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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parkeb (parkeb)
날 짜 (Date): 2001년 4월 19일 목요일 오후 04시 39분 51초
제 목(Title): Re: 경신환국에 관한 질문


숙종을 보는 시각은 두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뛰어날 정도로 붕당을 이용하였다는 것입니다. 즉 조선은 왕조정치

였음에도 조선의 왕권은 시간이 지나면서 신권에 의해 많은 제약을 받게 

됩니다.

특히 중종이나 인조를 보면, 연산과 광해를 몰아낸 것과 더불어 신권이

왕권을 누르게 되지요. 이에 대해서 중종은 사림의 등용으로 제어를 하고자

했고, 인조는 병자호란덕에 그렇게 할 시간도 없었다고 보입니다.

그러나 숙종은 남인, 서인, 남인 그리고 다시 서인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정권 교체를 왕권을 통해서 이루게 함으로써(이시기에 일어난 것은 환국으로

불리우는데 그 이유중 하나는 숙종의 명에 의해서 정권이 바뀌기 때문이라고

생각됩니다.) 교묘하게 왕권을 강화했다고 보는 시각입니다. 즉 신하들의

적절한 싸움을 놔두고, 결정적인 순간마다 손을 들어주는 것으로써 왕은

캐스팅 보드를 쥔 일인자의 역할을 하게 하는 것이지요.

이런 평가하에 판단한다면 숙종은 뛰어난 군주이며, 인조반정이후 심각하게

훼손당한 왕권의 강화를 이뤄낸 왕으로 평가받을 수 있겠죠.

또 하나의 시각은 숙종은 평범한 군주로써, 정권이 바뀐 것은 당쟁을 주도한

세력들이 주도면밀하게 만든 사건들에 그가 이용된 것으로 볼 수도 있겠습니다.

이렇게 볼 수 있는 시각의 이유중 하나는 숙종이 잘 알려진 장희빈과 

인현왕후의 예에서 보듯이 자신의 부인까지 희생시켰고, 또한 아무리 당쟁을

이용했다해도 뛰어난 신하들을 많이 죽음으로 몰았기 때문이라고 보입니다.

즉 왕권의 강화라는 측면에서만 보기에는 뛰어난 신하들을 너무 많이 잃었다는

것입니다.

경신환국의 예만을 본다면 두가지가 원인으로 나타나는군요.

하난 남인 영수인 허목이 사용한 자금이 왕실자금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왕의 소유재산을 함부로 사용한 것이 왕이 꺼리게 만든 원인의 하나라고

봅니다.

또하나는 소위 3복의 변이라고 해서 숙종의 친척인 복창군, 복선군, 복평군

3형제가 남인인 허견과 결탁하여 역모를 꾸민 것이군요.

이 두가지를 볼때 숙종으로썬 남인을 일단 몰아낼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또 하나는 외척인 김석주인데.. 이사람은 송시열을 싫어하긴

했지만 기본은 서인입니다. 서인이 보기에 남인의 예송논쟁 2차전 승리이후

조정에 남인이 거의 장악을 하고 있었다는 것은 자신들의 출세에 문제가

되겠지요. 그러니 3복의 변과 같은 사건을 제공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겠죠..


정리하자면..

숙종이 뛰어난 군주라면 경신환국은 그저 남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막기위해

사용한 계책일 뿐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허목의 어용자금사용과 3복의 변

이다. 즉 이것은 숙종이 유효적절하게 사용한 것뿐이다.

만약 뛰어난 군주가 아니었다면, 철저하게 서인의 이익을 위한 서인의 준비에

속은 것이고, 이를 위해 서인은 김석주란 외척을 동원한다. 여기에 3복의 변

이라는 왕으로써는 자신의 왕권에 도전하는 역모사건을 준비하여 숙종으로

하여금 처리하게 함으로써 정권을 잡는다 겠죠.


어디가 맞는가.. 모르죠. 제가 숙종이 아닌데 어찌 압니까요. :)

다만 경신환국의 원인은 위에서 언급한 두가지 정도로 많이 열거되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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