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kdycap (도영 ) 날 짜 (Date): 2002년 4월 18일 목요일 오후 07시 02분 06초 제 목(Title): 고대의 삼조선과 북부여 오랜만에 재야적인 글을 하나 올릴까 합니다. 단재선생님의 조선상고사의 삼조선 분립편에는 삼국시대 이전에 고조선의 삼조선에 관한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삼조선이 어디서 나오는지 그 출처를 대고 있지 않아 믿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내용을 대략 보면 다음과 같습니 다. 신조선, 불조선, 말조선 삼조선중에서 신조선이 대왕의 나라이고 불조선과 말조선은 제후국이 됩니다. 단재선생께서는 이들 신불말을 이두문으로 옮기면, 즉 우리나라 말에 맞게 옮기면 바로 '진 마 변' 이거나 '진 막 번' 이렇게 된 다고 합니다. 진 마 변 은 바로 우리가 흔히 삼한을 지칭할때 쓰는 말이라는 것을 금방 아실테고 문제는 진 막 번 이 세가지인데 한단고기를 읽어보신 분들은 익숙한 것일겁니다. 진조선, 번조선, 막조선중에서 진조선은 단군 즉 단제가 직접 통치하는 나라이 고 번조선과 막조선은 그 제후국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북부여기(기원전 238년) 이전의 기 록들은 믿지 않지만 위와 같은 삼조선에 관한 언급을 일단 받아들이기로 하겠습니다. 그리 고 제가 삼조선의 지정학적 위치에 관한 하나의 가정을 하겠습니다. 번조선은 오늘날의 북 경근처인 난하로부터 조양이 있는 대릉하까지를 그 영역으로 하고 진조선은 대릉하유역부터 오늘날의 요동지방을 그 강역으로 설정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막조선의 영역을 압록강유역 부터 평양일대로 가정하겠습니다. 제가 이렇게 삼조선의 강역을 잡은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북부여기에 나오는 위만이 연왕의 흉노망명때 북부여의 번조선으로 망명을 왔는데 그 때 위 만이 번조선을 강탈하고 위만조선을 세웠습니다. 위만조선의 강역에 대해서 오늘날 의견이 분분하지만 저는 그중에서 난하에서 대릉하근처까지를 위만조선의 강역으로 생각하기에 번 조선의 영역을 그대로 위만조선의 영역으로 가정하였고 막조선의 영역에 관해서는 삼국유사 기이편에 나오는 '평양은 곧 옛 마한이다'라는 구절을 빌어 마한에 관한 위의 단재선생님의 이두문 해석을 참고하여 마를 막으로 쓸 수 있겠구나 싶어서 막조선이 오늘날의 평양일대를 강역으로 포함하고 있다고 가정하였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하나 진조선의 강역은 막조선과 번조선의 사이가 되는 영역인 대릉하유역부터 요동지역으로 가정하였습니다. 조심해야 될 것은 막조선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삼국사기의 백제본기에 나오는 마한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삼국사기에는 간혹 요동등지에서 마한기병이 출몰하기도 해 매우 요상하지 만 여기에 대한 해석의 실마리는 어쩌면 삼조선중에서 막조선의 위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된다면 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위에서 설정한 가정아래에서의 얘기겠지만 말 입니다. 어찌되었건 이 삼조선이라는 것이 실제하였다면 아마도 북부여이전 즉 기원전 238 년 이전에 성립되었을 것입니다. 북부여기에는 막조선이나 진조선에 관한 언급이 없습니다. 번조선 왕이 멍청하게 위만을 받아들여 나라 잃고 그 무리들이 바다를 건너 도망하여 중마 한(저는 이 중마한이 백제본기의 마한이라고 생각합니다.)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여 기에 대해서 저 개인의 생각을 얘기한다면 진조선은 대왕의 나라로 바로 북부여국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에 진조선에 대한 언급은 없지만 여기에 관한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 문제라면 나머지 하나인 막조선은 도대체 왜 안나오냐인데? 여기서 가정을 하나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위에서 막조선의 위치를 평양일대와 압록강 사이라고 보았는데 고구려 본기 대 무신왕편에 한나라 광무제(기원후 20년쯤정도?)가 살수이남을 점령하고 낙랑군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기사 전에 고구려의 낙랑국 정벌에 관한 기사가 나옵니다. 지나가는 소리지만 그 유명한 호동왕자와 낙랑공주의 얘기도 이 때의 일이지요. 그런데 이 낙랑국에 대한 언급이 북부여기에 나옵니다. 한사군성립이전 즉 기원전 108년 이전에 기원전 1??년(?? 확실하지 않음)경에 낙랑왕 최리가 곡식 300섬을 바다를 건너와 북부여의 해성이라는 곳에 바침니다. 북부여의 위치가 대략 대릉하부터 요동일대라고 가정한다면 해성이라는 곳은 오늘날의 요동반도의 끝부분의 어느 지점일것인데 저는 여기서 바다를 건 널 수 있는 곳은 중국의 산동반도와 한반도의 평안도 지역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 산동반도로 생각하기에는 무슨 '삼국은 대륙에 있었다'와 같은 극재야적인 주장을 하지 않는 다음에야 피해야 할 것이고 당연히 한반도의 평양일대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즉 낙랑국은 한나라 광무제가 만든 낙랑군과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보면 분명 청천강 이남 에 있을 터이고 그리고 최리의 낙랑국이 한반도 북부 어느곳으로 생각한다면 답은 평양일대 가 낙랑국이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단재선생은 절대로 낙랑군이 한반도가 아니라고 주장 했지만 제 생각에는 낙랑군이나 낙랑국은 다른 명칭이지만 같은 곳에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이러한 것들을 설명하기 위해 지명의 동쪽 이동설을 들기도 했지만 일부 지명이 동쪽 으로 이동한 것은 동의하지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고구려의 위치나 백제의 위치 낙랑군 틀림없을 것이며 심지어 교과서에 나오는 한사군까지도 어쩌면 실재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 됩니다. 한사군에 대해서는 나중에 시간이 나면 따로 제 생각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어찌되었건 낙랑국의 위치가 위에 말한 것처럼 평양일대라면 바로 낙랑국이 막조선을 계승 했다고 보거나 아니면 막조선 쇠퇴후에 그 강역의 일부를 점하고 있었다고 보면 타당하다고 생각됩니다. 이상과 같이 고조선 시대에 분립되었던 삼조선은 역사의 격변기인 북부여시대에도 그대로 그 맥을 이어왔거나 다른 형태로 계승되었을 것입니다. 대략 삼조선 이후의 역사를 보자면 고조선 이전에 삼조선이 성립하였고 진조선이 대왕의 나 라이고 번조선과 막조선은 제후의 나라입니다. 이러던 것이 북부여 시대에 오는 동안 진조선인 단군조선은 종실이 대신인 해모수의 반란으로 북부여로 이름을 바꾸게 되고 번조선은 여전히 북부여의 제후국으로 남았고 긴 세월동안 막조선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낙랑국을 위시한 세력들로 분열되었을 것이라 짐작됩니다. 그러던 것이 중국 진나라 통일과정에서 연왕 노관이 흉노로 망명할 때 위만도 번조선에 의탁하여 땅을 받았고 나중에 위만이 번조선을 찬탈하여 위만 조선을 세웁니다. 삼조선의 하나인 번조선이 이렇게 멸망하자 번조선의 유민들은 바다를 건너 한반도로 넘어가 중마한(제 생각에는 마한)을 세웁니다. 번조선의 정통을 마한이 이었 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번조선을 멸망시킨 위만조선은 진조선 즉 고조선을 이은 북부여와 대립을 하며 때로는 전쟁을 치르기도 합니다. 그더다가 기원전 108년에 한나라 무제때 한나라 군대가 위만조선을 멸망시키고 한사군을 두고자 하여 북부여의 사방으로 침노합니다. 낙랑국이 한참후인 고구려 대무신왕때도 존재한 것을 보면 이 때 한나라 군대 가 한반도까지는 들어가지 못한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던 이 혼란기에 졸본에서 일어난 동명왕 고두막한(시중의 한단고기에는 해석이 잘못되어 고두막한이 동명왕 의 부하정도로 나오는데 동일인임.)이 의병을 이끌고 곳곳에서 한나라군을 연파합니다. 동명 왕은 고주몽과 더불어 기원전200년과 서기원년사이의 부여족 최대의 영웅인 셈이죠. 어쨌건 여기서도 위에 제가 가정한 삼조선의 위치를 그대로 받아들이면 졸본의 위치를 고구려의 발 생지인 국내성 인근으로 보는 것이 너무도 자연스럽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단고기의 주석에는 졸본이 몽골내지는 영 이상한 장소로 표기되었는데 제 생각에는 모두 틀렸고 졸본 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고구려의 발생지인 바로 그 곳 오늘날의 집안근처일 것입니다. 지도를 펴놓고 요동일대를 점령한 한나라군을 몰아내기 위해 군대가 나올 수 있는 곳을 선정해보면 졸본은 송화강 중류지역이거나 아니면 국내성 근처일 것입니다. 졸본은 즉 고구 려를 나타내므로 졸본은 바로 국내성이 있는 그 영역 일대일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고구려 족이 배출한 대영웅 동명왕은 한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북부여의 단제를 제후로 격하시켜 분능(가섭원)으로 보냅니다. 국상 아란불의 말을 쫓아 해부루왕은 가섭원으로 가서 동부여를 시작하고 졸본을 중심으로 북부여가 계승됩니다. 제가 늘상 말했던 이부여 시대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대소왕의 부여가 바로 위의 동부여를 지칭하고 고구려는 바로 동명왕이 계승한 북부여를 일컫습니다. 어찌되었건 이후 동부여의 황손 고모수(삼국사기나 광개토대왕비에는 천제의 아들 해모수)와 화백의 딸 유화가 응응해서 고주몽이 분능에서 태어남니다. 그런데 이 고주몽이 태어난 시기에 동부여왕은 자식이 없어서 금와라는 양자를 들입니다. 금와가 태자가 되면서 상대적으로 왕권에 가까웠던 혈통인 고주몽이 아마 권력 싸움에서 밀려 목숨을 구하기 위해 졸본으로 도망갔던 것 같습니다. 물론 여기서 권력다툼 운운하는 것은 순전히 저의 상상입니다만 어찌되었건 졸본부여로 즉 동명왕이 계승한 북부 여로 도망온 주몽이 비범한 것을 본 북부여왕이 아들도 없고 해서 주몽에게 딸(소서노)을 주었고 그가 죽자 주몽이 즉위하여 고구려를 건국합니다. 이후 역사의 전개는 삼국사기 에 나오는 것과 같겠습니다만 어찌되었건 삼국사기 이전에는 아마 이랬을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요? 한마디 더하면 고구려에서는 시조를 동명성왕이라고 칭하고 광개토대왕비에도 역시 추모(이 두라고 본다면 우리말로 주몽이 아닐까요?)왕을 동명성왕으로 기록하는데 조금혼란스럽 기는 하지만 분명 동명왕 고두막한과 고주몽은 다른 사람입니다. 고주몽이 고구려를 세우고 비류, 온조가 왕따당해서 남하해서 백제를 건국하는데 백제본기에는 고주몽과 결혼전에 소 서노가 이미 아들둘 딸린 과부였고 그 아들인 온조가 백제를 세웠다고 하는 견해가 보입 니다. 백제가 맨날 고구려와 죽기살기로 싸우면서도 시조조인 동명조에는 죽으라고 제사 를 지내는 것을 보면 백제의 혈통이 고주몽의 혈통이 아니라 바로 동명왕 고두막한의 혈통 이어서 그랬던 것은 아닐까요? 고구려족들에게는 한나라의 외적을 물리친 위대한 왕 동명왕 이 있었기 때문에 고주몽의 건국은 결국 이 동명왕을 계승한것이나 마찬가지라서 고주몽 역 시 동명성왕이라고 불리었던 것은 아닐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