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pisces ()
날 짜 (Date): 2001년 7월  1일 일요일 오전 06시 41분 37초
제 목(Title): Re: 명성황후


제 나름대로 명성황후에 관한 글을 적어봅니다. 고수님들께서 좀더 뤼를 달아

주시면 감사드리고요.


친인척을 동원한 외척 세력으로 한 왕조를 좌지우지 한 것은 사실이지만

명성황후는 조선 왕조 가운데 똑똑한 황후 중에 하나이고 

조선의 독립적 지위를 위해 일본, 러시아 의 힘을 빌리려고 했으며, 그 방법에

있어서 흥선대원군과 달라 갈등이 있었던 걸로 압니다. 명성황후처럼 정치를

좌지우지한 황후는 중조/명종시대의 문정황후가 있는데. 오히려 폐혜는 더

많았다고 합니다. 그 아들 명종을 허수아비처럼 부리고 윤원형 일당에게

모든 권력을 줘 버렸죠. 이의 역사적 배경은 사림과 훈구 세력의 정치적

알력 때문이었죠. 

그런 문정황후도 황후의 칭호를 계속 가지고 있는데 민비라뇨. 그녀는 

단순히 비가 아니라 황후, 명성황후 입니다. 조선왕조 마지막  국모입니다.

명성황후 뿐만 아니라, 마지막 황제 고종도 조선시대 역대 왕중 똑똑한 임금 

중에 하나였다고 평가 받고 있습니다. 정조 이후 몰락의 길을 걷던 조선왕조에

개혁의 손길을 뻗친 왕이었고, 국제 정세에 따라 적절히 그 외세의 힘을 빌어

정치적 기반을 강화하려 했던 왕이었습니다. 


시해라는 말은 시체를 훼손했을 때 쓰는 말입니다. 일본 낭인(깡패,야쿠자)들이

명성황후를 해하고 그 시신을 데려다 불질렀기 때문에, 시신을 수습하지도

못했죠 나중에 국상을 치루려고 했을때. 한 국가의 국모를 자기 의중데로 

하지 않는다고 죽였던 것이죠. 그 작전명이 여우 사냥 이었다니. 정말 자존심 

상하는 부분입니다. 한나라의 국모를 여우라고 칭한거죠. 언젠가 이부분을

일본에게 그대로 복수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나의 세대가 아니라도. 


조선왕조는 유학을 기반으로 때로는 사대부정치, 때로는 왕도정치를 기치로

내세운 나라입니다. 유학은 개국당시 새로운 건국 이념이었고, 왕에 의한

세습 정치는 그 시대의 정치 행태였습니다. 단지 세습에 의해 이루어진 

정치가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오늘날의 시각입니다. 조선시대

왕들은 어릴 때부터 영재 교육을 받았으며 논리적 학문적으로 사대부, 그들이

훈구이던, 사림이던, 또는 4색 정당인들이던, 와 토론과 격론으로 정치를

이끌었으며 정책 또한 충분한 토론과 언관들의 견책을 받았습니다. 왕이

정치 개혁을 하려면 그만한 배경을 설명하고 논리적으로 사대부들을 설명해야만

했습니다. 그러지 못했을 경우에는 항상 사대부들에 의한 쿠데타가 일어

났었죠. 이런 것 때문에 오히려 ...조선말,  고종의 개혁이 일사천리로 

실행되지 못하고 수구파 또는 개혁파의 견제를 받고 반대를 받지 않았나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조선 왕조는 이씨왕조도 아니고 그들만의 가족으로 정치가 이루어진 나라도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왕조입니다. 조선왕조실록이 한가문의 족보가 아니라

우리의 역사책인 것처럼..


사족이지만, 만약 고종, 명성황후, 흥선 대원군이 하나의 일치된 의견으로

개혁을 했다면 어땠을까요 ? 아마 우리는 지금의 나라보다 훨씬 잘 정리되어

있는 대한민국 또는 대한제국 또는 조선의 나라에 살지 않을까요. 적어도,

일본놈들의 치욕스런 식민기간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더.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 역사에는 가정이 없다는 말입니다. 

이말만 들으면 이상하게 패배 의식에 사로잡힙니다. 일본은 성공한 거죠.

아직도 식민의 역사가 우리의 정신세계를 사로잡고 있으니 말입니다.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