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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chess (채승병)
날 짜 (Date): 1996년02월01일(목) 21시00분59초 KST
제 목(Title): 독소전의 절정, 쿠르스크 전투 (6)


 사실 이 만슈타인의 전략에 의거하면 그는 기갑전력의 핵심을 남부로 집중하여
남부에서 북동으로 찢고 올라가는 쐐기형 공격을 생각하고 있었다. 즉, 벨고로드 
방면에서 출발한 부대는 쿠르스크로 밀고 올라가며 그대로 북쪽 쿠르스크-오렐 가도
를 따라 북진, 오렐에서 중부집단군과 만나 다시 소련군을 동으로 밀어붙이려 했다.

 그러나 중부집단군에서 이 계획에 이견을 제의했다. 중부집단군의 사령관은 귄터
폰 클루게 장군이었으며, 그중 가장 핵심적인 제 9군 사령관은 입지전적 인물이던
발터 모델 상급대장이 맡고 있었다. 이중 발터 모델 상급대장은 독일군 내부에서도
놀라운 고속승진을 거듭한 인물이었다. 그는 이렇게 군 사령관을 맡고 있던 시기에
불과 50대의 나이였다. 보통 독일군의 군 사령관급 -- 원수 또는 상급대장 -- 이
60대가 넘는 것을 생각하면 놀라운 것이었다. 사실 이때 OKH(독일 육군 총사령부)
총장이던 자이츨러도 비슷한 경우였지만, 히틀러는 이렇게 눈에 띄는 장교들을 간혹
파격적으로 승진시키고는 했었다. 
 이 모델 상급대장은 독소전 개전 당시에 불과 1개 기갑사단장 이었으며 1941년이
가기도 전에 기갑군단장으로 승진하고 기갑부대를 이용한 방어전에 놀라운 재능을
나타내었다. 그는 만슈타인과 같은 기동방어형은 아니었지만 전차를 일종의 이동하는
구축포대와 같이 이용하는 거점방어에 천부적인 재질을 나타내었다 하며 이는 바로
히틀러의 기호와 일치하는 것이어서 그는 1942년 1월자로 제 9군 사령관으로 승진,
불과 7개월만에 기갑사단장에서 군 사령관으로 이어지는 초고속 승진가도를 달렸던
인물이었다. 그리고 1943년 3월, 남쪽에서 만슈타인의 맹공세가 이어질때 중부전선
르제프 돌출부 지구에서 성공적인 방어전을 지휘하여 방어전의 대가라는 명성을
얻고 히틀러의 신임이 매우 두터웠었다 -- 사실 그가 친 나찌 성향이던 점도 신임에
큰 몫을 했다.

 이 모델 상급대장은 오히려 고전적인 pincer operation, 즉 쿠르스크 돌출부 남과
북에서 동시에 쿠르스크 방면으로 압축공격을 가해 이 돌출부를 절단해버리는 쪽을
선호하고 있었다. 이 계획대로라면 만슈타인 원안대로 남쪽에 강력한 기갑부대를
총집결하는 것이 아니라 남북 양측에 거의 대등한 수효의 기갑전력을 확보해야 함을
의미했다. 

 이 계획은 게다가 OKH 참모총장 자이츨러도 전폭 지지하고 있었다. 자이츨러 또한
모델과 상당히 유사한 케이스로 상당한 고속승진을 한 인물이었다. 그는 전쟁 전에
불과 1개 보병연대장 이었고 프랑스 침공 당시만해도 클라이스트의 참모장이었다.
그는 상당히 기묘한 타입으로 그가 대단한 재능을 보인 분야는 보급 문제였다. 특히
독소전에 이르러 광대한 전선에 연속적 보급을 해야할 상황에 이르자 그의 능력이
히틀러의 주목을 끌기 시작했고 1942년 초에 서부전선 사령부의 참모장에 임명되게
되었다. 그 또한 모델과 같이 만슈타인만한 전략적 식견은 부족했지만 전문적 
영역의 능력 -- 보급문제와 기계화부대의 운용 -- 에는 능했다. 아마도 이는 그가
`수학자'(!)였다는 사실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자이츨러도 다분히 친 나찌적 성향이 있었고 히틀러의 전폭적 신임이 있었기에
1942년 9월이 되자 아무도 믿기지 않는 승진이 이뤄졌다. 불과 소장 계급이었던
-- 소장 계급이면 1개 사단장급이다 -- 그가 OKH 참모총장의 대임을 맡았던 것이다.

 자이츨러는 참모총장의 위치에서 원래 1943년 초에 만슈타인의 첫번째 전략과
비슷한 퇴각을 원했지만 일단 히틀러의 방침이 결정되자 모델과 같이 강력하게
고전적인 pincer operation을 주장하였다. 

 결국 히틀러의 가장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던 모델과 자이츨러의 주장대로 전략은
조금씩 변경되고 있었다. 만슈타인의 뛰어난 전략가적 능력은 히틀러마저도 경의를
표할 정도였으나 -- 그만큼 히틀러로서는 만슈타인이 다루기 어려운 존재였고 
어느정도 견제를 하고 있던 차였다 -- 만슈타인의 의견은 이렇게 수정되었다.
 (그래서 혹자는 쿠르스크 전투를 사실상 발터 모델 상급대장의 전투였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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