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Davin (다빈) 날 짜 (Date): 2005년 9월 2일 금요일 오전 06시 31분 43초 제 목(Title): Re: 알렉산더는 정말 위대한 정복자인가? 알렉산더의 한 일에 대해 폄하하는 글을 읽고 한마디 해야 하겠군요. 어떤 역사가는 이렇게 말합니다. 알렉산더가 일찍 죽지 않았다면 그리이스는 불교국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유럽에 불교가 전파 되었겠지요. 알렉산더의 영향이 가장 큰 것은 종교계에 있었습니다. 알렉산더는 그레코 박트리아 지역이라는 영역을 개척하였고 이 지역은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우주베키스탄... 등등의 끝이 스탄.. ( 산이라는 뜻 ) 으로 끝나는 나라들을 합친 지역에 있었고 이 지역은 실크 로드의 중심 지역이었습니다. 인더스강과 중국을 잇는 이 지역에 알렉산더가 들어옴으로서 이 지역과 그리이스 지역을 연결시켜 버립니다. 이러한 연결이 알렉산더 사후 그 지역을 이어 받은 그리이스 계열의 지도자들에게도 이어져 동서의 종교가 교류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동방의 불교가 서방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것이 이 때일 것이에요. 이 그레코 박트리아 지역에서 인도의 초기 불교와 상을 만들어 내는 그리이스 신학과 결합하여 대승 불교라는 새로운 불교가 탄생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대승불교는 그 다음 BC 1 세기에서 2 세기 사이에 이 지역을 지배했던 쿠샨 제국 ( Kushan Empire ) 에 의해 매우 발전하게 되고 ( 이 제국의 금화에는 부처가 그려져 있슴 ) 현재의 금강경 등의 대승불교 경전이 이 큐샨 제국의 카니시카 왕조 시절에 재 편성 됩니다. 그리고 이 종교의 뒤 섞임은 그 후에 그리이스 신비주의를 만들어 내는 것으로 알 고 있습니다. 물론 그리이스의 신비주의와 동방의 불교와의 뒤섞임이 있을 수도 있구요. 당시 박트리아 지역을 지배했던 ( 인더스 강 상류지역 ) 그리이싀 왕이 밀란다 왕이었고, 이 밀란다 왕과 인도의 불교 승려와의 대화를 쓴 경전이 그 유명한 밀란다 왕문경 ( 왕이 들은 이야기 ) 입니다. 이 밀란다 왕문경은 그리이스 신학과 깨달음의 종교인 불교와의 차이에 대해 승려와 왕이 대화하는 내용입니다. 마치 요즘 프랑스에서 발간된 철학자와 승려와의 대화, 즉 큐리 연구소에 있다가 티벳 불교로 개종한 아들과 프랑스 철학 교수로 있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쓴 책과 흡사한 책이죠. 아버지는 기독교 신학을 주장하고 아들은 티벳 불교의 깨달음을 설명하는 책인데 유익한 상호 이해의 책입니다. 아무튼 알렉산더 이후 서방은 수천년만에 처음으로 동방의 종교의 진수를 그대로 도입하게 되고 이들의 가르침은 , 즉 불교의 가르침은 그리이스 계 지배자들에게 영향을 크게 미치게 됩니다. 알렉산더 이후 인류의 종교는 크게 바뀌어 서방의 인간 지배 중심의 중교는 동방의 사랑, 자비, 평등의 종교의 정신을 가지기 시작하게 됩니다. 그래서 알렉산더 이후 문화 코드 가 바뀌에 되는 아주 중요한 시기입니다. 원나라나 훈, 청나라는 종교에 대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지만 알렉산더의 시대에는 서방의 태양신 종교에 동방의 깨달음의 가르침이 전해지면서 서방의 종교 생활이 수천년만에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숝장도 사라지고, 물신 중심의 타락한 종교도 사라지게 되는 셈이지요. 이슬람의 무함마드도 15년간 동방종교식의 명상을 굴 속에 들어가서 했다는 것을 아시는지.. 돈황 석굴의 그 문화, 간다라 미술등이 모두 알렉산더가 만들어 내었던 그레코 박트리아 지역의 문화입니다. 알렉산더 영화에 보면 박트리아 여인과 알렉산더가 결혼하지요. 박트리아 문화가 서방으로 전해진 것이 알렉산더의 큰 영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