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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2년 3월  3일 일요일 오전 01시 17분 35초
제 목(Title): 이정우/참된 공간에 실재를 담는다 


출처: 한겨레21

[ 이정우의 철학카페 ]  2002년02월27일 제398호   
 

참된 공간에 실재를 담는다

재현의 미학 벗어난 현대 회화의 탄생… 안정된 주체에서 공간의 역동성 추구 

서구의 전통 존재론과 미학은 ‘형상’을 추구했다. 화가들은 보이는 것을 
그리기보다는 보이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 즉 보편적이고 자기동일적인 
형상을 그린 것이다. 그러나 이런 추상적인 원리가 개별적인 화가들을 등질적인 
존재로 만든 것은 아니다. 형상의 추구에도 불구하고 개별 화가들의 그림 
모두는 사실상 화가들 각각의 감각과 경험을 반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감각이 
감각 자체로서 추구된 것은 아마도 인상파부터였다고 해야 하리라. 인상파가 
재현을 포기한 것은 아니다. 다만 재현이 지향하는 존재론적 층위를 바꾸었을 
뿐이다. 


감각적 현실의 인상파 회화를 넘어 



 
사진/ <사과와 오렌지>(1895~1900). 캔버스에 유채. 74×93㎝, 오르세미술관, 
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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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회화에서 리얼리티는 실재였다. 그것은 일시적이고 가변적인 외관의 
뒤에서 포착되는 가지적(可知的)인 형상이었다. 인상파 회화에서 리얼리티는 
현실로 변한다. 그것도 안정되고 평균화된 현실이 아니라 그야말로 시간 속에서 
흘러가는 감각적 현실 그 자체였다. ‘인상파’라는 말은 비록 경멸적인 뜻으로 
붙여졌지만 시사적이다. 만일 우리가 서구 존재론의 기본적인 두 축을 플라톤의 
형상철학과 베르그송의 지속철학으로 본다면, 서구 회화사는 플라톤적 
형상으로부터 베르그송적 지속으로의 변이를 겪었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회화는 다시금 실재를 사유하기 시작했으며, 이 점에서 인상파 회화를 
거친 이후의 실재 추구를 보여준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의 결정적인 문턱에는 
세잔이 서 있다. 

인상파 회화에서 화가는 자연의 진정한 기록자로 등장한다. 그것은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해석자가 아니라 자연의 흐름에 몸을 맡기고서 그 인상을 가장 
충실하게 재현하고자 한 노력이었다. 인상파 회화가 재현 위주의 서구 철학에서 
벗어나는 단초가 되었지만, 사실상 인상파 회화야말로 재현에 가장 충실한 
회화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세잔의 정물화는 이런 미학으로부터의 
결정적인 변화를 보여주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사물을 충실하게 재현한다는 생각에는 세 가지의 전제가 깔려 있다. 첫째, 
대상의 동일성. 대상이 동일성을 유지할 때에만 재현이 가능하다. 대상이 변할 
때 주체는 대상의 동일성을 포착할 수 없고 대상의 재현도 불가능하다. 둘째, 
주체의 동일성. 주체 또한 동일성을 유지해야 한다. 주체가 계속 변하면 주체는 
스스로를 정립할 수 없고 대상을 포착할 수 없다. 마지막으로 공간의 동일성. 
주체와 대상을 동시에 포함하는 공간이 안정적이어야 한다. 공간이 
변한다면(예컨대 유클레이데스 공간에서 리만 공간으로 변한다면) 대상과 
주체의 안정적인 관계 맺음은 가능하지 않다. 


시점의 복수화에 정열적으로 매달려 



 
사진/ <붉은색 안락의자의 마담 세잔>(1877). 캔버스에 유채. 72.5×56㎝, 
순수미술박물관, 보스턴.


인상파 회화에서 대상의 동일성과 주체의 동일성은 파기된다. 대상도 흐르고 
주체도 흐른다. 따라서 안정된 형상의 파악 역시 파기된다. 주체의 흐름과 
대상의 흐름이 만나서 형성되는 역동적인 현실이 그 자체로서 그려지게 된 
것이다. 세잔 회화의 혁명은 대상과 주체의 안정성을 확보한 상태에서 오히려 
공간의 역동성을 추구한 데에 있다. 세잔은 인상파 화가들처럼 흐르는 대상들을 
선호하지 않았다. 그가 정물화나 산을 자주 그린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인물화조차도 이런 특성을 보여준다. 그의 인물화에서 인물은 사물화되며, 마치 
꽃병이나 사과처럼 얌전하게 존재한다. 또 세잔이 들라크루아 같은 
낭만주의자들과는 정반대로 늘 안정된 생활환경을 추구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토록 정적이고 또 인상파에 상대적으로 매우 견고한 그의 그림이 실은 
쉽게 포착되지 않는 더욱 심오한 역동성으로 채워져 있다는 것을 이해할 때, 
우리는 현대 회화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시점의 복수화는 이전에도 어느 정도 
추구되었다. 그러나 세잔은 시점의 복수화를 누구보다도 정열적으로 추구했다. 
즉 세잔은 주체의 동일성과 대상의 동일성을 훼손시키지 않으면서도 그 사이에 
존재하는 공간의 복수화를 추구했던 것이다. 회화의 본질들 중 하나가 새로운 
공간의 창조라면 세잔이야말로 회화의 혁명자인 것이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말해서 세잔은 공간을 창조하지 않았다. 그는 진정한 공간을 
발견한 것이다. 당대의 많은 사람들이 그의 회화를 조잡한 실험이자 자의적인 
공간 구성으로 몰아붙였지만, 그의 그림은 자의적이기는커녕 사실상 가장 참된 
공간을 찾아 나선 여정이었다. 일정한 관점을 전제해놓고서 사물들을, 세계를 
그 주체의 관점에 따라 재현하는 것이야말로 공간의, 세계의 왜곡이 아닌가? 
주체가 자기 중심적으로 배치한 공간이 주체 자신의 상대성을 깨닫고서 복수적 
주체의 관점에서 배치한 공간보다 더 실재인가? 그 반대라고 해야 할 것이다. 
세잔의 공간은 주체가 파악한 자기 중심적인 공간이 아니라 오히려 주체를 세계 
속에 집어넣음으로써 생겨나는 객관적 공간인 것이다. 이 점에서 세잔의 회화는 
그와 정확히 동시대에 이루어진 상대성 이론과 정확히 일치하는 인식론적 
토대를 가진다. 

그러나 회화와 과학은 다르다. 세잔의 공간 구성은 감각적 성질들을 
소거함으로써가 아니라 오히려 그 성질들을 통해서 구성된다. 세잔에게서는 
공간 속에 색이 칠해지기보다는 색이 칠해짐으로써 공간이 성립한다. 세잔 
회화에서 색은 공간으로부터 해방되며 그 자체의 존재를 드러낸다. 마티스가 
세잔의 진정한 후계자인 것은 이 때문이다. 세잔은 말한다. “그림에는 대비가 
있을 뿐, 선이나 모델링은 없다. 이때의 대비란 명암의 대비가 아니라 색채감의 
대비를 뜻한다.” 


그것은 상상력과 오성의 유희였다 



 
사진/ <정물>(1879~82). 캔버스에 유채. 46×55㎝, 개인소장.


따라서 세잔의 공간 구성은 일정한 원리에 입각한 ‘연역’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물들을 보고 또 보면서 형성된, 주체가 세계 속으로 들어가고 
또 그렇게 들어감으로써 세계를 변형시키는 행위, 그렇게 함으로써 결국은 
주체와 세계를 동시에 포함하는 그런 세계의 참모습(주체 중심의 세계도 아니고 
주체가 소거된 세계도 아닌 그런 세계)을 포착하려 한 필사적인 노력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상상력과 오성의 자유로운 유희’라는 천재의 특성에 대한 
개념화를 받아들인다면, 세잔이야말로 이 말을 부여받을 수 있는 적절한 
인물이리라. 

“세잔은 그림의 전체적 구도를 재배열한다. 때문에 우리가 전체 그림을 볼 때, 
원근법의 왜곡은 사라진다. 그림이 하나의 정상적 비전을 획득함으로써 새로운 
질서가 그 안에서 탄생하며, 그림 속의 사물들은 지금 막 우리 눈앞에 나타나 
한 군데에 집합한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이다.”(모리스 메를로-퐁티) 


철학아카데미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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