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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3월 21일 수요일 오전 02시 27분 09초
제 목(Title): 인문학데이트/ 이삼성 


출처: 한겨레 문화 

[인문학데이트] 24. 이삼성 

 미 패권주의 속 한반도 평화
우리에게 달렸다

¨미사일방어체제는 
미국의 21세기 패권유지전략
자원 파괴적 낭비 초래 
반핵·평화 운동 등
인류의 노력은
국제관계에 많은 영향 끼쳐¨ 
초강대국 미국을 아는 것은 현대 한국인들의 역사적 실존을 규명하는 것과 
같다. 해방 이후 분단과 정치·경제사의 배후동력으로서 미국은 그만큼 우리 
삶과 밀착된 그림자다. 이런 측면에서 미국 패권주의에 대한 심도깊은 분석서를 
잇따라 낸 이삼성(44)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는 여느 정치학자와 다른 행로를 
걷고있다고 할 수 있다. 존재, 사유양식의 문제와 문명사라는 거시적 틀을 
중시하는 그의 연구작업은 미국에 대한 총체적 부정이나 긍정을 피한다. 자국과 
다른 나라를 철저히 구분하는 미국세계전략의 본질과 배경을 탐구한 끝에 이른 
결론은 평화주의 운동으로 패권산물인 군비확장을 견제하고, 상생의 희망을 
모색하는 것이다. 일본, 미국 등의 국제평화운동에 활동가로 참여해온 
이색경력은 이런 평화담론을 실천하려는 노력으로 읽힌다. 평소 그의 저작을 
즐겨 읽는다는 후학 김정아(30·연세대 비교문학 박사과정)씨가 눌변의 이 
교수와 `미국읽기'에 얽힌 대화를 나눴다. 편집자 

김정아=현실 정치학의 테두리에 맴돌지 않고 폭넓게 미국을 읽으려는 시도가 
흥미롭습니다. 국제정치학하면 흔히 가치평가를 배제하고 국제정세에서 
패권관계의 실상만 분석하는 것으로만 생각하는데, 미국의 대외관계를 다룬 
선생님의 저작들에서는 그 이면에 일관되게 진보적인 지향점을 꾸준히 
추구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느책에서인가 `진보적 외교의 비전'이라고 
표현했던 그 지향점은 무엇입니까. 

이삼성=정확한 답은 아니지만 저는 지배적인 이론, 담론에 대해 어떤 것이든 
약간 거리를 두려는 정서가 있어요. 이론으로 담을 수 없거나 내버려둔 채 있는 
인류의 현실이나 인간의 희망 같은 것이랄까요. 미국의 힘이 주도하는 일반 
국제정치나 정책에서 느껴지지 않는 부분에 대할 갈증을 나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채우려고 하는 것이지요. 대개 국제정치학은 정세나 역학관계분석 
등을 하면서 어느 한쪽 이론이나 이념적 지향을 대변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만으로는 세계나 우리 인생의 복잡성을 포착하기 어렵기 때문에 정치학의 
전통영역으로 규정된 공간을 뛰어넘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가 미국정치 이면의 
미국 지성사에 관심이 많고 언젠가 연구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도 그 
때문입니다. 현상이나 사물 내면으로 들어가지 않고 인생이나 세상을 이해할 수 
없지 않겠어요. 

김=최근 저작 <세계와 미국>에서는 주류 정치학계에서 지엽적인 요소로 
취급받던 인권 반핵운동의 현실을 정면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비현실적이며 
몽상적인 것으로 치부되기 십상인 이런 운동들이 국제 권력관계에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논지가 눈에 띄더군요. 

이=기존 국제정치학계의 지배적 담론은 국가권력이나 거대업 등을 주동적인 
행위자로 인정하고 나머지는 역사를 결정하는 힘이 별로 없다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실제상황은 다릅니다. 예컨대 탈냉전의 물꼬를 텄던 
1987년 미-소 중거리 핵폐기협정(INF)은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와 미국에 대한 
유럽 나토동맹국들의 압력에서 비롯된 것인데, 이를 끌어낸 것이 바로 
유럽평화운동의 급속한 발전이었다는 게 많은 군축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유럽에 배치된 중거리 핵무기가 80년대초 다시 늘어날 조짐이 보이자 
반핵평화운동이 불길처럼 번져 여러 도시에서 몇십만씩이 모이는 대규모 
시위사태가 80년대초 유럽정세를 뒤흔들었던 거죠. 냉전지향적인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고르비와 진지하게 협상에 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국제정치학자들이 
그냥 지나치는 부분입니다만 당시의 상황에서 평화운동은 분명 탈냉전을 이끄는 
지렛대 구실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인간의 노력이 
역사전개에 굉장히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드러내지 
않는다면 세상은 너무 삭막하지 않을까요. 

김=최근 한미정상회담에서 현안이 됐던 미국의 국가미사일방어체제(NMD)문제도 
그런 시각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됩니다. 중국, 러시아, 유럽의 반대가 
만만치않은 데, MND의 의미와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이=NMD는 방어중심 군사전략이라고 이야기되지만 20세기 무한군비경쟁의 
주역이던 핵무기체제를 그대로 온존시키면서 이뤄지는 눈속임에 불과합니다. 
인류의 공통자산인 자원을 써야할 곳에 안쓰고 엉뚱한데 쓴다는 점에서 그것은 
지난 세기 핵무기 개발경쟁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부시행정부는 
미사일 방어체제 심혈 기울이면서도 20세기 핵무장 해체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다.과학기술이 군사무기로 전환되는 건 역사적 필연이라고 봐요. 문제는 
성숙하지 않은 단계의 과학기술을 군사무기로 전환하려는 세력이 있고, 그들이 
인류의 자원배분체계를 왜곡하는 상황이라는 거죠. 지금 NMD계획은 핵 우위를 
포기하지 않은 채 전지구적 군비경쟁을 새롭게 재촉하려는 미국 권력집단의 
정치적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귀중한 인류의 자원을 파괴적으로 낭비하면서 
성숙하지 않은 과학기술을 착취해서 군사무기로 전환하려는 의도를 지녔기 
때문에 근본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특히 이 미사일 방어체제라는 것이 현재 
동아시아에서 미국이 21세기 세계 패권을 유지하기 위한 세계군사전략의 한 
중심으로 정립되어 가고 있음이 우려됩니다. MND논란이 미칠 부정적 
영향으로부터 한반도 평화과정을 지켜내고 동아시아 공동안보논의로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가 핵심적인 고민이 아닌가 싶습니다. 

김=미국의 주류담론을 비판할 수 있는 제3세계 지식인의 가능성도 이런 
경험들에서 나오지 않을까요. 코소보 사태의 경우 미국의 패권주의와 
국가테러뿐 아니라 코소보 지역 내부의 갈등요인도 지적하셨는데, 제3세계의 
역사적·정치적 역량에 대한 자기확인이야말로 미국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돌파구가 아닐까요. 

이=제3세계의 현실을 규정하는 것이 초강대국 미국의 권능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서 역동적으로 작용하는 정치 사회 문화적 상황들도 미국의 
정책판단이나 결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한반도 정세에서 미국이 직접 변수임에 
분명하지만, 북한핵·미사일 문제를 둘러싼 상황에서 정치지도자들의 선택과 
사회집단간의 이데올로기적 상황이 미국의 정책을 결정하는 기본환경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합니다. 부시 집권 뒤 국내 수구세력이 다시 냉전논리를 
재생산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대처해야합니다. 현정부의 대북 포용정책 
실패를 바라는 세력이 광범위하게 포진해있지 않다면 부시정부가 그렇게 
`방자하게' 목소리를 높일 수 없겠지요. 

김=미국담론에서 놓치고 있던 부분들을 많이 이야기한 듯 합니다. 신자유주의와 
NMD중심의 새 패권질서 앞에서 미국에 대한 학문적 인식 자체도 바뀌어야하지 
않나 싶습니다. 

이=미국의 세계지배메카니즘은 경제군사 뿐만 아니라 정치적 이념과 문화적 
흡수력 등을 포함하는, 다차원적 성격을 지닙니다. 그것은 또한 우리 삶과 
세계의 환경을 규정하는 현실의 구조로 이어집니다. 미국비판이, 미국의 모든 
것에 대한 비판으로 동일시될 때 우리는 삶의 기본조건을 스스로 자기부정하는 
함정에 빠질 수도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미국의 어떤 측면을 어떤 이유에서, 
어떤 사안에 대해 비판하는 것인지, 그리고 어떤 구체적 대안을 제시할 
것인가를 중시해야 합니다. 다른 말로 풀어 미국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인 
부정이나 비판과는 좀 다른 것이어야 한다고 보는 거지요.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대한 제글들을 이데올로기적 비판으로 이해하는 것은 편견에 
불과합니다. 왜냐하면 지금 현재 우리 정치사회경제적 삶과 세계의 조건이라는 
것이 긍정과 부정의 측면들을 내포하고 있는데, 동시에 그것은 미국의 
세계패권이란 상황과 불가분의 관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 책에서 
제기한 것들은 사실 미국비판이라기보다는 미국 권력집단에 의해 주도되는 
세계질서의 문제입니다. 

김=미국연구의 측면에서 국제평화운동에 참여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연구의 지향점이 어디로 향할 지 궁금합니다. 

이=궁극적으로 평화의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정치사를 얼룩지게 한 대학살과 
인권침해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21세기 정치학의 근본과제라고 생각하는 데 
그것은 곧 세계질서와 거기에 가장 깊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미국분석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21세기 전쟁과 평화의 문제를 미국의 문명과 사유양식, 
외교행태 등을 연결지어 이해하고 대안을 내포한 비판을 제기하는 것이 불변의 
과제가 되겠지요. 정리/노형석 기자nuge@hani.co.kr·사진 곽윤섭 
기자kwak1027@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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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성이 말하는 이삼성 

어릴적 황혼녘 고향마을 내 정신의 탯줄 

사람들은 때때로 저마다의 이유에서 이른 새벽에 잠을 깬다. 그리고 새벽의 
정적과 침실의 어둠 속에서 가슴 에이는 질문에 부딪친다. 어떻게 살아가야할 
것인가. 무엇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이대로의 삶을 용납할 수 있는지 
회의하기도 하고 이 일상을 언제까지 이을 수 있을지 불안에 시달리기도 한다. 
어떤 경우든 삶의 껍질들을 걷고 그 의미의 뼈마디들을 긁는 아픈 질문들을 
어둠 속에서 망연히 응시하게 된다. 그것은 현재 삶에 대한 근본적 회의와 
허무의 의식이며, 삶과 일상의 존재근거에 대한 정체 모를 불안과 비확신의 
표출이다. 이같은 회의와 불안은 과거 어느 시점에서 경험한, 삶의 근원적인 
탯줄로부터의 분리에 대한 아픈 의식의 표현일 수도 있다. 사람들이 저마다의 
형태로 근원에 대한 향수를 안고 살아가듯 나 역시 언젠가부터 내가 갈증하는 
그 근원의 정체가 무엇일까 생각하는 버릇이 생겼다. 

내 정신의 탯줄을 생각할 때 언뜻 떠오르는 한가지 이미지는 어린 시절 황혼녘 
고향마을을 둘러싸기 시작하던 어스름, 삶의 놀이터와 우주 전체를 조용하게 
감싸오던 그 절제된 빛과 무한히 부드럽던 어두움이다. 그 신비스런 천지의 
내음과 분위기 속에서 경험한 내 영혼의 소스라침이 인생의 어느 시점 이후 
상실하게 되는 근원과의 밀회였다는 생각을 해본다. 

나의 학업은 궁극적으로 내 빛깔의 생(生)의 의미를 찾는 고고학일 것이다. 
유년(幼年)의 새벽에 가능했던 근원과의 밀회를 다시 꿈꾸는 안타까운 
시지푸스의 노동일지 모른다. 과학이기보다는 지혜의 추구이고, 집단적 
노력이기보다는 차라리 고독한 산책자의 끝나지 않을 꿈길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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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성은 누구? 

△ 1957년 전북 장수에서 태어남. 

△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및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과 졸업. 

△ 미국 예일대 정치학 박사. 

△ 민족통일연구원 연구위원, 한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임. 

△ 현재 가톨릭대 국제학부 교수. 

△ 쓴책:<미국외교이념과 베트남전쟁>(1991, 법문사), <미국의 대한정책과 
한국민족주의>(1993, 한길사), <현대미국외교와 국제정치>(1993, 한길사), 
<한반도 핵문제와 미국외교>(1994, 한길사), <미래의 역사에서 미국은 
희망인가>(1995, 당대), <20세기의 문명과 야만>(1998, 한길사), <세계와 
미국>(2001, 한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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