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김 태하 ) 날 짜 (Date): 2001년 1월 30일 화요일 오후 03시 36분 26초 제 목(Title): 인문학데이트/ 박은정 [인문학데이트] 20. 박은정 인간 유전자지도와 동물복제 게놈지도 탐구 등으로 생명과학기술은 정보화혁명과 함께 21세기를 움직일 중요한 열쇠로 부각되고 있다. 그러나 인간복제와 유전자 변형 등의 성과들은 인간개념과 실존에 대한 불안감 또한 안겨주고 있기도 하다. 국내에서 여전히 생소한 생명윤리 담론과 그 법제화 작업을 10여 년 동안 묵묵히 실천해온 박은정 이화여대(49)교수는 이런 맥락에서 주목할 만하다. 여성주의적 시각을 바탕으로 생명공학자와 인문학적 가치의 융화를 역설해온 박 교수의 지론은 최근 생명윤리위원회 신설 등으로 조금씩 싹을 맺고 있다. 과학철학을 전공한 학문적 도반이자 후배인 소장연구자 임종식(42)씨가 그와 만났다. 편집자 임종식 =<생명공학시대의 법과 윤리> 같은 선생님의 역저를 보면서 생명윤리에 대한 깊은 학문적 애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과학에 대한 인문학적 사고가 척박한 상황에서 생명윤리 연구에 일찍부터 눈길을 돌리게 된 배경이 평소 궁금했습니다. 박은정=제가 관련 논문을 처음 쓴 것은 80년대말입니다. 뇌사와 장기이식 문제로 관심을 갖게됐고, 인공수정 소식 등을 접하면서 이런 사건들이 유전자 혁명의 일보가 될 것이란 예측을 했었습니다. 아닌게 아니라 이후 생명공학의 발전은 예측보다 훨씬 빠르더군요. 논문에 미래체로 쓴 글귀들이 10년 뒤 현재형으로 바꾸니 다 그대로 맞아 떨어져요. 그만큼 윤리와 안전성의 측면에서 잠재적 위험요인이 적지않은데도 사회적 합의는 미진한 상황입니다. 인문학자로써 이 문제에 집착하게 된 것은 연구성과가 금방 산업화쪽으로 빠르게 연결되는 데 주목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어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처럼 옛적엔 연구자 이름이 이론에 붙었는데, 생명과학 연구는 특허제품에 이름이 붙는 게 예사입니다. 공동선에 기여한다는 믿음 때문에 지금껏 과학연구의 자유보장을 당연시해왔지만 지금은 중상주의적 흐름 때문에 과학의 공공성이 무너지고 고전적 윤리도 쉽게 손상되곤 합니다. 그래서 연구윤리를 따지는 문제가 시급하다고 본 것입니다. 임=딱딱한 법학과 고도의 형이상학적 물음을 포함하는 생명윤리의 접목은 어떻게 보면 독특한 인식으로 비쳐집니다. 필연적인 이유가 있었는지요. 박=생명과 관련해 인류가 합의한 가치는 존엄가치인데요, 그것은 바로 법이 가장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친화감을 느꼈다고나 할까요. 사실 법이란 적정절차를 중시하는 학문인데, 절차적 정의가 생명윤리 영역에서도 대단히 중요합니다. 연구자와 소비자, 정부, 관련 기업체 등 이해당사자간에 기술적·윤리적 갈등이 많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죠. 이를테면 불임부부가 배우자 체세포를 복제해 `돌리'양을 탄생시킨 그 유전자 기술로 아이를 낳겠다는 의도는 반인간적이라는 주장과 출산의 자유라는 주장이 양립할 수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생명과학 분야는 가치적 합의가 절실하지만 실제로는 쉽지않고 논의도 빈곤해요. 특히 현대사회에서 가치에 대한 추상적 합의가 더욱 희박해지는 상황을 고려하면 절차적 정당성은 더욱 필요합니다. 또한 법은 재판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인 만큼 생명기술의 개별적 적용사례들이 윤리에 반하는지 판단하는 것도 중요한 기능일 수 있습니다. 제가 관심가진 생명윤리의 문제영역은 그래서 실질적이고, 절차적이고, 구체적인 정의의 문제인 셈이죠. 임=지난 2년 사이 국내에서도 체세포 복제기술을 놓고 생명윤리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그러나 논의의 중심축은 주로 관련분야 종사자들이어서 질적인 성과에는 회의감이 듭니다. 박=생명공학에 대한 언론보도를 보더라도 기술적 성과 중심으로만 다루려는 흐름이 강하고 사회적·윤리적·법적인 영향과 평가에 대한 가능성은 여전히 별로 열어두지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지난해 생명윤리 자문위가 결성되고, 과학기술부의 유전공학 연구사업에 윤리·법제 연구를 포함시킨 것은 큰 변화입니다. 문제는 생명윤리 담론들이 그다지 생산적이지 못하다는 점이죠. 인문학을 아우르는 학제적 연구가 필요하다면서도 각론에서 성과가 나오지 않고 종교계-과학계의 논쟁은 소모적일 때가 많아요. 신이 용납하지 않는다고 무조건 부정하는 것도 그렇지만 문제를 전적으로 과학자들에게 맡겨놓을 수도 없다고 봐요. 서울대 황우석 교수의 인간 배아복제연구나 경희대 불임클리닉 연구팀의 체세포 배아배양 발표 등은 많은 사회적 파장을 일으켰는데, 학문공동체를 통해 여과되지 않고 언론에서 먼저 선정적으로 보도해 억측과 오해를 낳았습니다. 영국과 네덜란드, 미국 등은 엄정한 인가절차와 자체 연구규정에 의해 이런 과정 자체를 통제합니다. 우리도 연구와 공표절차를 투명하게 하는 제도적 장치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과학자들의 자발적 의지가 중요하겠지요? 임=절차의 투명성을 확보해도 문제는 남습니다. 잉여수정란 가운데서 폐기할 수정란을 가지고 배아복제 실험을 한다면 법적으로 허용해야할까요. 배아의 인간개체 여부에 대해 찬반론자 어느쪽도 결정적 증거를 내놓지 못한 상황이라면 도덕적 위험이 적은 선택을 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봅니다. 배아가 아닌 성인 체세포에서 장기기관의 씨앗인 간세포 배양연구에 주력하는 서구의 사례는 좋은 전범이죠. 박=수정 뒤 14일을 기준으로 배아를 인간으로 보느냐 마느냐의 논란이 일고있습니다만 연구자체를 막을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남용되지 않도록 공공성에 입각한 절차에 따르게 하는 것이 전제이겠지요. 배아가 인간인가 조직인가는 철학적·윤리적인 테마일 것 같은데, 간단하게 답을 내기엔 곤란한 문제입니다. 적절한 중용을 취할 필요가 있지않을까요. 이를테면 수정이후 14일 경과 이전의 배아는 인간은 아니나 일반 장기와는 다른 가치를 지닌다라든가 하는 것이죠. 이런 연구들이 상업적 측면을 일정부분 띠고있지만 전체 기술에 대해 바리케이트를 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윤리와 복지 사이에서 경계선을 긋는 법철학적 고민과 노력이 절실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임=인류역사상 특정과학분야에서 부가가치 큰 기술력을 확보할 경우 윤리적 이유로 개발을 삼가한 사례가 있다고 보십니까. 결국 그런 기술개발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게 전례였다면 논의자체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박=기본적으로 오늘날 생명공학 기술이 지닌 장래의 위험성에 대해 줄기차게 문제의식을 가져야한다는데는 이론이 없습니다. 저는 생명윤리의 문제가 장차 사회정의의 쟁점이 되리라고 봅니다. 우려하는 것은 이런 발전이 사회적 불평등을 증가시키고 관용을 말살하는 쪽으로 인간관계를 형성할지 모른다는 거죠. 20세기 10대 뉴스에도 들어간 인간게놈 프로젝트 완성으로 유전정보가 폭발적으로 확산될 경우 정보 불균형이 생길 것입니다. 유전자 우열을 따져 정상·비정상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넌 유전자가 달라'라는 식의 불관용이 만연하는 경우도 배제하지 못하지요. 하지만 인간을 위한 과학이란 신념을 잃지않고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기술발전을 끌고갈 수 있도록 시민과 과학자들이 함께 머리를 맞대려는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되어야하겠지요. 임=조금 다른 얘긴데…. 기존 사회제도와 도덕관에 이의를 제기해온 여성주의가 생명윤리의 쟁점에서도 새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다고 보는 견해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박=여성들은 출산, 육아 등을 통해 생명현장 가장 가까이에서 살아왔습니다. 이런 오랜 경험 탓에 인간의 몸에 개입하는 기술에 여성은 가장 민감하다고 봐요. 생명공학 기술의 적정성과 한계에 대한 여성적 사고와 가치관들은 이런 측면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생태, 환경과 함께 주변부로 밀려나온 여성들의 시각은 생명공학을 포함한 과학기술사회가 발전할 수록 더욱 눈여겨 보아야합니다. 의료나 생명공학연구자 대부분을 남성이 차지하고 남성중심적인 기술환경으로 뒤덮힌 상황에서 여성주의적 관점은 앞으로의 논의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것으로 봅니다. 정리/노형석 기자nuge@hani.co.kr·사진 김종수 기자 박은정은 누구? △ 1952년 경북 안동에서 태어남. △ 1974년 이화여대 법학과 졸업. △ 1978년 독일 프라이부르크 대학교 법학부 졸업(법학박사). △ 1980년~현재 이화여대 법과대학 교수. △ 1989~90년 하버드대 옌칭연구소 객원 연구원. △ 현재 한국법철학회 회장, 유네스코 국제생명윤리위원회 위원, 참여연대 공동대표. △ 쓴 책: <자연법사상>(1987, 민음사), <현대의 사회문제와 법철학>(1993, 교육과학사), <인권과 연구윤리>(1999, 이화여대 법학연구소), <생명공학시대의 법과 윤리>(2000, 이화여대 출판부) 등 다수. 박은정이 말하는 박은정 교수란 평생학생이 아닌가 한다. 그러고 보면 나는 새학기 들어 61학기째 법학을 공부하는 셈이다. 처음 공부하기 시작했을 때나 지금이나 변치 않는 생각은, '있는 법'은 언제나 '있어야 할 법'에 비추어 해석하고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있어야 할 법'은 인간가치를 정점으로 하는 실천원리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10년 가까이 생명윤리에 관심갖게 된 것도, 앞으로 한 세대 동안 각광받을 첨단생명공학이 인권과 인간의 존엄가치에 새로운 도전이 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특히 사람이 지닌 유전자를 강조하기 시작하면서 '존엄'보다는 '행복' 혹은 '삶의 질'을 추구하는 목소리가 더 커지고 있다. 나는 행복이니 삶의 질이니 하는 단어들이 두렵다. 필경 저마다 달리 원할 행복과 삶의 질을 찾아 나서면서, 오늘날 가뜩이나 도처에서 목격되는 계층간, 세대간, 국가간 갈등의 골은 점점 깊어지고 합의는 점점 어려워 지는게 아닐까. 수명을 연장시키고 똑똑한 아이를 갖게 해주고 병 없는 세상을 만들어준다는 기술이 힘을 얻는 사회일수록, 인문정신은 개인으로서 저마다 다르게 원하는 바 보다는 인간으로서 우리가 다같이 원하지 않는 바, 피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다시 확인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나는 앞으로도 사람이면 누구나 당하고 싶지않은 불편, 재난, 굴욕, 억압의 조짐을 찾아다니는 쓰기, 읽기, 사귀기를 계속하고 싶다. 나이 40들어 드나들기 시작한 참여연대 사무실 벽에는 '혼자서 꾸면 꿈에 불과하지만 여럿이 꾸면 현실이 된다'는 글이 붙어 있다. 이 글을 대할 때마다 읽기와 쓰기 때문에 꿈 꿀 사람사귀기를 놓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도록 더 부지런해야겠다고 다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