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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1Cust76.tnt7.red> 
날 짜 (Date): 2000년 12월 21일 목요일 오전 04시 19분 11초
제 목(Title): 인문학 데이트/ 윤지관 


[인문학데이트] 18. 윤지관 

 `혹을 떼러 갔다가 혹을 하나 붙여오고 그 두 개가 된 혹을 또 떼러 갔다가 또 
혹을 그 위에 하나더 붙여온 셈이 되었다' 
번역이나 외국문학 연구를 돈벌이나 처세술 쯤으로 치부하는 천박한 풍토를 30여 
년전 시인 김수영은 이렇게 한탄했다. 95년부터 동학들과 `영미문학연구회'(이하 
영미연)를 결성해 이끌어온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46·영문학)는 이런 비판의식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토종학자다. 번역문화 후진성 극복과 영문학의 한국성 찾기는 
그가 천착해온 필생의 과업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영미연에서 내는 계간지 
<안과밖>은 번역물과 해외 인문학연구에 대한 정밀한 비판으로도 성가가 높다. 
영미연 비평분과의 후배 김금주(35·연세대 영문과 박사과정)씨가 그를 찾아갔다. 
편집자 



김금주=수시로 얼굴 마주보며 토론해왔지만 이렇게 직접 선배님 생각의 이모저모를 
캐어보게 되어 무척 설렙니다. 사실 고대해왔던 기회이기도 하지요. 

윤지관=금주씨에게도 그동안 선배로서 많은 조언을 해주고 싶었던 터여서 저도 
이런 자리가 반갑고 감회가 새롭군요. 

김=영문학이자 문학비평가로 일하면서도 항상 외국문학에 대한 우리 나름대로의 
시각, 즉 주체적 해석을 유독 강조해오셨지요? 원전의 구절구절을 세세히 
탐독하는데 치중해온 영문학계의 관행에서 이런 시각은 특이함을 넘어 모난 돌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윤=외국문학을 공부하는 자체가 독특한 선택이겠죠. 아직도 사고나 인식의 
근대화가 온전히 뿌리박히지 않은 우리 현실에서 외국문학의 심층적 연구는 특히 
그렇습니다. 사회가 미국문화의 강한 영향력 아래 놓여있음을 고려한다면 
영미문학의 정치·사회적 맥락을 염두에 두지않을 수 없고 당연히 외국과 다른 
특징을 띠게 되지요. 

김=미국의 세계패권을 업고 영어의 지배력은 갈수록 지구화되고, 공용어화론까지 
나옵니다. 저도 강의하다보면 학생들이 고급구문에는 거부감을 보이고, 오히려 
취직 잘되는 영어 중심으로 가르쳐 달라고 요구하기도 해서 혼란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영어교육에서도 인문학 위기의 징후들이 적잖이 나타나는 셈이죠. 

윤=영어가 보편어가 된 상황은 인정해야지요. 배우기의 현실적 필요성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근본적인 문제는 이런 영어열풍의 현상 뒤에 언어를 
부릴감(도구)으로만 보는 생각이 깔려있다는 점입니다. 언어는 사람사이에 뜻과 
생각이 통하도록 구실주어진 도구일 뿐 아니라 정치, 영혼, 가치의 문제 등까지도 
담지하는 그릇인데, 실용영어만 강조하는 영어붐은 얕고 비뚤어진 가치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미국인과 똑같이 회화하자는 식의 교육은 영어를 할 때 민족적인 
자의식을 없애버리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바로 그런 대목에서 영문학자가 개입할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영문학계가 이런 점에서 소극적이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단순히 영어를 전공하고, 
공부하는 차원의 전문가로서가 아니라 인간문제를 다루는 인문학자로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최근의 영어논란은 결국 언어에 대한 인식과 태도의 
문제입니다. 자아문제를 젖혀두고 정책적인 영어구사능력향상을 꾀하는 것은 
허상일 뿐입니다. 

김=번역문제로 말을 돌려볼까요. 두달전 영미문학연구회 주최 학술대회에서 
번역문제와 관련한 토론이 있었죠. 선배님은 그때 번역과정에서의 언어간 
권력관계에 주목하자는 의미에서 `번역의 정치학'이란 표현으로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 개념을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윤=번역행위에 내포된 정치적 사회적인 힘의 관계를 좀더 깊이 짚자는 측면에서 
문제를 제기했던 겁니다. 우린 전공자든 비전공자든 한마디로 번역을 기술적 
차원에서만 이야기하는데, 좀더 의식적으로 번역에 접근하자는 의미와도 통합니다. 
식민지시대를 겪고나서 그 극복이 우리 사회 과제라고 한다면 우리 처지에서 
번역을 통해 외국을 수용하는 것은 근대화를 위해 불가피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번역이 식민지배도구가 됐던 게 역사적 현실이고 보면 무엇을 어떻게 왜 
번역하느냐는 번역자체에 대한 분석을 통해 번역을 저항의 공간으로 활용할 필요도 
있지않을까를 얘기하고 싶었던 거죠. 

김=번역이념에 대해 설명하면서 정확성 충실성에 강조점을 뒀지만 요즘 
포스트모더니즘 담론처럼 번역도 하나의 창작품이라고 보는 견해도 나옵니다. 
정확성이나 충실성이란 개념 자체를 어떻게 보고있는 것인지요. 

윤=심포지엄에서 논쟁거리가 됐던 걸로 기억해요. 난 번역속에는 저항만 아닌 
생산적인 면도 같이 있을 수 있다고 봐요. 번역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생산하는 
의미랄까요. 두 문화사이의 접합 통해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것도 가능하지요. 
따라서 번역의 정치학은 저항만이 아니라 창조성도 살리는 이중적 작업이 될 
수밖에 없어요. 정확성이라거나 충실성은 원전을 제대로 옮기는 것을 강조하는 
태도일텐데 그 태도와 창조성 문제가 엇갈리는 듯 해도 기본적인 번역의 정확성이 
배제된 상태에서 창조성만 강조하게 되면 해체주의자들이 말하는 자발적인 
오역까지 허용하는 위험이 생기지요. 아직도 정확성은 기본적 합리성조차 미숙한 
우리 사회의 근대성 확립과도 연관된 문제입니다. 

김=최근 서점에 가보면 번역물이 전례없는 홍수를 이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과정의 의미와 맥락을 고민하기보다는 인기에 영합한 대중서쪽의 번역물들이 
활개치는 느낌을 받습니다. 이론서의 경우도 상투적인 오역이나 원문문장 빼먹기 
등의 관행은 그다지 개선되지 않은 느낌입니다. 

윤=번역이 활발한 것은 사실인데 대개 관심은 기능적인 쪽에 한정되고, 번역의 
정치학에 대한 인식은 별로 없어요. 요즘 번역서만 봐도 역시 현실에서 번역문화의 
후진성을 다시금 떠올리게 됩니다. 일본번역서의 중복번역과 같은 식민지 관행은 
여전히 뿌리 깊습니다. 제가 최근 근대기 번역서 분석논문을 보았더니 식민지시대 
이전부터 이미 국내의 서구문학 번역은 일역서를 중역한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나와 
놀란 적이 있습니다. 영문고전만 해도 번역본이 많이 있지만 신뢰할 만한 
검증절차도 없고 서로의 판본을 마구 베끼다시피하다보니 정본을 찾기가 힘든 
상황입니다. 오히려 국제저작권 협약가입으로 새 작품의 판권을 출판사가 독점할 
경우 번역이 나빠도 다른 번역본을 출간할 수 없는 악순환조차 우려되는 
형편이지요. 

김=어렸을 때 세계문학전집에서 흔히 읽었던 <주홍글씨>가 떠오르는 데요. 제목도 
원문그대로 해석하면 `주홍글자'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역자들이 마구 베껴놓은 
태작번역들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입니다. 이론서도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합니다. 

윤=이론서도 오역으로 담론형성에 지장을 주는 경우가 많습니다. 수년 전 문단에서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이 재연됐을 때 많은 문인, 학자들이 해외유명이론가의 
저술번역본을 참조했으나 결정적 오역이 많아 오해가 빚어진 적도 있습니다. 특히 
신자유주의가 팽배하면서 무엇을 `어떻게' `왜' 란 근본적인 문제의식보다도 
시장주의가 번역을 가늠지우는 철칙이 되고있습니다. 영미연의 계간지 
<안과밖>에서 고전번역의 문제점들을 계속 점검해왔습니다만 등급평가작업을 해서 
적어도 번역서의 수준에 대한 판단기준을 제공할 필요는 있다고 봅니다. 

김=따지고보면 번역작업이란 것도 외국문학을 어떻게 수용하느냐 문제와 연관되는 
것이겠지요. 영문학의 주체적인 수용과 연구에 관한 전망을 어떻게 보는지요. 

윤=서구문화 수용은 우리 근대형성의 한 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외국문학을 하는 
사람은 숙명적으로 주체적인 것이 무엇인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체적이라고 해서 꼭 배타적이어서는 안되고 그렇다고 해서 서구에 합일되는 것도 
곤란하지요. 어떻게 보면 이중적 자세를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계간지 <안과밖>의 
제목자체가 그런 문제의식을 함축합니다. 영문학은 밖이고 타자이지만 이미 안에 
들어와 우리의 일부로 박혀있는 조건이라고도 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영문학을 
주체적으로 받아들이고 연구하고 교육하는 문제는 결국 자기자신에 대한 탐구와 
얽혀있다고 봅니다. 정리/노형석 기자nuge@hani.co.kr·사진 곽윤섭 
기자kwak1027@hani.co.kr 


윤지관은 누구? 


△1954년 대구에서 태어남(그뒤 경북 영천에서 성장). 

△1978년:서울대 인문대 영문과 졸업. 

△1985년~현재:덕성여자대학교 영문과 교수. 

△1989-1996년:계간 <실천문학> 편집위원 

△1993년:서울대 인문대 영문과 대학원졸업(박사). 

△1997-1998년:미국 버클리 대학 초빙교수. 

△1999-현재:영미문학연구회 공동대표. 

△지은책:<민족현실과 문학비평>(1990, 실천문학사), <리얼리즘의 옹호>(1996, 
실천문학사), <근대사회의 교양과 비평>(1995, 창작과비평사). 

△옮긴책:<언어의 감옥>(까치, 1985), <현대문학이론의 조류>(학민사, 1983), 
<톨스토이냐 도스토예프스키냐>(종로서적, 1983) 외 다수. 


윤지관이 말하는 윤지관 


유신체제 아래서 대학시절을 보내며 수업에조차 별로 충실치 못했던 내가 공부를 
업으로 삼을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졸업 뒤 사병으로 복무하던 때였다. 1980년을 
전후한 사회적 격변을 맞아 연일 계속되는 비상대기에 시달리면서, '대학생들'을 
증오하는 동료들의 거친 발언들을 들으면서, 기이하게도 공부를 하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마음속 다짐이 일어났던 것이다. 제대말년 약간의 여유가 생기자 
멜빌의 <모비딕>을 `씨그넷 클래식' 판 문고본으로 독파한 것이 내 영문학 공부의 
시작이었다. 광주항쟁의 충격과 <모비딕> 독서. 얼핏보아도 엄청난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 둘의 어느 한쪽도 놓지 않고서 그 사이의 어떤 관련성을 이해하려는 
일이 내 뒤늦은 공부길의 피할 수 없는 과제였던 듯싶다. 대학원을 마친 80년대 
후반부터 공부가 부족한 대로 변혁적인 문학론과 연결된 비평을 발표하고 한 
진보적 잡지에 몸을 담게 된 것도, 그 어떤 책임감에 시달린 탓은 아니었을까? 
역시 80년대적 체험과 의식이 나의 연구와 비평활동의 근저에 자리잡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 자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모비딕>의 의미를 궁구하는, 변함없는 인문주의자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문학이야말로 지극한 의미에서 변혁적임을 믿는 문학주의자라고도 생각한다. 이 
문학이라는 진지에서 수행하는 싸움에, 전후방이 따로 없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90년대 이후의 깨달음이었다. 한때 선명한 이념을 앞세워 진군하던 사람들이 
어느날 갑자기 사라지고 나면, 후방에 있던 진지가 어느새 최전방이 되어버리는 
일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진지전의 가치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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