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2년 3월  3일 일요일 오전 01시 19분 42초
제 목(Title): 박노자/ 푸틴, 공포의 확대재생산 


출처: 한겨레21

[ 박노자의 북유럽탐험 ]  2002년02월27일 제398호   
 

푸틴, 공포의 확대재생산

백주에 젊은이들을 납치하는 경찰과 병무청… 국가 공포 콤플렉스에 
생계공포까지 

올해 1월, 1년6개월 만에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모스크바를 갔다왔다. 
짧은 여행이었지만 많은 러시아 사람들을 만나고 러시아 생활을 직접 
체험하면서 한 가지 사실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푸틴 치하의 러시아의 
부흥’을 주장하는 러시아 어용매체뿐 아니라 서구 매체마저도 경제성장 등의 
거시지표를 근거로 푸틴 정권의 행각을 ‘성공적인 서구식 자본주의의 
건설’처럼 본다는 것이었다. 


강제입영, 부모에 통보도 없이… 



 
사진/ 억압적 '조폭형 국가'를 만들어가는 푸틴. 러시아 노동자·지식인들의 
혁명적 전통이 되살아날 것 같은 예감이다. (SYGMA)


그 이면에 숨겨진 진짜 모습은 다름 아닌 집단적인 공포심리다. 공산당 
독재정권 시절의 ‘전지전능한’ 전체주의적 국가에 대한 기존의 공포는 전혀 
없어지지 않고 오히려 푸틴의 경찰국가 건설정책의 결과로 크게 부활·강화되고 
있다. 그리고 국가에 대한 공포라는 러시아 소시민의 기본적인 집단심리에, 
후진 자본주의 사회에 불가피한 생계공포, 범죄공포 등이 덧붙여져 사실상 
일반인들의 생활은 과거보다 훨씬 고통스럽다. 

한낮에 젊은 남녀 한쌍이 손을 잡고 모스크바 거리를 천천히 산책하고 있다. 
갑자기 청년의 남자 앞에 몇명의 경찰관이 나타난다. 그 남자의 모습이나 
행동에 수상한 것은 없었지만, 일단 불심검문에 걸린 것이다. 경찰관을 
보자마자 남자는 떨리는 손으로 ‘국내 여권’(러시아식 주민등록증)을 빨리 
꺼낸다. 나이가 27살 이하(러시아에서의 현역 복무의 하한 연령)라는 점과 군 
미필자라는 점을 당장 확인한 경찰관들은, 여자의 울음소리, 비명소리를 뒤로 
하고 남자를 붙잡아 어디론가 데려간다. 남자는 “대학생으로 공부하는 동안 
입대 연기의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학생증을 보여주지만 소용이 없다. 
경찰관들이 “지금 군대에 갈 사람이 없으니까 너라도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해야지” 하면서 낄낄 웃고, 겁에 질린 다른 보행자들은 이 장면을 못 본 
척한다. 

이즈음에서 이 남자가 경찰관들에게 미화 약 100달러 정도를 줄 수 있다면 
‘국방의 신성한 의무를 다하는’ 대신에 대학생으로서의 합법적인 입영 연기 
권리와 여자친구와의 사랑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당장 ‘상납’하지 
못한다 해도, 마지막 기회는 병무청의 징병과 담당 장교이다. 그러나 
거기에서도 성공적인 뇌물 수수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졸업할 때까지 병역 
걱정하지 않고 마음놓고 공부해야 할 대학생은 난데없이 독립군과의 전쟁이 
끝나지 않는 체첸의 산악지대나 머나먼 시베리아 오지의 미사일 부대로 끌려갈 
가능성이 매우 크다. 부모나 인권단체들이 법에 호소해봐야 헛수고가 되고 
만다. 참고로 27살 이하의 나이라는 죄밖에 다른 죄가 없는 청년을 연행한 
경찰이나 병무청도, 당사자의 부모에게 강제 입영의 사실을 보통 통보하지 
않는다. 시체 공시소와 경찰서들을 다 두루 가본 부모들 자신이 눈치를 채서 
병무청에 연락을 하면 ‘입영 사실을 확인’해줄 뿐이다. 


옐친 시대에도 없던 대량 인권유린 



 
사진/ 체첸에서의 러시아 군대 수용소 풍경들


한국전쟁 시절이나 그 직후의 남한의 현실을 방불케 하는 위의 에피소드는, 
푸틴 치하의 2002년 모스크바의 하나의 실화다. 믿어지지 않지만 지난해 
12월에서 올해 1월 사이에 모스크바 경찰과 병무청이 불법적으로 ‘납치’해서 
군에 보낸 병역 면제 권리·입영 연기 권리의 소유자들은 이미 몇 백명에 
이른다. 몇 군데 대학교의 기숙사를 일시에 ‘덮쳐’ 뇌물을 바치지 못한 
학생들을 군에 보낸 적도 있다. 그것보다 훨씬 끔찍한 것은, 합법적인 병역 
면제 권리를 가진 숙환 환자나 두명 이상의 자녀의 아버지, 가난한 연금생활자 
부모의 외아들마저 경찰·병무청에 ‘납치’당하는 것이다. 막노동·운동을 
못하는 환자가 장교와 고참들의 구타를 견뎌서 살아서 돌아올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도, 군대에 잡혀간 남성의 가난한 가족들이 매매춘·구걸 없이는 
생계를 이어나갈 수 없는 것도 불보듯 뻔하다. 

대낮에 시내에서 청년을 잡아 사지로 보내는 군·경찰은, 그 행동을 변명하지도 
않고 오히려 ‘병역 면제·입영 연기 권리의 대폭 감소’에 관한 법안을 국회에 
상정하는 등 뻔뻔스러움을 과시한다. 인권·반전단체들이 엄청난 노력을 해도 
불법적으로 ‘강제 입영’을 당한 사람 가운데 몇명밖에 구제할 수 없다. 지역 
법원이 ‘강제 입영’의 불법성에 대한 확인 판결을 내려도, 군부대들이 계속 
항소를 하는 등 납치의 희생자들을 쉽게 보내주지 않기 때문이다. 

서구와의 좀더 가까운 관계, 그리고 유럽연합·나토와의 전략적인 동반자 관계 
구축 내지 가입을 목표로 생각하는 푸틴의 친서방 정권의 치하에서 어떻게, 
부정부패로 세계적인 누명을 쓴 옐친시대에도 거의 없었던 이같은 대량 
인권유린이 쉽게 감행·방치되는가. 군 미필자들의 뇌물을 노리며 감행하는 
쪽의 논리는 별다른 설명이 없이도 이해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이렇다할 만한 
입영자의 부족에 시달리지 않는 푸틴 정권이, 세계적인 구설수에 오를 가능성을 
무릅쓰고 군·경찰의 전례없는 전횡을 방관하는 속셈은 과연 무엇인가? 

인권·노동단체 관계자들의 관측으로는, 정권이 일차적으로 ‘전통적’인 
국가에 대한 공포 분위기를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푸틴에 대한 진지한 반대 
운동- 특히 젊은이들의 반정부 운동- 을 미연에 방지하려는 속셈이라는 것이다. 
병역 연기 권리를 합법적으로 누리는 학생임에도 언제든지 경찰의 ‘습격’을 
받아 체첸과 같은 곳으로 끌려갈 수 있다면, 과연 정권의 미움을 사는 운동으로 
나서기가 쉽겠는가? 결국 정권유지·재창출을 위해서 국가 권력기관들의 위법 
행위를 ‘적당히’ 이용하는 셈이 된다. 그리고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의 파월을 
대가로 미국 보수 언론에서 ‘경제개발의 영웅’의 명예를 누렸던 박정희처럼, 
미국의 아프간 침략을 첩보 등의 분야에서 적극 지원하는 푸틴도 인권유린을 
저지른다 해도 서방의 보수적 주류 언론을 별로 두려워할 이유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그들은 ‘숙명’을 거부할 것이다 



 
사진/ 지금 러시아에선 국가에 대한 공포분위기가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GAMMA)


경찰 제복만 보이면 이미 몸이 떨리는 러시아 청년들. 그들의 전통적인 국가 
공포 콤플렉스에 첨가된 것은 나날이 심각해져 가는 생계의 공포다. 모스크바에 
이미 한달 200∼250달러에 달한 실제 소득이 꾸준히 는다 해도, 인플레이션과 
함께 실생활 비용이 훨씬 더 빨리 는다는 것이 러시아 사람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따라서 푸틴 정권이 적극 선전하는 연례 평균 4∼5% 경제성장이 
이루어진다 해도, 주요 공산품 가격이 이미 한국 수준에 도달하는 모스크바의 
하층민·중산층 하류는 심해져 가는 생활고만을 체감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러시아 자본주의의 총아인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한해서 
대부분의 노동 인구는 굶거나 극심하게 궁핍하지는 않다. 그러나 그들의 
‘성공적’인 생존의 비결은 무한대의 과잉 노동의 제공이다. 아침에는 관광 
회사에서의 가이드, 낮에는 본교에서의 강의, 그 다음에 과외수업, 저녁에는 또 
번역회사에서 주문한 상업적인 번역, 이것은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의 젊은 
교수의 전형적인 일과다. 

한 회사에서 보스가 “떠나라”고 말할 때까지 정해진 근무시간 없이 땀흘려야 
하는 한국의 하급 사무 노동자와는 구체적인 착취 유형이 다르지만, 세계 체제 
주변부의 전형적인 ‘노동력 집중 과잉 착취’라는 점에서 상통하기도 한다. 
1년에 18∼20% 정도로 물가가 높아져 갈수록 ‘부수입’의 필요성이 
절실해지고, 일과가 고달파지고, 저녁에 책을 보거나 오페라극장에 갔다 올 수 
있었던 공산당 시절이 점점 그리워진다. 그러나 모스크바만 해도 한달에 약 
300명 정도 얼어죽는 노숙자나 술꾼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면서 그나마 자본주의 
체제에 노동력을 팔 수 있는 건실한 러시아 평민들은 일종의 안도감마저 
느낀다. 최빈 인구를 굶어죽거나 얼어죽게 놓아두는 예측불가의 
‘시장사회’에서 적어도 생존하고 있다는 데 대해 두려움 섞인 자축을 하고, 
앞으로도 아사를 면하기 위해서 계속 일감을 걱정하는 것이다. 

러시아의 노동자·지식인들은 푸틴이 구상하는, 억압적인 통치하에서 값싸고 잘 
순치된 고학력 노동력과 자연 자원을 공급해주는 주변부 러시아에서 살고 
싶어할까? 그들은 과연 국가·시장의 폭력 앞에서의 공포심리를 계속 
‘숙명’으로 알고만 있을 것인가? 필자가 보기에 결코 그렇지 않다. 과거 
러시아의 혁명적·자유주의적 전통이, 앞으로도 개인의 인권·존엄성을 위한 
‘조폭형’ 국가와의 투쟁으로 계속 될 것이다. 


박노자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