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3월  2일 금요일 오전 11시 51분 04초
제 목(Title): 박노자/ 한국식 오리엔탈리즘 


출처: 한겨레 뉴스메일 

비숍 女史와 게일 牧師의 정신이 계승된다? 

`여전히' 박노자 교수는 신문에 실리기엔 긴 글을 보내옵니다. 이번에 `야 
한국사회'에 실린 글도 원문의 반 이상을 잘라야 했습니다.

넘치는 분량을 너무 뭉텅 뭉텅 들어내다 보니 글의 흐름이 좀 어색해져 
버렸더군요. 원문을 그렇지 않았는데 제가 제대로 줄이지 못해 글이 엉망이 
되어 버렸습니다.

박노자 교수가 낸 책에 대해 문의하시는 분들이 있어 답변을 부탁드렸는데, 
국내에서 출판된 몇가지 책들이 있더군요. 그런데 너무 전문적인 학술서적이라 
일반인들이 읽긴 좀 부담스러울 것 같습니다. 일반 독자들이 읽을 수 있는 책을 
올해안에 <한겨레> 출판부를 통해 낼 계획이라고 합니다.

아래는 박 교수가 보낸 글과 원고 원문입니다. 아래 글은 박 교수가 보낸 
글에서 전혀 빼거나 더하지 않는 글 입니다. 물론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등도 
원래 박 교수가 보낸 글 그대로입니다. 
박 교수에게 의견 주실 분은 제 이메일로 보내 주시면 제가 전달해 
드리겠습니다. 


--------------------------------------------------------------------------------

 


안녕하십니까?

저의 다음 글을 첨부 파일로 보내드립니다. 만약 지나치게 긴 것으로 
판단되시면, 수정하시거나 좀 자르셔야 할 겁니다. 그리고, 제가 붙인 제목이 
과연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혹시, 보다 나은 제목은 생각나시면, 바꿔 주시기를 
바랍니다.

독자들의 남은 반응을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의 책을 이야기하자면, 
러시아어로 모스크바에서 나온 "가야사 연구" 이외에, 한국에서 한글로 <한국 
고대 불교사>의 번역본이 서울대 출판부에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그게 
전문적인 저서라 읽기가 불편한 면도 많습니다. 

그리고, 한글로 된 저의 논문은 주로 전문 학술지 (<정신 문화 연구>, 
고려대학교의 <민족 문화연구>, 이와화대의 "이대사학" 등)에서 나왔지만, 
그것도 시사적인 것이 아닙니다. 시사적인 책을 한겨레 출판부에서 금년에 낼 
기획으로, 지금 준비하고 있는 중입니다.

혹시 더 필요하신 게 있으시면 연락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안녕히 계십시요,

박노자 드림  


비숍 여사와 게일 목사의 정신이 계승된다? 

지금도 필자에게, 한국에서 꽤 오랫동안 한국학을 공부했던 한 고려인 (재 
러시아 한인 교포) 여성과의 대화가 자주 기억난다. 

한국의 한 명문 대학에서 장학금을 받아 석사를 마쳤던 그 여성은, 박사과정의 
장학금이 계속 나올 것임에도 불구하고 학위를 한국에서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에 필자는 놀라서 물었다:

- 아니, 한국학을 하려면 그 종주국이자 당신의 고국인 한국에서 계속하는 게 
순리가 아니오? 

그러나, 그 여학생의 대답은 의외로 공격적이었다:

" 나처럼 "고려인"의 딱지를 달고 여기에서 한 번 살아보셨어요?

식당이니, 이발소니 어디를 가도 나의 외국식 발음을 듣고 맨 먼저 물어보는 
것이 "어디에서 왔느냐? 어느 나라에서 온 교포냐?"는 것이죠. "고려인"이라고 
대답하면, 그 다음 반응이 뭔지 아세요? "아이고, 거기에서는 어렵지?" "사는 
게 어려워서 왔구나" 십중팔구는 그런 식예요. 국어의 조사 체계를 연구하러 
왔다하면 안 믿는 듯이 다들 실실 웃어 보이죠. 

그들은 말로 우리를 "같은 민족, 같은 동포"로 부르지만, 각자의 의식을 
들여다보면, 같은 인권을 가진 같은 인간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조차 없는 것 
같아요. 우리들은 그들에게 단지, 불쌍히 여겨 동냥해야 할 하층민들이죠. 물론 
러시아로 귀국해서 공부하면 인종차별을 일삼는 모스크바 경찰들에게 "신분증 
검사"를 당하고 가끔 모욕도 당할 것을 알고 있어요. 그래도 그들의 깡패적인 
차별이, 여기의 일상적인 차별보다도 결코 무섭지 않아요!"

그 여성에게 필자가 세계 자본주의의 보편적인 경제적 차별의 현상을 설명하여 
가지 말고 있으라고 설득했지만, 끝내 그 여성의 결심을 바꿀 수 없었다. 

그 여성이나 필자가 대화를 나누어 본 한국 체류 중인 대부분의 고려인과 
조선족들을 노하게 만든 것은, 경제적 우열에 의한 단순한 차별이라기보다는, 
한국 사회가 재러·재중 교포에게 적용하는 일종의, "한국식 오리엔탈리즘"의 
논리이었다. 

전형적인 서구적 오리엔탈리즘은, 비서구 지역의 주민·문화에 대한 가치 부정 
(否定)과 이질시·타자화 하는 것과, "타율성"과 "소극성", "자기 구제 능력의 
부재" 등의 "무력"과 "무능"을 강조하는 것을 의미한다. 

침략의 대상이 된 비서구 지역의 "원주민"들을 "경제·사회적 혼란에 빠져 남의 
도움 없이 헤쳐 나갈 수 없는 힘없고 불쌍한 존재"로, 그리고 "과거에 위대한 
문명을 가졌지만, 이미 쇠퇴해서 우리의 교화와 가르침, 선교 없이 
문명화·근대화되지 못할 우리 도움의 필수적인 대상"으로 보려는 것은, 
침략자의 당연한 본능이다. 

구한말에 조선에서 체류했던 미국·서구 선교사들의 견문기들을 읽어보면, 이와 
같은 오리엔탈리즘의 고정 관념들이 거의 다 그대로 나온다. 양반의 가렴주구에 
시달리고 "아무 가치도 없는 불교·유교의 미신"에 빠진 "불쌍한 조선 백성"을 
구제해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미국·서구인의 교회·병원·기업이라는 
주장은, 그 견문기들의 골자다. 

그러면, 유학을 중단키로 한 그 고려인 여성과 한국을 깊이 접해 본 대부분의 
고려인·조선족의 엄청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는, "한국식 오리엔탈리즘"은 
무엇인가? 

중국·러시아 교포의 상황을 직접 연구해 보지 못한 대부분의 일반 한국인들이 
유일하게 접할 수 있는 한국 보수 언론들이 보여주는 북방 지역의 교포의 
모습은, 우리의 도움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못살고 불쌍한" 주변적인 
인간이다. 

한국의 각종 단체 (교회, 병원, 기업)들이 "어려운" 교포들에게 베풀어 준 
각종의 "시혜" (선교와 교육 활동, 의료 봉사, 경제 지원)와, "수혜자"들의 
열렬한 반응에 대한 보도들은, 재러·재중 교포 관련 신문·방송 보도의 
대다수를 차지한다. 
그들의 과거 (항일 독립 투쟁 등)가 위대하지만 그들의 비참한 현실을 
문명화·현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도가, "우리의 종교, 우리의 의료, 
우리의 산업"의 현지 확장이라는 것은, 북방 교포 관련의 모든 보도들의 보이지 
않는 심층적 의식이다. 

한 마디로, 적극적이고 선진적인 "우리"와 소극적이고 후진적인 대상인 
"그들"은 대조된다는 것이다. 100년 전 서구와 조선의 관계를 바로 이런 식으로 
설정한 영국의 탐험가 비숍 (Bishop)여사나 캐나다 선교사 게일 (Gale)등의 
조선 관련 견문기의 저자들이 저승에서 이 현상을 지켜보고 있다면, "좋은 
제자가 많다"며 손뼉을 치고 기뻐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모국의 은혜의 수혜자인 "못사는 교포"들은, 모국의 너무나 선진화 된 
오리엔탈리즘을 과연 받아들일 것인가? 100년 전 미국·서구의 "문명 시설"에 
많은 조선인들이 실제로 교육적·의료적 혜택을 받았듯이, 현재의 북방 
교포들도 한국의 경제적·종교적 현지 진출에 나름대로의 이득을 본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인간이 과연 밥으로만 사는가? 한국 보수 언론들이 별다른 관심을 
가지지 않는 일이지만, 북방 교포들에게는 뿌리 깊은 문학적·교육적·학술적 
전통도 있고, "조선족"·"고려인"으로서의 꿋꿋한 자존심도 만만치 않다. 

한국에 비해서도 훨씬 평등한 남녀 관계나 상하 관계, 가족 관계 등 많은 
분야에서의 "근대화 실적"을 자부하는 그들이, "우리의" 큰 시혜에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만 외치고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커다란 오산이다. 

미국 선교사·군인·외교관들의 오만과 인종·문화적 차별주의는 식민지 조선과 
남한의 많은 지식인들에게 반미 의식을 가지게 했듯이, 현재와 같은 한국적 
오리엔탈리즘은 많은 "수혜자"들에게 심한 반한 (反韓)의식을 가지게 만든다. 

처음에 이야기했던 고려인 여성의 경우도 그렇지만, 5년 전의 참치잡이 어선 
"페스카마"호에서 끔직한 선상 반란을 일으켰던 조선족 선원과 같은 경우가 
그것을 잘 대변해 준다. 

북방 교포와의 관계에 있어서 완전한 파탄을 방지하기 위해서 가장 시급하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근대적 정신 즉, 평등과 인권 의식이다. 
경제적 우열과 국적, 그리고 심지어 "핏줄"과도 관계없이, 모든 인류들을 
평등한 인권의 소유자로 인식할 줄 알아야만 부득이하게 "수혜자"가 된 사람의 
자존심과 인권이 짓밟히지 않을 것이다.

한민족처럼 근·현대사에서 차별과 수난의 쓰라린 경험을 가진 민족이라면 
오히려, 그 역사에서 누구에게도 비인간적인 차별과 멸시를 베풀면 안 된다는 
진리를 배울 수 있어야만 한다. 그러한 정신 문화의 발전이야말로 진정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권혁철 기자 nura@hani.co.kr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