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3월 27일 화요일 오전 09시 18분 55초 제 목(Title): 구춘권/ 문명의 충돌과 공존 출처: 진보평론 겨울 주제서평 문명의 충돌과 공존 - 새로운 세계질서에 대한 두 가지 전망 - 구춘권·서강대 강사/ 정치학 [서평 대상서적] 사무엘 헌팅톤 著, {문명의 충돌}(1997, 김영사) 하랄트 뮐러 著, {문명의 공존}(1999, 푸른숲) 1. 새로운 천년의 시작을 기념하는 온갖 휘황찬란한 구호에도 불구하고, 21세기의 빛깔이 장밋빛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잿빛에 가깝게 보이는 것은 비단 몇몇 비관주의적 학자들의 우려 때문만이 아닐 것이다. 날로 심화되는 전지구적인 경제적 불평등, 이미 위험수위를 넘어선 국제금융시장의 불안정,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위기, 종종 군사적 충돌로까지 발전하는 국제적 긴장과 갈등은 여러 지배담론들에서조차 비관적 전망을 스며들게 했다.(주1) 그런데 불과 10년 전, "현존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냉전체제가 종식되었을 때 세계는 잠시 다르게 보였던 듯 싶다. 구 서독의 노동부장관 노버트 블륌은 "마르크스는 죽었지만, 예수는 살아 있다"는 이후 유명해진 문구로 당시 동구권 격변의 현장을 묘사했으며, 미국의 일본계 학자 프란시스 후쿠야마는 "현존사회주의"의 붕괴를 자유주의의 영원한 승리를 가져온 "역사의 종언"으로 이해함으로써 일약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이 대단히 성급한 것이었음은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드러나게 된다. 냉전이 끝나자마자, 쿠웨이트와 이라크의 오랜 이해갈등은 1990년 11월 후자가 전자를 점령하는 사태로 치달았고, 서방 ― 무엇보다 독일과 일본 ―의 군비분담 아래 미국이 군사적으로 개입하는 걸프전쟁으로 발전했다. 이 전쟁은 냉전체제의 종식이 "역사의 종언"이 아닌 대단히 불안정한 역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일 수도 있음을 암시했다. 왜냐면 만약 1989년 이전이었더라면 이라크의 주 무기공급국인 소련이 미국의 전략적 이해 ― 중동지역의 석유자원에 대한 통제 ―에 직접적으로 도전하는 바그다드의 군사적 모험주의를 단념시켰을 것이고, 따라서 이러한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겠지만, 그러나 초강대국 소련은 이미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것이다. 어쨌든 냉전체제는 온 세계를 무기로 가득 채우는 대단히 비합리적인 방법을 통해서였긴 했지만 상대적으로 지속적인 평화를 창출하는 데에 성공하였다. 역설적으로 냉전의 독특성은 세계전쟁이 곧 일어날 위험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주2) 전쟁은 그것이 지구를 순식간에 날려버릴 초강대국간의 핵전쟁을 촉발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의해서 통제되거나 억제되었고, 이와 같이 얼어붙은 국제상황은 역설적으로 지속적인 평화를 가능케 했다. 즉 국제적 긴장과 갈등은 가능하면 초강대국의 이해관계를 직접적으로 자극하지 않는 방향으로 조절되었고, 이러한 노력은 일종의 "냉평화(Cold Peace)"를 가져왔던 것이다. 냉전구도의 해체는 따라서 국제적 갈등의 종식이 아닌 상대적으로 평화로운 한 시대의 마감을 의미했으며, 당시까지 억제되고 조절된 온갖 종류의 갈등과 분쟁을 터뜨리는 계기로 작동하게 된다.(주3) 그렇다면 냉전체제 종식 이후 새롭게 형성되는 세계질서는 어떠한 모습을 띨 것인가? 또한 이 새로운 세계질서에서 국제적 갈등과 긴장의 요인들은 무엇인가? 보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세계질서를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과 조치들이 모색되어야 하는가? 2. 위의 질문들에 대한 미 국방성 자문위원이자 하버드 대학 교수인 사무엘 헌팅톤의 답변은 놀랍게도 단순할 뿐만 아니라 다분히 도발적이다. 그리고 바로 이 단순성과 도발성 때문에 1993년 {Foreign Affairs}라는 미국의 한 학술지에 발표된 헌팅톤의 논문은 국제적인 주목을 받았고, 또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이 논문은 보다 풍부한 예와 그림들로 보충된 후 1996년 {문명의 충돌과 세계질서의 개조}라는 제목- 한국어 번역본은 1997년 {문명의 충돌} - 으로 출간되었지만, 그 핵심논지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헌팅톤에 따르면, 냉전체제의 종식 이후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가장 중요한 기준은 이념이나 정치, 경제가 아니라 바로 문화이다({문명의 충돌}, 20쪽). 자유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으로 표현된 냉전체제의 종식이 세계정치에서 이데올로기적 요소의 격하를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유독 경제적 지구화의 시대에, 그리고 이 지구화에 대한 정치적 조절의 문제가 정면으로 제기되는 상황에서 정치와 경제의 의미가 축소된다는 헌팅톤의 주장은 그리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새로운 상황에서 세계정치는 문화와 문명의 궤선을 따라 재편되고 있으며,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갈등은 사회적 계급, 빈부, 경제적으로 정의되는 집단 사이가 아닌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21쪽). 아마 헌팅톤은 전지구적인 경제적·사회적 불평등 - 예컨대 지구의 초특급부자 358명의 재산이 인류의 거의 절반이 처분할 수 있는 소득 전체를 능가하는 - 을 거역할 수 없는 숙명으로 이해했을 것이다. 또한 지난해 시애틀로부터 올해 워싱턴, 프라하, 그리고 서울로까지 이어진 지구적 불평등에 대한 저항 역시 예측하지 못했다 치자. 그러나 바로 이 불평등으로부터 직접 야기된, 그리고 대부분 선진자본주의 국가들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중요한 국내정치적 문제로 정착한 후진국으로부터 선진국에로의 이민의 문제를, 불평등의 원인에 대한 한 마디 언급 없이 주로 인구통계학적 차원에서만 접근하는 것(264쪽 이하)은 아무래도 진지한 사회과학자의 자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헌팅톤에게 문화와 문명은 무엇인가? 그는 왜 이 개념들에 그 같은 절대적 의미를 부여하는가? 헌팅톤은 문명과 문화를 거의 동일한 의미에서 사용하며, 한 사회에서 면면히 이어져 온 세대들이 우선적으로 중요성을 부여한 가치, 기준, 제도, 사고방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 이해한다(47쪽). 요컨대 문명은 크게 쓰여진 문화이며, 역사적 근접성, 공동의 가치체계, 생활방식, 세계상, 그리고 이에 상응하는 사회적, 정치적 사고방식을 통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특히 헌팅톤은 문명의 규정에서 종교를 강조한다(56쪽). 그는 주요 종교를 구심점으로 세계의 문명을 1. 서구 기독교 문명(유럽, 북미, 오세아니아), 2. 동방 정교 문명(슬라브, 그리스), 3. 이슬람 문명(북부아프리카에서 근동을 지나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일부까지), 4. 힌두 문명(인도), 5. 중화 또는 유교 문명(중국과 그 주위의 동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6. 일본 문명, 7. 아프리카 문명으로 구분하고 있다(52쪽 이하). 이와 같은 헌팅톤의 구분이 오늘날과 같은 지구화의 시대에 얼마만큼 들어맞는 것인지 예컨대 기든스와 같은 학자는 큰 의문을 가지고 바라 볼 것이다. 실제 전지구적인 의사소통수단 및 대중교통수단의 신속한 확산, 그리고 이를 통해 가능해진 "원거리 행위(action at distance)"의 심화과정(주4)은 문명의 경계를 그 어느 때보다 더 급속하게 해체하지 않았는가. 예를 들어 갈증이라는 인간적 욕구를 코카콜라에 대한 갈망으로 전환시켜내는 과정이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완성 중에 있는 것이라면, 또한 세계 대도시들의 거리 곳곳을 장식하는 캘빈 클라인이나 코닥, 루이 뷔통 등의 광고문구가 단순한 선전 이상을 의미한다면, 바로 이러한 "상품의 세계화"가 각 나라 고유의 문화적 생산물을 파괴하며, 이와 더불어 독자적 문화의 생존기반을 잠식하리라는 견해가 보다 설득력 있게 들리지 않는가.(주5) 그러나 헌팅톤에게 이러한 사고는 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정반대의 주장을 내놓는다. 맥버거를 먹는다고 서구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며, 청바지를 입고 코카콜라를 마시며 랩음악을 듣는 중동의 젊은이들이 미국 항공기를 폭파시키는 것이 현실이라는 것이다(72쪽). 즉 전지구적 상호의존도가 깊어지더라도, 문명적, 사회적, 민족적 자의식은 강화되며, 그 대표적 예로 헌팅톤은 전세계적으로 등장하는 종교의 부활, "성스러운 것으로의 복귀"를 들고 있다(86쪽). 물론 종교적 근본주의의 대두 ― 특히 이슬람 지역에서 ―, 그리고 보스니아-헤르쩨고비나, 코소보 지역 등에서와 같은 극적인 종족 갈등은 일견 헌팅톤의 견해를 지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여기에는 대단히 조심스러운 접근이 요구된다. 왜냐면 문명적, 종교적 갈등의 형식을 띈 분쟁조차 대부분 그 배후에는 훨씬 복잡한 원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예컨대 구 유고슬라비아에서 종족 갈등의 경우도 단순히 문화적, 종교적 차이가 원인이었다기보다는(이 지역은 수 백년 동안 여러 문명이 잘 공존하고 있었다), 전쟁의 경험을 통한 공존원칙의 파괴, 외채위기 및 경제위기, 그리고 이 위기 상황에서 기존 지배세력의 반동적 민족주의에의 호소를 통한 대중동원, 또한 통일된 독일이 대외정치적 영향력의 시험대로서 발칸의 분리주의를 지지한 사실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어났던 것이다.(주6) 마찬가지로 이슬람 근본주의의 대두의 배경 역시 이슬람 문화와 서구 문화 사이의 근본적 차이(287쪽)에 있다기보다는, 멀리는 제국주의 열강에 의한 이 지역의 식민주의적 착취, 그리고 가까이는 사회적 변화, 경제적 난국, 또한 지켜지지 않은 근대화의 약속에 대한 반발 등 여러 원인들이 존재하고 있다.(주7) 문화적, 종교적 차이에 대한 헌팅톤의 강조는 문명의 충돌이라는 비관적 전망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헌팅톤은 차이에 기초한, 그리고 차이를 인정하는 공존을 설파하기 위해서 문명권을 분할한 것이 아니라, 이 분할을 통해 문명간의 갈등과 충돌의 불가피함을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 대규모의 문명 전쟁을 사전에 방지하려면 핵심국들이 다른 문명 내부의 분쟁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435쪽)고 그는 충고한다. 요컨대 문명간의 경계를 명확히 그어 다른 문명과 만나 갈등을 일으킬 수 있는 면적을 최소화하는 정치만이 문명의 충돌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세계의 암흑시대라는 전대 미문의 현상이 인류를 집어삼킬지 모른다"(442쪽)고 헌팅톤은 경고하며, 확산일로에 있는 대량살상무기 때문에 온 지구가 핵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지는 끔찍한 시나리오(429쪽 이하) 역시 제시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3. "헌팅톤에 대한 대안"이라는 부제가 암시하듯이 하랄트 뮐러의 {문명의 공존}은 {문명의 충돌}을 반박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진 책이다. 프랑크푸르트 대학 교수이자 유명한 헤센 평화 및 갈등연구소의 소장이기도 한 뮐러는 군비통제 및 축소 분야의 전문가로 미 국방성 자문위원을 역임한 헌팅톤과는 대조되는 경력을 가지고 있다. 실제 뮐러는 헌팅톤과 전혀 다른 이론적 패러다임에서 출발하여 헌팅톤의 세계 해석의 수많은 경험적 결함을 조목조목 드러낸다({문명의 공존}, 20쪽 이하). 헌팅톤의 이론은 현실적합성이 의문시되기 때문에 그 유익성도 대단히 의심스러우며, 기껏해야 현실을 왜곡하며 재앙을 불러오는 데 일조할 뿐이라는 것이 뮐러의 생각이다(20쪽). 헌팅톤의 이론적 출발점이 국제체계가 완전히 무질서한 혼란이며 각 국민국가는 그 안에서 권력투쟁에 몰두한다고 전제하는 현실주의라면, 뮐러는 비판적 합리주의의 전통에 선 자유주의자 또는 비판적 근대화론자라고 할 수 있다. 뮐러에게 현대 정치체계의 전형은 권력국가(Machtstaat)가 아니라 교역국가(Handelsstaat)이다. 그리고 이 교역국가의 특징은 정부가 경제계의 요구에 개방적이고, 외교목표를 설정할 때 경제계를 위시한 이익단체의 의견을 존중하며, 권력과 안보의 문제보다 경제관계를 우선하고, 또 군비지출을 최소 수준으로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데에 있다고 지적한다(67쪽). 뮐러는 여기서 군사적인 패권을 우선적으로 추구하는 미국에 비해, 군사 자원의 지속적인 역할 없이도 많은 권력과 영향력을 획득한 일본, 그리고 무엇보다 독일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다(68쪽). 오늘날 물론 교역국가가 권력국가를 대체하지는 않았지만 - 세계 제일의 강대국 미국은 교역국가와 권력국가의 합명제를 보여주는 화신이다 -, 그러나 상호의존 및 경제적 지구화의 과정, 또한 사회 세계의 전지구적 커뮤니케이션은 교역국가의 세계에 내재한 역동성을 보다 강화할 것이라고 뮐러는 지적한다. 그는 이 역동성이 등장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국민의 부를 증가시켜야 한다는, 국가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독자적인 행보로는 더 이상 도달할 수 없다. 고삐 풀린 경쟁이 가져올 손실을 피하기 위해서는 국제적인 규칙이 필요하다. (…) 국가는 협력을 강요받고 협상에 참여하여 국제 정체, 다시 말해서 법의 형식을 갖춘 합의를 마련하여 경쟁의 부작용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한다"(69쪽). 그 결과 국제법과 국제기구가 지속적으로 성장하며, 권력국가의 세력균형의 논리 곁에 국제협력이라는 교역국가의 역동성이 관철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 교역국가의 역동성이 상이한 문명의 다양한 특징과 규범에 영향을 미친다고 뮐러는 강조한다. 물론 이 변화 과정은 자동적인 것이 아니며, 때때로 규범의 변화 속도는 아주 더딜 수도 있다. 그러나 근대화 과정이 오랫동안 심도 있게 작동하면 할수록, 문명간 커뮤니케이션은 보다 강화되며, 그 결과 옛 문명이 새 것에 적응하는 시도가 일어난다. 결국 세계화, 근대화의 과정은 헌팅톤이 오해하듯이 문명적 자의식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각 문명들을 근대의 요구에 적응시키면서 서로 유사하게 만들어 나간다는 것이 뮐러의 생각이다. 그러나 현실에서 근대화의 과정이 반드시 순조롭게 진행되는 것은 아니다. 근대의 자유, 그리고 그것을 보장해주는 제도 - 예컨대 사회국가 - 는 힘겹게 싸워 얻은 것이며(139쪽), 관용과 연대를 확고한 가치로 여기는 시민의 적극적 참여에 의해 지켜져야 하는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온갖 포스트주의에도 불구하고 근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이 뮐러의 생각이다(145쪽). 따라서 사회적 연대감을 다시 활성화하고 상대주의, 근본주의, 그리고 과도한 자유주의의 공격으로부터 근대를 강력히 수호하는 것이 지구화 시대에 서구가 맡은 임무라고 뮐러는 지적한다(149쪽). 물론 서구 문명은 완벽하지도 않고, 위기로부터 자유롭지도 않으며, 현대의 도전에 대처할 대답을 발견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서구 문명은 비교적 유연하고, 비교적 개방적이며, 자유롭고, 협력할 태세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 뮐러의 생각이며(150쪽), 따라서 서구는 그에게 국제정치의 희망으로 비추어진다. 이를 위해 서구는 타 문명에 대해 더 많이 배워야 한다(309쪽). 왜냐면 문명들간의 경계 설정과 구획화가 아니라, 개방과 대화만이 문명의 공존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4. 헌팅톤의 {문명의 충돌}이 갖는 정치적 의도는 자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에 따르면 냉전체제의 종식 이후 세계는 더욱 갈등적으로 되었고, 이는 "국제적 법 질서의 붕괴, 세계 도처에서 무너지는 나라들과 점증하는 무정부 상태, 범죄의 세계적 증가, 국제 마피아와 마약 카르텔, 많은 나라로 번지는 마약, 가족의 와해, 대부분의 나라에서 나타나는 신뢰와 사회적 유대감의 약화, 인종적 종교적 문명적 폭력의 만연"({문명의 충돌}, 441쪽)으로 표현되어진다. 그렇기에 서구, 특히 미국은 일방적인 군비축소를 해서는 안되며, 향후 문명의 충돌 가능성에 대비해 기술적, 군사적 우위를 유지해야 한다고 헌팅톤은 충고한다(428쪽). {문명의 충돌}은 냉전체제의 종식과 더불어 공산주의라는 군부와 군수산업의 존립을 위해 효과적으로 동원될 수 있었던 가상적(Feindbild)이 사라진 이후, 새로운 적의 그림을 그려내려는 최초의 진지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또한 헌팅톤이 서구와의 문명 충돌 가능성이 가장 농후한 지역으로 이슬람 및 유교권, 또는 이 양자간의 군사적 유대에 주목하는 것도 순전히 문화적 차이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어쨌든 헌팅톤의 도발은 성공적이었는데, 결국 그와 같은 노력이 없었더라면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체계(NMD) 또는 전역미사일방위체계(TMD) 구상은 훨씬 더 더디게 추진되었을 것이다. {문명의 공존}이라는 뮐러의 전망은 헌팅톤의 끔찍한 각본에 비해 보다 호감이 가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유보조항을 염두에 둔 채 읽혀져야 한다. 첫째, 비판적 근대화론자로서 뮐러는 근대와 결부된 위험 및 위기를 인식하며 근대화를 단순히 직선적인 과정으로 바라보지는 않지만, 그러나 그의 사고는 여전히 근대화론의 지평을 뛰어넘지 않는다. 그에게 근대화는 종종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최고의 상위개념으로 특권화되며, 그 결과 차별화되어 구체적으로 분석되어야 할 여러 현상들이 근대라는 "가마솥" 속으로 던져진다는 인상을 준다. 예컨대 "근대화 과정의 독자적 법칙성은 문명의 자기 주장 기회를 제한한다"({문명의 공존}, 76쪽)고 지적되지만, 그러나 어떤 법칙성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어느 문명의 주장을 제한하는 지에 대해서는 만족스러운 분석이 없다. 둘째, 뮐러는 지구화 또는 세계화가 현실에서 야기하는 긴장을 과소평가하고 있다. 지구화는 물론 뮐러의 지적처럼 경제적 상호의존과 문화적 단일화의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어마어마한 경제적 불평등 및 사회적 파편화를 산출하는 과정이기도 하다.(주8) 따라서 뮐러의 경제적 복지를 추구하는 교역국가의 상호협력, 그리고 국가를 벗어나 형성되는 사회세계의 커뮤니케이션의 강화에 대한 일방적 강조는 상당 부분 과장되고, 현실이라기보다는 희망사항에 가깝다는 느낌을 준다. 셋째, 권력국가와 교역국가의 이분법, 그리고 지구적 상호의존을 통한 교역국가적 논리의 확산이라는 뮐러의 주장 역시 조심스럽게 음미되어야 한다. 물론 뮐러는 미국에 비해 훨씬 비군사적이고 탈패권적인 전후 독일의 대외정책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의 대외정책 역시 통일 이후 "정상화"라는 이름아래 보다 권력국가적으로 변하지 않았던가? 녹색당 출신의 외무부장관과 사민당 출신의 수상의 지휘아래서 전후 최초로 독일의 폭격기들이 다른 나라(유고슬라비아)를 폭격했다는 사실은 교역국가와 권력국가의 벽이 뮐러가 가정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낮은 것은 아닐까? <미주> 2) 에릭 홉스봄, {극단의 시대: 20세기의 역사}(까치, 1997), 318쪽. 3) 캘도는 냉전이 동구는 물론 서구 내부의 안정화에 우선적으로 기여했음을 "가상전쟁"이라는 개념을 통해 탁월하게 분석한 바 있다. Mary Kaldor, The Imaginary War: Understanding the East-West Conflict (London: Basil Blackwell, 1990). 냉전이라는 세계질서의 해체가 얼마만큼 국제질서를 불안정 속으로 이동시켰는지는 1990년대 이후에 터져 나온 숱한 분쟁과 갈등, 그리고 최근의 코소보전쟁에서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새롭게 형성되는 세계질서의 특징과 관련해 코소보전쟁의 의미를 분석한 글로는 구춘권, [코소보전쟁과 21세기의 세계질서], {진보평론}, 창간호, 1999년. 4) 앤소니 기든스,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한울, 1997), 17쪽. 5) 한스 피터 마르틴/하랄드 슈만, {세계화의 덫} (영림카디널, 1997), 52쪽. 6) 구춘권, 앞의 글. 7) Shlomo Avineri, "Die Ruckkehr zum Islam," in: Prokla 96, 24. Jahrgang, September 1994. 참조. 8)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로 구춘권, {지구화, 현실인가 또 하나의 신화인가}(책세상, 200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