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kdycap (도영 ) 날 짜 (Date): 2002년 4월 21일 일요일 오후 09시 07분 58초 제 목(Title): Re: 고대의 삼조선과 북부여 기원전 108년경 한나라가 점령한 왕검성은 난하와 대릉하 사이에 있있었을 것입니다. 위만조선의 강역을 위와 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이견이 없지만 북부여기의 기록에는 한나라 군대가 위만조선을 점령한 다음 사군을 두기 위해 사방으로 침노한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소위말하는 한사군중 낙랑은 북부여의 강역안에 있어야 할 것인데 위의 글에서 언급했듯이 삼국사기 대무신왕때의 기사는 여전히 그 때까지 낙랑국이 존재했었음을 말하고 있으므로 기원전 100년년경의 한나라 군대는 낙랑군을 두고자 했으나 실재로 낙랑지역을 점령하지는 못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평양 인근에서 무더기로 발견된 후한시대의 유물 들을 보면 한나라가 분명 이 지역에 영향을 주었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다행히도 삼국사기에는 대무신왕때에 왕이 낙랑국을 정벌한 뒤 얼마 안 있어 한나라 군대가 침공하여 살수 이남을 점령하여 낙랑군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저의 생각으로는 기원전 108 전후로 한나라가 요동지역을 일시 점령하거나 어쩌면 한반도 북부에도 일시적으로 진출했을지도 모르겠으나 한 사군은 고구려로 대표되는 부여족들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허 축소되거나 거의 폐지되었지 않나 싶고, 그러던 것이 후한 광무제때 한나라가 군대를 보내어 살수이남을 절점령하였고 여기에 낙랑군을 세웠는데 313년 미천왕이 수복할때까지 낙랑군이 존재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즉 삼국사기에 나오는 낙랑군과 낙랑국은 같은 위치에 있는 것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을듯하고 이것과는 별개로 한사군의 낙랑은 다른게 아닌가 싶습니다. 어찌되었건 한사군문제는 고대사 최고의 미스테리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저의 입장으로서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일반서적들을 참고 하다보면 도대체 낙랑이 한반도에 있었는지 요동에 있었는지 아니면 요서에 있었는지 헷갈릴때가 많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