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eternity (Quizas) 날 짜 (Date): 2001년 5월 26일 토요일 오전 10시 13분 13초 제 목(Title): 용서와 화해는 불가능한가? 이세영 씨는 1980년 5월 21일 오전 11시 도청 앞 시위 때 총을 맞았다. 지금은 목발을 짚고 다닌다. 이세영 씨는 초등학교만 나와서 구두 만드는 기술을 배웠다. 이세영 씨의 꿈은 구둣가게를 차려서 밥 안 굶고 사는 것이었다. 정치며 사회며 권력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5월 18일에는 권투선수 박찬희의 타이틀 매치가 5회 KO로 끝나는 걸 보고 친구들을 만나러 거리에 나왔다가 행진하는 군인들을 보면서 "공수부대는 과연 멋지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군인들한테 붙잡혀서 무조건 두들겨 맞았다. 맞고 나니까 도대체 왜 맞았는지를 알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에 대한 그의 의문은 시작되었다. 군인들이 사람들을 마구 쏘아죽이는 걸 보고 나서야, 저자들을 저대로 내버려 두어서는 안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비로서 들었다. 그는 도청으로 향하는 시위 대열에 끼여들었다. 복부에 총알 두 발을 맞았다. 척추가 관통되어 다리를 쓸 수가 없게 되었다. 몸을 쓸 수 없게 되자 구둣가게 꿈은 끝났다. 목발을 짚고 꽃가게를 경영하는 총상 피해자 이세영 씨와 나눈 대화는 다음과 같다. "처음부터 그 사태에 대한 인식이 있었나?" "전혀 없었다. 나는 그때 전두환이라는 이름조차 몰랐다. 나는 구둣가게를 갖는 것이 꿈이었다. 두들겨 맞고 나서, 총에 맞고 나서, 이 사태가 무슨 사태인지를 알게 되었다." "총을 쏘는 군인들을 향해 달려갈 때 무섭지 않았나?" "너무나도 무서웠다. 너무나도 무서웠기 때문에, 그 무서움이 갑자기 분노로 바뀌었다. 그때 온몸이 떨렸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 군인의 총에 맞아 죽어야 하는지를 지금도 알 수 없다." "자녀들이 아버지의 목발에 대해서 묻지 않는가?"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다. 아빠는 왜 목발을 짚느냐고 물어온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했나?" "옛날에 다쳤다고 대답했다." "군인과 총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말하지 않았나?" "말하지 않았다. 내 아이들이 군대 전체와 국가 권력 전체를 증오하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목발을 보면 무슨 생각이 드는가?" "깨어진 구둣가게 꿈이 생각난다. 그러나 이 목발 때문에 나는 세상과 이웃을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용서와 화해는 불가능한가?" "그게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가해자들은 아무도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화해를 요청하지도 않았다. 개인의 심정으로는 만일 용서를 빌어온다면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일이란 없었다." -김훈 자전거 여행 中- "길은 여기서 끝나고, 가을빛 찬란한 저 편으로 갈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