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snuiwa (큰바우얼굴() 날 짜 (Date): 1996년05월01일(수) 13시01분48초 KST 제 목(Title): 정도전의 생애와 사상 (2) (2) 몽고간섭시대의 社會.文化변동 13세기 후반에서 14세기 중엽까지 몽고의 간섭 시기를 맞이하는 고 려는 비록 민족적인 수치와 치욕을 겪었고 정치적으로 불안하기는 했 지만, 國王을 수반으로 하는 文.武가 균형을 이루면서 官僚정치를 재정 비했고, 武臣執權時期의 私權的 지배를 탈피하여 얼마큼은 공권력을 회복하기도 했다. 물론 이 시대에도 權門世族이라는 고려 중기의 문벌귀족들도 있었 지만, 무신 집권기 이후로 하층사회에서 성장해 올라온 신흥계급이 더 욱 많았는데, 이들은 戰功을 세우거나 몽고어에 능숙, 혹은 학력이 뛰 어난 자들이 많았다. 이러한 사회 신분층의 이동이 활발한 모습은 이른 바 雜路出仕로 알려진 南班출신 중에 다수의 실력자가 나온 것에서도 알 수 있다. 또한 몽고간섭기 동안에 특이한 계급 구조상의 특징을 본다면, 良人 男子와 賤人女子(婢)간에 婢妾으로서의 혼인 관계가 활발해서 이 婢妾 所生 중에 유능한 인재들이 다수 나타났다는 점이다. 여기에 몽고인이 나 女眞人과의 혼혈과 중국에서 전란을 피해서 귀화해 온 중국관인들 도 적지 않다. 이러한 계급 구조의 특징과 국제적인 혼혈은 피의 존엄 성을 강조하던 귀족 지배 방식에 손상을 입히게 되었다. 한편, 무신집권시대 이후로 성행되었던 權力型 농장의 발달이 몽고 간섭시대에도 되풀이되고는 있었지만, 약탈보다는 합법적인 면을 가진 농장이 많았던 것도 이 시대의 특징이다. 또 관료들의 生計를 좀더 합 리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元宗代 이후로 祿科田制가 실시된 것이라든 가, 향촌에서 自力으로 토지를 개간하고 休閑法을 극복하는 등 농업 기술을 향상시켜 中小地主로 성장한 계층이 나타난 것도 이 시대의 밝 게 부각된 면이다. 이 시기의 文化는 또한 전대에 비해서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經世 的인 면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데. 특히 당시의 선진적인 지식인들은 지방 향리의 首席인 戶長의 후예 중에서 많이 배출되었다는 점과, 특 히 武臣執權時期의 武人의 횡포에 대한 반성으로 文人을 우대하는 정 책과 또 元나라와의 교류로 고려 중기부터 심화되던 性理學이 元代 性 理學의 자극을 받아 더욱 발전하게 되면서 지식계급이 성장한 것이 그 특징이다. 하지만 아직 이 性理學은 불교와 도교를 대치할 만한 哲學 體系와 종전 漢唐儒敎에 비해 더욱 民本的이고 自律的인 政治思想을 담고 있어 새로운 시대의 사회 이념 체제로서 나아갈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아직은 기존의 사상 체계를 완전히 대체시킬 정도 는 아니었기에 다분히 절충적인 성격을 띠게 되었다. 그래서 儒.佛 서 로 간의 상호 절충과 상호 조화를 추구하려는 입장이 두드러지게 나타 나고 있는 점도 하나의 특징이다. 몽고간섭시대의 또다른 변화라고 하면 그것은 中國 中心의 華夷觀 의 붕괴를 들 수 있다. 몽고의 中原지배는 中華의 우위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영향으로 中國의 賢人으로 조선의 王이 되었다고 하 는 箕子보다 더 오랜 민족의 뿌리로서 檀君을 인식했으며, 또한 이를 근거로 비로소 중국과 동등한 天孫國家를 자부하며 중국과 동등하게 생각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李承休의 {帝王韻記}(1287)이나 一然의 {三國遺事}(1281)을 들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