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1Cust94.tnt3.red> 날 짜 (Date): 2000년 10월 4일 수요일 오후 01시 05분 10초 제 목(Title): 김정란/ 백분토론 후기 김정란 교수님 백분토론 후기 <펌> [검열반대]백분토론 후기(1) 안녕하십니까? 김정란입니다. 100분 토론과 관련하여 여러분의 기대를 저버리게 되어서 뭐라고 말할 수 없을만큼 참담한 심정입니다. 여러분에게 우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서 진심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용서를 빕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만, 그냥 지나갈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 용기를 내어 글을 씁니다. 온갖 비난과 모욕을 당하고 있습니다만, 견뎌내야 한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어느 정도의 수난은 각오했습니다만, 이런 정도일 것이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었습니다. 다시 한번 더 제가 얼마나 현실감각이 없는지 뼈저리게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이 읽기 편하시도록 번호를 매겨서 하나씩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개인적인 신상에 관하여 개인적인 신상에 관한 말로 글을 시작하는 것이 부담스럽기는 합니다만, 실제로 이 부분이 이번 실패의 가장 큰 원인이고, 또 우리모두 내부의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우선적으로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방송출연할 당시의 저는 지칠대로 지쳐있었습니다. 그 전 주 초에 신동아 측으로부터 안티조선 특집을 하기로 했다면서 글을 하나 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달랑 1주일 정도의 시간을 주고 원고청탁을 받은 셈입니다. 당시에 저는 아웃사이더 원고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도저히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친조선일보 인사들과의 대담 정도는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렸더니, 이미 송복 교수를 인터뷰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분들은 직접 대면은 죽어도 안 하려고 하시는 것이지요. 그래서 다른 분들을 추천했지요. 그랬더니, 신동아 측에서 이런저런 이유에 의해서 꼭 내가 써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쩌겠습니까? 링겔이라도 맞아 가면서 쓰는 수밖에. 얼마나 소중한 기회입니까? 그걸 내버려서야 되겠습니까? 아웃사이더 원고 끝내놓고 하룻밤을 완전히 새면서 원고를 끝냈습니다. 그리고 나서 한숨 돌리고 있는데 또 100분토론 섭외가 들어온 것입니다. 방송날이었던 목요일 오후 6시에 저는 문화관광부에서 주최하는 [인터넷 세미나]에 참여해야 했습니다. 그 지난 주에 그렇게 푸닥거리를 하는 바람에 저는 발제 원고도 못 쓴 상태였지요. 그래서 '도저히 못하겠다"고 고사했습니다. 그랬더니, 또 이런저런 이유로 제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방송의 특성 때문에 취해진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준비할 시간이 없다, 고 말씀드렸더니, 평소에 내가 해왔던 발언 정도면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또 우물우물 받아들이게 되었지요. 그러나 아무래도 안되겠어서 김동민 교수님께 다른 분을 섭외해보시라고 말씀드렸지요. 김동민 교수님께서 패널 변경을 상의하시기 위해서 PD에게 전화를 드렸지만, "판을 깔아줘도 못 나오느냐"는 타박만 들으셨답니다. 그 말씀을 들으니 도저히 뒤로 못 빼겠더군요. 게다가 이미 우리모두앙에 방송 패널에 대한 공지가 올라왔고, 우리모두는 방송 소식에 환호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찬물을 끼얹을 용기를 낼 수가 없었습니다. 아마 몇 분은 보셨을 겁니다. 제가 그날 세미나 참가 때문에 도저히 안되겠다고 우리모두앙에 글을 올려놓았던 것을요. 조회수 4를 확인하고 슬그머니 글을 내렸으니까요. 그냥 죽으나 사나 가보자, 라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부담감 때문에 꼬박 하루를 까먹어버렸습니다.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하루 종일 자고 또 잤습니다. 그 귀한 시간을... 왜 이렇게 나에게 많은 짐이 지워지나. 왜 나는 싫다는 소리도 못하고 이렇게 자신을 지킬 줄도 모르나. 그런 마음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힘들게 세미나 원고를 마무리해놓고, 우리모두앙들에게 자료를 모아달라고 부탁하고, 저는 저대로 열심히 자료들을 훑어보았습니다. 김동민 교수님은 김동민 교수님대로 방송일 당일 오후3시 강의를 끝내고 올라오실 수 있다고 하셨구요. 그래서 서로 맞춰볼 시간도 없었습니다. 이런 정황이었습니다. 일 주일만 뒤에 방송이 되었어도, 충분한 준비를 할 수 있었으련만. 가슴을 쳐도 이미 모든 것이 늦었습니다. 이처럼 일에 몰리고 몰린 상태에서 방송에 나갔던 것입니다. 우선 그런 상황에서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했던 제게 가장 큰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안티조선 진영의 실체성 문제와도 연관되어 있습니다. on 중심의 운동이다 보니, 누가 누군지를 모르고, 어떤 일에 누가 적합한지 하는 문제들도 점검된 바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외부에서는 알려져 있는 사람을 찾게 마련이고, 저는 저대로 의무감에 떠다밀려서 청탁이나 섭외에 응하지 않으면 어떤 부채감에 시달리게 됩니다. 제가 <뜨고> 싶어서 방송에 나갔다고 비난하시는 분들께는 그런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제발, 제 대신 이 일 좀 맡아주시라고요. 저는 지금 죽을 지경입니다. 이대로는 도저히 계속할 수가 없습니다. 2. 토론방식의 문제점 - 대중 정서에 대한 무지 이번 방송을 둘러싸고 제가 받고 있는 비난의 가장 큰 원인은 토론 자세에 관한 것입니다.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제 홈에 가보시면, 온갖 종류의 욕설이 올라와 있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관해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저는 원인을 두 가지 정도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첫째. 상대방 패널들의 성향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들이 뭐라고 하던 말던 이쪽 얘기만 줄기차게 했어야 했는데, 저는 그분들을 설득시켜 보려고 했던 것이지요. 그러다 보니, 싸움질하는 것처럼 보였던 모양입니다. 그리고 <색깔론>에 휘말려들어가지 않으려고 너무 수세적인 위치에 서있었습니다. 그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습니다. 저는 그런 막가파 논리를 들고 나오리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거든요. 제가 치중했던 것은, 왜 하필 조선일보냐, 라는 부분과, 조선일보 운동의 당위성에 관한 것이었거든요. 그렇게 정치적 문제로 몰아가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둘째, 저의 현실감각 부족입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이런 식의 토론 프로그램을 즐겨 보았습니다. 그곳에서는 막 욕설이 오가기도 하고, 난리가 납니다. 저는 그런 모습이 아주 재미있었고, 거기 비하면 우리 나라 토론이 너무 점잖고 밍밍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첨예하게 부딪치는 논제일수록 그런 장면이 연출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닌가요? 실제로 저는 끼어들기를 하면서도 그 태도가 그렇게 시청자들에게 거부감을 줄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해보지 못했습니다. 충분히 말하지는 못했지만, 상대방들의 입으로부터 "폭력의 역사도 정당화될 수 있고", "폭력으로 수립된 정부라도 정당하며", "그런 정부가 자신의 입장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 특정 신문사를 밀어줄 수도 있는 것 아니냐"라는 말까지 끌어냈으므로, 저의 토론 태도를 문제삼아 그토록 몰상식한 인간으로 몰아가리라고는 생각해 본적이 없었으니까요. 김용서 교수님은 저에게 삿대질까지 하셨지요. 저는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사과까지 했고요. 그런데도 저만 버르장머리없는 여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저는 몸이 말을 하는 종류의 인간입니다. 기쁘면 기쁜 내색, 슬프면 슬픈 내색, 화가 나면 화가 나는 내색을 그대로 합니다. 그러한 제 태도가 시청자들을 거슬린 모양입니다. 오만하고, 상대방을 무시하는 것으로 보였던 것이지요. 게다가 상대 패널들이 나이드신 분들이었던만큼, 제 직정적인 반응이 대단히 불손하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거기에 아마도 제가 여성이라는 이유가 한 가지 더 붙여졌겠지요. 우리 나라에서 여성이 어떤 취급을 당하는가를 확인하고 싶으신 분들은 제 홈의 방명록에 한번 가보십시오. 그것이 현주소입니다. 한국 땅에서 여자는 여자일 뿐입니다. 한국여자는 아직 인간이 아닙니다. 그러나 제가 대중적 정서를 너무 몰랐다는 점에 대해서는 정말 입이 열 개 있어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한껏 조심했어야 했는데, 기분내키는대로 행동하고 말았습니다. 이것 역시 앞으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사과를 하고 있지 않으셔서 못마땅하지만, 권정도님의 충고는 새겨들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운동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국민 일반의 정서를 고려에 넣어야 합니다. 그 동안 우리는 우리가 옳다는 지나친 자만에 빠져 있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태도가 대중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전혀 고민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우리에게는 상식으로 여겨지는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극도로 불순하게 보여지는 문화적 풍토에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 그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날, 방청객에서 나왔던 <개그맨> 운운도 우리가 너무 우리의 내부 논리와 정서에 머물러있었다는 사실을 웅변적으로 보여준 태도였다고 생각합니다. 이 점에 관해서 조선일보를 좃선일보로 부르는 등의 우리의 내부 정서에 대해 심도있는 논의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대중논리 개발에 대하여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많았습니다. 이 문제 역시 준비 부족이라는 원인이 주된 원인이겠지만, 또 한 가지, 우리가 대중논리를 개발하지 못했던 점에 또다른 원인이 있습니다. 저는 우리 사이에서 공유되던 논리, 즉, 조선일보는 과거에도 문제가 많았고, 지금도 문제가 많다는 논리를 쉽게 풀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에 관해서 우리에게는 충분한 자료도 있었고, 아미 충분히 점검을 끝낸 상태니까요. 그러나 그 논리가 <현정권에 친한 세력>이라는 논리적 걸림돌과 <수구> 또는 <극우>라는 이념적 지평을 거쳐가지 않을 수 없다는 점, 그것을 피하려다 보니, 문제제기가 명확한 방식으로 이루어지지를 못했습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역사관에 관한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데, 토론을 그 방향으로 풀어갈 경우, 정작 조선일보 문제는 건드리지도 못하고 말 것이라는 강박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래서 자꾸 상대 패널의 말을 끊을 수밖에 없었지요. 말하자면, 우리가 지금까지 공유해 왔던 논리가 일종이 지식인 논리이거나 또는 세미지식인 논리에 불과했다는 것을 저는 그 자리에서 뼈저리게 느낄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 우리 사이에서 논의되는 역사관에 의한 조선일보 거부와 소비자 언론운동의 논리는 중간 부분이 텅비어있는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원화>라는 말이 제 입에서 튀어나가 버렸구요. 이 점에 관해서 우리는 앞으로 깊이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저는 그날 <1차지식인 서명>에 조심성없이 끼어들어간 <미군철수>에 관한 문제 때문에 심리적으로 브레이크가 걸려있었습니다. 제가 관여하지도 않은 그 선언문에 대해 책임져야 하는 입장이 말할 수 없이 곤혹스러웠구요. 게다가 상대방은 그것을 빌미삼아 계속 <친북세력>으로 몰아가고 있구요. 이 점 역시 자체 점검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 운동 자체가 조선일보를 구독하고 있는 엄청난 숫자의 대중에게 <기분나쁜 참견>으로 여겨진다는 엄연한 현실입니다. 제 홈에 올라온 의견들 중에서 이 부분을 지적하는 글이 아주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니가 뭔데 우리더러 보라말라 해"라는 것이지요. 기분나쁘다, 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정서적인 반발을 차분히 설득할 수 있는 대중온리의 개발이 시급합니다. 이제 쳬계적인 점검이 필요한 시기가 왔습니다. 이번에 드러난 문제들을 차분히 짚어가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4. 최장집 교수 논문 건 그날 제가 했던 가장 큰 실수는 "최장집 교수논문을 읽어보지 않았다"고 너무나 솔직하게, 멍청하게 대답했다는 점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저는 이미 이 건에 관한 기사들을 충분하 훑어보았고, 또 송복 교수처럼 친조선일보적인 인사들조차 "전체적으로 문제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또 진중권/이한우 논쟁을 충실히 따라 읽었기 때문에 판단을 내리는 데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또 저는 일개 신문사 기자가 자기 멋대로 논문을 찢어발겨서 한 학자를 사상검증하는 것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구요. 원칙 자체에 동의하지 않는 것이지요. 또 한 학자의 사상이나 자질을 검토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을 총체적으로 판단해야지, 어떤 특정한 시기에 쓴 논문 한 편, 그것도 몇 구절을 문제삼는다는 것은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선일보의 류근일 논설위원도 학창시절에 좌경화 논문을 썼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담년, 왜 류근일 논설위원의 사상은 검증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러나 저는 솔직하게 대답해 놓고는, 앞서의 모든 말을 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아, 정말 글을 쓰는 것과 말을 하는 것이 얼마나 다른 일인지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검열반대]백분토론 후기(5) 5. 시인이 시나 쓰지 무슨 반조선일보 운동이냐는 비난에 대하여 이 부분은 사실 우리들 사이에서는 논의할 필요조차 없는 일이지만, 저는 이번 일로 인해서 시인으로서 특히 <불순하다>는 비난을 당하고 있기 때문에 말씀드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 점에 관해서는 이 주제로 제 홈에 질문을 해주신 한시민님에게 드렸던 답글을 옮겨오도록 하겠습니다. ******************* 100분 토론에 관해서는, 열기가 조금 빠져나가고 난 뒤, 차분하게 정리해서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문제가 많았다는 것은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토론 기술의 문제였지, 님이 말씀하시듯이 수준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제게 보내지는 개인 메일들의 반응은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들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님께서 거북스럽게 느끼셨던 것은 정서적 층위나 관습의 문제였을 것입니다. 상대방 패널들이 나이드신 분들이었기 때문에 저의 직정적인 대응 방식이 더욱더 눈에 거슬렸을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미숙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이렇게 저와 저희 학교 학생들을 매도하시는 것은 온당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문학으로 돌아가라"는 말씀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저는 문학을 떠났던 적이 한번도 없습니다. 이 홈페이지를 두루 둘러보십시오. 제가 얼만큼 긴장을 견디며 반조선일보운동과 문학을 병행시켜가고 있는가를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다른 지식인들은 한 가지 일만 하면 되지만, 저는 몇 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할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되어서 고통을 무릅쓰고 애쓰고 있는 것이지요. 저에게 문학과 삶은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저는 제 삶과 똑같이 구성되는 문학을 하고 있습니다. 반조선일보 운동은 제 문학적 선택과 전혀 별개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 점은 뒤에서 말씀드리고, 우선 문인의 사회적 발언을 <불순>하게 여기시는 님의 견해에 대해 토론해보도록 하지요. 님은 제가 정치에 진출하고자 하는 사욕을 가지고 얼굴을 알리려고 이 운동에 뛰어들었다고 보십니까? 시간이 나시면 한번 제 글들을 찬찬히 훑어보시기 바랍니다. 제가 어떤 성향의 인간인지 충분히 아실 수 있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오해가 무턱대고 근거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던 문인들이 많았으니까요. 그러나 저는 아닙니다. 저는 정치에 아무 관심도 없습니다. 오히려 내가 하기 싫은데(물론, 시켜주지도 않겠지만요) 남들이 해주어서 고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인으로서 한 사회의 중요한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불순>한 것이라고 보십니까? 그러면 역사상 사회에 대해 발언했던 수많은 문인들은 모두 불순한 시인들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이육사, 김수영, 신동엽, 고은, 김지하, 신경림, 황지우, 빅토르 위고, 폴 클로델, 앙드레 말르로, 사르트르, 카뮈, 솔제니친, 옥타비오 파즈.... 무수한 시인들과 소설가들이 당대의 정치적 문제에 대해 발언하고 그들의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들이 불순한 사람들일까요? 발언해야 할 때 침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한 시대의 지배자들의 이데올로기를 추인해주는 결과를 가져왔다면, 그들의 <순수 문학>은 비정치적이기는커녕, 매우 정치적인 선택이 아닐까요? 예를 들어 봅시다. 조선일보 문제에 대해 침묵하거나, 조선일보와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이른바 <순수문학>을 조선일보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림으로써 조선일보의 이데올로기를 감추는 데 도움을 주고 있는 작가와 시인은 결과적으로 매우 정치적인 선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 덕택에 조선일보는 세련됨으로 위장된 극우이데올로기를 전파하게 되니까요. 이러한 태도가 <순수>한 태도일까요? 아니면, 조선일보의 막강한 매개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문학적으로 매장당할 각오를 하고 조선일보의 문제점에 대해 발언하는 것이 오히려 <순수>한 태도일까요? 문인들의 반조선일보운동 참여율이 저조한 이유를 아십니까? 조선일보에 밉보이면, 문학적으로 완전히 끝나는 것입니다. 300만 명의 독자에게 소개될 기회를 잃어버리게 되는 것이니까요. 이런 의문도 드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이 무슨 독립운동하는 시대인가? 또 군부 독재 시절도 아니지 않는가? 남들 힘들게 움직일 때 뭐하다가 이제야 뒷북치고 나서서 별로 위험해 보이지도 않는 <반조선일보운동>을 한다고 나서는 데에는 편하게 명예나 챙기겠다는 얄팍한 계산이 뒤에 깔려 있는 것 아닌가? 예, 그런 의문도 드실 수 있습니다. 저는 80년대에 움직이고 싶었어도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프랑스 유학중이었으니까요. 어떤 분들은 그 시대에 프랑스 유학을 갔다는 사실 자체를 <도피>리고 여기기도 하시더군요 그런 측면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인정합니다. 그러나 5.18 당시에 한 살 짜리 애기를 데리고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저의 프랑스 유학은 한가하지 않았습니다. 무지무지 가난했으니까요. 게다가 저는 정치적인 방식에 별로 어울리는 인간이 못됩니다. 그날 토론도 억지로 응했다가 철딱서니없이 마구 흥분하는 바람에 실수를 연발하고 말았지요. 80년대 상황에서는 제가 할 일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핑계에도 불구하고 제가 80년대에 움직이지 못했던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저의 비겁함입니다. 그것을 부인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때 비겁했으니 지금도 입다물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요. 그러나 제 초기시들을 읽어보시면 아실 수 있겠지만, 저는 참여에 대한 열망을 늘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든 내가 발언할 수 있는 적절한 때가 오리라, 고요. 그때는 회피하지 말자, 라고요. 그리고 대학 교수가 되고 난 뒤, 저는 지식인이 침묵하는 것이 매우 위험한 부조리에의 찬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상지대에서의 험난한 투쟁과정이 저를 투사로 변신시켰습니다. 그 일에 관해서는 에세이 방의 <생의 철학을 실천하는 학교>라는 수필을 읽으시면 도움이 되실 것입니다. 3년 간 피투성이가 되도록 싸웠습니다. 무척 힘들었습니다. 재임용에서 탈락될 위기도 겪었구요. 그런 과정을 거쳐서 저는 서서히 말해야 할 때 말하는 용기를 가져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지식인사회에 수 년 전부터 제기되기 시작한 <반조선일보운동> 안에서 저는 제가 발언하지 않으면 안되는 필연성을 읽어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80년대 상황과 다른 문화적 상황이 전개되었고, 권력은 미시 권력 층위로 이동해서 여전히 해체되지 않은 채 권력을 작동시키고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 안에서 문화적으로 위장하고 실질적인 정치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조선일보와의 싸움은 대단히 중요한 문제라는 인식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지요. 저는 이 문제에관해서는 제가 할 수 있는 어떤 역할이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던 것입니다. 반조선일보 운동에 뛰어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말씀드릴 기회가 있으면 상세히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 얘기 또한 길고 긴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반조선일보운동이 안전한 운동이 아니라는 말씀만 드리겠습니다. 물론, 더이상 인신구속의 위험은 없습니다. 토론이 있던 날, 상대편 패널이셨던 임변호사께서는 <불법> 운운 하시며 겁을 주셨지만, 그것이 무리한 얘기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구태의연한 협박이지요. 그러나, 인신을 구속당하고 고문당할 염려는 사라졌지만, 오히려 더 치명적인 위험을 겪어야 합니다. 80년대 상황에서의 운동은 적어도 개인의 명예에 있어서만은 안전한 일이었습니다. 어쨌든 <투사>로 남을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운동은 자칫 잘못하면, 욕이나 잔뜩 얻어먹고 끝나게 될지도 모릅니다. 실제로 조선일보 문제와 연관지어서 문단을 비판했다가 저는 지난 일 년 내내 치도곤을 치러야 했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치르고 있고요. 이른바 님이 생각하고 계시는 것처럼 <매명론>을 굳게 믿고 있는 것이지요. 글쎄요, 이름을 얻기 위해서, 굳이 이렇게 힘든 길로 가야 할 이유가 있을까요? 조선일보에 맞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독재정권에 맞서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인지도 모릅니다. 정치적 투사들은 국민들이 모두 인정해 줍니다. 그들이 무엇과 싸우는지 명확하게 알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조선일보와의 싸움은 국민들이 그 의미를 잘 못 알아차립니다. 물론, 이제부터 알려나가야겠지요. 그러나 무척 힘든 일입니다. 문제 자체를 명확하게 분리시켜 내기가 무척 힘든 일입니다. 이 문제가 이 정도로 사회적으로 의제화되는 데에만 해도 오랜 기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언론학자들이 꾸준히 문제제기를 해왔어도 언론이 보도를 해주지 않으니까 일반 국민들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지요. 문인들은 돈보다도 명예를 훨씬 더 소중하게 여깁니다. 그런데 이 운동은 자칫 하면 명예를 몽땅 잃어버리는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현대사회에서는 매스컴이 다루어주지 않으면, 자신이 작품을 알릴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문인들은 조선일보 문제에 대해 내심 동의하고 있으면서도, 감히 앞으로 나설 생각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조선일보에 찍히면 끝장"이라는 두려움이 팽배해 있는 것입니다. 벌써 보십시오. 저는 반조선일보 운동에 뛰어든 후, 온갖 모략과 음해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지금 제 홈페이지에 올라오는 이 수많은 욕설들과 비슷한 비난에 저는 지난 1년 내내 시달려야 했습니다. 이것은 전혀 새삼스러운 대접이 아닙니다. 토론에서 기술적으로 미숙했다고 해서 이 정도로까지 비난당해야 하는 이유를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훨씬더 본질적인 거부감이 반조선일보운동에 가담하고 있는 저를 향해 퍼부어지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듭니다. 대놓고 <빨갱이년>이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니까요. 그러나 저는 모든 비난을 견뎌낼 생각입니다. 제가 하는 일이 의미있는 일이라고 믿고 있는 한, 저를 향해 쏟아지는 비난에 제가 휘청거려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저를 거꾸러뜨리는 것은 내적 정당성의 부족이지, 타인들의 비난이 아니니까요. 물론, 예의를 지키지 못했던 점에 대해서는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건 분명히 잘못된 일이었으니까요. 끝으로, 반조선일보 운동과 제가 하고 있는 문학의 상관관계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문인들, 특히 시인들은 언어의 문제에 대단히 민감합니다. 특히 시인들이 그렇습니다. 시인들에게 언어는 존재증명의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현대사회에서 문인이 된다는 것은, 언어의 오염으로부터 언어의 순수성을 지켜내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때의 순수성이란 물리적인 의미에서의 순수성은 아닙니다. 그것은 오히려 존재론적 순수성이라고 보는 것이 옳겠습니다. 즉 외부의 이데올로기나 구체적인 이익의 추구와 상관없이 존재를 구축하는 요소인 언어, 그것의 자기목적성을 지켜내는 일 말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언어를 통해서 한 개인이 명징한 인식을 가지고 세계를 구축할 수 있는 뚜렷한 독립적 언어 사용이 불가피합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그것을 방해합니다. 자신들의 이익에 맞도록 언어를 조작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독특한 언어 사용을 불가능하게 합니다. 어떤 언어든지 어떤 덩어리 안에 뭉뚱그려 집어넣고 집단적으로 세뇌시킵니다. 냉전 시대에는 <반공>을 가지고 그런 장난을 하다가, 이제는 <지역감정>을 가지고 그런 장난을 합니다. 요사이는 <반공>과 <지역감정>을 믹스시켜서 자신들의 입맛대로 언어를 조작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문제를 문학적으로 매우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몰주체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는 대중이 어떻게 매우 섬세한 개인성에 종사하는 언어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결국 이것은 근대성의 정착을 방해라는 요인으로 작동합니다. 따라서 저의 반조선알보운동 선택은 문학적이며 정신사적이며, 또한 정치적이기도 한 선택인 것입니다. 따라서 저의 반조선일보운동 참여는 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불순한, 또는 정치적인 선택이 아니라, 매우 문학적인 선택인 것입니다. 그 선택의 외연이 정치적인 외연과 겹쳐지는 부분이 있는 것일뿐이지요.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제가 방송에 나가서 하면, 과연 대중이 설득될까요? 따라라서 저의 고뇌는 제가 하고 있는 문학적 작업과 대중적 작업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제 언어로 말할 때에는 아주 잘 말합니다. 그러나 대중 앞에 나가면, 그 간극을 잘 뛰어넘지를 못하고, 당황하거나 버벅댑니다. 매우 대중성이 떨어지는 종류의 인간이지요. 그러나 방송국 측에서는 이런 저런 이유로 저를 패널로 원했고, 몇 차례나 고수하다가 대안이 없다는 얘기에 내키지 않는 마음으로 억지로 응했다가, 실수만 연발했던 것이지요. 그러니, 제가 시대착오적인 논리를 큰 목소리로 주장하는 노련한 나이드신 분들 앞에서 얼마나 힘들었을지 짐작하실 수 있지 않습니까? 무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요. 그냥 답답하고 지겨웠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런 느낌을 직정적으로 드러낸 것이 문제였지요. 이 점 깊이 반성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그 자리에 저는 공인의 자격으로 나갔던 것이 아닙니까? 저는 그날 무식했던 것이 아니라, 서툴렀던 것입니다. 수준이 낮았던 것이 아니라, 수준을 조절하지 못했던 것이구요.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제 언어 수준이 높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관여하는 분야가 달랐다는 것이지요. 저는 제게 익숙한 언어로 말할 수 없었으니까요. 나름대로 준비는 잔뜩 했는데, 그걸 요령있게 풀어내지를 못했어요. 그리고 저의 내밀한 반조선일보운동 선택의 이유를 옆에 제쳐두고 어떻게 대중적인 방식으로 말을 풀어야 할지 알지 못했구요. 그런 간극이 저를 괴롭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발언권을 독점하고 큰 목소리로 사상적으로 의심스럽다는 말만 자꾸 하니까, 그걸 차단하느라고 덤벙댔던 것이구요. 어쨌든, 층고 감사히 받아드리겠습니다. 이번 일을 보다 성장하는 계기로 삼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