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2년 4월 26일 금요일 오전 02시 29분 47초 제 목(Title): Re: 가해국 시민들의 '작은 사죄'/ 한홍구 capture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kkokkodak) 날 짜 (Date): 2002년 4월 25일 목요일 오전 11시 04분 43초 제 목(Title): 가해국 시민들의 '작은 사죄'/ 한홍구 (출처: http://www.hani.co.kr/section-001005000/2002/04/001005000200204241908021.html) 가해국 시민들의 '작은 사죄'/ 한홍구 베트남 평화공원 기공식에 부쳐 24일 오전 9시 베트남 중부 푸옌성 투이호아현에서 한국-베트남 평화공원의 기공식이 열렸다. 1999년 9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이 <한겨레21>의 보도로 알려진 이래 초등학교 어린이들의 돼지저금통에서 일본군위안부로 끌려갔던 할머니들의 쌈짓돈까지 시민들의 성금 1억4천여만원이 답지했다. 이 귀중한 성금을 바탕으로 우리는 이날 평화공원의 첫 삽을 뜬 것이다. 베트남에서의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은 우리 민족은 한번도 다른 민족을 침범한 적이 없다던 신화를 믿고 있던 시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이 보도가 나온 직후 우리 사회는 노근리 사건의 보도로 인해 다시 한번 충격에 빠졌다. 우리 민족이 피해자가 된 노근리와 가해자가 된 베트남, 너무나 달라보이지만 그 본질은 동맹국 군대에 의해 주둔국 민간인이 학살당한 똑같은 사건이었다. 일본군 성노예 만행이나 노근리 사건을 비롯한 미군에 의한 민간인학살에 대해 우리는 분노의 목소리를 높여 진상규명과 사과와 배상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약 80여건에 총 9천여명이 죽음을 당했다는 한국군에 의한 베트남 민간인 학살 의혹에 대해서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우리가 일본과 미국에 대해 요구하는 과거청산의 방법은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문제이다. 베트남에는 미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을 기억하는 미라이 기념관이 있고 광주군 퇴촌면에는 일본군위안부이었던 할머니들을 위한 나눔의 집과 정신대 역사기념관이 있다. 그러나 이 소중한 기억의 공간은 가해국 정부나 시민들이 아니라 피해국 시민들이 세운 것이다. 반면 한겨레신문사가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세우는 한-베 평화공원과 베트남전 진실위원회가 공원 내에 건립을 준비 중인 평화역사기념관은 가해국 시민들이 사죄의 뜻을 담아 세운다는 점에서 매우 깊은 의미를 갖는다. 극단적인 반공주의, 군사주의, 국가주의의 지배를 받아 온 우리 사회에서는 전쟁의 상처를 어루만지려는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우리는 베트남을 외면했을 뿐 아니라, 머나먼 남쪽 나라의 정글 속에서 우리 청년들이 어떤 일을 겪었으며, 30여년 전의 그 일들이 이제는 초로의 나이에 접어든 그 때 그 젊은이들의 몸과 마음에 어떤 상처를 주었는지를 알려고 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총성이 멎은 지는 오래되었지만, 우리는 그 전쟁의 기억을 덮어 두었을 뿐 전쟁을 마무리하지 않았다. 베트남에 우리가 지으려는 평화공원과 평화역사기념관은 아름답게 만날 수도 있었던 아시아의 두 나라, 한국과 베트남 사이의 불행한 과거를 닫고 미래로 나아가려는 작은 시도이다. 한홍구(성공회대 교수/베트남전 진실위원회 집행위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