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reumi (구르미) 날 짜 (Date): 2002년 3월 31일 일요일 오전 07시 10분 29초 제 목(Title): [펌] 아리랑 그와 만난 건 연안에서였다. 1937년 초여름, 잠시 연안에 체류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문득 노신도서관의의 영문서적 열람자 명부를 훑어 보았다. 총체적으로 열람된 서적은 극히 적었다. 주로 레닌의「공산주의 좌익소아병」과 타닌과 요한의「일본이 만약 싸우게 된다면」따위였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한 열람자가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그 사람은 한해 여름동안 여러 부문에 걸쳐 무려 수십권의 서적과 잡지들을 대출하고 있었다. 이내 야릇한 호기심에 사로잡혀 대출사서에게 물었다. "도대체 어떤 분이길래 닥치는대로 탐독합니까? 당시 난 줄곧 영어로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찾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데 '혹시 이 사람이라면 가능할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작용하고 있었다. "이 분은 중화소비에트에 파견된 조선인 대표입니다. 현재는 항일군정대학에서 일본경제학 및 물리·화학을 가르치고요." "어떻게 하면 이 분을 만날 수 있을까요?" "외교부로 찾아가 보십시오." 그 즉시 편지를 써서 인편으로 보냈다. '언제쯤이면 만나 조선정세에 대해 서로 토론할 수 있겠는가'를 물어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답장이 없었다. 조바심이 생겨 재차 편지를 띄웠다. 그래도 회답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이분은 극비의 대표입니다. 아마도 이런 연유로 당신을 만나지 않으려는 모양입니다." 기다림에 지친 나를 딱하게 여겨 주변에서 위로해 준 말이다. "아! 그렇군요." 난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이번 여름엔 조선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말구나'하고 버렸다. 그후 1주일 쯤 지났을까? 호위병이 사무실에 급히 들어와서 웬 낯선 자가 면회를 청한다고 일러주었다. "그 분을 여기로 안내하십시오." 담장에 둘러싸인 초대소 건물 안에 자리잡은 사무실은 남색 인조견을 문에 드리워 출입문을 대체하고 있었는데, 학자인 듯한 뼈마디가 앙상하고 여윈 손길이 그 휘장에 살짝 젖히고 들어왔다. 순간 눈앞엔 세인의 이목을 끌만한 후리후리한 키의 사내가 실내의 광선 속으로 나타났다. 그는 태연자약한 자태로 정중하게 허리는 굽혀 인사했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서 내 얼굴을 조용히 응시하는 것이 아닌가? 비가 억수라고 퍼붓는 날씨여서 창호지를 바른 창문으로는 충분한 광선이 들어오지 않아 컴컴했지만, 선명한 얼굴모습이 도무지 중국인 같진 않았다. 어찌보면 거의 에스퍄냐인 같기도 했다. '혹시 구라파인인가' 란 생각도 들었다. "제게 편지를 보내신 분이 혹시 당신입니까?" 그는 영어로 물어왔다. "네 그렇습니다만…. 그럼 당신은 제가 진작부터 뵙고 싶었던 그 조선인 대표분이십니까?" "여기 조선에 관한 자료를 조금 드리려고 가져왔습니다." 그는 담담하게 말했다. 붙임 붙임이 그다지 좋지 않은 인품인 듯, 번거롭고 귀찮은 개인신상 따위는 묻지 말기를 바라는 눈치였다. 내가 펜을 꺼내고 호위병이 촛불을 켠 다음에야 비로소 우린 마주앉을 수 있었다. 1시간쯤 지났을까? 통계자료를 옮기던 내 손이 경련을 일으키고 말았다. 바깥날씨는 몹시 추웠다. 이 산악 속에 있는 중화소비에크 수뇌부는 중국 관내와 내몽골 그리고 만주와의 지경을 이룬 만리장성의 먼 서북성체에서 50마일밖에 떨어져 있지 않는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호위병이 찻잔 둘과 김이 모락모락 피는 차관을 들고 들어왔다. 이즈음 이 조선인이야말로 '반란자형의 인물'이라고 단정을 내리고 있던 터였다. 위험한 지하혁명운동을 계속하면서 살아온 망명자인 그는 소박하고 침착했다. 또 우울하면서도 자제력과 민감성과 경각심을 겸비한 자였다. 표정이 풍부한, 수척한 얼굴엔 감옥생활이 엮어낸 창백함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총명하고 영채로운 눈매는 솔직하고 아량있는 풍모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에 퍽 고무적인 인상을 받았다. "작년 여름 거의 조선과 만주에서 보냈습니다." 이렇게 내가 먼저 운을 뗐다. "조선에 간 까닭은 금강산도 여행할 겸, 조선정세를 알아보자는 취지에서였죠. 소득이 그다지 크진 않았지만, 등산만은 실컷 했어요. 금강산 제일봉 꼭대기에서 몇해만이라는 큰 태풍을 만났더랬죠, 다리도, 오솔길도, 거의 망가져 도처에서 급류를 건넬 형편이었으나, 다행히 조선인 가이드가 무사히 하산할 수 있도록 도와줬어요" "그랬죠. 그때 조선에선 홍수로 큰 수재를 입었었죠." "그후 저는 한강다리 위에서 홍수의 참상을 목격했어요. 닭·돼지·소, 심지어 집까지 탁류에 휘감겨 마구 떠내려가고 있었죠· "자살은 식민지 인민이 요구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존엄의 한 유형이지만, 이마저도 선택할 자유가 없답니다. 방금 말씀하신 경성의 그 다리에 일본인은 언제부턴가 팻말을 세워놓았는데, 거기엔 <5분간만 기다리시오>라고 씌여져 있답니다. 자살을 결심한 애기어머니가 먼저 애기를 강물에 던지고, 그 뒤를 잇는 일이 흔하니깐요. 그런데 그걸 통제하는 경찰관이 있어 혼자 거기에 와서 수심에 잠겨 강물을 하염없이 굽어보는 사람들은 감시하고 제지한답니다. 아마도 그들은 이걸 우리 '조선인에게 베풀어주는 친절과 배려의 혜택'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중국의 안동부근 압록강도 사람들이 자살하기에 좋은 곳인데, 자살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대륙쪽으로 망명하는 수밖에 없죠." "하지만 전 자기의 권리를 수호하기 위해 투쟁하지 않고 자살을 택하는 그런 백성들에 대해서 호감을 가질 수 없는데요?" 하고 난 무뚝뚝하게 반대의사를 표명했다. "조선인의 온순하고 순종하는 그런 참을성이야말로 정도를 지나칠 만큼이 아닐까요? 전 그 사람들이 어쩐지 자기네의 그 아름다운 풍경과 같이 목가적으로 비춰지는구먼요." "그건 오산입니다. 1910년 이래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타격을 주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습니다. 말하자면 긴 얘기입니다. 아직 반도의 정권을 뒤엎지 못하고 있지만, 줄곧 만주에서 무력투쟁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수천 수만명이 투옥되고 사형당하고 있습니다,. 감옥은 언제나 가득차 있고요. 조선인은 절대 순종하고 있는 게 아닙니다.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며 만반의 준비를 할 따름입니다. 조선인은 본래 온순하고 참을성 있는 백성입니다. 그러나 하도 오랫동안 모진 고통을 받아왔던 탓에 참을성 강한 사내의 분노처럼 격렬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온순한 물소를 조심하라>고 할 만큼…." "그럴지도 모르죠. 미국속담에도 <참을성 있는 사나이가 화낼 때 조심하라>는 말이 있답니다." "동방에서 조선인은 성미가 과격하기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그래서 툭하면 말다툼을 하고 싸웁니다. 이처럼 자존심이 강하고 민감합니다. 또한 즉시 복수를 합니다 좀처럼 남을 용서하지 않습니다. 부정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남에게 굴욕을 당하면 가슴에 앙심을 품고 항상 잊지 않습니다. 조선인은 누구나가 원수와 벗을 함께 가지고 살죠. 일본인은 우리가 자기네와 너무도 비슷한 까닭에 우리 조선인을 매우 무서워하고 있습니다. 우린 일본인과 중국인의 중간에 끼어 있습니다. 반도의 백성으로서 절반은 섬의 백성이며, 절반은 대륙의 백성입니다. 또한 산악의 백성이기도 하죠." "일본은 조선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그렇고 말고요. 일본은 언제나 조선 때문에 애간장을 태우고 있죠. 조선에는 지금 첩자가 우글거리고 있습니다. 놈들은 그 어떤 불만이나 반역의 사소한 징조라도 놓칠세라, 경계하면서 동정을 살피죠, 전 가끔 '조선으로 보내는 편지는 한 통도 빠짐없이 검열하고 있지 않는가.' 의구심을 품을 때가 있습니다. 일본은 조선에서 와전한 비밀정보망과 특무대를 양성해 왔습니다. 사방팔방에서 그들의 점령군으로써 조선을 물샐 틈없이 포위하기 전엔 일본인이 마음놓고 편히 지낼 수 없을 테니까요. 하지만 지금은 이전처럼 군화발로 조선의 산간벽지까지 무자비하게 짓밟지 못합니다. 이젠 옛날처럼 마구 착취하진 못합니다. 이게 바로 지금 저들이 무력으로 만주와 화북을 점령하는 이유중 하나입니다. 이는 또한 일본이 새로운 식민지를 구하면서 어느 정도 조선에 대한 압박을 들추지 않으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치는 불교도가 아니라도 가히 이해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지금 일본의 지배계급에게는 또 다른 골칫거리가 있습니다. 조선과 일본 양국민의 공통적 이해관계와 지리적 관계는 운운할 나위 없이 밀접합니다. 이는 일본의 통치계급에게 한시라도 시름을 놓게 할 여지를 주지 않는 절박한 문제로서, 이로 인해 안절부절하고 있습니다. 조선인은 일본혁명의 중요한 동맹자입니다. 일본은 자국내부의 내리 눌려 있는 압력이 팽창돼 이게 조선에서 축적되고 있는 압력과 제휴하기 전에 먼저 손을 써서 군대를 중국과 몽골 전지역에 풀어놓는 군사적 모험을 감행할 겁니다." "하지만 조선에선 아무 사건도 일어나질 않습니까?" "지금은 어떤 사건도 일으킬 필요가 없습니다. 역사는 필연적으로 적절한 시기를 기다리는 법입니다. 이제 그 시기가 닥쳐오면 여러 사태가 다발적으로 발생할 겁니다. 그리 머잖아 말입니다. 세상에는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여러 자그마한 일들이 바야흐로 조선에서 진척되고 있습니다. 만일 제가 반도에서 입수되는 뉴스를 전혀 살펴 볼 수 없게 되는 상황에 이르면 전 실망하고 말 겁니다. 하지만 일본은 조선으로부터 아무런 뉴스도 새나가지 못하게 엄밀히 봉쇄하고 있습니다. 이 점에 대해 느끼는 바가 없습니까?" "느끼고 있고 말고요. 조선은 실로 봉쇄된 나라죠. 조선에 머문 동안 마치도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밀봉 속에서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선교사들은 입을 꾹 다물고 아무 말도 해 주지 않았고요. 편지라는 편지는 모조리 뜯긴 채 검열 당했죠. 조선인이 참석하는 모임엔 어김없이 미행자가 뒤따르고 있다는 말을 들었죠. 전 조선에 관한 책을 1권도 구하지 못했어요. 여행을 떠나긴 전엔 조선에 관한 책이라면 눈에 띄는 대로 무엇이나 다 읽어보려고 생각했더랬죠. 그런데 북경에서 겨우 3권을 살 수 있었을 뿐이었죠. 그 책에서조차 아무런 지식을 얻지 못했어요. 출판사의 도서목록도 찾아보았지만, 현실정치와 경제에 대해서 쓴 책은 1권도 없었어요. 그런 정황에서 실망하고 말았다니까요." "그러실 겁니다. 저도 조선에 대한 책이라면 다 읽어보았지만,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다소 진솔하게 서술한 책이라곤 1권도 없었습니다. 다만 그 가운데 읽어 볼만한 책이 제겐 대여섯권 있긴 합니다만…." "그러니까 일본과 조선의 정세에 대해서 제게 모조리 말씀해 주실 의무가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제가 어떻게 정세를 알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까?" "그 점에 대해서 동감합니다. 제 힘이 자라는 데까지 협력해 드리죠 조선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를 전세계에 널리 알리는 건 우리 조선인에게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일이니까요. 짬나실 때 편지를 보내주시면 꼭 찾아오겠습니다." 사의를 표하고 이튿날 오후에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조선은 여러 면에서 극동에서 제일 아름다운 나라이다. 날카로운 윤곽을 이룬 산과 물살이 세차고 맑은 강, 비에 씻긴 듯한 청신한 기상과 푸른 정기가 넘쳐흐르는 수려한 산수, 이렇듯 조선은 명실 상부한 금수강산이다. 그건 어딘가 일본을 상기시키는 데가 있다. 하지만 축도로서가 아니라, 큰 규모로 확대시킨 관찰에서 받은 인상이다. 풍경은 소박하면서도 구릉과 계곡으로서, 극적인 정취가 한결 더 해주고 있다. 볏짚이엉을 덮은 아담한 초가들이 고대희랍의 아카디아촌장의 우아한 풍치를 방불케 하며, 우불꾸불한 골목길 양편에 오붓이 자리잡고 들어앉아 자못 목가적인 정취를 자아낸다. 조약돌이 반짝이는 시냇가엔 시골아낙네들과 처녀들이 부지런히 빨래를 하면서 삼베옷을 백설같이 희게 빤다. 진정코 이상주의와 순도자의 민족이 아니고서야 제 아무리 결백을 사랑하고 청결을 위해서위해서라 한들, 그렇게 고되고 지치는 노동에 견뎌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화려하며 그림 엽서처럼 약간 인공이 가해진 것이라 한다면, 조선을 어디까지나 순수하고 자연스럽다. 일본은 음향의 나라이다. 게다 끄는 소리, 토막토막 끊어지는 쟁쟁한 말소리, 오가는 교통수단의 소음, 창문이나 출입구의 미닫이를 끊임없이 여닫는 소리, 자그마한 가구들을 이리저리 옮겨놓는 소리 등등. 반면 조선을 조용하고 부드럽게 움직이고 있다. 머리를 끄떡거리고 허리를 굽실거리는 지루한 인사 따위 하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부자연스럽거나 구속되는 데가 없으며 태평스럽게 보인다. 조선여인들은 어여쁘고 수줍고 정숙하다. 흰 저고리에 나불나불 흐느적거리는 하늘색 치마를 허릿춤에 높즈막히 받쳐입고, 머리를 성모 마리아식으로 빤빤하게 빗어넘겨 낭자를 트는 식으로 수수하게 몸단장을 한다. 조선인은 극동에서 용모가 제일 잘 생긴 민족이라고 난 장담한다. 키가 크고 신경이 굵고 체력이 강하며 사지가 균형 잡혀있다. 이로 말미암아 우수한 많은 운동선수들을 배출하고 있다. 조선에 머물 대 손기정이란 청년이 베를린 올림픽의 마라톤경기에서 우승했다는 뉴스를 들었다. 조선인을 매우 흥분한 채 기쁨에 겨워 이 소식을 도처에 전파했다. 그런데 일본측에서는 모든 신물들에 엉터리 성명서를 냈다. 나아가 일본에선 일본인의 승리로서 널리 보도되었다. "대체 이 청년은 조선인입니까, 일본인입니까? 호텔 회계실 사무원에게 물었다. "그야 물론 조선인이죠." 일본인 사무원은 히죽거리면서 목소리를 낮췄다. "사실대로 발표하면 콧대가 높아져 우쭐댈 게 아닙니까? 자칫 껄끄러운 사태를 야기할 지도 모르죠. 경축행사로 소동이라도 일으키는 날이며 시끄러울 테니까요." 대개 조선인의 얼굴은 매우 아름답다. 옆얼굴 곡선은 굵고도 선명하다. 얼굴생김새는 흔히 일본인과 조선인의 특징이 고루 섞여 있다. 이로 인해 일본이나 중국의 영화계에서 명성을 얻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무성영화시대에 동양인으로 미국관객의 인기를 끈, 유일한 조선인 배우였던 멋진 고수머리의 하야까와 유끼구니를 회상하게 된다. 지금 헐리웃에 있는 조선인 배우 안휘립이야말로 가장 전형적인 용모를 지닌 사람이라 해야 할 것이다. 중국에서 제일 인기를 끄는 배우 김찬(본명 김영임)은 원래 조선인인데, 뉴욕에서 공개된 영화「검은 매미」에서 주역을 맡고 있다. 여성은 섬세하고 우아하다. 그들 가운데는 선녀와 같은 성질을 지닌 실로 아름다운 여성들이 흔하다. 그런데 다른 종족에게 비해 이처럼 아름답고 총명하며 탁월해 보이는 민족이 외견으로 볼품없고 왜소한 일본인에게 굴복 당하는 걸 볼 때 어쩐지 생물학적 부조화를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땅딸막한 키에 몸뚱이가 앙바라지고 안짱다리인 한 일본인 관리가 허리에 찬 장감에 걸채여 엎어질 듯하면서, 조선인 몇 사람에게 오만한 태도로 명령하는 광경을 지켜보다가 동반자인 선교사에게 물었다. "이런 기묘한 현상이 어째서 일어납니까?" "열등감이 우월감으로 변했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겠죠." 라고 선교사는 대답했다. "그렇지만 조선인은 정령 우매해서 그런가 봐요" "아닙니다. 일본인보다 더 총명합니다. 다만 일본인이 우연히 군비확장에 먼저 눈을 돌려 점령했을 따름이죠." 조선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사들은 진심으로 조선인을 사랑하며 그들을 칭찬했다. 이곳 선교사들에게는 일본과 중국의 전도사업에서 나타나고 있는 것 같은 민족문제의 분규 따윈 거의 없는 듯 했다. 김산- 이 이름은 그가 가진 대여섯가지 별명 가운데 하나이다. 그는 다음날 오후 약속한 시간에 찾아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에도 왔다. 그에게 조선에 대한 많이 캐물었다. 일본에 대해서도 다방면으로 질문했다. 그러면서 퍽 오랫동안 의논했다. 처음엔 2-3일로 끝나리라 생각했는데 정작 그렇지 못했다. 내 자신이 점점 문제를 깊이 파고들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아시겠지만…." 하고 난 스스로 다시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실 개인적으로 조선에 대해서 흥미를 가진 건 결코 아닙니다. 그렇지만 정황을 정확히 파악하기를 절실히 바랩니다. 그건 극동의 일반적인 배경을 명백히 알아내기 위해서죠. 그런데 제 시간과 정력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이 자료 전부를 '어떻게 하면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겠는가'가 제 관심사입니다. 제가 정말 흥미를 갖고 있는 건 작금의 직접적인 중대한 일, 역사를 창조하고 있는 적극적인 운동일 따름이죠." "오늘날 세계조류는 그 변화·발전이 너무도 빨라서 다른 걸 미처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그런 만큼 전 이번에 고생을 감수하면서 막무가내로 중화소비에트운동에 대해 다소나마 알고자 여기까지 왔습니다. 가능한 한 빨리 이 운동에 대한 책을 출판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이 방면의 자료를 수집하여 정리하는데 힘을 쏟지 않으면 안 되므로, 당신과의 대담은 내일로써 끝맺으려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숱한 노트뭉치 속에 묻혀 길을 잃고 헤매는 고아신세가 돼버릴 테니까요." 그는 다소 불쾌한 듯 얼굴을 붉혔다. "물론 그렇습니다. 전 지금까지 줄곧 조선보다 중국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이 때문에 흔히 조선인에게서 신의를 저버린 사람으로 몰리곤 했습니다. 사실 1925년 이래로 중국혁명을 위하여 결사적으로 전선에 참가했고, 지하운동을 계속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 극동에서 대개 전쟁이 일어나기만 하면, 조선은 곧 전략요충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불행한 사태는 오래지 않아 또 발생하게 될 겁니다. 일본의 노동계급과 조선의 노동계급간의 밀접한 관계, 조선의 노동계급과 만주의 유격운동간의 밀접한 관계로 인해 머잖아 조선혁명이 극동에서의 중요한 분수령을 이루게 될 겁니다. 지금 일본 국내에는 30만명 이상의 조선인 노동자가 있습니다." "저 자신은 전쟁이 발발할 경우 곧장 만주로 가서 조선항일빨치산의 지도사업을 담당할 작정입니다. 저의 제일 친한 친구가 지금 만주에서 제 1방면군의 1개 사단을 이끄는데, 제게 수 차례 편지를 띄워 거리에 오라고 합니다. 그 사단은 7.000명의 조선인으로 편성되어 있습니다." 괴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우린 물론 그런 것들을 무엇이든 논하지 않으면 안될 겁니다. 그렇지만 전 조선에만 흥미를 너무 가지는데 대해 두려움을 느낍니다.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언제나 진 송사라든가 억압받고 있는 소수인이라든가 하는 문제에 마음이 끌리고 있어요. 그래서 억압받고 있는 소수인을 그 냄새로써 대뜸 알아내는 거죠. 여기서 당신을 슬쩍 발견해낸 것도 그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이런 생각엔 잘못이 없는 것 같아요. 비록 병적인 흥미라고 하기까지엔 이르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건 아주 비과학적인 것만은 사실이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이런 일에 다시는 주의를 돌리지 않기로 굳게 결심하는 거예요. 그다지 중요치 않은 문제에 정력을 기울이는 폐단이 있게되니깐 말입니다. 지금의 세계는 이런 문제투성입니다." "다수인은 그다지 구원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소수인에 대한 관심과 원조가 필요하죠. 어쨌든 조선은 진 송사가 아닙니까?" "네! 그건 저도 알고 있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하나의 '억압받고 있는 다수인'이 더 제 마음을 사로잡아요 그건 중국의 수많은 환자죠. 하지만 억압받고 있는 다수인이 억압받고 있는 소수인만큼은 동정 받지 못한다는 건 저도 인정하는 바입니다. 다수인은 손을 떼고 물러서지 않고 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니까요. 아무튼 내일 또 만나기로 합시다." 그 이튿날 노구교사건의 급보가 전해왔다. 7월 7일의 연안은 흥분과 억측으로 들 끓었다. 드디어 중일전쟁이 폭발되었다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아직도 타협과 평화의 여지가 있다는 것일까? 김산이 왔기에 의견을 들었다. "전쟁은 불가피합니다.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시작되지 않으면 이 다음 사건으로, 이 다음 사건으로 시작되지 않으면, 또 다음 사건으로 꼭 시작되고야 말 겁니다. 일본에는 속도가 느릴 경제적 제국주의의 계획을 실행할 만한 잉여자본이 없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군대에 의존해서 도적전술과 철저한 군사적·정치적 약탈을 감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겁니다. 일본은 경제적에서 너무 약하기 때문에 중국과의 '경제적 제휴'를 할 방법이 없습니다. 일본이 먼저 중국의 힘을 꺾어 놓지 않고선 중국에 대한 착취를 안전하게 시도할 수 없다는 논리가 바로 여기에 있는 거죠." "중일전쟁의 결과를 어떻게 보십니까?" "두 가지중 하나일 겁니다. 일본이 '중국대륙을 완전 점령하고 대승리를 획득하느냐', 아니면 '모든 걸 상실하고 훼멸당하느냐'. 그들이 화북에서 아주 적은 규모로 군사적 모험을 감행한다면, 그건 다만 중국을 각성시킬 따름에 지나지 않을 겁니다. 이럴 경우 대중운동만 일으켜 삽시간에 일본을 격류로 몰아놓고 말 겁니다. 이를 알고 있는 일본군은 중국이 거대한 병력과 물량공세를 펴기 전에 큰 도박을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만일 일본이 이 전쟁에서 지면, 국내에서 혁명이 일어날 건 자명한 일입니다. 그럴 경우 일본은 중국·조선과 손잡고 강대한 민주혁명의 연합체에 가담할 겁니다. 그리하여 세계정치역량의 중심이 동양으로 옮겨질 겁니다. 소비에트동맹을 전략상의 축으로 한 채 말입니다. 그렇게 되리라는 것쯤은 영국에서 더 잘 알고 있으니까요." 그날 오후 장시간 전쟁가능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곧장 만주로 달려가실 것 같군요." 그와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후 며칠동안 눈코 뜰새없이 바쁘게 보냈다. 그러나 마음 한가운데서 끊임없이 이 조선인이 나에게 건네준 문제를 반복적으로 사색하고 있었다. 아직 내겐 중국에 대한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수두룩했다. 연안은 귀중한 정보들로 가득했지만, 이 '새로운 주제가 극히 중요하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김산이란 이 인물이 자못 독특한 인물이라는 것, '이런 인물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귀한 기회가 결코 두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명백한 일이었다. 그는 근래 7년동안 동양에서 만난 가장 매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그해 여름동안 적잖게 고생하면서, 원고를 쓰는 손에 오는 심한 경련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대략 25명에 달하는 혁명가의 자전을 쓰고 있었는데, 김산은 내가 만난 혁명가중에서도 좀 체로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성을 구비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런 특성을 분석해 낼 수가 없었으나, 오래지 않아 '그의 특성을 단정하는게 무엇인가'를 알았다. 그는 투철한 의식과 두려움을 모르는 자주성과 완전한 신심을 가지고 있었다. 견해는 명철하고, 주장은 단정적이었다. 그건 분명 모든게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주도 면밀한 사고를 거친 견해였고, 사려 깊은 추리를 가한 후 도출해낸 주장이었다. 그는 추수자로서가 아니라 지도자로서 사물을 관찰하고 문제를 사고하고 있었다. 조선혁명의 중요한 영도자인 만큼,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표면적으로는 거동이 온화하고 예절이 바르며 경건하여 은거생활을 하는 사람 같았지만, 내면세계에는 거대한 위력이 잠재하고 있었다. 결코 무해한 인물이 아니었다. 충실하고 헌신적인 나의 벗이 될지도 적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부식당하거나 타락되는 일도 없거니와 도피하는 일도 하지 않는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과 조선의 현대사 원형을 창조해낸, 대비극·대재난의 백열속에서 단련되고 형성된 사내였다. 뿐만 아니라 시련을 이겨낸 의지와 결의로 강철같은 도구로써 뿐만 아니라, 감각과 지각을 구비한 인간으로서 준엄한 시련 속에서 출현된 사내기도 했다. 그래서 '이 인물에 대해 더 많은 걸 알아낸 기회를 절대 놓쳐선 안 되겠다;고 결심했다. 문제는 내가 어떻게 하면 이 초연하고 푸접스런 사람에게서 '신임을 얻을 수 있겠는가'란 점이었다. 그런데 그 자신으로부터 자기 정황을 스스로 고백 해 줄 가망은 없었다. 사실상 그러한 활동을 하고 있는 혁명가가 자기 경력을 이야기할 자유를 갖고 있는 일은 좀체로 없다. 내 자신 또한 이에 대해 질문하는 걸 퍽이나 자제하고 있었다. 그건 지하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비밀을 소홀히 취급하면 그들의 생사를 좌우할 수 있는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는 과단성 있게 공격을 하는 게 최선의 전술이 될 수도 있다. "당신은 매우 재미있는 분이군요. 그렇잖아요?" 단도직입적으로 요점을 건드려 보았다. 그는 두툼한 아랫턱에 가쁜하게 줄지어선 새하얀 잇빨을 드러내며 크게 웃었다. 이건 그에게서 처음 보는 일이었다고 생각된다. "전 다름 사람들에 비해 그리 단순한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그리 복잡한 사람도 아닙니다." "전 당신에 대한 책을 하나 써보려고 하는 거죠. 아시다시피 될 수 있는 한, 여기 일을 빨리 끝내지 않으면 안될 형편에 처해 있어요. 지금 건강이 좋지 않습니다. 매우 지쳐 있어요. 아직 이 고장에서 할 일이 많아 바쁜데도요. 하지만 만일 쾌히 승낙하셔서 반생에 대해 말씀해 주신다면, 당신의 전기를 하나 쓸 작정입니다. 의견이 어떠신지죠? 전 여태껏 줄곧 당신과 같은 사람을 소설로 써내려 마음먹고 있었는데, 당신이라면 제게 훌륭한 주제를 제공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제가 제 활동을 세상에 공개한다는 건 저 자신에게 있어서는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전 지금까지 벌써 중국감옥에 한번, 일본감옥에 두번이나 투옥되었습니다. 그러니 이 다음번엔 그야말로 위험 천만한 일이니 말이죠. 약간이라면 말씀드릴 수도 있겠지만, 전부를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좀 더 고려해 보시고 결단을 내리시게 되면 제게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당신은 어째서 스스로 조선에 대해서 책을 쓰지 않는지 전 도무지 그 까닭을 모르겠군요. 지금 조선에 대한 그런 책이 너무도 적은 형편이 아닙니까?" "사실 전 벌써 만주에 있는 한 조선인 망명자의 일대기를 조선어로 쓰고 있습니다. 제목은「백의동포의 영상」이고요. 언제쯤 탈고할지 모르겠습니다만, 빨치산 활동에 참가하기 위해서 만주에 가게 되면, 거기서 마지막 장을 쓸 소재를 손에 넣을 작정입니다." "어째서 그런 제목을 달았죠?" "조선인은 누구나 흰 옷을 입길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변으로부터 백의민족으로 불리웁니다." 이튿날 오후 김산은 여태껏 보여주지 않았던, 무던히도 기뻐하는 기색을 드러내며 찾아왔다. 그리하여 누구나 다 즐거워하고 화기를 띠고 있는 연안에선 보기 드문 성격을 그가 하나 더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김산은 낙천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성실한 사람이었고, 불행한 사람이었다. "저는 당신과 더불어 책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딱부러지게 말했다.] "조선에 대한 책을 쓰려고 생각하시는 건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전 오직 그 책이 중국인에게도, 일본인에게도, 그리고 외국에 나가있는 조선인에게도, 미국인과 영국인에게도 널리 읽혀져 조선의 현실이 절대 패배가 아님을 다시금 상기시켜 줄 것을 바랄 따름입니다. 이를 위해서 제 자신의 경력을 당신에게 죄다 말씀드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비록 이로 인해 제가 장차 곤란한 처지에 부닥치지 않으면 안될런지 모른다 하더라도, 이건 보람있는 일이라 여깁니다." "여하튼 조선인을 누구나 제 뼈를 묻을 무던 따위에 전전하지 않습니다. 어디서 죽든, 언제 죽든 관계치 않습니다. 다만 이 책 출판시기를 2년 후로만 하신다면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그때쯤엔 저도 만주의 조선인 빨치산으로 안전하게 자리를 옮겨 전투하게 될 것이고, 또 그때가선 전쟁으로 전반적인 정세가 완전히 달라져 버릴 테니까요. 제가 지금 이 자리에서 모든 걸 얘기한다 하더라도 그 누구에게도 별다른 위해를 끼치진 않을 겁니다. 이런 책이 그때쯤, 특히 조선인의 운동기세를 돋구는 그 시기에서는 그야말로 유용하게 작용하리라고 봅니다." 이리하여 우리는 일을 시작했다. 몇 주일 동안 끊임없이 비가 내렸다. 거의 날마다 오후가 되면 손가락에 경련이 일어나서 더 써내려 가지 못할 때까지 촛불 밑에서 김산의 말을 받아썼다. 처음 얼마동안 그의 영어가 더듬거리는 바람에 다소 애를 먹었으나, 그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늘어서 술술 이어져 훌륭하게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어휘는 대단히 풍부했다. 비록 발음은 그다지 정확하지 못 한데가 많았지만, 모두가 독서에 의해 습득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어 실력도 대단했다. 중국어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유창했으며, 몽골어도 조금 할 줄 알았다. 독일어와 라틴어도 의학을 공부하면서 습득하고 있었다. "당신은 영어를 능란하게 하시는군요." 하고 찬탄을 표시했다. "그러시면서 지금까지 장시간 영어회화를 한 적이 없다고 말씀하시니 더욱 놀랬어요." "어떤 계기만 있으면 조선인은 누구나 쉽게 터득합니다." 탐탁하지 않은 표정으로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일본인은 '조선인이 태어날 때부터 식민지 민족으로 생겨먹은 증거'라고 지껄여댄답니다. 일본인이 외국어를 바로 배우지 못하는 건 자기네가 지배민족이기 때문이라는 거죠." 대화가 핵심으로 접근함에 따라 이야기는 점점 극적으로 흥미를 돋구고 있었다. 그의 체험이 그처럼 폭넓은 것에 그야말로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는 조선·일본·만주에 걸쳐 전개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가슴을 들먹이게 하는 중국혁명의 실천경험에까지 파급되어 가고 있었다. 그는 유랑하는 조선인 혁명가였으므로, 이같이 특수하고 폭넓은 갖가지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 또 국외자였기 때문에 비로소 3개국의 모든 운동과 인민에 대해 투철한 견해를 가질 수 있었다고 본다. 반생간 경력은 극동 전체의 만화경과 같은 광경을 그대로 그려냈다. 생생하고 참신한 해석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구에 '김산을 유달리 재미있고 복잡한 감정과 개성을 갖고 있는 특이한 두뇌의 소유자라고 본 추측이 옳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지적생활은 단순하지도, 안이하지도 않았다. 정치투쟁과 혁명투쟁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문제로 충만 되어 있었다. 그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한 방법은 실제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진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신기한 건 그가 다만 그 같은 여러 경험들을 훌륭한 얘기로 조리 있게 서술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도처에서 지식인은 시련을 겪고 있다. 서로 싸우고 때리는 주먹사회에서 자기자신이 구겨 던진 휴지조각 마냥 찢기고 있다. 우리는 백년을 하루로 파악해 버리지 않으면 안 된다. 역사는 뇌세포의 활동보다도 빨리 이행한다. 우리가 이해할 겨를도 없이 벌써 이러저러한 민족이 망하고, 이러저러한 제국이 교체된다. 낡은 세계가 발 밑에서 무너짐을 느낄 때, 창조되고 있는 새로운 세계가 유성처럼 돌진해 와 우릴 혼란과 공포에 마비되게 하고 현기증을 일으키게 한다. 모래주머니로서는 상아탑을 보호할 수 없다. 자기자신을 가련하게 여기는 눈물은 절망과 환멸의 참호를 축축하게 적실 뿐이다. 지금도 연안의 그 초라한 방에서 침착하고 조용하게 꾸밈없이 자기신상에 대한 이야기를 건네준 김산의 모습을 종종 회상하곤 한다. 그리하여 미국이나 영국의 지식인 가운데 그가 겪은 바처럼 '준엄한 시련을 철학적인 과학성을 보전하며 견실한 태도로 맞받아 이겨내면서 의젓이 살아 갈만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는가'를 연상해 보곤 한다. 김산은 현대에 있어서 가장 피비린내 나고 가장 험악하며, 가장 혼란한 대동란 한복판에 뛰어든 민감한 지식인-그의 근본바탕은 이상주의적인 시인이며 작가-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미 환상을 상실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차가운 눈초리로 인생을 관조하는 그런 심술쟁이는 아니었다. 사물을 속성 그대로 인식하였지만, 동시에 그 변화와 진보를 긍정하였다. 고뇌와 패배는 그의 꿈을 파탄시킬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의 사상에 더욱 깊은 의의를 부여해 한층 더 불타오르게 할 따름이었다. 그는 아디까지나 객관적인 사물의 주인공이었으며, 주관적인 언어의 노예가 아니었다. 육체는 빵으로 잠재우고, 정신은 공복과 고통으로 살찌운다. 지식인은 구체적인 현실에 의거하지 않고 상징에 의해 사물을 포기했을 때만 비로소 결심을 다지고 행동에 옮기기 마련이다. 김산은 이 약점을 극복해 인텔리 패배주의의 병집에 침식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은 오직 자기자신과 자기의 직업에 의해 저버림을 받을 따름이다. 지식인의 직책은 미래의 형상을 그려 보이는 곳에만 있는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역사적 변화의 소재까지도 이해하고 분석해 보이는 데 있다. 지식인이 이 형형색색의 세계를 향해 자기가 설계한 단순하고 협소한 틀에 들어맞을 것을 기대한다면, 이 얼마나 한심한 자만이겠는가? 역사의 행동과 계획은 역사를 비판하는 사람들처럼 움직이는 게 아닐 뿐만 아니라, 폭이 좁은 것도 아니다. 그런 사람은 하잘 것 없는 판단을 일삼고 있는데, 그건 올림푸스산상의 좌석에서 벼락을 치는 게 아니라, 장난감용 폭죽을 터뜨리는데 불과하다. 필기장 일곱책에 써넣은 김산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정리해 고쳐 쓰기도 하고 줄이기도 했다. 될 수 있는 대로 그가 들려준 원래의 이야기 그대로를 보전하기에 힘썼다. 따라서 모든 상세한 정절에 이르기까지(회화포함) 엄밀하게 진실 그대로가 옮겼다. 세절에 이르기까지 상세하게 씌여지게 된 건 김산의 구술을 받아쓰면서 몹시 애를 먹으며 '미주알 고주알' 캐고 따져 그에게서 듣고 알아냈기 때문이다. 그는 놀라울 정도로 기억력이 좋고 얘기도 잘해 일이 쉽게 진척되었다. 그는 일기를 줄곧 여러 해에 걸쳐 암호로써 쓰고 있었다. 그런 일기 덕택으로 그는 이러저러한 사건들을 잘 기억해 낼 수 있었으며, 세세한 일까지도 쉽사리 상기할 수 있었다. 실제로 난 미지의 사항에 대한 귀중한 탐구의 진실성을 손상시킬 수 있는 그런 주제 넘는 짓을 하려고는 생각지 않았다. 따라서 그의 얘기를 읽기 쉬운 영어로 고칠 필요가 있는 겨우 외엔 자의로 해석을 가하지 않고 김산이 이야기한대로만 썼다. 따라서 이 책의 장점은 역사이면서도 동시에 자전으로서 가치를 갖고 있는데 있다. 이 책은 현대의 몇 가지 가장 극적인 사건의 직접적인 이야기인 동시에 동양의 혁명지도자들의 견해와 심리와 경험에 대한 우리의 매우 협애한 지식에 가해지는 새로운 기여라고 나는 인정한다. 연안에서 머문 2개월 동안 지금 회상해 봐도 진절머리가 날 정도로 많은 임상반응의 질문을 이 증인인 인물에게 무자비하리만큼 던졌다. 이 책에 수록된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거의 모두가 지금까지 어느 나라의 말로도 씌여진 일이 없는 진귀한 것뿐이다. 광주코뮨에 대한 김산의 얘기만 하더라도 자못 심상치 않은 실제적인 경험담이다. 해륙풍의 얘기는 여태껏 한번도 글로 씌여진 일이 없었으며, 지금껏 살아남아서 그 비극적인 얘기를 상세하게 말할만한 사람은 겨우 서너명에 불과하다. 앙드레 말로가 쓴 소설, 즉 1924-25년의 홍콩동맹파업을「정복자」와 1927년 상해의 4월사건을 묘사한「인간의 조건」가 고작이다. 국제공산당의 문서철에는 기록이 보존되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런 이야기를 불법적으로 출판하는 건 1927년의 중국내전 이후 중국인이나 조선인에겐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이 사건에 몸소 참가한 지도자는 거의 사망하고 말았다. 내부의 정보를 장악하기가 지금까지는 문제 그대로 불가능했던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예를 들면 만주의 유격대, 특히 조선의 유격대, 조선인의 불법적인 활동과 투옥기록, 중국 또는 조선에서의 공산주의자들이 벌인 지하활동같은 유형이 바로 그것이다. 김산의 얘기는 이에 대해 새로운 많은 해명을 시사해 주고 있다. 이 책은 바야흐로 1세대 동안 역사가 1천년이나 전진하고 있는 극동의 여러 나라에 확대되고 있는, 서로 광범하게 연관된 사회변혁 한복판에서 1일의 전형적인 혁명지도자가 쌓은 경험록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조선혁명운동에 대한- 조선 및 만주에서의 발단으로부터 1925년 이후의 중국 혁명투쟁과 보조를 맞출 때까지의-역사이다. 김산의 경력은 일본과 만주로 축을 옮기고 있는 혁명운동의 일반적 경향에 완전히 부합되고 있다. 또한 동료- 김산과 친구 오성륜과 김충창에 대한 얘기이다. 이 3일조는 지금 조선인 지도부와 함께 선두에 서고 있다. 셋 가운데 1인은 실천가이자 유명한 폭력주의자로서 만주의 빨치산부대를 지휘하고 있고, 또 다른 1인은 원래 승려였던 인텔리이론가이다. 마지막 1인은 이 2인의 제자로서 나이가 이들보다 10년 아래인 김산이다. 지금 일본과의 전쟁이 임박하고 있는 이때. 미국과 영국에 사는 우린 오래지 않아 독일 국내의 반히틀러 반란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고 절실히 바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의 파시즘과 정복을 반대하는 지하운동의 잠재력에 대한 정보의 입수를 열망하게 될 것이다. 김산과 그의 조선인 전우들은 이 간고한 반대운동을 20년 동안이나 계속해 왔다. 그리하여 일본인은 언제나 조선을 평하여 "일본의 심장을 겨누고 있는 단도"라 일컬어 왔던 게 사실이다. 이 일을 시작했을 때 김산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선 경력의 개요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고, 그 다음에는 당신의 청춘초기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제 청춘이라니요?" 그는 몹시 당황하면서 대답했다. "확실히 전 아직 설흔두살밖엔 안 되었습니다. 그러나 내 청춘을 어디선가 그만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글쎄 어디서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941년 어느 날 님 윌즈 참고문헌 [아리랑아라리요] --- 雲心如水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