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2004년 1월 27일 화요일 오후 10시 17분 36초 제 목(Title): Re: 계속 이어지는 궁금증 팔레스타인 지방에 유태인들이 계속 살았느냐의 문제를 또 제기들 해주셨는데,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일정 수의 유태인들은 계속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 수는 계속 주변정세에 휘둘리며 들쭉날쭉했습니다. 또한, 중요한 것은 그러한 변동 요인을 살펴보면 유태인만 유달리 인구가 증감했다기 보다는 팔레스타인 지역 전체에 걸친 정주민 수의 증감 추세를 그대로 따라간 편입니다. 전란과 힘의 공백상태로 혼란이 가중되면 인구가 자연히 감소하고, 강력한 국가의 치세 속 에 안정을 되찾으면 인구가 다시 증가하고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미 유태인은 비잔틴 제국의 통치 시기에 결정적인 동/서유럽 및 북아프리카 로의 이주를 통해 팔레스타인 지방의 소수민족으로 전락해버렸습니다. 그러다 이슬람권 국가들이 융성하며 기독교권 국가들보다 완화된 차별정책 때문에 그 럭저럭 현상유지를 하며 살 수 있었죠. 허나 맘루크 왕조 시대에는 계속되는 십자군운동과 전란의 영향으로 팔레스타인 지역 자체가 황폐화됩니다. 지역이 엉망이 되고 살 터전이 없어지자 다시 먹고 살 길들을 찾아 이주가 활발히 벌 어지지만 이거야 뭐 팔레스타인에 거주하는 다른 아랍민족도 마찬가지 운명이 었습니다. 앉아서 전쟁에 시달리고 배 곯든지 어디론가 뜨던지의 선택이었죠. 그러다가 오스만투르크가 근동 일대를 장악하며 전성기를 구가하자 다시금 이 지역에는 평화가 찾아오고 질서가 회복됩니다. 이와 함께 다시 팔레스타인 지 역으로 인구유입이 이어졌고, 유태인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유태인은 어차 피 이집트와 북아프리카 지역에도 상당한 디아스포라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 에 팔레스타인이 안정만 된다면 인구 유입의 여력은 언제나 있었습니다. 다만 팔레스타인 지방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그렇게 종교색이 없이 동화된 사람들이 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좀 착각입니다. 팔레스타인 땅은 원래 상당히 척박하고 먹고살기 어려운데다가 배타적인 아랍인 지주들이 장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 세의 영화에 집착하는 사람들은 일찌감치 이주해버렸죠. 팔레스타인에 정주한 유태인들은 오히려 성지에 대한 집착이 강한 경건주의 정통파들이 많았습니다. 아무리 시련이 닥쳐도 고향은 지킨다....라든가 해외에 살다가도 죽음만은 성 지에서....하는 식으로 장년/노년이 되어 이주해온 사람들로 시오니즘 운동이 본격화되기 이전에 대략 1만 수준의 유태인이 팔레스타인에 있었던 겁니다. 허나 실은 시오니즘 운동 직전, 19세기 중반에는 이미 오스만투르크의 세력이 저물고 다시 근동이 소용돌이에 휩싸였기 때문에 팔레스타인은 다시 황폐해져 인구 지탱이 어려운 노릇이었습니다. 일부 유태인처럼 집착이 강한 소수파와 어디 땅을 버리고 갈 데 없는 배고픈 아랍인 등이 득시글거릴 뿐이었죠.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시오니즘 운동이 일어나 1880년 경부터 유태인의 유입이 가 속화된 것입니다. 고작 1만명 남짓한 기반에서 이후 30여년 간 10만명이 넘는 유태인들의 이민행렬이 이어집니다 -- 아랍인은 대략 50~60만 정도 살고 있었 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