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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5월 10일 목요일 오후 12시 40분 39초
제 목(Title): 권혁범/ 징병제의 반인간성 


출처: 한겨레21

[ 논단 ]  2001년05월08일 제358호   
 

징병제의 반인간성



 

70년대 중반의 어떤 겨울, 나는 논산훈련소에 있었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순진한 생각에 씩씩하게 머리를 밀고 도착한 곳이었지만 
영하의 밤공기 속에서 속내의 바람으로 몇 시간을 ‘구르고’ 나자마자 
후회하기 시작했다. 별달리 올곧은 사람이 아니었던 나는 ‘탈영’의 충동을 
억누르며 오로지 살아남겠다는 명분으로 금세 편법과 ‘요령’을 익히기 
시작했다. 벌거벗은 몸을 구둣발로 차대는 군의관의 폭력에 연신 굽실거리고, 
아무런 이유없이 명치끝을 가격하는 선임병에게 “시정하겠습니다” 혹은 
“나는 엽전입니다! 엽전은 때려야 말을 듣습니다!”는 식민지적 구호를 
복창하고, 밤낮으로 반복되는 ‘동질화’ 훈련에 고통스러워하며 나는 
‘군인’, 아니 ‘사람’이 되어갔다. 뇌정밀 검사 ‘특혜’를 받아야 할 
정도로 얻어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남아 2년 몇 개월 뒤 군문을 나왔을 때 나는 
이미 내 자신에 대한 존엄성을 완전히 잃어버린 만신창이 상태였다. 


그들은 상처입은 ‘병자’다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관계없이 배경과 성격과 세계관이 전혀 다른 사람들이 
모여 입대 날짜를 기준으로 엄격한 서열을 매기고 그것에 의존하여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어떤 강압도 행사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는 상황을 
생각해보라.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일은 강제 징집되어 녹화사업에 동원되었던 
한 후배의 죽음이다. 섬세한 손과 글 솜씨 덕택에 유망한 소설가로 기대되었던 
또 한 친구는 귀대 직후, 얼차려의 소동 속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물리적 폭력은 요즘은 거의 사라졌지만 징병제 군대의 본질은 바뀌지 
않는다. 어떤 사람을 단지 느리다는,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혹은 반항적인 
눈매를 가졌다는 이유로 얼마든지 괴롭힐 수 있는 공간에서, 유사시 오로지 
명령에 따라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훈련을 받으면서 사람들은 어떻게 변해 
가는가? 공포를 내면화하면서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을 포기하고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불가피하다는, 어떤 부당한 조건에도 순응할 수 있는 의식을 
갖게 된다. 왜냐하면 명령-복종체제의 폭력적 주입 속에서 ‘현실’은 도저히 
저항할 수 없는 거대한 벽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도전적이고 총명하고 창의적이고 개체적이던 젊음은 곧 순응적이고 기계적인 
단위로 변신한다. 사유의 의지를 포기한 ‘둥글둥글한’ 인간으로 전락한다. 
윤리적 감수성이 강한 사람은 미치거나 아니면 자신의 도덕을 포기한 대가로 
생기는 지독한 자기혐오 속에서 완전히 타락하기 쉽다. 다른 인간을 도구로 
보게 하고 또한 자신을 도구화하는 집단에 자신을 맞춰나가는 학습을 끝내서야 
그는 비로소 ‘성인’으로 대접받게 된다. 세상에서는 여전히, 그 과정을 
유약한 철부지가 ‘사람이 되어가는’ 혹은 ‘착실한 사람으로 거듭나는’ 일로 
오인한다. 그러나 그는 이미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입은 ‘병자’다. 동시에 
그는 다른 사람에게 언제라도 폭력적 상해를 입힐 수 있는 잠재적 가해자로서 
변해 있다. 나는 아직도, 호기심과 생기로 가득 찼던 수많은 제자들이 군 생활 
뒤 어떻게 변해 돌아오는지를 매 학기 목격할 때마다 가슴이 저리다. 결국 
가부장적 동원 분단체제가 요구하는 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수십만의 동질적인 
‘남자 부속품’을 생산하는 공정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폭력성, 가학적 가부장주의, 민주적 의사소통의 부재, 아귀다툼 문화는 과연 
이러한 공정과 무관할까? 


징병 거부는 여전히 불온한가 


헌신적이고 소박한 많은 직업군인을 매도하려는 게 아니다. 그들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외경심을 갖고 있다. 다만 신체·정신 건강한 만 20살의 남자를 
자신의 의지와 조건에 관계없이 군 조직에 편입시키는 징병제의 반인간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을 뿐이다. 그것은 ‘국가안보’를 위해 마땅히 요구되는 
제도일까? 개인의 존엄성과 신념을 짓밟으면서 존속되는 ‘국방’은 과연 
누구의 안전을 지키고 보장하는 것일까? 

요즘 병역비리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뇌물 따위로 징집을 피해가는 데 
한몫 한 사람들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겠지만 혹시 비리에 대한 
‘범국민적’ 규탄 속에서 강화되는 것은, 병역 의무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아닐까? 도처에서 군대를 갔다온 ‘떳떳한’ 사람들의 ‘비리’ 비판이 
강조될수록 재삼 강화되는 것은 ‘병역의무의 신성함’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징병제도 그 자체에 대한 근본적 비판과 질문이다. 이제는 
병역대체제도와 지원병제도의 도입에 대한 본격적 얘기가 시작될 때가 아닌가? 
‘합법적 폭력 연습과정’에 대한 참여 거부의 권리 얘기는 아직도 
‘불온한가’? 지금도 1200명이 넘는 젊은이들이 그 권리를 박탈당하고 감옥에 
갇혀 있다. 


권혁범/ 대전대 교수·당대비평 편집위원 http://dragon.taejon.ac.kr/~kwonh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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