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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reumi (구르미)
날 짜 (Date): 2002년 3월 31일 일요일 오전 05시 34분 39초
제 목(Title): Re: 한홍구/ 김산의 눈물과 투쟁과 죽음 


http://www.arirangsong.com/kimsa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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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저자 님 웨일즈(nym wales)가 본 김 산


후리 후리한 키의 사내 

"순간 눈앞엔 세인의 이목을 끌만한 후리후리한 키의 사내가 실내의 광선 
속으로 나타났다. 그는 태연자약한 자태로 정중하게 허리는 굽혀 인사했고,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면서 내 얼굴을 조용히 응시하는 것이 아닌가?

비가 억수로 퍼붓는 날씨여서 창호지를 바른 창문으로는 충분한 광선이 들어
오지 않아 컴컴했지만, 선명한 얼굴모습이 도무지 중국인 같진 않았다.

어찌 보면 거의 에스퍄냐인 같기도 했다."



망명자 

이즈음 이 조선인이야말로 '반란자형의 인물'이라고 단정을 내리고 있던 터였다.
위험한 지하혁명운동을 계속하면서 살아온 망명자인 그는 소박하고 침착했다.
또 우울하면서도 자제력과 민감성과 경각심을 겸비한 자였다.

표정이 풍부한, 수척한 얼굴엔 감옥생활이 엮어낸 창백함이 서려 있었다.
그러나 총명하고 영채로운 눈매는 솔직하고 아량 있는 풍모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이에 퍽 고무적인 인상을 받았다.



가장 매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 

김산이란 이 인물이 자못 독특한 인물이라는 것, '이런 인물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귀한 기회가 결코 두 번 다시 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명백한 일이었다.
그는 근래 7년동안 동양에서 만난 가장 매력 있는 인물 중 한 사람이었다.

그해 여름동안 적잖게 고생하면서, 원고를 쓰는 손에 오는 심한 경련으로 고통을 
받으면서 대략 25명에 달하는 혁명가의 자전을 쓰고 있었는데, 김산은 내가 만난 
혁명가중에서도 좀 체로 찾아볼 수 없는 몇 가지 특성을 구비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런 특성을 분석해 낼 수가 없었으나, 오래지 않아 '그의 특성을 
단정하는게 무엇인가'를 알았다.

그는 투철한 의식과 두려움을 모르는 자주성과 완전한 신심을 가지고 있었다. 
견해는 명철하고, 주장은 단정적이었다. 그건 분명 모든게 이론적으로나 
경험적으로 주도 면밀한 사고를 거친 견해였고, 사려 깊은 추리를 가한 후 
도출해 낸 주장이었다.

그는 추수자로서가 아니라 지도자로서 사물을 관찰하고 문제를 사고하고 
있었다.

조선혁명의 중요한 영도자인 만큼, 그건 당연한 일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표면적으로는 거동이 온화하고 예절이 바르며 경건하여 은거생활을 하는 사람 
같았지만, 내면세계에는 거대한 위력이 잠재하고 있었다.

결코 무해한 인물이 아니었다. 충실하고 헌신적인 나의 벗이 될지도 적이 
될지도 모르겠지만, 자신의 죽음과 타인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도덕적으로나 지적으로 부식 당하거나 타락되는 일도 없거니와 도피
하는 일도 하지 않는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중국과 조선의 현대사 원형을 창조해낸, 대비극·대재난의 백열속에서 단련되고 
형성된 사내였다. 

뿐만 아니라 시련을 이겨낸 의지와 결의로 강철같은 도구로써 뿐만 아니라, 
감각과 지각을 구비한 인간으로서 준엄한 시련 속에서 출현된 사내기도 했다.



성실하나 불행한 사람 

이튿날 오후 김산은 여태껏 보여주지 않았던, 무던히도 기뻐하는 기색을 드러
내며 찾아왔다. 그리하여 누구나 다 즐거워하고 화기를 띠고 있는 연안에선 
보기 드문 성격을 그가 하나 더 가지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김산은 낙천적인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렇지만 너무나도 성실한 사람이었고, 불행한 사람이었다.



외국어 능통 

처음 얼마동안 그의 영어가 더듬거리는 바람에 다소 애를 먹었으나, 그 사이에 
놀라울 정도로 늘어서 술술 이어져 훌륭하게 표현하기에 이르렀다.

그의 어휘는 대단히 풍부했다.

비록 발음은 그다지 정확하지 못 한데가 많았지만, 모두가 독서에 의해 습득한 
것이었다. 뿐만 아니라 일본어 실력도 대단했다.

중국어는 더 말할 나위 없이 유창했으며, 몽골어도 조금 할 줄 알았다.

독일어와 라틴어도 의학을 공부하면서 습득하고 있었다.



특이한 두뇌의 소유자 

그는 유랑하는 조선인 혁명가였으므로, 이같이 특수하고 폭넓은 갖가지 경험
을 쌓을 수 있었다. 또 국외자였기 때문에 비로소 3개국의 모든 운동과 인민에 
대해 투철한 견해를 가질 수 있었다고 본다.

반생간 경력은 극동 전체의 만화경과 같은 광경을 그대로 그려냈다. 생생하고 
참신한 해석이었다.

뿐만 아니라 미구에 '김산을 유달리 재미있고 복잡한 감정과 개성을 갖고 있는 
특이한 두뇌의 소유자라고 본 추측이 옳았다'는 걸 깨달았다.

그의 지적생활은 단순하지도, 안이하지도 않았다.

정치투쟁과 혁명투쟁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모든 문제로 충만 되어 있었다.

그가 그런 문제들을 해결한 방법은 실제적으로나 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의를 진 흥미로운 것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신기한 건 그가 다만 그 같은 여러 경험들을 훌륭한 얘기로 조리 
있게 서술했다는 사실이다.



이상주의적인 시인 

김산은 현대에 있어서 가장 피비린내 나고 가장 험악하며, 가장 혼란한 
대동란 한복판에 뛰어든 민감한 지식인 - 그의 근본 바탕은 이상주의적인 
시인이며 작가 - 중 한 사람이다.

그는 이미 환상을 상실하고 있었으나, 그렇다고 차가운 눈초리로 인생을 
관조하는 그런 심술쟁이는 아니었다.

사물을 속성 그대로 인식하였지만, 동시에 그 변화와 진보를 긍정하였다.

고뇌와 패배는 그의 꿈을 파탄시킬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도리어 그의 
사상에 더욱 깊은 의의를 부여해 한층 더 불타오르게 할 따름이었다.

그는 아디까지나 객관적인 사물의 주인공이었으며, 주관적인 언어의 노예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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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을 읽고 난 감동은 읽어본 사람이라면 다 공유할 수 있는 것이지요.

92,93,94년도에 뉴욕에 살 때는 1.5세들에게 참 좋은 생일선물이기도 했죠.

미국땅에 유학온지 벌써 10년.. 
요즘에도 많은 젊은 친구들을 만나지만 딱히 "아리랑"을 선물할 사람을 쉽게 
찾지 못하네요.. 시절이 변한건지 Deep South남부도시의 분위기때문인지..


중국땅을 떠돌며 혁명을 지도하면서도 조선을 사랑하고 한반도의 혁명,
해방의 꿈을 켤코 버리지 않았던 김산.            저의 영원한 아이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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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雲心如水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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