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12월 8일 토요일 오후 12시 33분 54초 제 목(Title): 한21/ 브레너의 '혼돈의 기원' [ 지성 ] 2001년12월05일 제387호 경제위기는 어디에서 오는가 임금상승이 이윤창출을 방해했나… 원인을 자본의 경쟁에서 찾는 브레너의 도전 사진/ 위기는 오래 지속된다. 공황의 조절은 고비용 한계자본의 퇴출을 막아 경제 위기를 장기화한다.(SYGMA) ‘과잉생산, 과소소비’라는 말만큼 자본가들을 두렵고 떨리게 만드는 단어도 많지 않을 것이다. 공황이라는 자본주의 최대의 위기가 그 말에서 직감적으로 감지되기 때문이다. 1930년대 대공황은 자본주의 경기순환의 끝물이 얼마나 처참할 수 있는가를 남김없이 드러냈다. 수만개의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수백만의 실업자들이 거리를 헤맸다. 무수한 주식투자자들이 줄지어 전망 좋은 고층 빌딩의 창 밖으로 몸을 던졌다. 대공황이 소비의 부족에서 비롯됐다는 데는 해석의 이견이 별로 없다. 케인스주의는 소비의 창출로 과잉생산을 해소하려 했다. 재정확대와 임금상승, 노사타협에 의한 복지국가의 확립 등이 수요확대를 위한 처방이었다. 신자유주의가 유일한 해법? 1950∼70년까지 서구사회를 휘감았던 장기호황의 황금시대는 케인스주의적 처방의 승리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곧 모든 것이 바뀌었다. 70∼90년 선진7개국의 제조업 이윤율은 50∼70년에 비해 평균 40% 하락했다. 90년엔 이윤율이 최정점에 올랐던 65년보다 45% 낮았다. 장기침체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으며, 97년 동아시아 경제위기는 침체를 한층 가속화했다. 2000년 초까지 한때 세계를 설레게 했던 미국의 신경제 붐도 어느덧 사그라지고 있다. 정보통신산업의 기술혁신에 기반해 “자본주의 경제엔 후퇴없는 전진만이 남았다”던 주류경제학의 예측도 샴페인 거품처럼 꺼져들고 있다. 반짝 호황이 사라진 곳에 경제위기의 냉기류는 한층 거세졌다는 진단이 힘을 얻고 있다. 논란은 여기서 빚어진다. 장기침체의 원인이 무엇이냐를 두고 그동안의 해석들은 모두가 자본에 대한 노동의 압박을 주요하게 지적해왔다. 강력한 노동운동에 기반한 케인스주의적 복지정책 결과 생산성을 웃도는 과도한 임금상승이 발생했으며, 그 때문에 자본의 안정적인 이윤창출이 방해받게 됐다는 것이다. 대공황을 부른 과소소비의 문제를 해결함으로서 전후 호황을 가능케 했던 복지국가의 제도와 정책이 곧 장기침체를 초래한 원인으로 제시된다. 특히 신자유주의는 이런 인식에 기반해 임금삭감과 노동권의 약화, 복지제도의 해체 등을 통한 생산성 향상과 이윤율 증대를 경제위기 탈출의 유일한 해법으로 제시해왔다. 로버트 브레너(UCLA 교수, 역사학)의 <혼돈의 기원>(이후 펴냄, 02-3143-0915, 1만9천원)은 이러한 주장에 대한 정면 반박이다. <혼돈의 기원>은 70년대 자본주의 이행논쟁을 일으켰던 브레너가 1998년 에 전권 특집으로 실었던 논문의 번역본이다. 이에 따르면 위기는 노동이 자본에 가한 도전과 압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본과 자본의 수평적 경쟁에서 비롯됐다. 브레너는 미국과 독일, 일본경제의 장기분석을 통해 유한한 세계시장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각 나라 자본들의 무한경쟁이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유발하고, 그 결과 이윤율이 하락하게 됐음을 입증해보인다. 이윤율 하락의 유일한 풀이법은 과잉시설의 퇴출을 통한 생산의 조절이다. 그러나 개별 자본들은 퇴출을 거부한 채 더욱 거세진 경쟁 속으로 스스로를 밀어넣음으로써 위기를 영속화한다. 독점자본주의론에 대한 비판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해소할 수 없었던 데는 이유가 있다. 이미 엄청난 고정자본을 투여한 개별 기업으로선 자본철수 대신, 낮아진 이윤율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존 분야에 머무는 게 이익이기 때문이다. 과잉생산과 이윤저하로 인한 임금의 하락과 소비감소, 다시 그에 따른 수익성 감소의 악순환이 계속된다. 브레너의 입론은 마르크스가 지적했던 바인 자본주의 경쟁의 무정부적 성격에 내재한 원초적 위험성을 새롭게 부각시켰다. 이 점에서 경쟁 아닌 독점의 폐해에 주목한 독점자본주의론과 전반적 위기론 등에 대한 강력한 비판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제조업 자본의 경쟁을 경제위기의 근원으로 강조한 나머지 금융자본의 세계화 전략에 대한 시각이 결여돼 있고, 임금-이윤압박설에 대한 반박에 주력하느라 노동자들의 경제투쟁이 자본구조의 변동에 끼치는 영향을 과소평가했다는 역비판도 받고 있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 지성 ] 2001년12월05일 제387호 좌파경제학의 이단아 세계경제위기 분석에서 브레너가 거부하는 이론과 개념들은 무엇인가 사진/ 브레너는 아시아 경제위기 또한 제조업 자본간 경쟁 격화의 결과라고 본다. 주가 폭락에 울어버린 홍콩의 주식중개인.(AP 연합) 마르크스주의 역사학자인 로버트 브레너는 <혼돈의 기원>과 <호황과 거품>(Verso, 아침이슬 근간)을 통해 오늘 세계경제위기 문제를 이해하는 데 있어 새롭고 중요한 논점들을 제기하고 있다. ‘세계화’는 없다? 첫째, 브레너는 얼마 전까지 좌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통념으로 통하던 독점자본주의론 혹은 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같은 단계론적 자본주의관을 거부한다. 브레너는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경쟁이 독점으로 대체된 것이 아니라, 경쟁이 오히려 더 격화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브레너는 우리나라 좌파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최근 유행하는 프랑스의 조절이론 역시 자본주의 발전과정을 ‘경쟁적 조절’에서 ‘독점적 조절’로의 이행이라는 단계론적 도식으로 파악한다는 점에서 거부한다. 둘째, 브레너는 세계경제위기는 노동자 투쟁에 따른 이윤압박이 아니라 국제적 자본간의 경쟁 격화에 따른 제조업 제품가격의 하락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브레너는 노동자 투쟁은 단기적·국지적으로는 이윤율을 저하시킬 수 있어도, 장기적·체제적으로는 이윤율 저하와 이에 따른 경제위기를 야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즉 브레너는 1970년대 이후 세계경제위기를 이른바 포드주의(Fordism)의 진부화에 따른 생산성 위기가 초래한 임금상승-이윤압박이나 노동자 투쟁의 격화에 따른 임금상승-이윤압박으로 설명하는 신리카도주의자들 또는 네그리(A. Negri) 등 좌파 경제학자들의 통설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셋째, 브레너는 오늘 세계경제론의 화두라고도 할 수 있는 이른바 세계화라는 문제설정 자체를 거부한다. 브레너의 현대자본주의 분석에서 다국적기업, 금융세계화, 헤지펀드 등의 논의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이유는 이 때문이다. 브레너는 오늘 세계경제의 구조와 동학을 국민적 자본주의들간의 불균등결합 발전의 맥락에서 설명한다. 이 점에서 브레너는 요즘 우리나라 좌파 경제학자들이 애호하고 있는 월러스틴이나 아리기 등의 세계체제론과 거의 대척점을 이루고 있다. 넷째, 브레너는 또 1997∼98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일부 좌파 경제학자들이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책임론 및 이와 함께 거론되는 자본주의 유형학의 ‘라인자본주의’ 대안론(자본주의를 영미형 대 라인형으로 구분하고 주주 중심과 시장절대주의를 내세우는 영미형보다 노사타협과 국가의 시장규제를 중시하는 라인형을 한국사회가 지향할 대안으로 제시하는 입장- 편집자)도 정면으로 비판한다. 브레너는 신자유주의는 오늘 세계경제위기의 원인이 아니라 1965∼73년 이윤율의 저하와 함께 이미 시작된 세계경제위기에 대한 자본주의 국가의 대응이라고 본다. 다섯째, 브레너는 얼마 전까지 대다수 경제학자들의 통념이었던 신경제론 혹은 디지털혁명론도 명시적으로 거부한다. 브레너는 신경제란 한마디로 금융거품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한다.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이 점에서 마이클 만델 등의 ‘인터넷 공황론’과도 명백히 구별된다. 신경제는 금융거품에 불과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스탈린주의와 개량주의가 지배한 기존 좌파 경제학의 주류의 관점에서 보면 확실히 이단적인 접근이다. 그러나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경쟁을 자본주의의 고유한 동학의 원천으로 보고, 부르주아사회의 총괄로서의 자본주의 국가의 복수성을 강조하며, 자본주의 공황을 자본 자체에 내재한 모순의 필연적 폭발로 간주하는 점에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자본주의론을 오늘 세계경제위기 분석에 적용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정성진/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장(경제학) [ 지성 ] 2001년12월05일 제387호 구조적 위기를 보는 좁은 시야 브레너 경제이론에 대한 비판… 장기침체는 ‘경쟁’이 아니라 발전모델 문제로 봐야 사진/ 브레너의 주장은 70년대 이후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가 포다즘적 축적구조의 한계에서 비롯됐음을 간과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SYGMA) 경제위기의 원인에 관한 정치경제학의 설명에는 이윤율 하락에 초점을 맞추는 위기론과 실현곤란(즉 판매부진)에 초점을 맞추는 위기론이라는 두 가지 계열의 위기론이 존재해왔다. ‘이윤율 하락에 따른 경제위기’론에는 자본구성 고도화 가설, 이윤압박 가설, 생산성 위기 가설 등이 있다. ‘실현곤란에 따른 경제위기’론에는 과소소비설과 불비례설 두 가지가 있다. 순환적 위기 분석에 적합한 이론틀 브레너는 1970년대 이후 현재에 이르는 세계경제의 장기침체를 이러한 기존의 위기론들과 다른 시각에서 해명하고자 한다. 브레너의 세계경제위기론은 크게 보면 이윤율 하락에 따른 경제위기론 계열에 속하면서도 이윤율 하락의 원인에 관해서는 기존의 세 가설과 다르다. 브레너는 국제경쟁의 격화 속에서 기업들이 도입하는 비용절감형 기술이 과잉설비와 과잉생산을 초래하고 이것이 제품가격을 하락시켜 이윤율을 하락시키고 그 결과 경제위기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과잉생산의 원인을 과소소비가 아니라 국제경쟁의 격화에서 찾는다는 점, 자본간 경쟁이 자본구성의 고도화가 아니라 제품가격을 하락시킨다고 보는 점, 생산성 위기가 수익성 위기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수익성 위기가 투자를 위축시켜 생산성 위기를 가져온다고 보는 점 등에서 브레너의 경제위기론은 기존 경제위기론의 추론과 구분된다. 브레너의 경제위기론은 1950년∼60년대 말의 장기상승과 70년대∼현재의 장기침체라는 구조적 위기를 다루면서도 단기적 성격을 가지는 순환적 위기 분석에 적합한 이론틀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문제점이 있다고 생각된다. 장기상승과 장기침체와 같은 자본주의 경제의 장기파동은 기술혁신 요인과 함께 제도적 요인 혹은 구조적 요인을 함께 고려한 이론틀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조절이론의 견해처럼 2차대전 이후 현 시기까지의 선진자본주의는 포디즘적 대량생산 발전모델의 성립과 해체, 그리고 새로운 발전모델의 등장과정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한다. 이런 시각에 의하면, 70년대 이후의 선진자본주의 혹은 세계경제의 위기는 포디즘적 발전모델의 위기라는 구조적 위기의 성격을 가지고, 현재 지속되고 있는 장기침체는 낡은 발전모델은 해체되었지만 그것을 대신할 새로운 발전모델이 아직 성립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 현재 등장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적 글로벌 자본주의’에서의 ‘금융주도 축적체제’는 매우 불안정하고 불평등하기 때문에 장기간 지속가능한 발전모델로 정착되기 어려울 것이다. 신경제의 잠재력 과소평가 한편 브레너의 과소평가와는 달리, 디지털경제와 지식기반경제로 집약되는 ‘신경제’는 세계자본주의에 새로운 축적기반을 제공함으로써 장기침체에서 장기상승으로 전환시킬 잠재력을 가진다고 평가해야 할 것이다. 물론 이러한 ‘신경제’에도 호황과 불황이 교체되는 순환적 위기가 나타날 것이고 마침내는 구조적 위기가 닥칠 것이기는 하지만. 브레너의 경제위기론의 실증적 문제점은 1970년대 이후 그가 경제위기의 핵심요인으로 파악하는 제품가격 하락추세에 관한 자료가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는 그의 위기론의 현실적합성에 결정적 의문을 제기하게 만든다. 따라서 그의 경제위기 가설은 입증되지 못하고 더욱이 다른 가설들을 결정적으로 기각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할 것이다. 김형기/ 경북대 교수·경제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