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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ryuch (개굴개굴)
날 짜 (Date): 2005년 9월  6일 화요일 오후 11시 20분 54초
제 목(Title): [펌] 일제시대 이야기 6





“제1부 일제시대란 무엇인가?-6”  

 

 우리는 식민지였던 적이 없다.   

 

 clouds[구름~~]     

 

 우리가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다고 그토록 억울해 하고 그렇게도 원통해 합니다만

사실 이웃한 외국에게서 그 정도의 수난을 당한 역사를 갖고 있지 않은 나라는 전

세계를 다 뒤져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세계의 초강대국이란 미합중국도 원래는

영국의 식민지였습니다. 그 미국에 맞짱을 뜰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유일한

대국으로 떠오르는 중국도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남의 나라의 식민지였습니다.

중국이야말로 말 그대로 식민지 상태에 놓여져 있다가 개화기를 맞았습니다. 전

중국을 식민지로 지배했던 나라는 만주국인 청나라이고, 그 민족은 우리와 혈통적,

역사적으로 형제나 다름없는 여진족입니다. 



청나라 시절뿐만 아니라 중국은 수천 년 역사의 거의 절반이 남의 나라의

식민지로서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은나라 시대의 동이족 이래로 타타르(금),

몽고(원), 거란(요), 여진(청) 등이 중국을 돌아가면서 통치했던 민족과 나라의

이름들입니다.



그 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식민정책을 편 나라가 바로 청국입니다. 만주족은 중국

전토를 무력으로 정복한 후에 왕조를 세우고, 교과서적인 식민정책을 펴

나갔습니다. 만주족과 한족은 철저하게 차별되었습니다. 만주족은 지배계층이요,

한족은 피지배계층으로 이분되어 서로간의 통혼도 엄격하게 금지되었습니다.

만주족의 남자는 누구나 할 것 없이 태어나는 순간 그 혈통(만주족을 구성하는

8부족)에 따라 팔기군의 어느 한군데에 적이 올려집니다. 그래서 만주족은 곧

팔기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만주족이 아닌 사람은 팔기군이 될 수

없었으므로 한족과의 금혼정책은 피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팔기군이 아닌 사람은

신분적으로 피지배계급이며 출세와 입신에 제한이 가해졌습니다. 그러면서 만주족은

전 중국의 피지배민중에게 만주족의 풍습을 강요했습니다. 신분적으로는 차별하면서

생활적으로는 동화를 시키려고 들었지요. 그래서 근대개화 이전에는 모든

중국인들이 변발에 호복을 했습니다. 만주족은 계급적으로 신분적으로 평등을

허락하지도 않으면서 풍습과 문화에 있어서는 만주족으로의 동화를 강요한

것입니다. 이 동화는 결국 실패했습니다. 왜냐하면 신분과 계급, 무엇보다도 결혼에

의한 혼혈이 없이 두 민족이 하나가 될 수는 없는 것이어서 청조 2백년이 지나도

여전히 만주족은 만주족이고 한족은 한족으로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그 기간 동안에 차별받던 피지배민족인 한족들이 청조에 입사해서 충성을 바치고

봉공했습니다. 한족의 중흥 운동은 찾아볼 길이 없었고, 대부분의 한족이 만주족에

종사하고 그 통치에 적응했습니다. 한족의 나라인 명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친청파가

된 것입니다. 요즘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과거사 청산의 기준과 방식대로라면

중국 사람들은 거의 예외 없이 모두가 식민통치의 지배계급에 충성을 다한 매국노가

되는 셈입니다.



훗날에 멸만흥한의 기치를 내걸고 한족에 의한 중국의 재건을 주장하며 처음으로

치받은 것이 홍수전이 일으킨 태평천국의 난이었는데 이때는 한족의 왕조인

명나라가 멸망한 지 2백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손문이 신해혁명을 일으켜 청조를

뒤엎은 것은 이때로부터 다시 수십 년이 지나서입니다. 청조 수립 후 2백년이 지난

후에는 팔기군이 서류상으로만 존재했지 실제로 유지되지를 못했습니다. 그래서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한 것도, 청불전쟁과 아편전쟁을 수행한 것도, 손문의 혁명과

폭동을 진압한 것도 모두 한족인 의병장들이었습니다.청조 말기의 군벌의 태두가

되는 증국번, 이홍장 등이 이런 사람들입니다. 만주족의 왕조인 청조를 지킨 것은

바로 한족들이었습니다. 일본의 황실에 반역하는 한국의 독립군을 한국 사람이

한국인으로 구성된 의병을 일으켜 진압을 한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일제시대는 36년이고, 청의 중국지배는 268년간입니다. 일본은 계급적, 신분적,

혈통적 차별 없는 동화정책을 시행했고(서둘러 속단하지는 마십시오, 이게 우리에게

반가웠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만주족은 계급적, 신분적, 혈통적 차별정책과

병행한 복속정책을 시행했습니다.



중국인들이 조선사람들과 다른 점은 이민족의 강압적이고 차별적인 지배를 근 3백년

가까이 받았어도 그 지난 역사를 그리 부끄럽다거나 수치스러워 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지금 현실에 있어서 그 만주는 한족 중국의 3개성에 지나지 않으며

만주족의 나라는 흔적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현실이 중요한 거지, 백년 전까지

만주족이 한족을 지배했네 어쩌네 하는 자체를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증국번, 이홍장을 친청파라고 욕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청조 268년간 청나라 조정에

출사하여 봉공한 한족들을 역적이라고 욕하지도 않습니다. 만주족의 268년도 당당한

중국의 역사입니다. 



한족이 국권을 상실하고 만주족의 지배를 받게 된 것은 간단하게 말하면 전쟁에

졌기 때문입니다. 명나라는 만주족의 군대에 정복되어 사라졌습니다. 한족은 전쟁에

졌기 때문에 만주족의 노예 신세가 된 것입니다. 노예라 하면 조금 지나친

표현이지만 어쨌건 피지배민족의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몽고족으로부터

한족이 국권을 회복한지 불과 200년 만에 다시 북방유목민족에게 정복당한

것입니다. 중국의 한족 입장에서는 상전이 바뀌었을 뿐, 몽고족의 한족차별이나

만주족의 그것은 별 다를 게 없었습니다. 다만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현상을 보게 됩니다.



원나라는 거란족인 요나라의 후신인 금국과 한족의 왕조인 남송을 멸하고 전 중국을

지배하게 됩니다. 송나라는 양양대전에서 보듯이 꽤 격렬하고 완강한 저항을 보인

끝에 무너졌지요. 그리고 무너지고 나서도 한족은 몽고족의 지배에 끈질기게

저항했으며 반몽운동은 중국 전역에서 치열하게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몽고의

중국지배는 그렇게 길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명나라가 멸망한 후에는 이것과는 뚜렷이 대비될 정도로 만주족에 대한

저항이 거의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명나라는 맥없이 무너졌고, 무너진 후에도

반청운동 같은 것은 찾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너무나 유순하게 한족은 만주족의

지배체제에 복속되었는데요, 그 이유는 무엇이었겠습니까?



바로 명나라가 한족에게 있어서 지켜야 할 가치가 있는 조국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명나라 시대란 중국 민중에게는 참으로 모진 인고의 세월이었습니다.

대부분의 민중의 삶이란 평생 동안 그저 땅이나 파면서 짐승과 별 다르지 않은

수준의 삶을 영위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 역사에서 명나라는 자국민에

대해서 가장 지독하고 종류가 많은 악형을 형벌로 사용한 나라입니다. 명나라에서

공공연히 시행되었던 형벌의 종류와 그 내용을 보면 심장 약한 사람은 까무라칠

정도입니다. 인간이 상상해 낼 수 있는 가장 악랄하고 엽기호러적인 온갖 끔찍한

형벌이 자행되었습니다. 관리들과 일부 지배계층의 민중에 대한 착취는 광범위하고

철저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민중에게는 희망이 없는 세월이었습니다. 명나라는 중국의 역사에서 내놓을 만한

치세도, 문화도, 업적도, 진보도 찾아보기 어려운 왕조였습니다. 말기의 조선과

명나라는 그런 점에서 유사했습니다. 만주족이 시행한 엄격한 차별정책 하에서의

생활이 명나라 시절의 같은 한족의 통치 때보다 훨씬 나았던 것입니다. 명나라

시대를 잘 아는 민중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감지덕지였지요. 이것이 만주족의 지배가

268년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였습니다. 



만주족의 통치도 경탄할 만큼 빛나는 것이기도 했지만 그 이전 시대인 명나라가

너무나도 끔찍한 나라였기 때문에 민중은 그것을 지키려고 하지도 않았고 한족의

통치로 되돌아가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일본에 병합당할 때,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있었고 장렬한 순사도

있었지만 5백년 왕조가 남의 나라 손에 무너지는 상황으로는 봐주기 어려울 만큼

무기력하고 무덤덤한 진행을 보였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위안을 삼자고 의병활동을

소개하는 거지 그 실상을 볼짝시면 한숨밖에 안 나올 정도입니다. 2천만의 인구를

가진 2천년 역사의 국가가 남의 나라에 병합되어 넘어가는데 무기를 들고 저항한

사람의 수가 전부 합해서 2천명이 채 안되었습니다. 인구 1만 명당 1명꼴입니다.

이런 사례는 세계사에 달리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게 백년 전의 우리나라

조선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명나라나 조선이나 그 이유는 똑 같습니다. 당대의 인민들에게 있어

자기 나라가 목숨을 바쳐 지킬만한 가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친일파를

처단하겠다고 설치기 전에 당시의 조선이 조선인들에게 어떤 조국이었는지를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북조선인민공화국의 인민들에게 자기 조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치라고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지금의 북한인민들에게 자유로이 투표를

하게하고 중국이던 일본이던 합병의사를 물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 것 같습니까?

친중파, 친일파들이 대거 나오게 될 것입니다. 50년, 60년대에 미국 이민은

한국사람들의 꿈이었습니다. 안 받아주고 못 가서 그렇지 보내준다 하면 열에

일곱은 보따리 쌌을 겁니다. 미국에 가서 배추장사를 하고 세탁소를 할지라도

미국이민자들은 선택받은 자들이었고, 부러움과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실제로

쿠바에서 미국으로 탈출하는 사람들의 보트가 카리브해를 뒤덮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가를 묻기 전에 그들이 버린 나라가 어떤 나라인 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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