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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12월 21일 금요일 오전 04시 20분 54초
제 목(Title): 이정우/ 죽음의 테마 


출처: 한겨레 21
http://www.hani.co.kr/section-021083000/2001/12/021083000200112190389029.html

[ 이정우의 철학카페 ]  2001년12월19일 제389호   
 

죽음을 기억하라!

이정우의 철학카페 9|죽음의 테마 
중세의 존재론적 허무주의에서 근대의 이성적 합리주의로 



 
사진/ 안토니오 데 페레다 <기사의 꿈> 152×217cm, 마드리드산페르난도 
아카데미아. 

삶의 허무와 죽음에 대한 공포는 시대에 따라 강약을 달리하면서 사람들을 
지배해왔다. 한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아직 그에 대한 특별한 처방이 등장하지 
않았을 때, 이런 허무적 감정이 특별히 고조된다고 할 수 있다. 니체는 
기독교적 가치의 몰락이 서구의 허무주의를 야기시켰다고 했지만, 사실 
기독교적 가치가 철저하게 지배하고 있던 시대에도 이런 감정은 늘 존재해온 것 
같다. 중세 말기는 이런 감정이 특별히 고조되었던 시대이다. 


마음에 공포를 심어 신앙심 북돋워 


중세 말기(특히 15세기 초)에 유행했던 ‘죽음의 무도’(danse macabre)는 이런 
시대적 정서의 압축판이라 할 수 있다. 춤추고 또 춤추다가 마침내 죽음에 
이른다는 낭만적이면서도 서글픈 이미지, 허무와 공포를 잊으려는 몸부림, 이런 
이미지는 훗날 뭉크의 그림에서도 재현된다. 삶 속에 이미 죽음이 들어와 
있다는 것, 비샤의 의학과 하이데거의 철학에서도 선명하게 나타나는 이 생각은 
중세 말, 르네상스, 17세기로 이어지는 서구문화사에서 중요한 모티브를 
형성했다. 마카브르는 하층민들뿐만이 아니라 귀족들이나 성직자들, 심지어 
교황들에게까지 퍼졌고, 마치 전 유럽 사람들이 죽음의 춤판에 빠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이것을 ‘메멘토 모리’(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말로 표현했다. 

죽음의 테마는 또 ‘아르스 모리엔디’(죽음의 기예)라는 개념으로도 
나타났으며 이것은 죽는 방법, 즉 ‘잘 사는 법’에 대립하는 ‘잘 죽는 법’을 
가리킨다. <죽음의 기예>(작자 미상)라는 책에 수록되어 있는 목판화에는 
죽음에 처한 사람에게 닥치는 악마의 유혹, 그리고 그 유혹과 싸우도록 그를 
격려하는 천사의 투쟁이 그려져 있다. 악마는 다섯 단계에 걸쳐 죽는 자를 
유혹한다. 악마는 환자의 신에 대한 믿음을 뒤흔들고, 또 신을 잔인한 존재로 
역설하고, 세 번째로는 가족과 업적에 대한 애착을 불러일으키고, 네 번째로는 
환자로 하여금 자신이 겪는 고통을 상기케 하며, 다섯 번째로는 환자의 오만을 
부추긴다. 그러나 죽는 자는 천사의 도움을 받아 그 모든 유혹을 물리치고 
마침내 천당으로 향한다. 

죽음의 테마가 중세 말을 휩쓴 이유들 중 하나는 교회 자체에 있다. 교회는 
점점 약화돼가는 신앙심을 붙들기 위해서 인간에게 가장 심각한 문제, 그리고 
종교가 발생한 이유 자체라고도 할 수 있는 죽음의 테마에 집착했다. 교회 
자체가 자꾸 분열되고 그 권위도 추락 일로에 처해 있던 당시, 교회는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를 불러일으킴으로써 신앙심을 붙들어매려 했다. 기독교 사회 
특유의 고백문화가 더욱 강화되었던 것도 이때이며, 그래서 ‘뼈를 깎는 
고백’(confessio oris)이 도입된 것도 이때이다. 또 교회는 사람들의 감정을 
고양시키기 위해 죽음의 테마와 관련되는 멜로드라마적인 요소들을 도입했으며, 
때문에 교회가 성스럽다기보다는 마치 극장과도 같이 난잡한 상태에 빠지기도 
했다. 


죽음과 허무를 표현하는 작품들 



 
사진/ 얀 베이닉스 <백조의 죽음> 1716, 173×154cm, 로테르담 보이만스 미술관 


죽음의 존재는 삶을 헛되게 만든다. 죽음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한다(Mors 
omnia aequat). 죽음 앞에서 모든 권력은 무로 화한다. 안토니오 데 
페레다(1608∼78)의 <기사의 꿈>은 이런 헛됨을 잘 보여준다. 한 기사가 잠에 
빠져 있다. 그의 옷은 쇠로 만든 갑옷이 아니라 좀더 간편하게 진화한 날렵한 
옷이다. 싸울 때 입는 갑옷은 책상 위에 놓여 있다. 그는 한손을 턱에 괸 채 
삶과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탁자에는 그가 누린 많은 행복과 권력의 상징들이 
널려 있다. 부를 상징하는 돈과 값진 보석들, (오늘날의 수표인 것처럼 보이는) 
종이들, 그리고 사냥에 쓰는 총. 바이올린과 음악 악보는 아름다운 청춘과 
사랑, 향략을 나타내는 듯하다. 그리고 기사의 반대편에 놓인 지구본은 기사가 
한평생 추구했던 권력과 정복을 상징한다. 카프카의 아버지에게서도 볼 수 
있듯이, 지구본이야말로 “세상은 나의 것”(The World is mine)이라는 
권력자들의 바람을 상징하지 않는가. 책은 지배계층이 적당히 갖추어야 할 
교양을, 가면은 화려한 연극으로 날을 지새는 향락의 삶을 상징하는 듯하다. 

그러나 바로 그 향락과 권력의 한가운데에 해골이 놓여 있다. 해골은 죽음을 
상징한다. 때문에 허무를 표현할 때면 어김없이 해골이 등장했다. 책 위에 놓여 
있는 해골은 만물이 헛되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나타낸다. 촛불은 꺼져 있다. 
프랑스 철학자 바슐라르를 매혹시켰던 촛불, 아닌게 아니라 타오르는 
촛불이야말로 영혼을 고양시키고 솟아오르는 생명의 약동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그 촛불은 꺼져 있다. 어떤 것도 죽음을 피해가지는 못하며 화려하게 
피었던 꽃도 지게 마련이다. 현세계에서 향락과 권력을 누렸던 기사에게도 
죽음의 그림자는 늘 따라다닌다. 그래서 기사의 꿈속에 나타난 천사는 “고상한 
업적들이 가져다준 명성은 하룻밤 꿈처럼 소멸하리라”고 쓴 글을 보여주면서 
방종과 오만을 경계시킨다. 죽음과 허무를 잘 표현한 작품이다. 

죽음은 때로 동물의 죽음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얀 밥티스트 
베이닉스(1621∼62)가 그린 <백조의 죽음>은 죽음은 모든 것을 평등하게 한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한번 실감나게 만든다. 새들 중 특히 우아하고 고귀한 풍모를 
지닌 백조가 시체가 되어 나뒹구는 장면은 죽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설명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잘 보여준다. 백조는 아마도 사냥물인 듯 다른 죽은 새들과 
더불어 매달려 있다. 그 옆의 꽃들은 마치 석고로 빚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시들어 있다. 전체적으로 죽음의 파토스를 또렷하게 드러낸다. 


죽음의 폐허 위에 피어난 합리주의 


존재론적 허무주의는 인식론적 회의주의와 짝을 이룰 때가 많다. 그래서인지 
르네상스 시대를 전후해서 회의주의가 전 유럽을 휩쓴다. 그리스의 회의주의 
철학자 퓌론의 제자들이 숱하게 등장한다. 데카르트의 ‘방법적 회의’는 이런 
시대 분위기와 반대되는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근대 철학의 서곡을 알리지만, 
사실상 그 동기는 이런 시대 분위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가장 확실한 것을 찾기 
위해 “모든 것을 회의한다”는 것은 곧 당대의 일반적인 분위기가 바로 모든 
것을 회의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다. 데카르트는 이런 상황에서 “나는 
생각한다”는 이성주의를 제시했고, 스피노자는 자유인은 죽음을 생각하지 
않으며 오로지 삶만을 생각한다고 했다. 그리고 라이프니츠는 형이상학사상 
가장 뚜렷한 형태의 낙천주의를 제시하기에 이른다. 종교전쟁(1618∼48)이 
휩쓸고 지나간 폐허의 자리에서 근대 합리주의가 탄생했던 것이다. 


철학아카데미 원장 elandamour@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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