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eternity (Quizas) 날 짜 (Date): 2001년 5월 26일 토요일 오전 10시 12분 14초 제 목(Title): 의사는 어디 있고, 정부는 어디에 있는가. 망월동 5.18 묘지에 스무 번째 봄이 왔다. 새 묘역은 망월동이 아니라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이다. 그러나 다들 망월동이라고 부른다. 새 묘역의 유영 봉안실에는 1980년 5월에 총맞아 죽고 매맞아 죽은 사람들 3백여 명의 사진이 걸려있다. 교복 차림 고등학생도 있고 웨딩드레스 차림의 신부도 있다. 손수레나 청소차에 실려온 주검들이다. 다들 사진틀을 깨뜨리고 세상으로 걸어 나올 것처럼 생생하다. "아아 광주여 무등산 이여/ 죽음과 죽음을 뚫고 나가/백의의 옷자락을 펄럭이는/ 우리들의 영원한 청춘의 도시여"라고 광주시인 김준태는 1980년 6월 2일자 <전남매일> 지면에서 통곡했다. 그 시를 발표하고 김준태와 편집국장 대리 문순태는 종적을 감추었다. 그때의 시인은 무등산을 부르며 통곡했고, 지금 신묘역의 묘비명들도 무등산을 부르며 통곡하고 있다. 새 묘역에서 무등산은 지척이다. 광주에서, 그 때의 피해자들은 저마다 자신의 상처를 자신의 혀로 핥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때, 젊은 어머니 뱃속에 들어앉아 있다가 군홧발에 채었던 태아들이 다들 죽지 않고 이 세상에 나와 지금은 스무 살이 되었다. 유복난 할머니는 1980년 5월 27일 새벽 5시에 안방에서 총을 맞았다. 그때 대학생이던 셋째 아들이 금남로에 나가서 쫓기던 청년 7명을 데리고 집으로 도망쳐왔다. 할머니는 군인들이 정권을 잡으려고 이 난리를 치는 것 인줄을 처음부터 알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청년들을 골방에 숨겨놓고 먹이고 재웠는데 군인들이 이 청년들을 잡으러 들어와 총을 난사했다. 유복난 할머니는 광주 대안시장에서 반찬 장사를 하고 있었다. 왼쪽 유방 밑으로 총알이 박혔다. 할머니는 그 후로 장사를 할 수 없게 되었고 지금까지 병석에 누워 있다. 할머니의 왼쪽 유방 밑에는 아직도 총알이 그대로 박혀 있다. 그 합병증으로 다른 여러 증세들이 도졌다. 총알을 빼려고 서울의 대학병원까지 갔었으나 빼지 못했다. 워낙 민감한 부위에 총알이 박혀 있어서 외과뿐 아니라 여러 분야의 전문의 7-8명이 함께 수술에 참가해야 하는데, 병원에서는 이걸 못하겠다고 하더란다. 여러 병원을 돌아다녔으나 모두 다 허사였다. 그래서 할머니는 네 아들을 젖 먹여 키운 유방 속에 총알을 지니고 산다. 그러니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다. 할머니는 총알을 품고 죽어야 할 모양이다. 의사는 어디 있고, 정부는 어디에 있는가.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그때는 총알을 빼내기가 수월할 것이다. -김훈 자전거 여행 中- "길은 여기서 끝나고, 가을빛 찬란한 저 편으로 갈 수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