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2년 2월 24일 일요일 오후 05시 40분 20초
제 목(Title): 이정우/ 고난 속에서 피어난 화혼 


출처: 한겨레21


[ 이정우의 철학카페 ]  2002년02월20일 제397호   
 

고난 속에서 피어난 화혼

현대적 화풍에 민족 정취 드러내… 고통의 여정에도 향토적 주제 재창조 


 
사진/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종이에 잉크와 유채, 20.3 ×32.8㎝ . 


“인간은 고통을 겪으면 더욱 강해진다.” 니체는 인간이 자신이 겪은 고통을 
원한으로 쌓아가기보다 역능의 강화로 전환시킬 것을 역설했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원한으로 받아들이고, 그 원한을 통해 타인과 
자신을 계속 괴롭힌다. 강한 인간은 그 고통을 소화해내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역능을 강화한다. 이중섭은 고난의 세월을 겪으면서도 화가로서 좌절하지 않고 
걸작들을 쏟아냈다는 점에서 고난 속에서 핀 화혼을 잘 보여준다. 그리고 그런 
측면이 그를 오늘날 가장 대중적인 작가들 중 한 사람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중섭의 삶이 처음부터 힘겨웠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매우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순탄한 길을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바로 그 때문에 
말년의 고난이 더욱 힘들었을 것이고, 또 적어도 생활인으로서는 그것을 
헤쳐나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오산학교 교육받으며 자주의식 간직 


이중섭은 일제시대에 교육을 받았음에도 민족의 색깔을 잃지 않은 그림을 
그리려 했다는 점에서, 상당히 높은 자주의식이 있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이중섭이 오산학교에서 교육받았다는 사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1907년 남강 이승훈이 설립한 오산학교에서 이중섭은 민족주의적인 
계몽사상의 분위기를 접할 수 있었으며, 이것이 그의 사상적 배경으로 
자리잡았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이중섭이 이쾌대 등과 더불어 
‘조선신미술가협회’를 함께 이끌었던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당시 많은 
미술가들이 친일 행각에 참여했지만, 이중섭은 끝까지 지조를 지켰으며, 그가 
자주 불렀다고 전해지는 “소나무야 소나무야 언제나 푸른 네 빛…”이라는 
노래는 자신의 생각을 자주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속 생각을 꿋꿋이 밀고 
나가는 그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중섭 그림을 유심히 보면 그의 이런 민족혼이 현대적인 화풍과 결합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그가 부인에게 보낸 엽서의 그림들이 이런 점을 잘 드러낸다. 
엽서를 장식하고 있는 소재들은 어린아이(어린아이는 이중섭이 평생에 걸쳐 
그린 소재이다), 물고기, 바닷가, 새, 사슴, 소(역시 이중섭의 평생의 
소재이다)… 등으로 이 소재들은 모두 향토색이 물씬 풍기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소재들을 다루는 그의 방식은 현대적이다. 그의 그림은 화풍이 매우 
현대적이면서도 전체 느낌은 향토적이라는 점에서 그 누구의 모방이라고도 할 
수 없는 독특한 미학을 담고 있다. 이중섭이 루오의 그림에 감명받았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만, 그의 그림이 내게는 샤갈이 전해주는 느낌과 더 
유사한 느낌을 주는 듯이 보인다. 다만 이중섭의 그림이 더 처연하고 더 
상징적이다. <두 마리 사슴>은 명암을 고려하지 않은 구도, 선의 질박함, 얼핏 
화투의 그림을 연상케 하는 채색 등이 매우 향토적이지만, 사슴의 역동적인 
자태나 샤갈을 연상시키는 배치 등은 역시 현대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다른 
엽서 그림들에 등장하는 약간 붉은 황토색의 인물들 역시 강렬한 향토색을 
표현하고 있다. <활 쏘는 남자> 역시 화면의 전면을 채우는 황갈색의 인체가 
강렬한 인상을 주지만, 그것은 마티스의 색채와는 전혀 다른 향토적인 색채가 
주는 강렬함이다. 그러나 구도는 현대적인 성격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향토적 채색 등에 샤갈의 분위기 물씬 



 
사진/ <황소>(1953년경). 종이에 유채, 32.3 ×49.5㎝ 


<소년>(1942∼45)은 이중섭 회화의 빼어난 걸작이다. 전체적으로 단색만을 
사용해 그린 화면은 마치 빛 바랜 흑백사진처럼 보인다. 길이 있고, 그 길 
한가운데에 소년이 앉아 있다. 무릎을 구부리고 팔로 무릎을 감싼 채 머리를 
옆으로 누이고 앉아 있다. 그 모습은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틀림없다. 
멀리 보이는 나무에는 나뭇잎 하나 남아 있지 않다. 소년을 가운데 두고 그것과 
대칭을 이루는 그루터기는 더욱 황량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화면 전체를 
메우고 있는 수직선들은 비를 뜻할 것이다. 황량한 벌판 길 한가운데 앉아서 
소년은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이 그림은 이중섭이 해방기념미술전람회에 
출품하려다 시간에 쫓겨서 내지 못한 그림이다. 해방을 기념하는 작업인데도 
그림의 분위기는 해방과는 너무나 동떨어져 보인다. 이중섭에게는 해방 직후의 
사회 분위기가 전혀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어쨌든 아스라한 
파토스를 자아내는 걸작이다. 

이중섭이 말년에 겪었던 힘겨운 생활,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족에 대한 애타는 
그리움은 거의 전설이 되다시피 했다. 가족에 대한 애정에 있어 이중섭은 그 
누구보다도 더 성실하고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런 가족을 일본에 보내고 
한국에서 어렵사리 살아가던 이중섭은 딱 한번 일본에서 가족을 볼 수 
있었지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마치 일제시대의 상흔과 한반도 분단의 
아픔이라는 민족사적 고난이 이중섭이라는 한 개인에게서 상징적으로 나타난 
듯이 보인다. 그러나 그런 고난 속에서도 화혼(畵魂)을 잃어버리지 않고 말년의 
걸작들을 쏟아냈다는 점이 화가로서의 그의 위대함이다. 그가 삶에서 겪었던 
고통에 굴복하고 화혼을 상실했다면 오늘날과 같은 대중적 인기를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에피소드가 예술가를 거장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의 
작품에 뒷이야기와 대중적인 관심을 덧씌울 뿐이다. 

<달과 까마귀>(1954)는 <소년>과 유사한 분위기를 전혀 다른 미학적 장치들을 
통해 표현하고 있다. 녹색의 배경과 노란 달, 그리고 다섯 마리의 까마귀들만이 
화면을 장식하고 있다. 이중섭 그림은 언제나 그 단순성을 통해서 강한 인상을 
전달한다. 달과 까마귀는 모두 처연하고 어두운 이미지를 담고 있다. 배경색인 
진한 녹색이 그런 분위기를 더욱 강화해준다. 그러나 <소년>이 고독하고 조용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이 그림은 강렬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중섭의 
말년의 그림들은 이전의 평화롭고 푸근한 그림들과 대조적으로 대체적으로 
이렇게 강렬하고 화려하다. 그것은 그가 그 동안 겪었던 민족사적-개인사적 
여정을 그림에 압축적으로 새기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봉황> 또한 이런 
미학적 성취를 유감 없이 보여준다. 


강렬함과 화려함, 그 고난의 미학 



 
사진/ <어린아이들>(1950년대). 은지화, 10.3 ×15㎝ 


잘 알려져 있듯이 이중섭은 평생 소를 즐겨 그렸다. 그것은 그가 소야말로 
민족의 정취를 가장 잘 나타내는 소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고, 또 이중섭 
자신의 내면과 소의 이미지가 가장 가깝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말년에 그린 
<노을 앞에서 울부짖는 소> <떠받으려는 소> <흰 소> 등은 그가 평생 그린 소 
그림들 중의 결정판들이다. 이전의 소들이 우직하고 평화로운 소들이었다면, 
말년의 소들은 모두 강인하고 힘찬 소들이다. 이런 변화 역시 그의 미학적 
변화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중섭의 그림들은 향토적 주제들을 새로운 
미학적 안목으로 재창조해낼 수 있었던 흔치 않은 성과들인 것이다. 


철학아카데미 원장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