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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3월 24일 토요일 오전 09시 24분 01초
제 목(Title): 박민영/ 박노자교수 인터뷰, 악화가 판을치


출처: 인물과사상, 우리모두 

<월간 인물과 사상- 박노자 교수 인터뷰> "악화(惡貨)가 판을 치는 일간지 
시장"  
<우리 내면의 개성과 가치를 끝까지 지키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태생의 블라디미르 티코노프(Vladimir Tikhonov)

   고등학교 시절 친척의 권유로 '구운몽', '춘향전' 등 한국고전 소설을 읽다 
줄거리와 독특한 문체에 매료되어 한국 문학 및 사상에 빠져 들었다. 
   16세에 월반하여 진학한 레닌그라드대에서 동양학을 전공했고, '김유신 
가문의 출세의 사회정치적 배경'이란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가야의 
외교정치사' 관련 논문으로 박사학위(모스크바 국립대)를 받았다. 
러시아 유학생 출신의 한국인 바이올리니스트와 결혼했으며, 한국어는 물론 
한자에도 능통하다. '삼국사기', '논어', '맹자', '대학' 등을 자유롭게 읽어 
내린다. 
경희대 러시아어과 전임강사 시절 <한겨레>에 연재한 명칼럼들을 통해, 
'한국인보다 나은 한국어 실력'과 '한국 사회 이모저모를 꿰뚫는 예리한 
통찰력'으로 독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겼다.  

   지금은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 한국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박노자 
교수(30세)의 간단한 약력이다. 필자는 평소 박교수의 글을 관심있게 읽던 차에 
그가 <아웃사이더>의 새로운 편집위원이 되었다는 소식을 우연히 접하게 
되었다. 비판적 매체의 편집위원직 제의를 받아 들였다는 것은, 비록 몸은 이국 
땅에 떠나 있을지언정 한국 사회에 대해 여전히 하고 싶은 말이 많다는 뜻일 
것이다. 그는 특히 최근의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언론개혁과 관련된 
여러 논란과 공방들을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필자는 박노자 교수와의 인터뷰를 약간의 장난끼 어린 질문으로 시작해 
보았다. 한국 및 러시아 문화와 역사에 대한 해박한 지식, 그리고 영어, 
프랑스어, 한문 등에 두루 통달한 그의 어문 실력을 보건데, (도올 김용옥처럼) 
스스로를 천재로 여기느냐는 물음이 그것이었다. 

"장난스러운 질문에 힘써 신중하게 답해보겠습니다. 저는 이론적인 입장에서 
인간들 사이의 태생적인 차이보다 성장 환경의 차이를 강조해왔습니다. 공부 
&#8211; 특히 시장과 무관한 인문학 공부 &#8211;에 무료 학위 과정도 생계도 
보장되는, 현실 사회주의 시대가 나름대로 참 좋았습니다. 항산(恒産)이 
있었으니 항심(恒心)도 어느 정도 있었다는 논리도 그렇지만, 사회가 엄청난 
위기에 봉착했다는 위기감과 사회주의 운명에 대한 고민 등의 지적 긴장들이 
팽배했던 그 시절은, 어떤 면에서 인상적이었습니다. 믿으실런지 모르지만, 
우리가 그때 숲으로 소풍가나 상점에서 우유를 사려고 2 시간의 줄을 서나, 
무슨 일상적인 행위를 해도 늘 생각하고 서로 이야기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이상의 운명, 피로 얼룩진 소련의 근현대사, 사회주의와 종교 이상의 관계 
등등이었습니다. 개인의 출세나 돈벌이를 화제로 논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항산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돈을 못 벌어도 죽을 일은 없었지만, 
생활보다 사상 등의 지적 활동을 우위에 두는 분위기도 대단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제가 어느 정도 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시절의 현실적인 
상황과 지적인 분위기 덕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물론 그렇다고 현실 
사회주의(사실, 일종의 독재 정권하의 국가 자본주의)를 이상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으로부터 품팔이의 족쇄를 어느 정도 벗겨 준 것은 
사실입니다.”

   박노자 교수는 처음 한국에 와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꼈던 부분이 국학(國學) 
연구와 그 연구자 개개인의 독특한 체취였다고 밝힌 바 있다. 1991년도에 구 
소련 최초의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 고려대학교 국사(國史), 국문(國文) 전공 
교수들의 연구실에 산더미처럼 가득 쌓여 있는 옛날 한문책들을 보며 무한한 
감동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동양학 전공자인 자신에게 유교 경전으로 
대표되는 극동의 고대 문화는 절대적 가치, 성(聖) 그 자체를 의미한다고 
했었다. 

"관심의 동기는 고등 학교 때 한국 고전 문학이 됐지만, 나중에 한국의 젊은 
사회 운동가나 소장파 학자와 가까이 사귀면서 느낀 것은, 유교 경전을 잘 
읽지도 않은 그들에게 의외로 진정한 의미의 유교적인 덕목이 많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남에 대한 관심과 배려라든가, 사상에 대한 열정이라든가, 과거 
역사에 대한 엄중한 비판과 존경이라든가 그런 겁니다. 가끔 이인로나 박제가, 
김창숙을 다시 만난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질 소비주의에 영향을 
크게 받고 있는 다음 세대에 그런 것이 잘 전달될는지 모르겠습니다.”  

악화(惡貨)가 판을 치는 일간지 시장

   화제를 '언론개혁' 문제로 바꾸어 보았다. 언론사에 대한 국세청 및 
공정거래위원회 조사에 대해, 한나라당과 ‘빅3’ 신문들이 주장하고 있는 
'언론자유 침해',‘언론 길들이기’음모론을 박 교수는 어떻게 보고 있을까. 

"한국 언론을 요즘 정기적으로 읽지 못하는지라 충분히 답할 능력이 없지만, 
몇몇 특정 가문들이 일간지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한다는 것이 과연 
정상입니까? 그리고 비대해진 족벌 언론들이 국민 대다수와 무관한 몇 개의 
특정 재벌과 정치계 ‘보스’들의 권익만을 대변해 주는 것도 명약관화입니다. 
결국, 주요 인권 중의 하나인 대사회적 발언권을, 재계 정치계 ‘보스’와 
그들을 추종하는 ‘미디어 지식인’을 제외한 대다수 일반 국민은 완전히 
빼앗기고 만 겁니다. 결국 이로 인해, 이랜드 노동자의 장기 투쟁이나 
대우자동차 문제 등을 조선, 중앙, 동아 ‘빅3’ 신문보다 주요 외신들이 훨씬 
더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으로 다루는, 웃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는 겁니다. 

그리고 한국 시장을 배타적으로 점유하는 조선, 중앙, 동아를, 과연 국제적인 
수준의 양질의 일간지로 볼 수 있겠습니까? 다른 건 몰라도, 제가 조선일보의 
러시아 관계 보도를 한때 몇 개월 동안 유심히 지켜보니, 완전히 
오보투성이였습니다. 특파원도 신문사도 현지에 대한 초보적인 이해도 안된 채, 
일부 외신과 러시아의 영문지, 그리고 현지 저질 대중신문을 주요 자료로 삼아 
일합니다. 그 자료의 정확성, 객관성을 확인할 수 있는 단계에도 오르지 
못합니다. 언어적 능력이 문제가 돼, 현지 전문가와의 깊이 있는 인터뷰도 
못하고요. 

만약 한국의 정책 결정자들이 조선일보 수준의 신문만 보고 외교 관계의 주요 
결정을 한다면 큰일날 겁니다. 결국, 국내 일간지 시장에서 악화(惡貨)가 판을 
치는 겁니다. 탈세를 일삼는 저질 족벌 언론들의 납세 상태를 국가가 
조사한다는 게, 뭐가 문제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니, 박노자 교수는 <한겨레 21- 쾌도난담>(297호)에서 '조선일보를 
보면 옛 소련 시절 국가주의와 안보를 강조하던 프라우다가 떠오른다’며 
'한국의 극우는 러시아의 극좌와 닮은꼴’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안티조선 
운동에 대해 일부에선 ‘현정부의 정책에 가장 비판적인 신문에 대한 
보복’이라는 웃지 못할 반론도 나오고 있음을 전해 주었다.

"(조선일보는) 국제적으로 거의 전례 없는 경품 위주의 판매 전략을 극단적으로 
악용하는 저질의 상업주의적 매체로 보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까 말한 
외국 관계 오보도 그렇지만, 역사보다 소설에 더 가까운 값싼 흥미 위주의 
이규태 역사 칼럼도 그렇고, 초보적인 역사 의식조차 보이지 않는 박정희 관계 
기사도 그렇습니다. 아마데라스오미까미의 신사 앞에서 명치 천황의 
‘교육칙어’를 외우는 일군(日軍) 시절 박정희의 행각을 조갑제 씨의 글은 
거의 찬미하고 있지요. 그런 글을 읽으며 한국인들이 무슨 생각을 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온 '조폭적 언론' 관련 발언으로 인해, 
노무현 해양수산부 장관이 언론들 특히 ‘빅3’ 신문으로부터 뭇매를 맞은 바 
있다. 정연주 한겨레 주간이 사용하고 노무현 장관이 공감한다고 밝혀 화제가 
된, ‘조폭 언론’ 용어에 대한 박교수의 견해를 물어 보았다.

"노무현 장관의 ‘조폭적 언론' 발언에 대해선 제가 직접 들은 바 없어, 그 
전후 문맥이 어떤지 짐작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자세한 건 모르지만, 
발언이 거칠기는 하나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노 장관과 저의 관점이 조금 
다른데, 저의 관심사는 족벌 언론들이 노동 운동을 어떻게 보도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파업 등에 대한 ‘빅3’의 보도를 추적해 보면, 사실 
왜곡도 엄청 많지만, 노조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해 주고 반영해 준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특히 소수자의 파업(<이랜드>사건 등)의 경우에 그렇습니다. 그런 
태도에 대해서 ‘조폭적’이라는 말이 어떤 의미에서 타당하다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박노자 교수는 과거 <연세대학원신문>에 기고한 '대학의 진보성 배후에 놓인 
규율과 복속의 전근대성'이란 글에서 운동권 학생들의 이중성을 비판하여 
화제를 불러 일으킨 적이 있다. 
('운동권에도 높은 학번이 낮은 학번을 의식화의 대상으로만 보는 등 철저한 
서열화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이념 투사가 재벌의 충복으로 변신하고, 
승진을 위해 특별한 이념이 없는 직장상사를 열심히 모시는 기현상이 생긴다’ 
‘선배가 시키는 대로 <미국침략사>를 달달 외우기보다, 그 선배의 술 강권을 
한번이라도 뿌리치는 게 진정한 의미에서 훨씬 진보적인 행동이다’) 

   박교수는 자신이 애정어린 비판을 했던 학생운동권에 대해, <월간조선> 
(2001년 3월호)이 '한총련은 김정일의 친위조직’이라며 용공시비를 제기한 데 
대해 어이없어 했다.

   "반대쪽을 언제든지 무조건 '친북'으로 매도해서 반대파에 대한 탄압을 
'안보의 논리’로 정당화하는 것은 역대 남한 정권의 상투적인 수법이니, 외국 
학자들 중에서 <월간조선3월호>와 같은 주장을 액면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겁니다 (미국쪽의 극우파적 학자들이 조금 예외가 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전의 남한 정권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신 조봉암 선생 같으신 분들은, 과연 
이승만의 프로파간다대로 북한 간첩이었습니까? 현재 소위 운동권의 경우에는, 
제 개인적인 경험으로 봐서는, 민중민주 계통의 운동가들은 물론이거니와, 
민족해방 계통 중에서도 상당수는 북한 정권이 진정한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습니다. 그들로 하여금 북한의 극단적인 
국수주의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것은, 말로 민족주의를 내세우면서 실제로 날로 
대미, 대일 종속을 강화시키는 남한 정권의 이중적인 태도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월간 조선>의 주장과 달리, 민족해방 계통이라는 것은 ‘일사불란한 
조직체’가 아니고 아주 다양한 운동 서클, 소규모 그룹과 이론가, 그리고 그 
추종집단의 ‘복합적인 연합체’입니다. 운동권 사회 내에서도 주류화되지도 
못하고 준열한 비판도 받는 그들이 한국과 같은 강력한 경찰 국가를 위협한다는 
주장은, 적어도 외국 학계에서 별다른 지지를 얻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인물과 사상> 그리고 <아웃사이더>

   안티조선 운동이나 언론개혁 운동에 있어 강준만 교수가 저널룩 및 월간 
<인물과 사상>을 통해 하고 있는 비판적 저술 활동은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물론, 그의 글쓰기와 주장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나뉜다. 
박노자 교수는 강준만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강준만 교수의 저작물 중에서 <한국 지식인의 주류 콤플렉스>에 대해서 한 번 
서평을 쓰고 일부의 논문을 읽었을 뿐, 대부분을 읽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충분한 판단을 할 만한 데이터베이스를 갖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제가 읽은 강교수의 글에 대해서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그의 
주장들이 한국 지식인 사회의 어두운 이면을 잘 보여 주는 측면이 분명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무분별한 미디어 이용을 통한 몸값 늘리기, 강단 좌파의 
상업적인 미디어 활동 등은, 자기 ‘몸’을 비싸게 팔아 ‘멋진 출세’를 해야 
하는 극단적인 시장주의의 한국 인테리겐차 사회의 현실을 대변합니다. 
조선일보나 사립 대학 권력자 앞에서 무력하게 머리를 숙여 몸보신이나 하는 
지식인들을 보는 것은, 저에게도 강교수 못지않게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만, 제 문화적인 편견인지 모르지만, 조선일보의 좌파 기고자를 겨냥하는 
캠페인을 벌이느니 차라리 이 문제를 각자의 양심과 판단에 맡기는 것이, 
진정한 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답지 않나 싶습니다. 조선일보쪽에서 자유주의와 
개인주의를 짓밟고 있는데, 반대쪽에서라도 그 중대한 원칙들을 잘 지켜 
주었으면 합니다.”   

   그는 이번 4월호로 창간 3주년이 되는 <월간 인물과 사상>에 대해서도 
간단히 언급했다.

"제가 판단할 수 있는 한, <인물과 사상>의 하나의 중요한 특징은, 서로 
상반되는 두 개의 관점이라 해도 그걸 다 민주적으로 일단 발표해서 독자의 
판단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건 참 좋은 관습입니다. 옛날 그리스 속담에, 
‘진리는 토론 속에서 태어난다’는 말이 있습니다. 즉, 아무도 완벽한 진리를 
가지지 못하니, 여러 관점에서 본인이 맞다고 생각하는 일부분들을 취해서 자기 
자신만의 진리를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그게 바로 다원주의의 윤리인데, 
<인물과 사상>이 이와 같은 윤리를 한국에서 심어 주는 데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걸로 생각합니다.” 

우리의 내면과 개성을 끝까지 지키자

   박노자 교수는 최근 격월간지 <아웃사이더>(편집주간 진중권)의 편집위원 
진영에 동참했다.  박교수에게 <아웃사이더>라는 매체가 갖는 의미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앞으로 그 잡지를 통해 한국 사회에 어떤 종류의 발언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 보았다.

"글쎄, 발언하고 싶은 욕심이 워낙 많아서 문젭니다…. 사회, 정치의 구체적인 
문제를 떠나서 제가 근본적으로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의 골자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제발 외부로부터의 모든 압박에 저항하여 우리의 내면, 
우리의 개성을 끝까지 지키자는 이야기입니다. 

사람이 제 명을 산 뒤에 어디로 갈런지 무엇이 되는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 명을 사는 동안이라도 누가 무엇을 시키든 국가의 요구가 어떻든 
악행을 범하는 것을 삼가고 마음의 착한 뿌리를 살리는 것은 최선이 아닙니까? 
원칙이야 말하기 쉽지만, 국가가 군대에 가서 살생을 익히는 것을 요구할 때 
이에 맞서 저항하는 것은 훨씬 힘들죠. 아니, 병역 거부와 같은 정말 힘든 일을 
접어두고서도, 존경하지도 않는 상사 앞에서 몸을 무조건 굽히는 습관부터 
고치는 것은 과연 쉽겠습니까? 그러나, 사람들에게 이와 같은, 한국 사회에서 
잘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매체가 <아웃사이더>외에는 드물겠지요.”

   <한겨레>와 <한겨레21>의 기사들을 통해 최근 양심적 병역 거부자에 대한 
대체 봉사 문제가 사회 일각에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박노자 
교수는 어느 언론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던 시기에 이미 한겨레 칼럼(99년 10월 
5일)을 통해 그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또한, '조교들이여, 일어나라' (2000년 
11월 15일) 등의 글을 통해 한국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여러 불합리한 
요소들에 대해 날카로운 비판을 하여 화제를 모았었다. 
   앞으로 <아웃사이더> 지면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잘 들리지 않는 이야기"를 
하겠다는 그의 각오는 신선한 기대를 불러 일으킨다.   

   최근 한국 대학생들의 과반수 이상이 여건이 주어진다면 이민을 떠나 
외국에서 살고 싶어 한다는 조사결과가 발표되었다. 젊은이들에게서 이런 
부정적인 반응이 나오게 된 원인을 그는 무엇으로 보고 있을까?

"매우 복잡한 현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한편으로는, 물론, 소위 선진국들을 
무분별하게 찬양하는 한국 보수 미디어의 영향이 상당히 작용한 결과입니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의 극심한 자기 중심주의와 남에 대한 무관심이 관례가 
돼버린 북구라파나 호주 등의 소위 선진국에서 자살률이 세계 최고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 등을, 한국 미디어에서 쉽게 알 수 없을 겁니다. 나름대로의 
상부상조적 분위기와 가까운 인간 관계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에게 소위 선진국의 
생활 현실이 그리 쉽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미디어만 접하고 이민을 꿈꾸는 
젊은이들이 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시대착오적인 족벌적, 정경유착적 구조를 가진 한국 
재벌 경제가 서구, 미국의 수준에 도달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도, 실망과 '도피 심리'를 낳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국내 조직 
사회의 군대식 문화가 많은 젊은이들에게 (특히 이중 착취를 당하는 여성 전문 
인력들에게) 싫증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이건 불가피한 &#8211; 
그리고 긍정적인 &#8211; 문화적 변혁의 시작이라고 봅니다.”     

   다른 외국인들과 달리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 대해 언급하는 박교수의 평은 
언제나 쓴소리로 일관하는 듯 하다. 귀화한 외국인들조차도 한국 사회에 대한 
냉정한 비판이라는 게 '교통질서를 잘 안지킨다', '입시제도에 문제가 있다'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마당에, 한국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를 잘도 찾아 
속시원히 지적하는 그는 매우 유별난 사람이다. 그럼에도 그 혹독한 비판이 
불쾌감을 자아내지 않는 건, 그의 비판이 매우 애정어린 것이며 공감할만한 
것이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이다. 박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변화와 진보의 희망을 
어디서 발견하고 있을까?

"글쎄, 한국이 과거 수십년 동안 전쟁의 폐허를 산업 국가로 만들 수 있었던 
것처럼, 과연 21세기 초반에 일상적 문화의 개혁을 왜 못하겠습니까? 저는 
불가능한 일이 전혀 없으리라고 봅니다. 한국보다 일상이 상당히 개방적인, 
같은 극동문화권의 홍콩이나 대만을 보면, 한국도 비슷한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쉽게 짐작합니다. 그리고 사회당, 공산당이 상당한 정치적 역할을 하고 있는 
일본을 보면서, 과연 한국도 시간이 좀 지나면 전후의 일본처럼 좌파의 정치 
문화를 꽃피우지 않을까 생각되기도 합니다. 일제 시대 말기를 연상시키는 개발 
독재 시절의 레드 콤플렉스는, 한국의 젊은 세대에 그렇게 큰 영향을 이미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지금 보수적 중년층의 표로 뒷받침되고 있는 정치적 우파의 
헤게모니는, 현재 10대들이 유권자가 되면 좀 도전을 받지 않을까 합니다.”

   그에게 다시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을 갖고 있는지 물어 보았다. 만약, 
국내에서 한국고대사를 가르칠 기회가 주어진다면 귀국하겠느냐고.        

"제가 최근에 귀화의 절차를 밟아서 한국 국적을 받았으니, '귀국'이라는 
표현이 맞기는 맞습니다. 아직까지 한국을 떠난지 얼마 안됐으니까 참을 
만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한국에 대한 향수병이 깊어져 가면 몸 건강을 
위해서라도 귀국해야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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