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9월 17일 월요일 오전 02시 37분 50초 제 목(Title): 강수돌/ 노동사회와 노동중독 출처: 한겨레 노동사회와 노동중독/ 강수돌 약 2주일 전 독일 브레멘대학에서는 `노동사회에서의 노동중독증'이라는 제목 아래 매우 흥미로운 국제 워크샵이 3일간 열렸습니다. `노동중독증'이란 한마디로 사람이 노동을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이 사람을 통제하게 된 병적 상황입니다. 여러 나라에서 경제·경영학자나 노동사회학자 뿐만 아니라 역사학자, 심리학자, 법률학자, 심지어는 심리치료사와 장애 및 중독증 상담사 등 각계의 관심 있는 이들이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이 워크샵 초반에 제가 가졌던 한 의문은 이런 것입니다. 독일은 실업자가 한국보다 4배 이상 많은데도 그래서 `고용안정'에 대한 욕구가 우리보다 더욱 강할 터인데도 그보다는 오히려 `노동중독'이라는 주제에 대해 대단히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무얼까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실업자와 비정규직이 폭발적으로 늘어난 한국 사회에선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용안정'에 대해서만 걱정을 하지, `노동중독' 같은 문제는 어찌 보면 다소 한가한 문제제기가 아니냐는 태도를 갖기 때문입니다. 제가 보건데 독일에서 `노동중독'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관심을 끌게 된 배경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기존의 사회경제 시스템이 사람들에게 만족스런 삶을 보장하는 데 한계에 봉착했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면 진보 역사학계의 거두인 칼 하인쯔 로트 박사는 “이른바 선진국의 사회보장 제도가 `노동을 통한 복지' 개념으로 신자유주의적 변형을 겪으면서 더 이상 노동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노동을 `강제'하는 것으로 퇴보하고 있다”고 경고합니다. 개인의 상품적 가치 발현을 공동체적 가치보다 우위에 두려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영·미국을 중심으로 `세계화'하면서 기존 사회구조는 물론 노동조합조차 무력화하고 결국 사람들이 일과 건강한 관계를 맺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 점에서 한국도 자유롭지 못하지요. 정리해고 물결 속 어느 노동자의 말이 생각납니다. “지긋지긋한 컨베이어를 매일 다시 탄다고 생각하면 소름이 쫙 끼치지요. 하지만 가진 건 없고 먹고살자니 어떻게 합니까?” 둘째는 노동과 생활 등 일상적 삶의 전반에서 스트레스가 갈수록 높아져 더 이상 참기 어려워졌다는 것입니다. 사실 노동중독증 자체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서서히 누적, 확산되어 왔으나 사람들은 `나중에 가면 좀 더 나아지겠지' 하는 심정으로 그냥 저냥 참아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상황이 아무리 모순적으로 진행되더라도 삶의 주체들이 참고 넘기는 이상 절대 변화는 오지 않지요. 예컨대 뒤셀도르프에 있는 IBM사의 한 사무직 노동자가 사내 컴퓨터망을 통해서 “도저히 더 이상 노예처럼 일할 수 없다!”고 선언하자마자 수십, 수백 명이 “나도 그래!”라며 공감을 표하고 나섰습니다. 주 50시간 이상의 고된 노동 속에서 우리 감각은 `이게 아닌데'라 느끼는데도 우리 이성은 대개 `조금만 더 참자', `주5일제 하면 임금 줄지 않나'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불감증에서 빠져 나와 “이제 그만!”이라 외쳐야지만 비로소 새 세상이 열립니다. 그래서 지금부터라도 우리 눈앞에서 진행되는 모든 것에 대해 솔직하게 느끼고 터놓기 시작해야 합니다. 자기 느낌을 속이고 억누르는 데서부터 온갖 중독이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남부 독일에서 왔다는 한 여성 상담사는 “노동중독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이 근본 치유의 첫걸음”이라 강조합니다. 생각컨대 우리 어른들은 `오로지 노동만 하다' 세월 다 보낸 것 같습니다. 물론 자식 낳아 기르며 먹고살다 보니, 그것도 물적 토대가 취약한 나라에서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노동에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솔직한 느낌을 속이지 않으며 건강하게 사는 일이 결코 물적 토대가 갖추어진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이번 독일의 국제 워크샵이 증명합니다. 고용불안도, 노동중독도 없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개인적, 조직적 생명력을 왕성하게 발동시킬 때가 아닌가 합니다. 강수돌/고려대 교수·노사관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