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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1996년02월01일(목) 21시22분24초 KST
제 목(Title): 독소전의 절정, 쿠르스크 전투 (7)


 3월 중순, 히틀러는 드디어 작전 명령을 하달했다. 
 작전명은 `Citadel(성채)' -- 강력한 독일군의 의지와 자신감을 반영한 작전명이
아닐 수 없다 --. 히틀러는 자이츨러와 모델의 주장을 받아들여 중부집단군의 
제 9군 (발터 모델 지휘)과 남부집단군의 제 4 기갑군(헤르만 호트 지휘)이 주 전투
전력으로 활약하여 각기 오렐과 벨고로드 방향에서 쿠르스크를 향해 압착해 들어가는
작전 방침을 결정한 것이다. 

 드디어 OKH는 이 치타델 작전의 세부 사항 마련에 들어갔으며 4월 15일 작전명령
제 6호 문서를 비밀리 상급 지휘관들에게 배포했다. 이 작전명령을 살펴본 독일군
장군들은 모두 만족해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예정대로라면 5월, 땅이 굳자마자
개시될 이 작전은 독일군의 막강한 전력을 가히 총집결할 것이었고 소련군은 아직
동계공세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황으로 판단되었기 때문이다. 스탈린그라드,
그 악몽의 기억은 잊혀질듯 싶었다. 스탈린그라드의 참화는 더이상 독일군의 기세를
저지할 수 없었으며 새로운 43년의 공세와 승리에 대한 기대로 한껏 모두 부풀어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 성공의 가장 핵심적인 포인트는 시간이었다. 시간이 독일군의 편이 
아니라는 것은 지난 41년과 42년 여실히 증명되었다. 모스크바 진격을 정지시킨채
제 2 기갑군, 제 2군을 키에프 방면으로 돌려 41년 겨울의 참화를 겪은 기억들과
42년 여름 스탈린그라드에 집착하여 귀중한 시간을 낭비해 일어난 제 6군 전멸이라는
악몽들을 너무 빨리 잊었던 것일까? 5월에 재개하려던 만슈타인의 계획 -- 이는 또
원래 히틀러의 뜻이기도 하였다. 히틀러는 봄이 되자마자 최대한 빨리 작전을 개시
하고자 했었다 -- 은 또 지연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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