 앞서 도술을 닦고 천제못에서 하늘에 제사 
지냈다. 그리하여 역시 제나라로부터 책봉받았으니 8신의 풍속이 이 땅에 더욱 
번성했다. 후세엔 그 땅에 도술을 즐기는 자가 많이 배출되어서 신선 사상과 
도가의 사상을 섞어서 널리 퍼뜨리고 또 다듬었으니, 바로 강태공이 이를 
장려함이라. 일찌기 <음부경>의 주를 만들어 자부삼황의 뜻을 조술하였다. 
그런즉 연과 제나라의 선비들이 어찌 괴상스럽고 신비스러운 말들을 즐기지 
않을 수 있었겠는가? 또 오행치수의 법과 <황제중경>이라는 책은 태자 
부루로부터 나와서 우사공에게 전해진 것이다. 뒤에 다시 기자의 홍범을 
주왕에게 말했다함은 역시 <황제중경>과 오행치수설인 것이니, 대저 그 학문의 
근본은 신시의 구정과 균전으로부터 전해진 법일지라.

  <밀기>에서 말한다.
  [옛날엔 사람이 죽으면 향리를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합쳐서 한군데에 
매장하고 표시하여 지석이라 하더니 뒤에는 변하여 단을 만들고 지석단이라 
불렀던 것이다. 또 제석단이라고도 했다. 산의 꼭대기에 있으며 산을 파고 
성단을 만들어 놓은 것을 천단이라 했다. 산골짜기에 있고 나무를 심어 토단을 
만든 것을 신단이라 한다. 지금 승도들이 혼동하여 제석을 단이라 부르는 것은 
곧 옛 고사를 말함이 아니다. 삼신을 지키고 사람의 목숨을 이치대로 하는 자를 
삼시랑이라 하는데 본래 삼신의 시종랑이다. 삼랑은 본래 배달의 신하요 역시 
삼신을 수호하는 직책을 세습한 것이다.]

  <고려팔관잡기>에서 말한다.
  [삼랑은 배달의 신하이다. 씨 뿌리고 재물을 주관하는 자를 업이라 하고, 
교화하고 복종하게 함을 주관하는 자를 랑이라 하고, 무리를 모아 공을 이루는 
것을 주관하는 자를 백이라 한다. 즉 옛날에 시작된 신도이니 모두가 영을 받아 
예언하는 일이 많은데, 하늘의 이치에 따라 종종 적중하기도 한다. 지금 혈구에 
삼랑성이 있는 바, 성은 곧 삼랑이 머무르던 장소이다. 랑은 곧 삼신을 
수호하는 관직이다.
  불상이 처음 들어 오매 절을 세워 이를 대웅이라 불렀다. 이는 승도들이 옛 
것을 세습하는 칭호로서 본래의 승가의 말은 아닌 것이다. 또 가로대 승도와 
유생이 모두 낭가에 예속외어 있다고 말함을 이로써 알 수 있다. 혹은 말한다. 
옛날엔 백성들이 계곡에 흩어져 살았으므로 장사지낼 정해 놓은 땅이 없었다. 
위로는 국왕으로부터 모두다 동굴로 옮겨서 천신과 나란히 모시고 이어 
제사지냈다. 뒤엔 혹은 땅을 평평히 하고 장사지내는 자도 있고, 둘레에 
박달나무나 버드나무, 소나무, 잣나무 등을 심어 이로써 표시를 삼았다. 이는 
신시의 시절에는 능이나 묘를 쓰는 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후에 
중고시대에 이르러 나라는 풍부해지고 민족은 강성하게 되었으니 점차 
번거로워져서 장례를 사치스럽게 치르게도 되었고, 제사를 지냄에도 예의가 
있었고, 묘를 쓰는 것도 자못 융성하게 되었다. 혹은 둥글게, 혹은 네모나게 
하여 지극히 화려하고 사치스럽게 장식하였으며, 높이, 크기, 넓이, 폭, 모지고 
바른 것까지 규격이 생겼으며, 안쪽의 벽과 바깥쪽의 덮는 것까지 고르게 
정밀하고 교묘하였다. 고구려에 이르러서는 능묘의 규격과 제도가 천하의 
으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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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 귀여운 스머프들아, 여기 파파 스머프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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