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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구르미 (구르미)
날 짜 (Date): 2004년 6월  1일 화요일 오전 06시 07분 05초
제 목(Title): Re: [펌/한겨레] 김구 



한마디로 웃기는군요. ^^

>미국의 경우 대통령이 적국 지도자 암살 명령을 내리지 않는 다는 지침을
>오랬동안 지켜왔습니다.

가다피의 별장에 미사일을 퍼부어서 3살난 딸과 조카를 죽인게 바로 몇년
전입니다. 뭐 무조건 미국이 한 짓은 '암살'이 아니라고 정의하면 되겠군요.
'오랬동안' -> '오랫동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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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년 리비아의 두 도시 트리폴리와 벵하지를 미국이 폭격하여 카다피의 딸을
포함한 수백명의 사상자를 내었다고 합니다. 미국측의 주장은 이전 독일 
디스코장에서 일어난 폭발사건에서 7명의 미군이 사망했는데 리비아의 요원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었고 리비아는 인정하지 않았던 것으로 압니다. 레이건은 
카다피를 적국의 지도자가 아닌 테러리스트조직의 수장으로 보았던 셈이죠. 
기존의 지침(presidential directive)를 기술적으로는 위반하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었습니다. 차후 재판과정에서 나온 증거들은 리비아가 아닌 CIA와 
모사드 요원의 연계가 있었음을 드러내었습니다.
http://www.wsws.org/news/1998/aug1998/bomb1-a27.shtml

요즘들어 다시 "암살명령 금지 지침"을 번복하려는 움직임이 언론에 자주 
등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테러리스트와는 결코 협상하지 않는 다는 확고한
>방침을 갖고 있죠. 모두 효용성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현재 모든 카드패는 미국이 쥐고 있는데 무슨 효용성?
그들이 협상하기 싫으면 상대를 테러리스트라고 부르고
하고 싶으면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부르면 그만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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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살금지나 테러리스트와의 비협상 원칙은 전세계의 테러리스트+다수민중이 
선호하는 Public Enemy #1인 미국으로서  가장 효율적인 방침이었다고 저는 
주장하는 것이죠.


>전략적 효용성을 논하기 위해서는 전략의 주체는 과연 누구인가가 먼저
>논의되어야 할 것입니다.  소수의 노력으로 적에게 최대한의 피해를 입힐 수는
>있어도 우리편을 늘리고 다수 일반일(인)을 조직화하는 노력은 따로 들여야
>하는데 테러조직의 속성상 후자의 노력과의 양립은 대체로 불가능합니다.

테러리스트는 집안일도 안하는 사람들인줄 아는군요? ^^ 지금까지 쏟아져나온
수많은 자살특공대들 가족 부양만 해도 장난 아닐겁니다. 
----- 
???


>테러는 상대편으로 하여금 협상테이블로 나오게 하는 수단이 될 수 없습니다.
>흔히 상대방의 극단주의자들에게 힘을 모아주는 결과를 낳습니다. 샤론과
>부쉬가 실례죠.

호오. "데모 자주하면 군대가 일어나니 자중하라"논법을 여기서 볼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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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민중의 무장권을 흔들릴수 없는 원칙으로 옹호해왔습니다.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공권력에 대한 조직적 저항은 '반폭력의 
폭력'이라고 봅니다. 방어적 폭력이기도 하죠.


>흔히 테러리즘은 양쪽에게 극단적인 대응을 불가피하게 요구하는 상황을
>낳습니다. 상대방을 협상의 상대로 인정하지 않는 행위로 여겨지죠. 양쪽에서
>더이상 비생산적인 수단임을 경험을 통해 인정하고 보다 합리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세력이 등장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걸리죠. IRA의 변화와 영국의
>태도변화가 대표적인 사례죠.

뭔 소린지? IRA가 유화책으로 전환된지 2-3년도 안됐고 언제 또 강경책으로
복귀할지도 알 수 없는 일이올시다. 무엇보다도 과거 IRA가 극단적 테러단체란
말부터가 제정신 가진 사람이라면 결코 동의할 수 없는 소리지만... 
--- 
IRA가 테러전술을 채택해왔지만 신페인당의 정치적인 노력 역시 매우 오랜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이름만으로 따지자면 신페인당은 1905년에
생겨났습니다.


>정치적인 수단으로서는 '불가피성'이 전제되지 않는 한 큰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모든 정치행위가 "가능한 많은 수를 상대편에서 우리편으로, 또는
>중립적인 위치로 바꾸"는 '효용'을 요구한다는 점을 기억합시다.

멋대로 정치행위 정의하지 마세요. 1억명의 대중이 이쪽에 약간 호감을 갖는
것보다 1명이 화끈하게 지지해주는 게 훨씬 나은 경우가 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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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정의는 맑스주의 정치학 교과서에 나와 있습니다. '기억'하자고 얘기해서 
죄송합니다. '훨씬 나은 경우'가 언뜻 떠오르지 않는군요.
1억명의 약간의 호감을 갖는 대중을 의식화,조직화하고자 노력하는 
것이 1명의 화끈한 지지자보다 훨씬 나은 경우가 훨씬 더 흔합니다.


>폭력은 약자에게 불리한 게임의 룰입니다. 강자(미국과 이스라엘)의 테러행위
>역시 국제사회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약자에게 '도덕적
> 우위'의 상실은 매우 치명적입니다.
                         
국제사회가 미국이스라엘을 지지하건 안하건 그들이 신경이나 씁니까?  두번째
문장은 하품이 나와서 반박할 건덕지도 없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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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 씁니다. 두번째문장은 반박할 건덕지가 없는 문장이거든요. 80년대를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에게 '도덕적우위의 상실'은 자다가도 깨어나게
하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남한에서 유의미했던 세차레 정치의 변화는 세번의
학생의 죽음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데모에 반대하던 일반인들도 언론도 학생을
죽이는 정권을 좋아하지 않았던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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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길산에서 한마디 인용합니다.
"순박하고 착하기로는 소나 돼지가 제일이지. 도살장에 끌려갈때까지 주인이
어떻게 해줄 줄 알고 그저 따라가기만 할 뿐 도망가거나 대들 생각은 
안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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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제가 살고 있는 미국 남부의 흑인들은 대부분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입니다. 60년대 중후반에 시작된 그들의 불복종운동은 매우 성공적인 
것이었죠.

제가 10살에 불과했을 때 제가 살던 광주를 시민군이 장악했던 짧은 기간을
기억합니다.  

5월 16일 시내버스를 타고 도청옆 보이스카웃 건물에서 로프를 사러 
갔었던게 어린 소년의 첫 광주시내외출이었죠.
5월 24일 사촌 누나 형과 함께 도청앞에서 애국가를 부르던 기억이 납니다.
해방구가 된 광주는 평화와 공동체라는 이상이 현실화된 살아있는 역사적
증거로 남아 있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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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다리:

적아의 분별을 명확히 하기 시작하려는 시점에서 간혹 드러나는 개인들의
관념적 과격성은 이해해줄 만도 합니다. 그러한 인적자원들을 귀중히 여기고
장기적인 전망을 제공해줄 조직이 없다면 어떠한 '전략적 효용'을 이야기 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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