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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saram (Schultzson)
날 짜 (Date): 2004년 5월 15일 토요일 오후 12시 27분 02초
제 목(Title): Re: [펌/한겨레] 김구 


1. 백범의 말 가운데 

"독재 중에서 가장 무서운 독재는 어떤 주의, 즉 철학을 기초로 하는 
계급독재다. 공산당이 주장하는 소련식 민주주의란 것은 이러한 
독재정치 중에서 가장 철저한 것이어서, 독재정치의 모든 특징을 
극단으로 발휘하고 있다"
"일부 소위 좌익의 무리는 혈통의 조국을 부인하고 소위 사상의 조국을 
운위하며, 혈족의 동포를 무시하고 소위 사상의 동무와 프롤레타리아트의 
국제적 계급을 주장"

이것은 단순히 의견이 다르다기 보다는 공산주의자와는 공존이 어렵다는 
입장에 더 가깝다고 봅니다. 백범이 집권했을 때 이승만보다 정적에게 
더 관대할 것이라는 증거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습니다.
(고등학교 국어책에 나왔던 '나의 소원'에선 "(공산주의자들은)
미친놈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는 구절도 있었죠)

2.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은 신탁통치가 맞습니다. 사실 객관적으로 볼
때 워낙 강대국들의 의지가 확고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나왔건 
간에 남북분단은 피하기 힘든 입장이었죠. 다만 요즘 사학계에서 찬탁에
대한 긍정적인 입장이 자주 보이는 것은 지나간 역사에 대한 아쉬움 
이외에도 그동안 지나치게 한 목소리로 '당시 반탁만이 애국이었다'고 
떠들어댔던 친일파들의 주장에 대한 반작용의 의미가 다분히 있습니다.

3. 백범이 정치적인 영향력이 컸을 때에는 열혈반공주의자였다가 이승만
과의 경쟁에서 불리하게 되자 공산당과 협력관계로 돌아선 게 단순히 우연
이라고 보기는 너무나 공교롭습니다. 일반 실향민들이야 당장 남북분단이 
실감이 나지 않았겠지만 적어도 한 나라의 정권을 놓고 겨루던 정치 지배층들 
사이에는 당시의 국제 정세로 보아 남북이 분단될 거라는 것 쯤은 불을 보듯이 
알 수 있었을 겁니다. 만약 그조차도 예측을 못했다면 그 무능함이 너무 
큽니다.

4. 한가지 더 말하자면 건국초기의 정치테러 가운데 상당부분이 백범와 
관련이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습니다. 특히 고하 송진우의 암살에 
그가 관여했다는 증거는 너무 명백해서 미군정에서 거의 그를 체포하기 
직전까지 갔다고 합니다. 또한 건국초 그의 정치적 입장은 이승만보다 더욱 
우파였는데 그의 활동이 오히려 이승만의 입지만 강화시키자 그는 당황하여 
중도파로 입장을 바꾸었죠. 그런데 이것이 그를 따르던 극우파 행동대원들이 
심한 반발을 불러 일으켜 그의 입장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합니다. 사실 
안두희도 이전 백범의 심복 가운데 하나였죠. 그가 오랫만에 백범을 찾아오자 
그가 크게 기뻐하며 단독 면담을 허락했던 게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현직 육군 대위 한명이 다시 자기 편이 되었다고 기뻐하던 그의 모습에서 
몰락 직전 노정객의 안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5. 사료 조사 결과 백범에게서 정치전술과 기회주의를 구사하는 '정치꾼'의 
모습이 보인다면 그 자료를 발표하는 것이 좌익이건 우익이건 양심적인 
판단일 것입니다. 이건 어느 쪽에 유리한지 불리한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6. 그런 모든 점을 다 고려해도 백범은 존경할 만한 점이 많습니다. 다 
그만두고 일제 치하의 테러 활동 및 광복군 구성을 위한 노력만 보더라도 
해방 후 집권자가 될 자격이 충분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가 비판에서 성역이 될 필요는 없겠죠?

7. '나는 우리나라가 강대국이 되길 바라지 않으며 문화적으로 세계를 
이끌어가는 국가가 되길 바란다.' 백범이 했다는 참으로 멋진 말입니다.
혹시 어디서 인용되었는지 아시는 분 있나요? 
(저는 광고에서만 들어가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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