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2년 2월 2일 토요일 오전 08시 33분 38초 제 목(Title): 퍼온글/방현석 유승준과 오태양 출처:한겨레21 [ 논단 ] 2002년01월29일 제395호 유승준과 오태양 두명의 청년이 있다. 한 사람은 국민 모두가 안다고 할 만큼 알려진 가수다. 특히 그는 요즘의 젊은 가수들 중에서는 드물게 청소년들로부터 장년들에 이르는 폭넓은 연령층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불교가 지닌 공생과 평화의 정신에 따라서 살아가려고 노력하는 평범한 청년이다. 그는 일찍부터 그늘진 곳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이들을 위한 자발적인 봉사활동을 생활의 일부로 삼아온 젊은이다. 유승준과 오태양, 이 두 청년이 한국의 남자라면 누구라도 가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 군대에 가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 ‘합의’의 정서적 실체 유승준에 대한 반응은 분노와 냉소이고, 오태양에 대한 반응은 곤혹과 무관심이다. 이것은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합의’를 ‘회피’하거나 ‘거부’한 것에 대한 국민적 감정의 표현으로 보인다. 군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암묵적 ‘합의’는 한마디로 이렇게 요약될 수 있다. 누구는 가고 싶어서 가나? 싫든 좋든 우리 사회가 어떻게든 감당해야 할 고통의 영역이 존재하며, 이것만은 모두가 공평하게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 군대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의 정서적 실체다. 유승준과 오태양의 선택은 이러한 ‘합의’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으며, 도전자들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합의’의 부칙이 적용될 것이다. 방금, 내가 이 글을 쓰고 있는 컴퓨터 화면에서 유승준이라는 이름을 발견한 작은아이가 이렇게 한마디를 툭 던지고 갔다. “유승준이 이제 인기 떨어졌어요.” 초등학교 3학년 아이의 이 한마디가 유승준이 지불해야 할 대가가 무엇인지를 함축하고 있다.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미국 시민권을 취득함으로써 그는 군대문제를 말끔하게 해결했다. 법률적으로는 그러하다. 그렇지만 법률이 모든 것을 해명해주지는 못한다. 한국사회가 이룩한 경제와 문화의 토대 위에서 인기와 부를 누리던 청년이 그 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라도 감당해야 할 의무를 간단히 ‘회피’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오태양이 지불해야 할 대가의 혹독함은 유승준의 ‘쪽팔림’ 정도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5년 이상의 징역형과 그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외로움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약간의 ‘쪽팔림’과 손해를 감수하면서 군대를 ‘회피’한 유승준과 가혹한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군대를 ‘거부’하고 있는 오태양은 군대에 가지 않는 데 따른 손익계산서상의 차이만큼이나 군대에 대한 태도가 다르다. 유승준은 군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합의에 대해 전혀 이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신봉자이기까지 하다. 그는 평소에 “영원히 한국에서 살 것이며, 신체검사에 당당히 응해서 판정대로 군복무를 치르겠다”고 공언해왔다. 그러던 그가 갑자기 ‘미국 시민’이 되어서 군대문제를 간단하게 ‘회피’해버렸다. 오태양은 군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암묵적인 합의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군대가 공생과 평화라고 하는 자신의 신념과 상반되는 목적을 지닌 조직이기 때문에 다른 형식으로 병역 의무에 준하는 책임을 수행하고 싶어한다. 그는 지금까지 그가 살아온 삶의 연장선상에서 독거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에 성실하게 참여하고 있다. 그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서 우리 사회의 추운 구석이 조금은 온기를 획득해왔다. 오태양의 목소리에 응답하라 오태양은 군대를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거부하고 있는 것이며, 그 거부를 통해서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일률적인 군복무 형식의 변화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전 존재를 던져 우리 사회가 지니고 있는 군대에 대한 암묵적인 합의를 재검토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그는 결코 공동체에 대한 개인들의 의무와 책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부인하기는커녕 다른 누구보다도 이웃과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의지와 각오가 분명하고, 그렇게 살아왔으며, 살아가고 있다. 군대에 대한 암묵적 합의에 영합하는 발언을 해오다가 구차스러운 이유를 둘러대며 군대를 회피한 유승준과 비교될 수 없는 아름다움을 오태양은 지니고 있다. 이제 응답해야 할 사람들은 우리이다. 오태양과 같은 성실한 청년이 감옥이 아닌 곳에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고 제도를 고쳐야 한다. 내가 그렇게 살아가지 못할지라도 아름다운 사람이 아름답게 살아가는 앞길이 막히는 것을 보고 외면하지는 말아야 한다. 유승준을 향한 분노의 목소리가 정당하려면 그 목소리보다 더 크게 오태양의 제안에 대해 응답해야 한다. 아이들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교육대학에 들어갔던 아름다운 청년 오태양이 가야 할 곳이 감옥밖에 없다면 너무 슬픈 일이 아닌가. 방현석/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