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1Cust12.tnt1.red> 날 짜 (Date): 2000년 12월 17일 일요일 오전 09시 10분 53초 제 목(Title): 박상주/ 홍세화, 부산대강연 요약 '민중을 태운 택시운전사가 되리..' 지난 15일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씨가 부산대학교 부대신문사 주최의 초청강연에 참석해 4백여명의 학생, 시민들과 '한국사회의 지식인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강연회를 벌였다. 푸른색 셔츠에 갈색 재킷을 입은 그는 부드러운 표정에 날카로운 눈빛을 보여주었다. 60여평되는 강연회장을 가득메운 사람들에 사뭇 긴장했는지 그는 연신 "제가 사람들 앞에서 당황하는데..."라며 초조한 기색을 보였지만 리듬감있는 어조를 유지했다. 그는 우선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한국사회에 조그마한 변화를 바라는 운동가'로 대신하고 예전에는 남민전 '전사', 빠리에서는 운'전사', 지금은 아웃사이더라는 잡지의 제5중대 '전사'라며 현재의 그를 "발언을 통해 사회개선을 바라는 싸움꿈"이란 말로 구체화시켰다. 그는 현재 자신이 하고있는 이른 바 '전투적 글쓰기'를 하는 이유로 운을 뗐다. "한국사회가 그것을 요구하는 겁니다. 프랑스 사회에서 살면서 지식인과 언론의 모습을 보고 한국사회의 지식인, 언론이라는 사회 상층의 모습을 비교해 봅니다. 두 나라가 차이를 보이는데 ... 한국사회는 지식인들이 (대중들을) 낮은 수준의 상태로 유지시키고 그 위에서 군림합니다. 그것에 대한 분노. 또 무지와 오류상태에 있는 일반대중의 굴종에 대한 울분입니다." 그는 좀더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우선 한국 사회학계가 많이 수입해 공부한다는 사회학계의 거두 피에르 브르디외를 예로 들었다. "그는 '프랑스 교수란 무엇인가?'라는 강좌를 통해서 브르디외 스스로를 사회학적 분석대상으로 삼았습니다. 한국은 그의 이론을 수입하고 토론하기 전에 브르디외를 논하는 교수들 스스로에게 '자신은 무엇인가?'에 대해 응답했어야 합니다. 교수들은 시간강사에 대한 착취구조를 깨는 데 나서야 합니다. 하지만 교수들은 정부가, 제도가 문제다라고만 탓을 돌릴 뿐입니다. 이건 그람시가 말한 '기능적 지식인'의 수준일 뿐입니다. 자신의 지위를 누리기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앎이란 사회의 인식을 통해 변화를 모색해야 함에도 자신의 지위를 공공히 하기 위해 지식이 이용되고 있는 겁니다." 그는 여기서 부연을 덧붙였다. 감옥에 대한 감시라는 것을 배우면서 "한국의 인권사각지대인 감옥에 대한 감시를 하는 지식인은 없습니다." 그는 또, "이 말은 지식을 쌓아가는 사람들이 그 지식의 대가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에 대한 우려입니다. 또한 이러한 지식인을 용인하는 대중들의 무지를 계몽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는 지식인의 모습을 실명비판에 대한 이야기를 예로 들며 설명을 이었다. "비판은 당연히 실명이어야 합니다. 비판의 주체를 적시하지 않고 비판하는 것이 가능합니까? 왜 한국사회에서는 실명비판이 인신공격이 되는 겁니까? 강준만교수 방식의 실명비판에 대한 논란은 문제의 핵심이 아닙니다. 그 비판이 (비판대상자의) 지위에 대한 위협이 되기 때문에 인신공격으로 몰고가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진보를 지향하는 지식인이라면 (이를 보고) 사회가 성숙하지 못했다고 생각이 들겁니다. 열린사회라면 차라리 그 비판을 고맙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 자리에 있을 만한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것은 지식인이 한국사회에 지위, 권력을 지키기 위해서만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그헣다면 왜 그런가? 그는 계몽의 시기가 없었다는 것으로 진단내렸다. 그는 우리나라 대중의 의식수준을 '무지'라고 일갈했다. 그 첫번째 이유에 교육이 있다고 그는 주장했다. "자리매김에 유리한 입장만을 고수하는 모습. 이를 해결할 사람이 지식인임에도 제 역할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교육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교육이 사회적 앎을 일깨워 주는 것이 아니라 서열매기기에 불과한 겁니다. 그 서열경쟁에서 이긴 사람들은 사회 상층이 되고, 그들은 대중의 굴림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그들이 어떻게 소외된 대중에 관심을 돌링 수 있겠습니까?" 그는 이어, "개인주의를 가르치는 프랑스 사회에 교육비는 없습니다. 학교란 학교는 모두 국가가 제공하는 무상교육입니다.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는 국가주의교육을 하는 한국사회는 무상교육의 개념이 있습니까?" 교육으로 계몽이 되지 못하는 이유, 그는 한국의 극우정치색를 지목했다. "한국에 보수는 없습니다. 극우만 있습니다. 속빈 민주주의의 지배 이데올로기만 있는 교육을 만들어내는 극우입니다. 한국의 의식수준이 낮은 것은 이런 교육과 대중매체때문입니다. 자신의 사회 경제적 조건에 따라 그에 맞는 입장에 서지 못하고 있는 것은 대중매체를 통해 보고 듣는 것만을 자신이 아는 모든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한국 대중의 의식수준은 이러한 무지와 오류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과 프랑스의 차이는 사회의식의 수준 차이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변화 시키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진보는 늦은 걸음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성이 눈뜨는 속도가 늦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는 이성에 눈뜨기 힘든 이유로 조선일보를 들었다. "안티조선일보운동도 이 매체가 수구기득권세력의 참조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는 광신자가 열성을 보이는 것이 부끄러운 것처럼 지혜있는 자가 열성이 없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라며 안티조선일보 운동에 나서줄 것을 호소했다. 그는 최근 국토종단을 하며 조선일보 반대운동을 벌인 김동호씨를 예로 들면서 "내가 한국에서 살았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까란 생각이 든다"고 말하고 한국사회에서 강단좌파로 전락해 버린 지식인의 모습이 보일 수 밖에 없음을 한탄했다. 그는 "프랑스의 정당은 무지개 색입니다. 극좌파에서 극우파까지 다양합니다. 그런 사회에서 지식인은 각자 자기가 발디딜 정치적 색깔을 가질 수 있고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어디에 발딛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조선일보를 조폭신문이라고 표현한 그는 조선일보와 같은 매체의 힘의 논리가 다양한 정치적 입장이 한국사회에 마련되는 것을 막는다고 지적하고 "조선일보는 국민일반이 무지 상태에 있는 것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민주, 반민족, 반민중 신문이면서 일등신문'이라 자랑하는 조선일보에 대해 그는 "조선일보가 2백만부를 자랑하는 데 유럽에선 그 정도 부수를 내는 건 그 자체로 광고지나 옐로페이퍼입니다. 그리고 이 신문은 온갖 친일행적을 일삼고도 사죄하지 않았습니다. 국내에서 이렇게 친일행각을 사죄하지 않는데 일본이 어떻게 사죄를 하겠습니까? 대중의 의식수준이 낮아서 보는 것일 뿐입니다." 그는 또 "조선일보 말고도 동아일보, 중앙일보도 마찬가집니다. 하지만 먼저 가장 추악하고 가장 악랄한 것부터 싸워서 이겨서 적을 줄여나가야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스스로 발디딜 자리잡기의 계획을 밝혔다. "저는 2, 3년내에 한국으로 올 것입니다. 그리고 민주노동당에 입당하고 당비를 낼 것입니다." 그는 마지막 말을 하며 강연을 마쳤다. "저는 운전사였습니다. 그리고 택시운전사의 눈을 가지고 살겠습니다. 택시운전사는 앞을 주시하고 바라봅니다. 손님은 쉽게 목적지를 말합니다. 목적지까지 가는 구불구불한 그 길을 알고 가는 사람은 운전사입니다. 여러분도 대중을 태운 운전사가 되길 바랍니다." 하니리포터 박상주 기자 redphoto@hanimail.com 편집시각 2000년12월17일04시06분 K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