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2년 2월 2일 토요일 오전 08시 26분 37초 제 목(Title): 퍼온글/조흡 부르디외를 추모하며 출처: 한겨레21 [ 사람과 사회 ] 2002년01월30일 제395호 지식인이여, 누구 편에 설 것인가 프랑스 사상의 보루이자 성찰적 지성의 전형, 피에르 부르디외를 추모하며 사진/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식인이면서 동시에 프랑스를 넘어선 세계적 지식인 피에르 부르디외.(한겨레 김경호 기자) 피에르 부르디외가 지난 1월23일 7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프랑스를 대표하는 지식인이면서, 동시에 프랑스를 넘어선 세계적인 지식인이었다. 부르디외는 사르트르, 바르트, 푸코, 데리다와 함께 프랑스 사상의 보루였으며, 사회철학이 독일의 하버마스와 영국의 기든스에 의해 양분된 상황에서 가장 프랑스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화의 문제를 개입시킴으로써 사회학의 지평을 넓힌 학자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론적 핵심 ‘아비튀스’ 부르디외가 거쳐온 이력은 대체로 화려했다. 그는 프랑스의 수재들만이 입학할 수 있다는 ‘에콜 노르말’ 출신이며, 졸업 뒤 한때 알제리대학에서 가르치기도 했다. 1964년 34살의 나이에 ‘사회과학고등교육원’의 교수로 취임했고, 다시 81년 프랑스 지성의 본거지로 알려진 ‘콜레주 드 프랑스’로 자리를 옮겨 2001년 3월 은퇴할 때까지 일생을 연구와 강의로 보낸 셈이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 강의에서 자신을 반쪽의 성공밖에 거두지 못한 학자로 평가하고 있다. 부르디외가 일생 동안 천착한 연구과제는 문화였다. 그런데 그가 문화의 문제에 몰두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다. 부르디외는 자신이 프랑스의 서남부 시골 출신이기 때문에 파리에서 공부하는 동안 겪어야 했던 문화적 충격이 컸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바로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그가 출신배경이 다른 데 따른 문화적 경험의 차이가 결국 사회적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즉 개인과 구조의 관계를 동시에 아우르는 문제에 관심을 두게 됐다는 것이다. 그런 학문적 관심의 대표적인 산물이 ‘아비튀스’라는 개념이며, 이는 부르디외 이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아비튀스는 개인과 구조를 연결하는 특정한 성향의 무의식적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어려서부터 가족에게 배운 행위, 규칙, 취향이 내재화되고, 이렇게 체화된 성향은 지속적으로 전이되어 훗날 성장과정에서 나타나는 모든 사회적 경험의 판단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무슨 물건을 살 것인지의 문제를 비롯해서 어떻게 여가를 보낼 것인지의 문제에 이르기까지. 아비튀스는 환경의 산물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계급에 의해 미리 결정된 고정적 개념은 아니다. 오히려 습득된 성향은 경우에 따라 창조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 부르디외의 생각이다. 따라서 아비튀스는 무한한 변주가 가능한 ‘통달된 상태’‘경향’‘전제’ 등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치 스포츠와 재즈의 경우에서 게임에 관한 규칙을 숙지하거나 악기를 다룰 수 있게 되면 적절한 시점에 즉흥적 플레이가 가능한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부르디외는 사회적 관계를 단순히 경제적인 현상으로 이해하는 것에 반대한다. 사회적 관계는 경제와 문화적 요인을 동시에 살펴봤을 때 제대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날 자본사회에서는 경제적 자본이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는 것만큼이나 문화적 자본 또한 사회그룹들에 따라 차등적으로 배분되어 있다. 여기서 부르디외가 강조하는 문제는 문화적 자본의 차이가 취향의 차이를 낳게 되고, 그것은 결국 사회적 구별짓기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지식인들의 위선과 기만에 주목 사진/ 부르디외의 별세소식이 알려지자 서울 대형서점에선 그의 저서들이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일부 학자들은 부르디외가 문화적 취향의 문제를 사회학적 관심사로 부상시킨 데 대해 지극히 프랑스적인 발상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부르디외의 문화사회학을 한국의 현실에 대입해보면 그런 비판이 타당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한국에서 소비행위 자체가 이제까지 모호하게 존재했던 계급의 개념을 좀더 확실하게 설정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를 일반 대중의 일상적 필요에 따른 것과 오로지 그들과 구분되고 싶어하는 상류층들의 사치스러운 것으로 나눌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부르디외가 제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한국의 현실을 이해하는 데 아비튀스 개념을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부르디외의 지식인론도 경청할 만하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철저하게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사르트르 이후 현실참여에 가장 적극적인 프랑스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부르디외는 국내외적으로 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개입하곤 했다. 때로는 미테랑 정부의 비판적 지지자로, 또 때로는 노동자 파업의 후원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라크 전쟁이 일어났을 때 이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하는 것도 그의 몫이었다. 그러나 ‘성찰적 사회학’을 주장하는 부르디외는 지식인들의 위선과 기만에 더욱더 주목한다. 그는 오늘날 지식인들이 너무나 쉽게 상업 언론에 등장해 아마추어적 견해를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는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미디어의 지면이나 화면을 사이비 지식인들이 적극 수용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이 미디어가 요구하는 흥미위주의 단편적 지식을 제때에 제공하기 위해 임기응변식으로 지식상품을 생산해낸다는 것이다. 이런 사이비 지식인들과 달리, 진정한 지식인들의 목소리는 제도적으로 억압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업 언론의 확산은 곧 새로운 문화체제를 등장시켰고, 이에 따른 새로운 생산과 소비에 관한 룰이 형성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진정한 지식인과 예술가들도 오로지 상업적인 가치에 따라 평가될 뿐이며, 만약 이 판단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여지없이 배제되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식인들이 지배그룹의 이익을 대변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전락하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실제로 부르디외는 지식인들이 전문지식 또는 문화적 자산을 소유한 지배그룹의 일당이라고 주장한다. 다만 그들이 진정한 지배세력의 일원이라기보다 지배계급에 종속된 일종의 피지배그룹에 불과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부르디외는 지식인들이 이런 모습을 탈피하기 위해서 외부의 영향에 비교적 자유로운 독립적 위치에서 정치과정에 개입할 수 있는 지식 생산자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신자유주의 반대투쟁… 부르디외가 마지막까지 참여적 지식인의 면모를 여지없이 보여준 것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대투쟁을 통해서다. 그는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물결이 몰고 온 결과가 고작해야 문화적 획일성일 뿐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문화산업의 집중화가 타문화에 대한 이해나 배려를 일방적으로 배제한 채 문화적 다양성을 저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문화가 곧 자본이자 권력인 이즈음, 문화의 독점 현상이 심화할 것이 틀림없지만, 이는 반드시 극복해야 할 대상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부르디외는 다시 한번 지식인들이 사회적 약자를 위해 발언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목적을 위해 부르디외와 비판적 지식인들의 연대 모임인 ‘행동하는 이성’이라는 그룹은 상업 언론을 이용하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자신들의 이론을 대중화해서 일반 독자들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출판전략을 채택하고 있다. 이런 노력의 일환으로 그동안 펴낸 책들은 <맞불> <텔레비전론> <12월의 프랑스 지식인들> 등이 있는데, 하나같이 베스트셀러를 기록하고 있다. 부르디외는 가장 전형적인 프랑스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이론은 프랑스의 문화현상을 토대로 발전시킨 것이지만, 이를 한국의 현실에 대입해도 별 무리없이 적용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그의 이론이 보편성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이제 부르디외의 그런 훌륭한 이론을 더이상 접할 수 없다는 사실은 프랑스의 지식인뿐만 아니라 한국의 사회철학도들에게도 커다란 손실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이론은 전승·발전시켜야 할 인류의 자산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조흡/ 문화연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