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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istory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김 태하 ) <1Cust102.tnt6.re> 
날 짜 (Date): 2000년 7월 21일 금요일 오전 10시 05분 36초
제 목(Title): 한겨레/인터뷰 이진경 


[인문학데이트] ⑨ 이진경 

 인문학 데이트 아홉 번째 초청자는 이진경(37)씨다. 이씨는 약관 25살 때 쓴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으로 1980년대 대학가에 마르크스주의 원전 학습 
열풍을 불러일으킨 장본인이다. 학생운동 조직사건에 연루돼 2년 가까이 옥고를 
치르기도 했던 그는 출감 뒤 왕성한 필력으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에서 강의와 공부를 하고 있는 그를, 같은 공간에서 
강의를 한 바 있는 권보드래(31) 서울대 강사(국문학)가 만나 <수학의 몽상> 등 
그의 저서들을 놓고 깊이 있는 얘기를 나눴다. 편집자 
'근대에 묶인 사람' 바뀌지 않으면 새로운 세상도 없습니다 

권보드래=수유연구실에서 만난 지 1년 반쯤 됐죠? 이렇게 데이트를 겸해서 
인터뷰를 해보는 건 처음이군요. 

이진경=낯설게 만나면 아는 얘기도 흥미로울 수 있겠지요? 

권=저서가 여러 권이던데, 사람들은 여전히 80년대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을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이=80년대 학번에겐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으로, 90년대 학번에겐 
<철학과 굴뚝청소부>로 기억돼 있다더군요. 

권=두 책에서도 드러나지만, 이진경의 글에는 80년대와 90년대의 단절이 
선명하다는 평가가 많은데요. 

이=마르크스-레닌주의자였던 80년대의 저와 `탈주의 철학'을 이야기하는 90년대의 
저 사이에 단절이 있는 건 분명하지요. 하지만 80년대 운동권의 삶이란 어찌 보면 
그 시대에 가장 전형적인 탈주의 삶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당시 `도바리친다'는 
말이 일상화돼 있었는데, 이 말은 군대나 경찰 같은 국가권력과의 대결이고, 
지배적인 가치체계와 삶의 방식을 거부하고 전복하려는 것이었어요. 그런 점에서는 
오히려 연속적이라고 봅니다. 

권=그렇지만 둘 사이에 차이가 있는 것 또한 사실이고 미셸 푸코나 질 들뢰즈 같은 
사상가들에게로 옮아간 데서도 그걸 알 수 있을 듯한데요. 

이=옮아갔다기보다는 마르크스주의와 `접속'시킨 거라고 합시다. 사회주의의 
붕괴는 기존의 마르크스주의로는 설명이 안 돼요. 자신의 역사를 이해할 수 없는 
마르크스주의, 여기엔 틀림없이 근본적인 어떤 공백이 있는 겁니다. 이 공백을 
메우려면, 기존의 마르크스주의 안에서는 불가능하고 마르크스주의 외부에서 
마르크스주의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죠. 가령 거기서 저는 경제적 
생산양식으로 환원되지 않는 `주체생산양식'이 있다고 본 것인데, 푸코나 들뢰즈가 
그것을 사유할 수 있는 개념과 이론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권=그렇다면 붕괴 이전의 사회주의는 무엇이었습니까? 

이=생산양식 차원에서 보자면 분명히 사회주의였죠. 그러나 근대적 삶의 방식이 
여전히 지배하는 사회였습니다. 생산양식이 바뀌어도 근대인을 생산하는 
주체생산양식은 바뀌지 않았던 겁니다. 

권=그것이 선배님이 코뮨주의라는 주제에 대해 연구하려는 이유인가요? 

이=그렇게 볼 수 있습니다. 코뮨주의는 코뮨(공동체)이란 말에서 나온 것인데, 
함께하는 삶, 그런 삶을 만드는 관계와 삶의 방식 문제를 새롭게 개념화하려는 
데서 나온 말입니다. 물론 같은 말의 번역어인 공산주의라는 말이 있지만, 이건 
함께 생산한다는 뜻의 경제주의적 개념이어서 코뮨주의와는 다릅니다. 

권=공산주의만큼 강력한 코뮨주의도 없을 것 같은데요. 

이=하지만 그건 기존 마르크스주의 안에서는 언제나 연기될 뿐, `결코 오지 않는 
미래'예요. 현실의 사회주의는 코뮨주의적이라고 하기 힘들구요. 근대적 삶이 
만들어낸 무의식적 습속을 바꾸지 않는 한, 그걸 바꾸기 위해 새로운 인간관계와 
삶의 방식을 만들어내지 않는 한, 새로운 종류의 주체는 만들어지지 않을 겁니다. 
그런 점에서 “공산주의를 위해서는 광범위한 인간 변혁이 필요하다”는 
마르크스의 말을 다시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권=근대적 주체와 다른 새로운 주체는 어떻게 형성될 수 있겠습니까? 

이=여러 차원에서 이야기할 수 있겠는데요, 명령과 복종에 길들여진 근대적 삶을 
깨나가는 삶의 방식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혹은 우리를 자본주의적 
관계로 포섭하는 화폐 내지 가치법칙에 대한 투쟁을 벌이는 것도 그렇습니다. 
자본에 구매된 활동인 노동을 극소화하고, 자신의 생산적 능력을 확장하는 
자기활동을 극대화하는 것도 그렇구요. 노동조합에서든, 당에서든, 
공동체운동에서든 말입니다. 

권=선배님이 말하는 그런 운동은 일상적이고 항상적이라는 점 때문에 오히려 
실현하기 어려운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그게 어려운 건 이미 익숙한 우리 자신의 습속, 생각, 행동을 바꾸기가 힘들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을 바꾸면 쉽고 신나는 일일 수도 있지요. 여기서 
중요한 건 안주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존의 삶을 반복하는 방식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시켜나가는 자율적이고 집합적인 실천이 코뮨주의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덧붙이자면, 마르크스주의를 공부했거나 무슨 무슨 운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진보적으로 살고 있다고 하는 생각이 착각인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마르크스를 빌려 말하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겁니다. 

권=그런 코뮨주의적 실천을 `탈주'라고 해도 될 것 같은데, 탈주가 무엇인지를 
좀더 명확히 이야기해주시면…. 

이=탈주는 도피가 아니라는 걸 먼저 분명히 할 필요가 있습니다. 탈주는 차라리 
지배체제로부터 모든 사람들을 벗어나게 하는 행위입니다. 그것은 무언가를 
거부하는 부정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긍정이에요. 하지만 대개 기존의 
지배적 체제는 그것을 가로막지요. 그래서 탈주자는 지배적인 체제와 투쟁할 
수밖에 없지요. 

권=최근 <수학의 몽상>이란 책을 쓰셨는데, 거기에서도 근대성과 관련한 선배님의 
문제의식은 여전한 것 같습니다. 

이=어떤 것을 계산가능한 것으로 만들려는 것이 수학입니다. 운동을 계산하는 것이 
근대 과학혁명의 출발점이 되었지요. 하지만 그것은 전혀 상이한 것 사이에서 
새로운 관계를 찾아내며, 여기서 독창적 사유가 발전합니다. 그것이 수학의 강력한 
힘일 겁니다. 그렇지만 그것에 형식적인 틀을 씌우려는 노력 또한 공존했어요. 
특히 19세기 이후 `엄밀성'이란 말은 다양한 모습의 수학들을 어떤 형식요건에 
따라 가위질하는 재단사의 역할을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 수학을 가두려는 시도는 
결국 실패해요. 저는 근대 수학사를 통해서 수학의 그런 역동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권=근대 수학에 대한 비판이 모든 수학에 대한 적대는 아니란 거군요? 

이=그래요. 마찬가지로 근대를 넘어서자는 뜻의 근대 비판이 근대적인 모든 것에 
대한 적대는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근대성의 지반에서 탄생한 요소들을 탈근대적 
배치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문제의식인 거죠. 

권=최근 들어 동아시아철학, 한국철학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이=특별하다고 할 건 없는데, 먼저 우리 자신의 삶과 역사로 혁명을 사유해야 
한다는 생각에서지요. 우리 자신의 사유방식, 삶의 방식을 연구해야 한다고 할 때 
동양철학은 그리로 들어가기 위한 문 가운데 하나일 겁니다. 다른 한편, 그것은 
근대적 삶과 사유에 대한 일종의 `외부'인 셈인데, 그런 만큼 근대의 외부를 
사유하는 데 중요한 자원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에섭니다. 

권=선배님 활동의 장인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가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사유를 통해 삶을 변경시키는 노력이 필요하고, 자신의 삶을 실험과 실천의 
대상으로 삼는 아방가르드적 문제의식이 필요한데, 연구공간 `너머'가 그런 
공간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자율주의적 활동방식과 공동의 삶을 모색하는 
실험을 여러 각도에서 모색하고 있는 셈이지요. 글 고명섭 기자michael@hani.co.kr 
사진 김진수 기자jskim21@hani.co.kr 


이진경이 말하는 이진경 


사회주의가 붕괴하고도 한참 지난 후 누가 그에게 “아직도 사회주의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아뇨, 지금은 코뮨주의자예요”라고 대답한 적이 있었다. 
함께하는 삶에 대한 꿈, 그것은 그로 하여금 대학에 입학한 이후 10년여의 시간을 
`운동'의 물결 속에서 헤엄치게 했고, 그 물줄기를 따라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가게 
했다. 그러나 아뿔싸! 그 강의 끝은 아득한 폭포였다. 몰락으로 귀착된 사회주의, 
그것이 사회주의자라는 이유로 감방에 앉아 있던 그가 대면해야 했던 역사였다. 
그러나 함께 하는 삶, 상이한 것들이 공존하고 상생하는 삶에 대한 꿈마저 버릴 
수야 없는 일 아닌가? 폭포를 지나면 강은 다시 흐르게 마련이고. 따지고 보면 
사회주의란 그 꿈이 한때 머물렀던 영토의 이름인 셈인데, 어쩌면 이젠 그 땅을 
벗어나 새로운 땅으로 떠나야 할 때가 되었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었을까? 

이제 그는 `공상적'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코뮨주의라는 말을, 함께 하는 삶의 
이름이요 `희망의 원리'라고 부른다. 그는 `횡단'이랍시고 마구잡이로 넘나들며 
근대성에 대해 집요하게 추적했던 것이나, 화폐에 대한 적개심을 이론화하려는 
시도를 이런 식으로 정당화하려고 한다. 또한 함께 생산하는 체제로서 
`공산주의'에서 코뮨주의를 떼어냈다. 코뮨이란 함께 사는 새로운 사회적 관계요, 
새로운 삶의 방식인데, 코뮨주의란 코뮨에서 나온 말이고, 그것을 강조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오지 않는 먼 미래의 시제가 아니라, 현재성의 시제를, 하지만 
지배적인 흐름에 반하는 `반시간적' 시제를 코뮨주의에 부여하며, 이를 
이론화하려고 하고 있다. 나아가 코뮨주의라는 화두를 빌미로, 자신의 삶을 
제약하고 있는 자신의 역사에 대해서 비판적 독해를 꿈꾸고 있다. 하지만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두고 볼 일이다. trans@thrunet.com 

이진경은 누구? 

△1963년 서울 생
△1987년 서울대 사회학과 졸업
△1990년 서울대 대학원 사회학과 석사(논문:`일반적 위기론과 
국가독점자본주의론에 관한 연구')
△1998년 서울대 대학원 사회학과 박사(논문:`서구의 근대적 주거공간에 관한 
공간사회학적 연구')
△1999년 이후 `수유연구실+연구공간 `너머''에서 연구 및 강의
△저서:<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1987), <한국사회와 변혁이론 
연구>(1991), <철학과 굴뚝청소부>(1994), <필로시네마, 혹은 탈주의 철학에 관한 
7편의 영화>(1995), <근대적 시·공간의 탄생>(1997), <맑스주의와 근대성>(1997), 
<탈주선 위의 단상들>(1998), <수학의 몽상>(2000)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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